| 2008.10.19 (이 상남 장로)
"불에 타지않는 작품"
(The Work Unconsumed by Fire)
고린도 전서 3:6-15
어뗜 유명한 목사님이 주일설교를 준비하고 있을때 숙제를 하던 어린딸이 서재로 들어와 물었습 니다. "아빠는
어떻게 매주일 설교를 준비하세요?"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응, 기도와 묵상을 한 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쓰면 되는거야." 딸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여러번 썼다 지웠다
하세요?" 아마 여러분께서는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여러번 지웠다 썼는지 짐작이 가실것입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저는 평신도 주일이 왜 생겼을가 생각하다가 목회자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좀 더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돌아 오는 설교, 수요예배, 심방, 상담, 교회 모임등 끝없이 계속 되는 목회자들의 사역을
보면 좀처럼 휴식의 시간이 없습니다. 평신도쪽에서 보면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기위해만 평신도 주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 해동안 우리 교회를 담임하시다 가 지금은 감리사로 계신 조영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 납니다. 제가 정확하
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뜻이였습니다. "교회는 운 동경기에 비교될 수 있는데, 목회자가 선수로
뛰고 교인이 관중으로 있으면 재미도 없고 곧 지쳐 버리지만, 교인들이 선수로 뛰고 목회자가 코취의 역할을 하면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된다." 평신도와 목회자의 역할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12년간 평신도로 이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여러분과 나누고저 합니다. 사실은 일생에 한번 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에 멋진 설교를 하게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탄자니아 단기 선교팀에 참가하면서 영감을
위해 기다렸습니다. 며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성경을 뒤적였으나 제가 바라던 응답대신 하나님의 꾸중같으것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가 무슨 주제에 훌륭한 설교를 기대 하느냐? 강단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해라!"
저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들렸고 따라서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지난 8월초에 Chicago 의 Wheaton 대학에서 열렸던 제6차 선교 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4년간 한국이 세계 각지에 파견한 선교사는 두배로 늘어서 1만9000명에 달하며, 그중 30%는 평신도 선교사였습니다.
이 숫자는 한국과 미국에 있는 한국 교회들이 보낸 선교사들의 숫자 입니다. 그들의 선교 보고는 목회자 출신 선교사들과
다름없는 감동을 주었고, 또 큰 결실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제 평신도의 사역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행1:8).
오늘 읽은 본문은 시기와 분쟁에 싸인 고린도 교회에 본낸 바울 사도의 편지입니다. 저는 최근에 끝난 김영봉 목사님의
고린도 전서를 중심으로 한 수요 저녁 예배 시간에 배운 내용이 생각 났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왜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생겼으며, 목회자와 평신도가 마땅히 알고 행해야 할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차이는 무었입니까? 바울은 3장7절에서 고린도 교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심었던 자신을 심은 사람으로, 자기의 후계자로
교회를 부흥시켯던 아볼로를 물을 준 사람으로 부르며 자기들은 아무겻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목회자나 평신도가 영광을 차지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충성되게 섬기고 순종 할뿐입니
다.
그는 자기들을 건축가로 그리고 평신도들을 하나님의 밭이며 건물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목회자와 평신도는 당연히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아 분업적인 일을
하는 도구로서, 유일한 터전인 그리스도 안에서 필연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며, 목회자와 평신도는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밭에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어떤 평신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집을 지어야 하겠습니까? 12절 이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따라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타지 않는것으로 집을 지으면 그 날에 곧 심판의 날에 불로
검증을 받아도 타지 않고 남아 있으며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신앙 이 성숙하지 못했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온전한 교리의 기초위에 서지 못했고, 교회의 기초이신 그리스도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을 따라 파벌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의 화평과 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뜻 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분쟁 없이
성장을 계속해 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 이며, 또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12년전 버지니아로 이사 오면서 우리 교회에 등록 했을때 여러분들이 따듯이 맞아 주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쁘고 감사한 마음로 신앙 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한달에 한번씩 있는 바나바 사역팀의 새교우반에 나가서 복음증거 사역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가 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몇가지 자랑스러
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암전문 의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1984년에 드디어 끊었습니다. 암환자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권 할때 제가 느낀 모순은 말 할 수 없었고, 드디어 끊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의 해방감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제가 혼자서 노력 했을 때는 번번히 실패 했었는데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담배를 끊는데 성공 했읍니다. 담배를 피워보지
않으신 분은 제 얘기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자랑은 그후 제가 워싱톤의 해병대 마라톤( Marine Corps Marathon)을 완주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뛰다가 걷다가 했지만 '뒤 에 있는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상을 받으려고 달려가는' 빌립보서 의 장면을
상상하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세번째 그러나 저의 가장 큰 자랑은 1984 년에 제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것 입니다.
담배를 끊은 것도 마라톤을 뛴것도 모두 제가 구원을 받은후 계획 했고 실천했던 일들 입니다. 물론 신앙의 혜택이 이렇게
직접적인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 큰 축복은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느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불행을 이해할 것 같고, 화평과 기쁨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의 처지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바른 교리를 배우며 굳건한 믿음을
지키는 평신도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 그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진실한 성도의 교제를 계속할 때 건강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그들이 자기들의 은사대로 교회에 봉사하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때 그 평신도는 불에 타지 않는 첫번 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 28:18-20)
또 사도행전 1장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9월에 이미 김영봉
목사님 이 설교에서 언급하셨 듯이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신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거져 받은 용서와 자유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책에서 읽은 일화가 생각 납니다.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Fritz Kreisler 씨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연주자로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으나 거의 모두 자선사업에 썼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부자가 소유하고
있던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고 그 악기의 위대성에 매료되어 자기가 사고 싶었지만 충분한 돈이 없었습니다. 얼마후 돈을
모아서 그 바이올린을 사러 갔을때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으로 그 악기가 넘어간 뒤였습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새소유
자를 찾아 내었으나 그 는 악기 팔기를 거부했습니다. 실망한 Kreisler 씨는 그 바이올린을 한 번만 켜 볼 수 있느냐고
물었고, 새소유자는 Kreisler 씨의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Kreisler 씨는 조심스럽게 바이올린을 집어들고
악기 주인 앞에서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했습니다. 잠간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Kreisler씨는 바이올린을 주인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 때 주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이 명기의 주인은 이제부터 당신 입니다. 나는
그것을 소유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저 선물로 받은 선물인 구원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을 혼자서 소유할 권리가 없습니다.
저는 1998년 여름에 한인섭 장로 님을 따라서 멕시코 단기선교에 참가한 후 해마다 빠지지 않고 계속해 왔습니다.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권고와 인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 복음을 다른 사람들
과 나누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제대로 전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하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에 은퇴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있어
서, 지난 11월에 2주 동안 멕시코 까깔첸에 있는 나다니엘 선교관에 가서 장태전 선교사 내외와 2주일을 보내면서
그곳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휴식과 봉사의 기쁨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면서 장태전 선교사와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에 선교관을 다녀온 많은 분들이 같은 간증을 하는 것을 저는 여러번 들었습니다.
몇몇 청소년들도 같은 경험을 한 것을 장선교사님이 몇 주일 전에 보고하신 것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 신앙에 큰 도움을
줍니다. 물론 전도를 위해 꼭 해외로 나가야 하는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가까운 자선 기관에
가서 봉사 하는것도 똑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매 주일 양로원을 찾아 음식을
대접하며 몸을 씻겨주고 성경 말씀을 읽어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숙자에게 음식과 담요를 나누어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환자와 곤경에 처한 분들을 찾아 위로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도 전도와 선교이며,
우리가 남길수 있는 불에 타지 않는 소중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두 가지로 요약 하셨습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마22:37)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 데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있다."
예수님은 우리 가 하나님께 순종할것 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것을 요구 하십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일들은 심판의
날에도 불에 타지 않을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한된 생명을 주셧고,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수 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불에 타지 않는 작품을 만들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젠가 주님앞에 선다는 것만 알뿐입니다. 평신도나 목회자나 똑같이
주님앞에 설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제 대답은 간단해 졌습니다. 우리는 불에 타지 않는 작품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심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평신도 주일에 우리의 해야할 일은 주님 앞에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대로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평신도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따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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