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7.13 (차 영섭목사)
기억하시나요?
(Do You Remember?)
신명기 8:11-18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정말 행복하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복을 갈망하고 얻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불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못하다” 고 생각하고 있거나, “보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08년을 절반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정말 행복하셨습니까? 만약 행복하지 못하셨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미국 스텐포드 의과대학의 ‘필립하츠’ 박사가 연구한 발표입니다. 그는 지구상의 60억 인구를 똑같은 비율로 줄여서
100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00명중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으로 나왔습니다. 또, 100명중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였으며,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또 100명중 20명만 자기 집에서 살고 있으며,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100명중, 70명은 전혀 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인이고, 50명은 심각한 영양부족을 겪고 있으며, 1명은 이미 병이
있어 죽기 직전의 상태이고, 오직 100명중 1명만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보고서의 결과 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지금 내 집에 살고 있으며, 먹을 게 있고, 글을 읽을 수 있으며, 건강하다면, 그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쟁의 위험이나 감옥에서의 고독 혹은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세계 인구의 상류 500만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행복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에 걸칠 것이 있고, 냉장고에 음식이 있으며, 아이나 본인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거나 친구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할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지구 상에서 8% 해당되는 「부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물론 통계이기에 모든 사람이 다 똑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최소한 이곳에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객관적인
통계에 의하더라도, 아주 특별한 사람이요, 부자에 속하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아직도
내 자신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일까요?
오늘의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 속에 살면서도 그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망각이라는 인간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습성 때문에, 아무리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고,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미래를
바라 보며 살아 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망각의 습성이 꼭 나쁘다고만은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망각의 습성이,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게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전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어려움에 다시 빠지는 경우를 당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의 경우
아내의 생일, 결혼기념일, 혹은 아내의 경우 시어머니의 생신을 잊으면 아주 큰 일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억하고, 다시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었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으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잊고, 불만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할 때마다, 그들은
큰 어려움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전하여 주는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 이란 이름의 병이다.” 저도, 사실, 오늘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꼭 모든 것이 풍부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좀 부족해도,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때
찾아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꼭 풍부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감사할 때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미국 경제가 아주 힘들어서 잘 사네, 못 사네 해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롭습니까?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만
하더라도, 식사 때 마다 맛있는 음식들이 철철 넘쳤습니다. 모두 다 먹고 음식이 남아서, 어떤 분들은 교회에 남아서
아예 그 음식으로 저녁까지 드시고, 그래도 음식이 남아서, 가실 때 한 봉지씩 싸들고 가셨습니다. 아마 이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추측에, “목사님 저는 어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전에 의사이신 장로님 한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병이 나면, 잘 먹여
주기만 주면 병들이 쉽게 나았는데, 요즘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이 나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 우리의 건강의 문제는 음식을 못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까? 또한, 아무리 기름 값이 비싸졌다고 하더라도, 거리에는 여전히 자동차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과거에 비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편리해졌습니까? 분명히 예전보다 더 편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감사할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 대신, 불만 불평을 일삼는 시대, 장점
보다는 단점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우리는 행복해도 행복한 줄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모세가 출애굽 이후 축복의 땅인 가나안에 막 들어가려는 이스라엘의 제2세대 백성들을
생각하며, 혹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 버려 불평과 원망으로 세상을 불행하게 살 것을 걱정하며 경고하는
이 말씀을 통해 오늘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를 기억해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이유는
바로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모두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먼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그리고 오늘날까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가 멸망할 인생이요, 빈손 들고 빈손으로 돌아 갈 인생인데, 예수 그리스도로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수고한 대로 상급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이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한 일 입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이 먹이신 것이
얼마나 될까?” 놀라운 것은 그 액수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아주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자 보십시요. 대충 1년에
1,000끼 (3*365) 를 먹는다고 계산한다면, 30세면 3만끼, 50세면 5만끼를 먹은 겁니다. 이것을 한 끼에
$ 5씩만 계산해서, 50세를 기준으로 하면 $ 5* 50,000= $ 250,000, 그러니까 2억 5천만원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디 $5 짜리만 먹고만 사나요? 지금 Lunch에 햄버거 가격도 $5이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먹고만 삽니까? 옷도 입어야죠. Shopping도 해야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해 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속에 감사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우리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어도 불평할 게 없습니다. 본래 우리는 영원히 죽을
인생, 지옥 갈 인생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천국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불평할 게 있단 말입니까? 설사
죽음이 닥쳐온다 해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4:13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 입니다.
둘째로, 형통할 때에는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12∼14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 살지라도, 또 당신들이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당신들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 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배가 고프면 사람의 감각 기관 중 어떤 부분이 제일 민감해 지는 지 아십니까? 코 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배가 부르면
자동적으로 코가 제일 무디어진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절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 맙소사! Oh My God) 그런데 우리가 형통하게 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배가 불러지면 더 감사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교만해지고 배은망덕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사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교만한 죄의 성품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 합니다.
호세아13:6 보면 “그들을 잘 먹였더니 먹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를 수록 마음이 교만해지더니 마침내 나를
잊었다.” 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배가 부를수록 배은망덕해지는 인간의 실상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언
30장 아굴의 기도를 보면, 지혜와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굴은 혹시라도 물질이 풍부해져서 하나님은 배반하게 될까봐 염려라며
이렇게 고백 합니다. 잠언 30:8~9 “…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제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 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그래서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형통할 때에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할 것을 당부 합니다.
다윗을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궁전에 평안히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처럼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7장에 보면, 그는 나단 선지자를 찾아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오래된 휘장 안에 있습니다. 이는 옳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궁전보다도 훨씬 더 좋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그 속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언제 너더러 성전을 지으라고 말하더냐? 내가 언제 너에게 휘장 속에 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더냐?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와 같이 기특한 생각을 다 했단 말이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형통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잊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되지만,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넓고 황량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우글 거리는 광야와 물이 없는 사막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고, 차돌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광야에서는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당신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그들을 해하는
불뱀과 전갈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은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목축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그 곳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16절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 이었습니다." 같은 구절을 개역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체를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주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을 띄우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띄우셔서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던 4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도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어쩌면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가시 밭과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이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이제, 저의 짧은 간증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감사의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왼쪽
발목에 있는 수술 자국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이셨던 저희 아버지가
교회를 섬기시면서 아버지 혼자만 고생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없는 우리 가족까지 모두 덩달아 고생을 했기에, 저는
목사가 되기 싫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출나게 잘하는 운동은 없었지만, 웬만한 운동은 모두 조금씩 할 줄 압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운동 대회 때면 대표선수로 한두 종목씩에는 꼭 뽑혔습니다. 한번은 군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저희
부대의 대표 축구 선수로 차출되어 사단 체육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습 도중에 그만 다리의 인대가 꾾어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응급 후송으로 사단 의무대를 거쳐 춘천 야전 병원에서 5시간에 걸친 대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후 군의관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다친 부분이 아주 안 좋은 부분이라서 어쩌면 평생 못 걸을
수도 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절망감을 맛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제가 당신께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베이도록 배운 교훈, 즉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교훈이 생각 나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팡이를 짚어도 좋으니, 제발 꼭 걷게 해 주십시오.
아니, 만약 장애인이 된다 하더라도 이 사실에 감사하면서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매일 아침 불편한 몸이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를 찾아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제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아직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지금의 저를 지팡이 없이도 걷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이 종종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걸음 걸이가 꼭 깡패 같아요.” 그러나 저는 그 소리를 들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감사 합니다. 왜냐하면 평생 무엇을 의지해야 걸을 수 있을 것이라던 그 사람이, 이렇게
뒤뚱거려도 혼자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뛰기도 하기 때문 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원하는 운동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테니스도 치고요, 가끔은 젊은 사람들과 농구도 합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감사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감사한 것은, 이 상처 때문에 제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병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병들게도 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때로는 고독하고 외롭게도 만드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일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어떤 어려움 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 역경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그
고난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그 성령님을 진실로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마침내 나에게는 축복이 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저와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그것은 물질도, 건강도, 지위도, 권세도,
명예도, 그 어느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바로 주님을 향한 감사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불행할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남긴 기도시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나에게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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