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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Home | audio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2008.7.6 (김 영봉 목사)

"속지 마십시오"(Don’t Be Deceived)
--야고보서 1:12-18

1.

와싱톤한인교회에서의 목회 4년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한 모든 교우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교회, 아름다운 전통을 세워 놓고 떠나셨을 뿐아니라, 감리사로서 여전히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시는 조영진 감리사님, 그리고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는 목회자들께도 마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1310 기쁜 소리 방송, 위싱톤미주방송, 그리고 기독교복음방송을 통해 함께 예배 드려 오신 청취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3년이 훌쩍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제가 그 동안 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제가 행복했습니다. 저로 인해 여러분도 그러했으면 더 없이 기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저를 이곳에 두실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제대로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가 지속되기를 또한 기대합니다.

2.

저는 오늘 요한복음 연속 설교를 잠시 쉬고 이번 여름 수양회의 주제인 ‘안식’의 문제에 대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주제는 제 스스로 매일같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며, 또한 교우들과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 온 문제입니다.

이민자들의 삶의 가장 큰 질환 중 하나로서 만성적인 피로감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 같은 예외적인 축복에 대해 감사하고,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 일종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당신의 고난은 당신의 몫이고, 나의 축복은 나의 몫이니, 나는 내 마음껏 살겠다"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만성적인 피로감과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긴, 이것은 이민자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고, 미국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만성적인 피로의 문제는 OECD에 속한 나라들이면 어디를 가나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어느 시인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무력감과 절망감을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드라이브를 해도…
길을 걸어도…
쇼핑을 해도…
이야기를 해도…
밥을 먹어도…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아주… 구름 낀 하늘 사이의
먼 사다리를 올라가는 기분에
이유 없이 지치곤 한다

하루를 피해 다가오는 하루
빙글거리는 일상이란 궤환 속에서

오랫 동안 써 왔던 그 이야기에 다시
글자 위에 글자를 덧써내려가는 기분이다
--백승철, 2006년

3.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때때로 이같은 느낌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곤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수 많은 일들에 압도 당하여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습니까? 도피하고는 싶지만 도대체 그럴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모든 짐을 끌어 안으려 할 때, 우리 마음은 천근 만근 납덩이에 눌리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우리는 밀려 다니고 끌려 다니기만 해야 할까요? 언제쯤 내 삶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아, 내 의지와 계획과 시간표대로 살아가며, 여유를 즐기며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의 원인을 특히 주목합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영향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이루어 냄으로써 우리는 피곤한 삶의 경주에서 헐떡 거리며 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매일같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세뇌시키려는 세상 문화의 공격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 TV, 라디오, 인터넷, 아이팟, 휴대폰 등이 하루 종일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점령합니다. 이러한 매체들은 보고 듣는 사람의 관심을 사기 위해 갈수록 저급하고 조잡하고 감각적인 내용을 선전하는 일에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이 매체들은 듣고 보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갖가지의 술수를 사용합니다. 그들의 속임수를 몇 가지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이 세상의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물질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게 만듭니다. 버는 돈이 많을수록 행복은 높아지고, 소유한 물질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 물질이 고급일수록 행복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붙들어 세워 놓고 "당신도 그렇게 믿지요?" 하고 물어보면, 십중 팔구는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 보면, 그렇게 믿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둘째, 이 세상의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이루어야만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기록에 남길만한 혹은 손으로 만질만한 뭔가를 남겨야만 자신의 인생에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업적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 사람은 자신이 뭔가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난 것같은 패배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같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내 시대에 안되면 자식 시대에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심 전력합니다.

셋째, 우리 사회의 세속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인생은 끝없는 사다리를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이며, 골인 지점이 없는 경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다리에 오른 이상, 가장 앞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단 경주에 참여한 이상 일등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2등이 되는 것은 실패요 죄악이라고 선전합니다. 소의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되니,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부터 1등을 위한 경주를 연습하고는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방향도 모르고 목적지도 모르는 경주에 참여하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넷째, 사회 문화가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이같은 신념을 신봉하고 살다 보면, 바쁘게 사는 것이 정상이요 성공하는 길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인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최신 제품을 사기 위해, 뭔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 더 유명해지기 위해, 그리고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우리 자신을 들볶습니다. 그 결과, 물질도 좀 얻고, 뭔가 손에 만져지는 것을 한 두 가지 이루기도 하고, 또한 내려다 볼 사람들도 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는 이렇게 우리를 집요하게 세뇌시키고 속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 문화가 우리를 세뇌시키려 해도, 우리가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욕망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런 것을 분별할 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아니,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그런 것을 더욱 좋아하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것이 없는지 찾아 다닙니다.

4.

이로 인해 우리 인류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병은 세균으로 인해 생긴 병도 아니고, 영양 실조로 인해 생긴 병도 아닙니다. 제어되지 않은 타락한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켜 최대의 이익을 만들어 내려는 타락한 세속 문화가 야합하여 만들어낸 질병입니다. 무한 경쟁, 무한 질주, 무한 소비로 인해서 생긴 마음의 병입니다. 불면증, 소화 불량, 만성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울증과 조울증이 마치 우리 시대의 전염병처럼 퍼져 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혹은 한국에서 항우울제의 소비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소비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연령이 미취학 아동이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제약 회사 실험실마다에서 밤 새워 연구하고 있고, 정부와 사회 단체에서는 상담 치료사와 심리 치료사들을 양성하여 사회 요소 요소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질병을 만들어 내는 원인을 고쳐야 합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만으로는 혹은 전문 상담가나 심리 치료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증상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 증상을 만들어 낸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세상 문화에 세뇌되어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먹고 상담을 해도 완치의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자신의 살아가는 방법을 되돌아 보아 포기할 것 포기하고, 버릴 것 버리고, 자를 것 자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기도에 희망을 거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음의 욕심을 다스리지 않고 분주한 생활 방식도 바꾸지 않았는데,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달라질까요? 어느 대학생이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과제와 아르바이트 일과 교회 일에 쫒기다가 지쳐서 쓴 기도문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짜증이 나요. 도대체 어쩌라는 거죠? 그냥 하루를 좀 온전히 쉬고 싶어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푹 쉬고 싶어요. 도대체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거죠? 하나님, 그냥 절 초인으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절대 피로를 느끼지 않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세요. 잠 안 자도 살 수 있는 인간이나, 밥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세요. 정말 짜증나서 전화기를 깨뜨려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어요! 정말!"

이 기도문을 보면, 그 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누구나 쉽게 알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왜 자신이 그토록 지치게 되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쓸 데 없는 일에 팔려 다니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포기할 것은 없는지? 내려 놓을 것은 없는지? 세속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헛된 것을 추구하며 자신을 들볶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을 받아 자신을 돌아 보고 고치지 않으면, 이런 기도를 수 백 번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청년을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청년의 기도 속에서 우리 자신의 그릇된 열망과 기도를 보아야 합니다. 실은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숨차게 살고 있으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혹시 하나님께로부터 초월적인 능력을 얻을 수 없는지 곁눈질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기는 합니다만, 저도 이 청년과 같이 기도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24시간 내내 심방하고 기도하고 말씀 준비를 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얻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혹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아무 병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헛된 바램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이 청년의 기도가 제게는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5.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며, 성령은 우리를 초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무엇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속지 말라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첫째, 우리 마음의 타락한 욕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는 말씀은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타락한 욕심을 따라 살면 결국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문화는 죄의 길이 행복의 길이라고 가르치지만, 실은 그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길입니다. 타락한 욕망은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키면 행복해질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 합니다. 그 속임수에 넘어가면 결국 끝도 없는 경주에 말려들어 죽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둘째, 이 세상의 선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약 1:16-17). 이것이 진리입니다. 타락한 세상 문화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진실로 좋은 것은 이 땅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 선전에 속아 우리는 자신을 한 없이 몰아치고 들볶고 있습니다. 그 속임수를 깨달아 알고, 야고보 사도의 말씀대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고 또한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진실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업적을 쌓고 이름을 내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 사이에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아가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한 없이 틀켜 쥐고, 마음껏 즐기고 누리며, 내 가진 것으로 자랑하며 다른 사람들을 기죽이는 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잠시 잠깐 쾌감을 줄 수는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큰 갈증만을 만들어 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 것을 나누는 데 있고, 절제와 소박함에 있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양보와 희생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안식의 삶’입니다. 우리는 분주함을 부추기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안식을 얻고 그 안식을 지키는 삶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기도 또한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 문제에대해 존경하는 교우들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이번 수양회를 통해 그 기회를 얻게 되어 저로서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수양회가 이 고민을 붙들고 함께 씨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6.

기독교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신앙인으로 꼽히는 어거스틴.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타락한 욕심을 따라 마음껏 즐기며 살았습니다. 약관의 나이 20대에 그는 학문과 업적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많은 것을 소유했으며, 마음껏 명성과 부를 누렸습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성공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도 없었고, 그의 손에 미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음껏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큰 빈터가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손에 넣고, 더 유명해지고, 쾌락의 도를 더 높이면 될 줄 알았으나, 그 빈터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청년의 시대가 끝나갈 즈음, 그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내면의 빈터에 대한 고뇌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 덕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 즉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토록 오랫 동안 찾았던 안식과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고백록>에서 그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 저희를 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돌아가 쉬기까지 저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안식을 발견한 후, 어거스틴의 삶의 방법과 질과 방향과 색깔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안식이, 이 안식의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수고하며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는 예수님의 초청을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의 타락한 욕망의 음성에도 속지 마시고, 이 세상의 선전에도 속지 마십시다. 오직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고, 그 안식의 능력으로 인생 길을 걸어 가십시다. 휘둘리고 내몰리고 밀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견고하게 걸어가는 삶을 사십시다.

지난 7월호 알링턴 지방 소식지에 조영진 감리사님께서 오린 크레인(Orin Crain)이라는 분의 기도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기도문으로써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 저를 늦춰주소서
제 마음을 진정시키시어 심장 박동을 늦춰주소서
시간의 영원한 길이를 보게 하셔서
바쁜 걸음 걸이가 차분해지게 하소서.
분주한 일상 중에
영원한 언덕의 고요함을 누리게 하소서.
제 기억 속에 있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의 감미로운 음악으로
제 신경을 누르고 있는 긴장을 제거하소서.
잠이 주는 놀라운 회복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도우소서
속도를 늦추게 하셔서
꽃을 보게 하시고,
옛 친구와 한담을 즐기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들며,
길 잃은 개를 쓰다듬어 주고,
거미가 집 짓는 모습을 지켜 보며,
어린아이에게 미소를 던지고,
책을 펼쳐 읽음으로
순간의 휴가를 즐기는 법을 제게 가르치소서.
매일 제게 일깨우소서.
경주는 언제나 제일 빠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님을.
살아가는 데에는 속도를 높이는 것 말고도 더 많은 방법이 있음을.
하늘 높이 솟은 떡갈나무를 올려다 보게 하소서.
그리고 깨닫게 하소서.
그 나무가 그토록 크고 강하게 자란 것은
천천히 그리고 잘 자랐기 때문임을.

Slow me down, Lord!
Ease the pounding of my heart by the quieting of my mind.Steady my hurried pace,
With a vision of the eternal reach of time.
Give me, amidst the confusion of my day,
The calmness of the everlasting hills.
Break the tension of my nerves
With the soothing music of the singing streams that live in my memory.
Help me to know the magical restoring power of sleep.
Teach me the art of taking minute vacations of slowing down.
To look at a flower;
To chat with an old friend or make a new one;
To pat a stray dog; to watch a spider build a web;
To smile at a child; or to read from a good book.
Remind me each day
That the race is not always to the swift;
That there is more to life than increasing its speed.
Let me look upward into the towering oakAnd know that it grew great and strong
Because it grew slowly and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