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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18 (이 현호 목사)
“마음이 마음에게”
(Heart Speaks to Heart)
호세아 6:1-6; 마태복음 22:37-40
1.
오래 전 일입니다. 막내 동생이 모처럼 우리 집에 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형네 집에는 그런대로 있을
것은 다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한 말이라서 웃고 지나갔는데, 세월이 한참 지난 요즘도 그 말이 문득 문득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사를 많이 다니는 처지이다 보니, 좋게 말하면 검소하고 단출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사의 형편인지라, 살림살이가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동생의 그 말이 꼭 살림살이와 관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문득 문득 제 마음을 도전해 옵니다.
"있을 것은 다 있는데,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 말은 꼭 우리의 삶의 한 단면을 꼬집어
지적해주는 도전 같습니다. 혹시 우리 사는 세상이, 혹은 우리의 삶이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무언가로 계속 채워지기는
하는데, 정작 중요한 그 무엇이 빠진 세상.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고 또 성취하면서 살아가는데,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리고 사는 인생. 아니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그 한 가지가 인생 여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침대는 있는데 숙면은 없는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요? 온갖 통신장비는 갈수록 발달하는데 진실한 대화가 없는 삶은
얼마나 고독할까요? 만남은 있는데 사귐이 없는 삶은 얼마나 허무할까요? 파티는 있는데 마음의 즐거움은 없는 삶, 식사는
있는데 감사는 없는 삶, 집은 있는데 가정은 없는 삶, 돈은 있는데 행복은 없는 삶은 어떻습니까? 예배는 있는데 하나님
체험이 없는 교회생활, 성경공부는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지 못하는 신앙생활, 예배당은 있는데 교회는 없는
현실은 또 어떻습니까?
있기는 있는데 정작 있어야 할 것이 없고, 하기는 하는데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삶의 끝에는 후회와 허전함만이
남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학창 시절에 읽었던 시인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잃어 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도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걷는 시인의 모습은 오늘 우리시대 많은 사람들의 자화상,
아니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시인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것이 생의 원동력이 된다면서 자신의
시를 마감합니다. 인생의 목표에 대한 또렷한 인식과 ‘생에 대한 끈끈한 긍정’이 이 시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정말 결정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까닭은 우리 사는 세상이 갈수록 형식 중심, 외향 중심의 문화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우리는 보여주기 위하여 분주합니다. 세상은 보여주는 대로 평가하고,
우리는 더 좋은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긴장합니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물건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열심을 내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에 더 골몰합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신경이 갈수록 더 예민해지고, 몸은 피곤해지고, 마음은 우울해집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바쁜데, 너무 바빠서 행복할 틈이 없습니다. 보여지는 것은 많은데, 느껴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눈은 즐거운데, 마음은 허전합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바로 ‘마음’입니다. 우리가 길을 걸으며 눈을 비비면서
찾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보람이 없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기쁨이 없는 것이 바로 그 일에, 그 만남에
마음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며 살기 원합니다. 마음을 담아 일을 하면서 땀의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은 우리를 정 반대의 방향으로 이끌고 갑니다. 우리 역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방향으로 끌려갑니다. 일을 해도 그 일에 마음을 담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에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관광을 온 사람이 그래도 미국에 오면서 영어 몇 마디는 배워 왔습니다. 그 사람이 연습해 온
영어가 "Hello!" "Thank you!" 그리고 "After you."
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서면서 두리번거리다가 미국 사람의 발을 밟았습니다. 불쾌하게 찡그리는
그 사람에게 "Hello!"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이 미국 사람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Watch
out, please."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Thank you." 하고
응답했습니다. 이 한국 관광객이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아 미국 사람이 욕을 했습니다. "Go to hell!"
그러자 한국 관광객이 응답했습니다. "After you."」
우리는 ‘마음’이 목마릅니다. 마음과 마음이 교통하는 대화가 그립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는 만남이 그립습니다.
마음을 담은 위로의 말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마음으로부터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형식적인 인사,
형식적인 만남, 형식적인 선물, 형식적인 위로, 형식적인 악수 뒤에서 우리는 여전히 고독하고 허전해 합니다.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기도와 예배, 선교와 봉사, 나눔과 사귐의 공동체 생활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싣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모든 것에 담아야 할 것이 마음입니다. 형식적인 기도, 형식뿐인 예배, 보여주기 위한 선교,
드러내기 위한 봉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하고, 우리 자신도 구원에로 이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목말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목말라하십니다.
3.
오늘 함께 나눈 호세아서의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목말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이 그들이 저지를 죄악으로 인해 큰 고난을 당할 것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경고는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경고하심으로써 그들이 다시금
돌이켜 하나님께 마음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경고 이후에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십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신다,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우리가 애써 주님을 알자"는 호세아의 호소는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호소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 살라는 간곡한 호소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으라는 간절한 권고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4절)
.
「제가 군목을 할 때, 군대에서는 예배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이 ‘종교 행사’였습니다. 훈련에 지쳐 고단한 병사들이
교회에 와서 하는 일은 대부분 잠을 자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법당에 다니다가도 교회에서 무슨 잔치를 한다고 하면
와서 앉아 있습니다. 초코파이와 라면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이들로 가득 차지만, 매 주일 저는 목마릅니다.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이들은 그 중에 몇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호세아가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에 모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당에서는 여전히 토라가 낭독되고, 백성들은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 행위에 그들의 마음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들먹이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종교 행사’는 있는데, 참된 예배는 없었습니다. 기도와 봉사는 있는데,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6절).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는 구약시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형식만 있고 마음이 담기지 않은 당대의
종교인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리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그들은 율법의 주요 구절을 적어 몸에 달고 다녔습니다. 율법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있는 것은 다 있고, 해야 할 일도 다 하는 듯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았습니다. 그 모든 일을 마음으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표해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마 22:36).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37-39절). 아마도 그 율법학자는 속으로 이렇게
응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매일 토라를 읽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십일조도 합니다. 그것뿐인 줄 아십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사랑해서 적절한 기회에 자선을 실천합니다."
만일 율법학자가 실제로 이렇게 반문했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마.
너는 그 모든 것들을 마음으로 하였느냐?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느냐? 마음을 다하여 이웃을 사랑하였느냐?
정말 그렇게 하였다고 대답할 수 있겠느냐? 너는 그 모든 경건 행위를 하나님을 위하여 하였느냐? 너는 그 모든 자선
행위를 이웃을 위하여 하였느냐? 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기 위하여 한 것이 아니었더냐?"
4.
부부가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교회에 다녀도,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면 행복한
부부가 아닐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관계가 같은 이치입니다.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고,
마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마음과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여전히 허전하고, 많은 사람을 사귀었지만
여전히 고독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모여 예배하고, 주중에 함께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속회로 모여 밥을 같이 먹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
봉사하고 선교해도, 그 모든 일들을 마음을 담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신앙의
신비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인 갈증이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런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목말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죄의 용서와 구원의 역사 속에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말씀 속에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대자연의
신비한 섭리와 아름다움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속에, 함께 살라고 주신 가족과 이웃 속에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성도의 교제 속에 그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마음속에 우리를 품으시고, 당신의 마음을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우리 모두에게
온통 쏟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드릴 차례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마음을 줄 차례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언자 요엘의 말씀처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2:13)
참회하고 있습니까?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까?
마음을 다해 봉헌하고 있습니까? 열린 마음, 주님의 마음으로 교우들을 맞아주고 있습니까? 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할 채비가 되어 있습니까?
"네 마음을 내게 다오!"(개역성경, 잠 23:26) 이것이 주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이웃들의 간절한 청원입니다. 아니, 이것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떼제 찬양의 가사처럼,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는 곳에,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에, 마음으로
예배하고 섬기는 곳에,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 우리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아멘-.
사랑의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게 하소서.
주님께 마음 드리듯, 이웃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주게 하소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에서 생의 참된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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