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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15 (김 영봉 목사)

요한복음 연속설교 ‘생명의 복음’(101)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God Never Gives Up On This World)

요한복음 20:23; 베드로전서 2:9-10

1.

Happy Father’s Day!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께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땅에 계시지 않는 아버지들을 그리는 모든 허전한 마음들에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아픔의 원인이 되는 모든 상처 받은 마음들에 주님의 치유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참되고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세월은 참 빠르고, 우리의 망각의 능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 사건이 터진 것이 작년 7월 19일의 일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영원히 잊혀 질 것 같지 않더니만, 이제는 별로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 사건을 국민들이 잊어준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만, 그 사건이 선교에 대해 남긴 여운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선교’라는 말을 들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사건은 이러한 반응을 단번에 온 국민에게 확산시켰습니다. 선교에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만, 목숨 걸고 반대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실로, 선교에 관한 한 중립 지대가 없어 보입니다. 절대 찬성이거나, 절대 반대이거나, 둘 중 하나로 나뉩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이십니까? ‘선교’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울렁이고 뭔가 하고 싶은 쪽이십니까, 아니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지는 편이십니까?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는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십니다. 그 원인도 다양합니다. 어떤 분은 어릴 적에 서양 선교사들을 보면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커다란 대지 위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어 놓고, 송아지만 한 도사견을 기르면서, 웬만한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했던 서양 선교사들에게 원인 모를 적대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혹은 서양 선교사들의 이중적인 언행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분도 계십니다.

혹은 선교에 열성적인 사람들과의 충돌로 인해 선교에 등을 돌린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보통, 선교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선교 열정에 감전되고 나면 균형 감각을 잃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업체를 선교의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업체를 통해 손님들에게 봉사할 생각은 없고, 거기서 돈을 벌어 선교할 생각만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기 교인들이 모두 선교사가 되어 해외로 떠나면 자기 목회가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선교만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학을 띠고 나면, 선교가 싫어집니다.

혹은 지난 2천년 동안의 기독교 선교 역사로 인해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특별히 기독교 세력이 금력과 권력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선교를 도구로 사용했던 과거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오늘날의 선교 활동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려워집니다.

2.

선교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이 두 가지의 서로 상반된 반응 중, 저보고 한 편에 서라 하면, 저는 난처해집니다. 감정적으로 본다면, 저는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에게 더 가깝지만, 이성적으로 본다면 저는 선교가 신앙의 열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편을 택해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선교에 온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을 겪어 보았고, 서양의 선교 역사가 어떤 열매를 맺어왔는지 공부했고, 또한 선교사로 나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제게도 선교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과 감정은 그 동안 우리 교회들이 선교를 얼마나 잘 못 해 왔으며 또한 그렇게 잘못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만일 이런 까닭으로 인해 "선교는 일단 접자!"고 결론을 낸다면, 그것은 우리 속담에 있는 대로, 구더기가 끼는 것이 싫으니 장을 담그지 말자고 결론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부정적인 경험을 잘 소화하여 바른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겠다고 말씀하시고는,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 20:23). 이 말씀을 지난주에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너희’라는 복수 형태에 주목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제자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즉,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권위와 능력과 책임을 교회에게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성서는 인간의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죄와 죄들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서의 율법을 보면, 이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성전과 제사와 제사장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제도에 따르면,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의 죄를 위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 달라고 청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정해진 규정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만 죄들을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모든 제도를 폐기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하면 그곳이 성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중지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서 쏟으신 피가 모든 짐승의 피를 대치하는 영원한 제물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제사장 제도까지 폐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중재자가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제사 드려 달라고 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린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통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3.

요한복음 20장 23절의 말씀 즉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배경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바쳐 폐기하신 제사장의 역할을 교회에게 부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제사장이 아니라 교회가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권한과 능력과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대신 교회가, 제사장이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온 인류의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죄와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교회를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개인 개인으로서도 제사장이 되지만,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즉 교회는 전체로서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제사장 역할의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받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 공동체인 교회도 이 세상의 죄가 용서받도록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선교란 바로 이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적으로 세상의 죄와 죄들을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 노력입니다. 그렇게 하여 개인을 구원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그릇된 선교 활동으로 인해 선교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모릅니다. 선교는 교회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세를 확장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선교는 개종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선교는 세상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불행을 안타까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불행을 해결하도록 돕기 위해 자신이 이미 받은 용서와 자유의 복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죄와 죄들로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 믿는 사람이 할 일이며 또한 제사장 공동체로서 교회가 할 일입니다.

만일 믿는 사람이 혹은 교회가 이 세상으로 나아가 선교하지 않으면, 자신의 본질적인 소임을 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죄의 문제를 치료할 사람도, 그렇게 할 단체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 사회는 죄와 죄들 속에 매몰되어 썩어가다가 비참한 종말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종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종말은 그렇게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인류가 죄 속에서 부패하고 타락하여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이 정하신 시간까지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나가다가 그분의 덮어씌우는 능력으로 인해 영광스럽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재림’이라고 부르는 종말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이 죄와 죄들 가운데 매몰되어 썩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 보신 분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탐하고 타락하고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인류를 깨우치고 돌이키시고 회복시켜 이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성서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수많은 당신의 종들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랑을 품고 종말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 나아가 세상의 죄와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 개인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거는 기대입니다.

생각해 보면, 구약의 제사장과 새로운 제사장인 교회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도 자신의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죄와 죄들의 문제에 대해 마비되어 있는 이 시대를 사는 교회는 앉아서 기다릴 수만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오히려 죄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야 합니다. 그들과 만나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면서 그들 속에 마비된 죄의식을 되살려 내야 합니다. 성령의 비추심을 받아 자신의 참상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그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리고 교회가 해야 할일입니다.

4.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보는 사람으로서 미래를 낙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문명은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고, 인류는 그 첨단 문명을 사용하여 죄에 물든 욕망을 채울 궁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 한국에서 있었던 초등학교 학생들의 성폭력 기사를 읽어 보셨습니까? 이런 기사를 보면서도, 우리가 자랑하는 현대의 첨단 문명이 인류의 정신을 계도하고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까?

과연, 인류의 정신과 도덕과 문화는 점점 개선되고 있으며 개선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모든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모든 권위를 무너뜨린 결과, 인간의 정신이 더 나아졌습니까?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초등학교에서, 중. 고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아십니까? 도심에 버려진 슬럼가에서 혹은 비밀 고객만 출입할 수 있는 사교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절대 진리와 절대자를 몰아 낸 그 공백을 무엇이 대신 채우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모든 종교는 다 같다"는 낭만적 다원주의 사상이 전파된 후, 우리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위험천만한 사이비 종교들입니다. 부모들이 "나는 내 종교를 내 자식에게 주입시키지 않겠다."고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사이에 이 시대의 미디어들이 그들의 마음에 온갖 궤변과 철학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는 시대정신을 빌미로 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한 없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옳다’ 혹은 ‘그르다’는 단어를 폐기 처분했습니다. ‘죄’니 ‘의’니 하는 단어는 이미 오래 전에 사전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자신에게 좋으냐. 나쁘냐 만을 생각합니다. 나쁜지 좋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들의 타락한 욕망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되 자신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죄의 문제에 대해 무심할 수 없습니다. 쓰라린 마음으로 이 세상을 지켜보게 됩니다.

오늘은 Father’s Day입니다. 효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합니다. 제 아이들이, 아버지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가 무엇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느낄 때, 아버지로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그냥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줄 뿐 아니라, 그들도 그런 일에 헌신하게 된다면 얼마나 더 행복하겠습니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제 아이들이 꼭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은 아닙니다. 목사가 되던 일반 직장인이 되던, 제가 헌신했던 가치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당신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당신의 고민이 무엇이며, 간절한 소망이 무엇이며, 마음 아파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지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근심과 고민과 소원을 마음에 품고 그 관심사를 위해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더 기뻐하실까요? 선교란 바로 하나님의 근심을 알아 드리는 것이며, 그 근심을 풀기 위해 내 물질과 시간과 생명을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근심은 이 세상에 관영한 죄와 죄들입니다. 그로 인해 인류가 겪고 있는 불행입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가 그분의 근심을 마음에 품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없이 행복하실 것입니다.

5.

이렇게 보면,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께서 나를 다스림으로 일어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이 쪼개지는 것 같은 대단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고 나를 인도하심으로 생겨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죄와 죄들의 문제에 대한 애끓는 안타까움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목회 칼럼에 소개해 드린 제 제자 목사의 고백처럼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사장이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죄 속에서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이 세상 전체에 대한 애끓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을 수 있는 신념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념은 하나님은 이 세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부를 노래는 성령께서 부르게 하시는 노래입니다. 선교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죄와 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이 되려면 이 두 가지의 요건이 꼭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만지신 경험이 없다면, 그리고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죄들로부터 해방되고 있는 과정에 살고 있지 않다면, 모든 선교의 노력은 그저 자신을 들볶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인간 불행의 근원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선교하겠다는 것입니까? 반면, 성령께서 나를 만지신 경험은 있지만, 이 세상의 죄와 죄들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없다면, 그 선교 활동은 변질되기 쉽습니다. 모든 선교 활동은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내 공로를 세우고, 내 업적을 쌓으려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교회 선전용 활동이 되기 쉽습니다. 이 같은 선교 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영원히 등을 돌리게 만들기 쉽습니다.

6.

그래서 저는 선교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더 더욱 선교를 열심히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제대로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에는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선교라는 말만 들어도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 더 더욱 선교를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피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더욱 열심히 하되, 바른 선교를 하기 위해 더 연구하고, 더 조심하고, 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도 우리 교회는 바른 선교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선교에 대해 부정적이고, 도대체 선교에 참여할 마음도 없고 지원할 마음은 더 더욱 없는 분들에게 청합니다. 만일 그 자세에 그대로 머물러 계신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과거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선교를, 균형 잃은 열성 신자들에게만 맡기고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 많은 교회들이 선교를 잘 못하고 있음을 안다면, 더 더욱 바른 선교를 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 그런 교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참여해 주시고, 물질로 참여해 주시고, 시간을 내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이미 선교에 참여하여 헌신하고 계신 분들에게 청합니다. 열정이 강한 만큼 더 많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세심하게 살피고 더 조심하여, 우리가 하는 선교가 바른 선교가 되도록 힘쓰십시다. 우리가 하는 선교가 선교에 대해 이미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고쳐줄 수 있을 때까지, 두 번 생각할 것, 세 번 생각하고, 세 번 기도할 것, 네 번 기도하십시다. 선교와 관계된 일일 경우, 더욱 말에 조심하고, 행동에 조심하십시다.

바른 선교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요소 즉 ‘변화된 증거와 애끓는 마음’이 늘 살아있도록 하십시다. 성령과 깊이 사귀어 살아감으로 인해 죄와 죄들로부터 해방되십시다.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그리고 죄와 죄들 속에서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을 품으십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제사장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한 제사장 공동체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힘입어 저와 여러분 각자가 자격 있는 제사장이 된다면! 그리하여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마침내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면! 아,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힘입어 우리 교회가 자격 있는 제사장 공동체가 된다면! 우리 교회가 행하는 모든 선교 활동들이 진실로 세상을 위한 것이 되고, 진실로 성령께서 사용할만한 도구들이 되어, 그것을 통해 이 세상의 불행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면! 이 은총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항상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애끓는 심정으로 세상의 불행에 대해 근심하시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기 위해 앓으시는 하나님,
이 세상을 결코 포기하신 적도 없고
또한 그러시지도 않으실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저희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셔서
제사장으로서 자격 있게 하소서.
애끓는 마음을 품고
성령의 증거를 가지고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소서.
그 마음을 품고
성령의 노래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저희의 하는 모든 일이
죄와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사용되게 하소서.
저희의 삶 전체가 선교가 되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