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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18 (김 미혜 전도사)

" 내 마음은 전쟁터"
(My Mind is a Battlefield)
로마서 7:15-25

1.

한 평생 마음속에서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마음을 먹을수록 이상하게 그 일을 더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이 일은 꼭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일은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내 마음 속에 악이 함께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행하기를 원하지만 내 속에 함께 거하고 있는 죄성을 가진 나의 본성이 언제나나를 사로잡기 때문에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순종하려 해도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 불순종 하도록 끌어갑니다. 이렇듯 순종하려는 나와 불순종하려는 내가 함께 나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니 어느덧 내 마음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이 현실에서 누가 나를 구해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이 고백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위대한 사도 바울 선생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초신 자라면 모를까, 바울 사도라니요. 그는 믿음의사도요, 신학자요, 복음전파자로서 죽음의위기 앞에서도 초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분 아닙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성경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나’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경해석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심한 크리스천들이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히 경험하는 내면의 전쟁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문제는 크리스천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왕양명이라는 사람이 살던 시대에는 많은 도둑이 들끓고 전쟁도 수없이 치르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왕양명의 제자가 스승에게 찾아와 질문하기를 "선생님, 도둑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왕양명은 "내게는 더 큰 문제가 있느니라. 바로 내 마음의 도둑을 먼저 잡아야 하느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루는 전쟁이 일어나 온 나라가 어지러울 때, 그 제자가 찾아와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스승이 대답하기를 "내게는 더 큰 문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문제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다름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왕양명은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바로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문제임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여러분들 중에서도 나도 바울 사도가 고백하는 전쟁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혹은 지금 그 전쟁을 혹독히 치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실 줄 아는데요. 저도 어릴 적부터 교회생활을 하다가, 22년 전에 제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에 죄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으로 뛸 듯이 기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내 마음 속의 전쟁으로 인해 힘들어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할 때의 전술가들의 제 1법칙은 적을 알고 나를 알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허벌레한 전쟁을 치렀으니 결과는 KNOCK DOWN, KNOCK DOWN 반복해서 실패하며 아!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나, 내가 잘못 믿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책하고 실망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것 밖에 안 되냐는 비웃음만큼은 당하지 않아야지 하면서 간증 책에서 읽은 대로 화가 나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참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가 먼저 죽어야지" 속으로 외치면서 참고, 이전 같으면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될 정도로 열심히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느 덧 제 자신은 오늘 본문의 바울 사도처럼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라는 고백을 외쳐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순수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하는 선한 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나의 의,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야 이런 것이 아니야. 나는 남이 보든지 안보든지 상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것이다" 이렇게 수백 번 외치고 노력했지만 어느새 내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져 있고, 이기적인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안타깝게 저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중에 오늘 본문이 있는 로마서를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대한 예수님의 사도이며, 세계 최초의 선교사요, 신약 성경의 2/3의 저자인 바울 사도께서 고백한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겪은 이 마음의 전쟁은 믿음의 길로 들어선 모든 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동일한 전쟁이라는 사실과,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의 가르침대로 적의 정체는 물론, 나는 누구인지, 다시 말하면 크리스천들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자신을 지칭하고 있는 ‘나’ 는 로마서 7장의 앞뒤 문맥 상 최초의 사람 아담을 지칭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담의 후손인모든 사람까지 포함시킬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각 사람은 바울 사도가 경험했던 마음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다짐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내 마음 나도 몰라 하면서 그냥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교훈들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첫째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라 고해도 좋겠죠. 그 율법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불순종의 죄를 범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율법이 문제요, 율법이 죄라고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7절에서 "율법이 죄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하는 역할은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탐내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을 텐데,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탐심이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오히려 죄가 이 탐심이라는 율법의 틈을 타고 우리 안에서 온갖 탐심을 갖도록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마치 교통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노란 신호등은 미리 설 준비를 하라는 것인데 오히려 노란 신호등을 보면 더 빠른 속력을 내면서 신호등을 지나가는 차들처럼 말입니다. 바울사도의 표현을 따르면,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역할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7:13)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죄로 알 수 없었으므로 율법이 하는 역할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우리의 적이 율법이 아니라면 누구일까요? 바울 사도는 우리가 원하는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을 하게 만드는 적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성-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의 성품, 원죄라고도 하지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오히려 악을 행하고, 그래서 죄책감에 사로 잡혀서 괴로워하는 이런 주기를 반복하면서 괴로워합니다. 율법을 몰랐을 때에는 죄책감도 없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알아갈 수록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생활 하기가 힘들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것이 갈수록 더 어렵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 율법 때문에 자기를 높이고 자만심을 갖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만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율법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13장 9절에서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 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선한 뜻으로 주신 율법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보다 앞서는 사랑을 배우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심으로 그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적을 알았으므로 이 적에 대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하는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 때문이므로, 스스로 질책하고 죄책감에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이 죄에 대해서 단호해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타고난 죄의 성품을 제거해 버릴 수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 죄에게 속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훈련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들이었던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하셨지만, 가인은 자기 안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가 끌고 가는대로 자신을 허용하더니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죄는 본성적으로 사랑을 파괴하는 힘이 있으므로 이 죄에 대해서 단호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유부단하면 죄가 그것을 바로 알고는 언제나 우리를 지배하려고 이리 저리 끌고 다닐 것입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가 죄로 드러나도록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고, 우리는 이 율법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4.

둘째로, 적을 알았으니 이제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 넣어 주시자 생령, 다시 말하면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 하나님의 숨결인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자, 이것이 바로 ‘나’의 정체성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나’는 타락하기 이전의 ‘나’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와 타락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타락한 이후의‘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고 죄의 지배를 받는 상태로 성경은 이런 인간을 가르킬 때 ‘육신’ 영어로는 flesh로 사용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육신적인 삶을 살지만,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여전히 우리의 깊은 내면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고 찾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사도가 고백하기를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 는 타락한 이후 죄성을 갖고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법칙 곧,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있다"는 이 법칙은 우리 속에 선과 악이 동시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을 행하려는 ‘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음 받은 ‘참된 자아’ 혹은 ‘true self’와 그런 나에게 함께 붙어있는 악은 타락한 성품이 허용해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나’ 다시 말하면 ‘거짓 자아’ 혹은 ‘false self’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참된 자아와 거짓 자아가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은 ‘참된 자아’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 원하지만 그것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나의 육신 때문에 내 마음은 언제나 싸움터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참된 자아는 손상되었고 타락했으며 죄의 성품이 언제나 우리의 육신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받을 수도, 선을 행할 수도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전의 로마서 1-5장까지에서 바울사도는 죄인인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쳐왔습니다. 그리고 6장부터는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성숙하게 자라갈 수가 있는가 하는 성화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불가능한 것처럼, 성숙하게 자라가는 것 역시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성품이 우리 안에 여전히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이제 우리가 세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이 비참한 상황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참된 자아와 그것을 막는 거짓자아와의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내 마음의 전쟁터에 언제쯤 평화의 소식이 찾아올까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다는 기쁜 소식이 언제쯤이면 전해질까요? 바로 오늘 본문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24절에서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실까요" 라고 외치면서 도움의 손길을 구하던 바울 사도는 25절에서 급전환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시면 바울 사도는 앞에서 설명한 죄성과의 싸움과 괴로움에서 해결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자유를 얻게 되었느냐구요? 그 해답이 8장 이후에 전개되지만 지금은 6절까지만 다 같이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 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더 이상 율법으로 인한 죄의 법에 거하지 않고 성령의 법 안에 거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의지로서는 약해서 자꾸 넘어지지만 성령님을 의지하면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부터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틈을 타서 우리를 속였던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해 주시고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나를 지배하려고 유혹하는 죄를 따라 다녔던 거짓 자아에 대해서 과감하게 노(No) 라고 물리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분을 기쁘게 하려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거짓 자아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면 내 안의 참된 자아는 무럭무럭 자라가기 시작합니다. 같은 말씀을 다른 곳에서는 내 속사람이 강건해진다고 하기도 하고 영적으로 성숙해 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앞뒤의 수식어를 빼면 한 마디로 "여러분은 옛사람-거짓자아, false self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 참된 자아, true self의 옷을 입으십시오." 라고 요약됩니다. 거짓 자아의 옷을 벗고 참된 자아의 옷을 입는 비결은 23절인데 그것은 우리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새로워진 우리의 마음,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 우리는 옛사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성화의 과정은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가 아직 육체의 몸에 살 때에는 타락한 죄성의 영향력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일 끝나는 것이 아닌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성화의 삶을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싸움의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 적의 정체성과 나의 정체성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주도권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죄에게 틈을 주지 말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서 끊임없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깨닫게 된 이 사실을 근거로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저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의 권고의 말씀을 한 번 더 듣기를 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수 없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날마다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한 순간에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지만
날마다 매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연약한 우리의 의지를 강건케 해 주시고
기도할 수 도 없는 순간조차도
우리의 신음소리만 들으시고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