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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24 (김 영봉 목사)

요한복음 연속설교 ‘생명의 복음’(106)
"두 개의 세상"
(Two Worlds)
요한복음 20:30-31

1.

지난 8월 8일 시작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오늘 24일로 막을 내립니다. 이런 큰 게임이 있을 때마다 미국의 방송에서는 특별한 광고를 보여줍니다. 슈퍼볼(Super Bowl) 경기 때도 그렇고, 올림픽 때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기발한 광고들이 방송됩니다. 이 기간이 되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운동 경기보다 특별 제작된 광고를 보는 맛이 더 큽니다.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에 특별히 제 눈길을 끈 광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후원한 United Airline의 광고입니다. 그 비행사는 이번 올림픽을 위해 여러 종류의 특별 광고를 제작했는데, 그 중 하나, 즉 "두 개의 세상"(Two Worlds)이라는 이름이 붙은 광고가 제 눈길을 끓었습니다.

화면이 시작되면 회색빛의 도시가 보입니다. 건물도 회색, 하늘도 회색, 도로도 회색입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도 모두 회색이고, 행인들도 모두 회색빛입니다. 모습은 사람이지만, 마치 유령이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다 죽어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죽어 있습니다. 마치 무덤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군중 속을 걷고 있던 한 청년이 클로즈업 됩니다. 그 청년이 안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냅니다. 비행기 티켓처럼 보입니다. 그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그 티켓이 날아가 버립니다. 청년은 그 티켓을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그 티켓은 회색빛 계단 위로 날아가더니, 계단 끝에 있는 문의 창문을 통해 사라져 버립니다. 그 청년은 그 티켓을 잡기 위해 그 문을 엽니다.

문이 열리자, 청년의 눈앞에는 총천연색의 신비로운 새 세상이 펼쳐집니다. 청년은 그 미지의 세계에 몸을 던집니다. 그러자 천사 둘이 그를 데려다 황금 의자에 앉히고는 둥실 둥실 꽃길을 날아다닙니다. 청년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오릅니다. 그 신비로운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청년은 황금 의자에서 내려 별을 건너 다시 그가 걷고 있던 회색빛 도시, 그 자리로 내려옵니다.

청년이 회색빛 거리에 발을 딛자, 발에 닿은 회색빛 보도블록에 색깔이 번집니다. 그 색채는 옆에 있는 보도블록으로 확산되어 나갑니다. 청년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악수를 청합니다. 그러자 죽은 표정의 회색빛 행인이 천연색으로 살아납니다. 그 생명의 색깔이 빌딩으로 번지고, 나무로 번져 꽃이 피어나고, 가로등이 켜집니다. 한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오자, 그 사람으로 인해 그가 속한 세상이 바뀝니다.

이 때,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 회사가 새로 마련한 1등석과 비즈니스 석을 타보십시오. 이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 광고 영상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Youtube 영상: "Two Worlds" (Original version; United Airline Commercial for 2008 Olympic Games)

2.

저는 이 광고를 보고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 생각은 "와, 저건 과장 광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과장 광고인지를 압니다. 목사가 비즈니스 석에 타 보았다고 해서 놀래셨습니까? 딱 한 번, 이코니미 석에 overbooking되어 제가 복권을 탄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장시간 특별대우를 받아 가면서, 그동안 이코노미 석에서 제가 얼마나 헐값으로 취급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빈 대접을 받고 김포 공항에 내렸을 때, 저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횡재했다는 생각에 잠시 기분이 좋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현실을 바꿔주지는 못했습니다. 비즈니스 석에서 경험한 것이 이 광고에 나오는 것만큼이나 신비로운 것도, 그것처럼 황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기분을 맛보기 위해 그만한 돈을 지불할 능력도 없고, 그만한 돈이 있어도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가진 또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 광고를 처음 보는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느꼈습니다. "와, 기독교의 진리를 저토록 간단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인터넷을 뒤져서 이 광고 영상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은 청년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입니다. 이 부분을 ‘회색 도시’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부분은 그 청년이 별 세상에서 여행하는 부분입니다. 셋째 부분은 여행을 마친 그 청년이 별을 넘어 다시 이 땅으로 귀환하고 나서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진리에 대입시켜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의 삶,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인생은 회색 도시에 사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목숨으로만 사는 인생, 물질로만 사는 인생, 육체적인 쾌락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인생, 도대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외에는 믿지 못하는 인생은 회색 빛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고는 하나 진실로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없는 삶입니다. 신나게 살아갈 이유도, 그럴만한 목표도, 그럴 만한 사명도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영적 세계를 믿지 못하고 물질의 세계만을 인정하고 사는 사람은 총천연색의 크레파스에서 회색 크레용 하나만을 골라 사용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뉴스위크 매거진> 최근호에는 냉소주의적인 시각으로 인생을 그려 온 영화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인생을 ‘의미 없는 작은 불꽃’( a meaningless little flicker)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또한 인생의 모든 사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결국 쓰레기 더미가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기자는 묻습니다. "당신은 왜 영화를 계속하여 만드십니까?" 그는 대답합니다. "저는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다만 죽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뭔가에 집중하려는 겁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큰 그림을 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내면에 있는 공허함을 피하기 위해 영화를 만듭니다."( I can’t really come up with a good argument to choose life over death. Except that I’m too scared. I need to be focused on something so I don’t see the big picture. I make the movies to avoid the hole in my heart.)

저에게는 우디 앨런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만한 안목이 없습니다. 그분의 작품을 탐닉하는 마니아들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분들의 기호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디 앨런의 이 고백에서 회색빛 인간의 전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외모와 표정과 몸짓에서도 죽음의 빛 즉 회색빛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결국 쓰레기 더미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영화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의미와 소명을 잃은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오늘 읽은 요한복음 20장 30절과 31절은 요한복음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지금 우리 성경에는 한 장이 더 있어서 21장이 결론처럼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 저자는 20장에서 일단 책의 결론을 썼습니다. 이 결론에서 저자는 자신이 예수의 이야기를 쓴 목적을 설명합니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결론에서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생명이 없다"고 전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목숨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계 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연과 사고와 재수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회의주의에 빠지기 쉽고, 비관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인생, 살고 있지만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덤과 같은 이 회색빛 인생은 과연 우디 앨런의 말대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워져 있는 운명일까요? 인생은 모두가 작은 바람결에 펄럭이다가 마침내 힘없이 꺼져가는 의미 없는 작은 불꽃이라는 말이 맞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일까요? 과연 그렇게 의미 없이, 방향 없이, 목적 없이, 뜻 없이, 힘없이, 활력 없이, 초점 잃은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때우는 방법 밖에 없을까요?

기독교 신앙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인생은 원래 회색빛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총천연색으로 의도되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의미 없는 작은 불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공이 담긴 걸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일은 영원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생에는 의미도 있고, 방향도 있으며, 목적도 있고, 뜻도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눈빛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 번득인다고 말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깊은 구멍을 채울 방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변화를 위한 첫 단계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은 광고 영상에 나오는 그 청년이 회색빛 계단 위에 있는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참되고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4.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한 다음에 행하게 되는 모든 영적 생활은 광고에 나오는 청년이 별 세상을 여행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을 잠시 빠져 나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어디에 있는 별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안에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세계에 잠시 눈 감고 하나님의 나라에 눈을 뜨는 일뿐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광고에 나오는 그 청년이 황금 의자에 앉아 별 세상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예배를 대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처럼 우리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여행하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심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려면 최선과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주일 예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십니까? 주말이 가까워지면 주일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하십니까? 예배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시간 계획을 세우십니까? 집을 떠나기 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헌금을 준비하십니까? 예배 시간에 순서 하나하나에 마음을 다해 참여하고 계십니까? 그 같은 영적 갈망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하면, 이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매 주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기도가 광고 속의 청년이 걸어 올라간 회색빛 계단 밑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과 같은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회색빛 계단을 걸어 올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그 같은 깊은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여행하는 일입니다. 찬양에 깊이 잠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이 함께 모여 영적 사귐을 나누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런 영적 생활을 통해 우리는 이 광고에 나오는 청년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가 사는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신비를 경험하고 그 아름다움을 체험해야 합니다.

5.

하지만 이것으로 얘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앞에서 본 광고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부분만 보았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멈추기를 바랍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머물러 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요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 별 세상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황홀경을 즐기고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세 번째 부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 묵상을 통해, 찬양을 통해, 영적 교제를 통해 혹은 사랑의 봉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다면, 그 경험을 마음에 품고 다시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그 능력으로써 우리가 처한 곳에서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색깔이 번져 나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회색이 천연색으로 바뀌고, 죽어 있던 것이 살아나며, 메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바로 이것이 자신이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 요한복음의 저자만 그렇겠습니까? 성서 66권이 모두 그런 목적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생명을 누리고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회색빛 도시에서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의미 없는 작은 불꽃’으로 사는 인생을 청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죽은 듯이 사는 인생들을 모두 살려내시고 이 세상을 회색빛에서 천연색 빛으로 바꾸어 놓으시기 위함입니다.

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 영상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비행사 광고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영상이라고 생각하시고 보시기 바랍니다.

Youtube 영상 "Two Worlds"(Revised version)

6.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요즈음 삶이 얼마나 힘드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말할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오늘의 설교를 들으시고 딴 나라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더욱 더 오늘의 말씀을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지옥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위로부터만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진하게 경험하고 그 능력으로 충만해져야만 그 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이 IMF로부터 구제를 받았을 때, 수 없는 중소기업이 도산했습니다. 이 여인의 남편이 운영하던 중소기업도 그 때 무너졌습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돈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시키며 살던 이 여인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몸져눕고, 돈 될 만한 것은 모두 채권자들이 가져갔습니다. 아침마다 혹은 저녁마다 아이들은 학원비다 학용품 값이다 손을 내미는데, 만원 한 장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나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력 회사에 연락을 하여 파출부로 나섭니다.

파출부로 나가 남의 빨래를 빨고, 청소를 하고, 식탁을 차립니다. 그전에는 모두 돈을 주고 남에게 시키던 일들입니다. 그것을 이제 자신이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일하고 나서 손에 넣는 돈은 고작 만 원짜리 몇 장입니다. 과거에는 돈처럼 여겨지지도 않던 푼돈을 위해 이제는 서너 시간 동안 피땀을 흘려야 합니다. 적선하듯 돈을 건네는 주인의 태도로 인해 마음이 찢어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나도 과거에 저렇게 돈의 힘으로 사람을 능멸했나?’하는 반성이 듭니다. 그야말로 사는 것이 지옥입니다.

마음에 신물은 자꾸만 쌓여 가고,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상대가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때를 찾아 예배당에서 홀로 흐느껴 기도합니다. "내가 과거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그만 나를 높여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좀처럼 어둠은 가시지 않고, 눈물의 골짜기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예배 중에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번개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여인에게 이런 깨달음이 옵니다. "어? 그렇다면 내가 빠는 빨래와 내가 하는 청소와 내가 차리는 식탁이 주님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여인은 그 날로부터 그렇게 믿고 그렇게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빨래를 하는 것이건만, 그 여인은 주님의 옷을 빨듯이 합니다. 청소를 할 때 주님의 집을 치우듯이 정성을 다합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하다 보니,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일 하는 것이 신이 납니다. 즐겁습니다. 보람이 생깁니다. 돈을 받기 전에 이미 마음에 보람이 들어찹니다.

오늘 우리가 한 비행사 광고 동영상을 통해 생각해 본 기독교의 원리는 먼 세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이 여인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의 능력으로써 그의 현실을 대면했을 때, 그 현실을 변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 능력을 얻지 못했을 때는 회색빛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하나님에게 연결되고 그분의 능력과 은총에 힘입고 다시 현실을 대하자, 그 현실이 변모했습니다. 찬송가 495장의 가사처럼, 현실은 그대로 변한 것이 없지만, 그 여인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써 그 어디를 가나 하늘나라를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 여인의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고 정상을 되찾습니다. 그 때까지 그 여인은 파출부의 일을 즐거이 행했고, 남편이 일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의 수입이 필요 없어졌지만,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는 수입은 고스란히 선교 헌금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기고, 거기서 얻는 수입으로 선교를 도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7.

어떻습니까? 오늘 제가 한 이야기가 공허한 이야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별 세상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깊이 체험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면 그 능력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변모시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처럼 현실을 살 수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닙니까? 그것이 한 이름 없는 여인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우리에게는 왜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욱 영적 생활에 힘쓰십시다. 삶이 어려울수록 더욱 힘써 영적 생활을 하십시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위로부터 옵니다. 그 힘이 없이는 그 현실을 이길 수도 없고, 설사 이긴다 해도 그 이김이 오히려 타락의 올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예배에 힘쓰십시다. 기도로써 더욱 하나님과 사귀십시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영적 교제로써 서로를 위해 섬기십시다. 사랑의 봉사로써 섬기십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는 회색빛 현실을 천연색 현실로 변모시킬 힘이 쌓여갈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이 드러내야 할 영원한 생명의 능력입니다.

주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회색빛 도시에서
죽은 듯이 살고 있는 저희를 구원하소서.
주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그것을 열망하는 마음을 주소서.
하늘나라의 능력으로써
이 세상을 살게 하소서.
영생의 능력으로
이생을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