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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Home | audio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2008.8.31 (김 영봉 목사)

요한복음 연속설교: 생명의 복음 (107)
“사람을 낚는 인생”
(Life for Winning Souls)
--요한복음 21:1-14

1.

그런 경우를 아십니까? 처음에는 매우 고결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중도에 그 목표를 잊음으로 인해 보통 사람보다도 더 추하고 악하게 타락하는 경우 말입니다. 가령,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며 사회복지사로 나섰다가 중도에 그 목표를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복음이 닿지 않은 곳에 가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하겠다고 나선 선교사가 중도에 그 목표를 잊어 버리고 선교를 구실로 치부에 혈안이 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21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처음에 품었던 목적과 소명을 잊어버린 또 다른 경우를 보게 됩니다.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던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날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 베테랑 어부였던 시몬은 밤 새도록 허탕을 치고 깔깔하고 쓴 입맛을 다시며 해변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녘으로 솟아오르는 태양빛에 눈을 찡그리고는 허기와 피곤을 참아가며 그물을 챙깁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가 한 잠 자고 오후에 다시 나올 계획입니다.

그 때, 낯선 어떤 청년이 해변으로 걸어 왔고, 이윽고 한 떼의 무리가 몰려옵니다. 그 청년은 시몬에게 다가와 잠시 배를 타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청년은 배를 해변에서 조금 떼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시몬은 사람들이 걸어서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배를 뭍에서 떼어 놓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그 배를 무대로 삼아 무리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시몬은 배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키를 잡고 앉아 귀를 기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청년의 말씀에 빨려 들어갑니다. 설교의 내용이나 설교하는 태도로 보아 보통 사람은 아닌 듯이 보였습니다.

설교를 마친 청년은 시몬에게 다가섭니다. 그는 시몬의 눈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 올리십시오”(4절). 시몬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듯, 그 청년의 말의 무게에 눌려 저도 모르게 일어나 노를 젖습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내가 뭐 하는 거지? 지금 이 시간에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봐야 소용 없는 거 모르나?” 생각은 그러했지만 노를 젖는 손은 멈추질 않습니다. 그는 깊은 곳에 이르러 그물을 내립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물에 손을 댑니다. 그 순간, 시몬은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인해 깜짝 놀랍니다. 밤 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구경도 못했는데, 그물을 들어 올리기 힘들만큼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청년을 통해 자신을 찾아 오셨다고 느끼고는,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8절)라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시몬의 어깨를 부드러이 감싸 안고는 그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1절).

2.

그로부터 3년 즈음의 시간 동안, 시몬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 동락하면서 많은 이적들을 경험하고, 진리의 말씀들을 배웁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장래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특별히 신임했고, 그 든든한 신임을 상징이라도 하듯, ‘바위’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히브리 말로는 ‘게바’요, 헬라말로는 ‘베드로’라는 이름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부름 즉 사람의 영혼을 건지는 거룩한 사명을 위해 잘 준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바위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에서 산산히 깨집니다. 예수와 함께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베드로는 가야바의 여종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그는 밖으로 나가 홀로 통곡합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숨어 버립니다. 그 사이에 예수님은 외로이 홀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부름을 받고 나선 길이 결국 절망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사흘째 되는 날, 그분을 따라 다니던 마리아가 경황 없는 모습으로 베드로를 찾아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야단입니다. 요한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마리아의 말 그대로 시신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무덤에서 베드로는 더 깊은 실의에 빠져 다시 숨어 있던 곳으로 돌아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훼손하는 그 지독한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버립니다.

그 날 저녁, 두려워 떨고 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렸던 그 예수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다음, 그분은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심어 주고, 성령의 선물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도록 용기를 주십니다. 그로부터 약 일 주일 후에 주님은 또 한 번 나타나셔서 위로와 용기와 능력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이만하면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은 믿음을 회복하고 잃었던 정신을 수습할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요한복음 21장은 우리의 기대가 부질 없음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씩이나 만나고 성령의

선물까지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갈릴리 출신의 다른 제자들도 함께 따라갑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베드로는 동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3절). 아마도 이 문장은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어둡고 침울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로, 쓸쓸한 눈빛으로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던진 이 씁씁한 한 마디의 말,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여기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떠난 이상, 그에게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리라는 꿈을 이제는 접고, 다시금 예전의 생업으로 돌아가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3.

어부의 삶으로 돌아간 첫 날 밤, 시몬과 그 일행은 동이 틀 무렵까지 힘써 보았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합니다. 3년 동안 손을 놓았다고 해서 어부로서의 감각을 완전히 잊은 것도 아닐텐데, 이럴 수가 없다 싶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그들은 퀭한 눈으로, 허기진 마음으로 뭍을 바라봅니다. 앞으로의 삶이 참 고단하겠다는 예감이 그들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쓸쓸한 새벽 공기에 몸서리를 칩니다.

그 때, 해변 저편에 누군가가 홀로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낯선 청년이 큰 소리로 어부들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좀 잡았습니까?” 그들은, “말도 마십시오. 밤 새 허탕만 쳤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십시오. 그리하면 잡을 것입니다”(6절).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던 일행은 그 청년의 말에 순간 멈칫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가?’ 뱃사람 특유의 자존심이 꾸물꾸물 고개를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말한대로 어느 새 손이 움직여 그물을 배 오른쪽에 내리고 있는 겁니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듯이 말입니다.

잠시 후, 그물에 손을 댄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엄청난 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큰 물고기를 153마리나 잡았습니다. 이 순간, 베드로에게는 3년 전의 그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 때, 예수께서 두려움에 질려 있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시면서 하신 말씀, 즉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네가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해변에 서 있는 그 낯선 사람은 다름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자신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내셨던 그분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물로 뛰어내려 첨벙 첨벙 뛰어 예수님에게로 달려갑니다.

이 사건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다시 한 번 불러 내십니다. “고기나 잡으러 가겠다”던 베드로, “하나님 나라고, 구원이고, 복음이고 다 귀찮다. 이젠 지쳤다. 그냥 하루 하루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던 베드로를 다시금 불러 내십니다. 육신을 입고 나타났던 3년 전이나, 부활하여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금 용기를 내어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살라고 불러 내십니다. 이로써 그는 비로소 잊었던 소명, 망각했던 부르심, 자신의 삶의 목적을 되찾습니다.

4.

오늘 이 이야기를 묵상하며 우리는 중대한 질문 하나를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낚으며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잡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을 통해 무엇을 낚았는가?” 이 질문은 작게 보면 우리의 직업에 관한 질문이 될 수도 있고, 크게 보면 삶의 목표에 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으며,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일하는 어부들 가운데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마태는 세관원으로서 돈을 낚는 것에 인생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는 로마 정부의 인정을 받아 머지 않아 세리장으로 올라서기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살았습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과 율법을 지키는 열심에 있어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돈을 낚는 것입니까? 성공을 낚는 것입니까? 유명해지는 것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까? 자식들이 성공하는 것입니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혹시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라고 말했던 시몬 베드로처럼, 아무런 목표나 사명감 없이, 그냥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고 사십니까? 지금 사는 모습대로, 큰 우환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삶의 의미’, ‘소명’, 또는 ‘목적’이라는 말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십니까?

우리의 상황은 다 각기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 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은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 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려 내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죽어 있는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혹시나 “아,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에 해당하는 이야기죠. 우리같은 평신도들이야 어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은 결코 “내가 너희를 목사로 만들겠다”거나 혹은 “내가 너희를 선교사로 불러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대하시는 예수님의 기대입니다. 이것은 직업을 바꾸라는 요청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삶의 목적을 더 크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낚는 것, 이것처럼 삶을 의미있게 하고 보람있게 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는 과정에서 그 얼굴에 짙게 드리웠던 죽음의 그늘이 걷히고 밝은 생명의 빛이 빛나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요! 목회가 때로 어렵고 벅차지만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기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속회를 섬기고 교사로 섬기는 것이 때때로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 낚는 기쁨 때문에 모든 것을 견디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을 나누고 함께 영적인 여정을 걸어 변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던 내 인생에 영원한 의미가 깃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5.

예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까닭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결코 마르지 않을 참된 생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기를 그리고 그것을 누려 가며 살도록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밤 새도록 수고했지만 빈 배로 돌아와야 하는 베드로의 마음처럼,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아무리 사업을 확장시키고 많은 사람을 부려 보아도, 돈을 종이쪽처럼 뿌려가며 쾌락을 즐겨도, 침상에 누울 때는 마치 베드로의 빈 배처럼 허전하고 공허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사람 낚는 것을 보통 ‘전도’(evangelism)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도를 전한다는 뜻으로 전도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주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행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속하고 억압하기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뿌듯한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기 위한 명령입니다. 억지로 행할 명령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행할 명령입니다. 우리가 이미 얻은 기쁨과 평안과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 낚는 소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서 새 생명을 선물로 받았고, 성령의 선물도 받았고, 새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사람 낚는 일에 흥분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만의 소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거룩한 소명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직업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할 수 있는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 낚는 일 즉 전도를 내 삶의 목적으로 삼으라는 말을,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에는 등한히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전도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새로 가게를 오픈하면서 “저는 이 가게가 전도 기지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말은 좋은 말인데, 만일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봉사하는 일에는 등한히 하고 전도하는 일에만 열중한다면 크게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도에도 실패하고 결국 사업에도 실패하게 됩니다. 누가 그런 가게에 가고 싶겠습니까?

내 가게를 통해 사람을 낚으려면, 먼저 그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전도할 목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손님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난 주님을 섬기듯, 최선의 제품을 구비해 놓고,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굳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며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가게에서 만나는 손님들의 영혼에까지 관심의 눈길을 연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그 관계 속에서 그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도록 힘씁니다. 그의 영혼까지 보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혹시나, 내가 믿는 이 믿음을 전해 주어 죽음에서 구원해 낼 사람이 없는지 찾습니다. 무덤덤한 표정 뒤에 감추어진 신음 소리를 듣기 위해 마음의 귀를 기울입니다. 죽음의 물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눈짓을 보내는 사람은 없는지 살핍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다정히 다가가 손을 내밀고 차 한 잔을 나누며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나눌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람을 낚는 것입니다.

6.

지난 여름 전교우 수양회에서 매나사스 캠퍼스에 출석하시는 김정환 장로께서 간증을 나누셨습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다가 은퇴를 하셨는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주 밤중에 응급실에서 수술을 하곤 하셨는데, 대개 그렇게 오는 환자들은 폭력배들이거나 무숙자(homeless people) 혹은 성매매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개 의료 보험이 없어서, 밤 새도록 끔찍한 모습을 참아가며 수술을 해도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이전에 김장로님은 그런 환자를 대할 때 어쩔 수 없이 짜증 내며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다 보니, 이 태도가 영 잘못되었음을 알겠더랍니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하고는, 그 이후로는 그런 사람들을 정성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대하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구원을 받고 보니, 하나님을 모르고 인생을 내팽개치듯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의 육신의 상처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들여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그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따로 만나 상담도 해 주고, 나중에는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치료까지 받은 환자들이 김장로님께 보낸 편지가 여러 통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한 밤중에 칼에 찔려 응급실로 실려온 성매매 여성 글렌다(Glenda)가 보내온 편지입니다.

존경하는 닥터 킴,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는 지금도 당신이 해 주신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제가 겪은 그 사건으로부터 생긴 복잡한 감정상태로부터 회복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저는 치료 센터를 오가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이렇게 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길거리의 삶으로부터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아무런 수입도 제겐 없지만, 오늘도 주님께서 저를 지켜 주십니다. 조만간 들러서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Dear Dr. Kim, how are you? I still appreciate everything. Because I am a born-again Christian, I am just getting my life back together from emotional complications from the INCIDENT. I’ve been in and out of treatment centers. I wasn’t able before of going through this because I wasn’t in the RIGHT STATE of MIND. I haven’t forgot about you. I’m recovering from a life on the street. The LORD is keeping me today even though I haven’t had an income since then. I will stop by to let you know how I’m doing. May God bless you!

만일 김장로님이 치료하는 데에는 소홀히 하면서 전도만 힘썼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법정에 고소를 당했을지 모릅니다. 김장로님은 최선과 정성을 다하여 그 환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분은 그 환자의 육신만 본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보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의료 행위를 통해 돈을 낚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낚으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분은 많은 영혼들을 건져 냈고, 그것은 의사로의 성공에 비교할 수 없는 만족과 기쁨과 보람을 그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7.

이런 일이 특정한 직업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을 낚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선교사로 파송 받은 사람들 가운데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을 낚느라 동분 서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의사와 변호사들 가운데 사람이 아니라 돈을 낚느라 숨 쉴 겨를 없이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사는 인생은 마침내 인생을 마칠 때 “불쌍한 나여! 아무 것도 잡지 못했구나!”라고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직업이 무엇인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마음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내가 진실로 예수님에게 낚인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다운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살다 보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 그들의 외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까지 보고 그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사람을 낚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수고와 헌신과 노력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살전 2:19-20).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은 무엇입니까? 과연, 주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있습니까? 사람 낚는 인생, 이것처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우리를 복되게 하는 일은 또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소명을 결코 잊지 마십시다. 이 거룩한 부르심을 늘 명심하십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십시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불러내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신 주님,
그가 그 소명을 잊었을 때
다시 나타나시어 그 소명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
저희에게도 이 은혜를 주소서.
저희의 인생이,
저희의 직업이,
저희의 모든 일이
사람 낚는 일에 사용되게 하소서.
그것을 위해
먼저 저희가 주님 손에 철저히 붙들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