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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2 (김 영봉 목사)

요한복음 연속설교 ‘생명의 복음’(90)
“빌라도의 회상 (1)”(Recollection of Pilate 1)
--요한복음 18:28-40


1.

제 이름은 빌라도입니다. 저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얼마 전, 지금의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방의 이름 때문에 제 이름이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고향은 유명한 전사들을 많이 배출된 곳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우리 지방 출신의 용맹스러운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가 그들처럼 용맹스러운 전사가 되어 제국을 호령해 보겠다는 야망을 마음에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남자로서 가장 영예로운 일이었으며, 또한 로마 제국에서 가장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로마 군대에 들어간 저는 한 때 아주 잘 나갔습니다. 전투에 임할 때마다 선두에 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저는 전리품을 손에 넣는대로 그것으로 사람을 얻는 데 사용했습니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유망한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머지 않아, 제게는 탄탄한 인맥이 형성되었고, 한 두 사람만 통하면 황실의 누구와도 연결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사귀어 두었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티베리우스(Tiberius)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디베료’라고 표기되어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 역사 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로마 황제가 되어 서기 14년부터 37년까지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황제가 된 후, 티베리우스는 저를 신임하여 여러 가지의 일을 맡겨 주었고, 저는 그 때마다 황제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곤 했습니다.

서기 26년, 티베리우스 황제는 저를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총독을 파견하여 다스리고 있는 40여 개의 지방 중 유대 지방은 특별한 지방이었습니다. 그 규모나 경제력에 있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나, 유대인들의 독특한 믿음과 전통 때문에 로마 정부에서 늘 신경을 쓰고 있던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다스리기 까다로웠던지, 제가 부임하기 이전까지 여러 명의 총독들이 교체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가 저를 믿어 주고 그곳으로 파견하였으니, 저로서는 영예로운 일이었습니다. 부임하기 전까지 저는 손에 닿는대로 유대 지방과 유대인들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잘만 하면, 유대 총독의 자리는 제가 로마 황실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2.

한 편으로는 로마 황실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까다로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는 일?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안고 저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저는 부임하는 첫 날에 경험했습니다. 제가 부임하는 날, 제 수하에 있는 병사들이 로마 황제의 동상 몇 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것은 로마 정부가 정복지에게 행하는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정복지의 중심부에 로마 황제의 동상을 세워 둠으로써 “이 땅은 로마 황제의 땅이다.”라는 사실을 천명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저는 총독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제가 머무는 가이사랴에 몰려 들었는데, 마치 전국민이 몰려 온 것처럼, 무리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동상을 치우지 않으려면 우리를 모두 죽이라고 버텼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에 열심이라는 사실을 미리 배워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작전상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임 초기에 이런 일들을 자주 겪으면서 저는 나름대로 유대인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그랬기에 10년 동안 총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황제가 로마 황실로 불러 줄 날을 기대하면서 유대 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당근으로, 또 때로는 채찍으로 그 고집스러운 민족을 무난히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게는 총독의 자리가 오를 수 있는 사다리의 끝이었습니다. 저의 후원자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힘을 잃어가던 서기 36년 어느 날, 저도 하루 아침에 총독직을 잃고 낙향해야 했습니다.

아, 권력의 무상함이라니! 막상 권력을 잃고 일개 평민으로 낙향을 하고 나니, “내가 그동안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다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서 물러나니, 제게 남겨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 왔는지, 심한 회의감이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아직도 제게는 얼마 동안 더 살 건강이 남아 있지만, 그 목숨을 연장시킬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공허감과 허무감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결할 생각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패배자로서 인생을 마감했을 때, 그 이후는 더 더욱 어둡고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내 스스로 그 어둠 속으로 찾아들어갈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망감과 패배감과 공허감과 무력감 속에서 웅담(gall)을 씹는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여러 해 전에 저의 업무상 만났던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서기 30년 경 어느 해 유월절에 만났던 한 유대 청년 말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까맣게 잊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특별한 만남 이후, 그 기억이 틈틈이 되살아나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유쾌하지 못한 경험 중 하나로 생각하고 무시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10년 동안 다스렸으니, 그런 종류의 불편한 만남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사람과의 만남도 그런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바닦에 내려와 머물러 있다 보니, 그 사람과의 만남이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보다 더 고통스러운 만남이 수 없이 많았는데, 그 모든 기억은 의식의 바다 안이 깊이 잠겨 있는데, 오직 그 사람, 나사렛 예수와의 만남, 그 사람과의 단지 몇 시간 동안의 만남이 이제야 이렇게 새로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싶습니다.

3.

그 해에도 유월절을 맞아 저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축일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수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듭니다. 때때로 이런 기회를 틈 타 무리를 선동하여 반역을 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이 되면 총독은 예루살렘의 성전 한 편에 있는 안토니오 요새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군인들의 수도 대폭 증강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소요가 있다 싶으면,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그런 음모를 꾀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고 유월절 음식을 먹는 그 날 아침, 유대인 지도자들이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사람을 제게 끌고 왔습니다. 저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군사들은 유대인들의 정세를 면밀하게 살피다가 약간의 문제라도 보이면 그곳으로 몰래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곤 했습니다. 그 예수라는 사람이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는 소식을, 저는 이미 오래 전에 들었습니다. 갈릴리는 유대 지방 중에서도 가장 골치아픈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는 스파이를 보내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돌아와 제게 보고했습니다. 그 사람은 로마 제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였습니다. 그 사람의 가르침과 행동을 볼 때, 로마 정부를 뒤엎기 위해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심하고 그냥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들이 제게 끌고 온 것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결박된 나사렛 예수를 저에게 넘겨 주고는 총독 관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면 부정을 탄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밖에서 그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을 무엇 때문에 고발하는 거요?”(29절) 그들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님께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30절).

‘악한 일’이라? 저도 그 사람에 대해 알만큼 아는데, ‘악한 일’이라고 꼬집어 말할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아, 이것은 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감정 싸움이구나.’ 그렇다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원래, 종교인들의 감정 싸움은 개입할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31절). 유대인들은 로마법만큼이나 훌륭한 법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 자치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최고 재판소 산헤드린도 있었습니다. 저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할 일은 모두 산헤드린에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이 일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

그런데 불행히도 제 의도가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지 않습니까?”(31절). 실상이 그러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형만큼은 유대인들이 자치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자기들끼리 결정하여 사람을 처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너무나 분노하고 흥분한 나머지, 총독의 재가를 거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들끼리 처단해 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책임자인 대제사장은 총독으로부터 혹은 로마 황제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꼼짝 없이 덫에 걸려 버렸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처형하기로 마음을 먹었나 봅니다.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사람이니, 반역죄로 다스려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빠져나갈 틈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하릴 없이, 저는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 나사렛 예수를 불러냈습니다. 저같은 고위 공직자가 갈릴리에서 굴러먹던 시시한 방랑 설교자를 대면한다는 것은 적잖이 체면 깎이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긴, 저도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바가 있어서, 한 번 어떤 사람인지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는 하찮은 시골 설교자로 알고 그를 맞았습니다. 그는 병사들이 이끄는대로 눈을 내리 깔고 제 앞으로 끌려 왔습니다. 제 앞에 세워지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그 사람의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신비로운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저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아니, 마치, 온 세상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불과 몇 초 동안의 정지 상태였지만, 제게는 한 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 아니 그분의 깊은 눈동자 안에 제가 흡수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짧은 정지 상태에서 저는 깊은 안식과 평안과 성취감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는 그런 것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고향 언덕에 누워 있는 듯,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긴 듯, 그 깊은 눈동자에 빨려 들아가는 순간,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고 싶었습니다. 혹시나, 제가 그때까지 권력과 부를 추구해 오면서 진실로 갈망했던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순간, 저는 제 권좌로부터 내려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해 달라고 청하고픈 충동이 들었습니다. 아니, 하마터면 그렇게 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저는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 제 정신을 찾았습니다. 저는, 제가 방금 전에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던 것을 자각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뿔사, 큰 실수를 범할 뻔했습니다. 대 로마 제국의 총독이 시골 출신의 일개 방랑 설교자에게 무릎을 꿇다니요? 그에게 “나를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심시오”라고 청하다니요? 대 로마 제국의 대리자가 체신을 구겨도 정도가 있지, 이게 말이 됩니까? 그 순간에라도 제 정신을 차린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때 제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상은, 제가 일평생 제 정신을 잃고 헛된 것을 찾다가 결국 이렇게 처참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지금 돌아 보니, 제가 진실로 제 정신을 차렸던 것은 그 사람 나사렛 예수를 마주 보았던 그 순간, 그의 깊은 눈동자에 빠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식과 평안과 성취감을 맛보던 그 짧은 순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정신을 잃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기서 벗어나, 신속하게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5.

저는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33절) 그러자 깊은 바닷속처럼 미동도 없는 눈빛으로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34절)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저는 움찔 했습니다. 방금 제가 빠져 있던 생각과 감정을 꿰뚫어 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질문은 제 마음에 이런 뜻으로 들렸습니다. “당신이 방금 나에 대해 뭔가를 느끼지 않았습니까?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 하든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느낀 것을 말해 보시오.”

문득, 그 사람 앞에서 제가 무장해제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잘 못 했다가는 속절 없이 당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제 위신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에 힘을 주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사실, 제가 유대 사람이든 로마 사람이든 혹은 한국 사람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영원하고 참된 나라에 들아가는 일에 인종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저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핑게를 댔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36절). 아, 그 사람은 다시금 제 마음에 일어났던 변화를 붙들고 도전합니다. 저도 잠시 동안이지만 느꼈습니다. 그 사람의 눈동자 속에서 이 세상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깊은 안식과 평안을 보았습니다. 왠지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형색은 초라했지만, 그의 눈빛과 얼굴빛은 로마 황제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뭔가 초월적인 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그 나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는 사람입니다. 제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부하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저를 그의 영원한 나라로 초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로마 황제의 자리를 꿈꾸고 있던 총독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잠시 엿보기는 했지만, 저에게는 가이사의 나라, 로마 제국이 더 좋아 보였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나라에 들어가자면 로마 제국에 대한 저의 야망을 내려 놓아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왕으로 왔다는 예수에게 무릎을 꿇으려면, 로마 총독으로서의 위신과 특권을 모두 포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 초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그렇다면, 왕이란 말이오, 아니란 말이오?”(37절)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37절). 아, 이 사람이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겁니까? 그는 또다시 암시적인 말로써 저의 마음을 압박해 오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을 알아 듣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결단하시오. 거짓의 나라에 희망을 걸지 말고, 진리의 나라로 들어 오시오.”라고 말하며 저를 압박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밀릴 수가 없어서,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오?”(38절)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6.

그 때까지 저는 오직 로마 제국에만 희망을 두었고, 오직 권력을 얻는 일에만 목적을 두었으며, 힘을 과시하고 그 힘으로 욕망을 채우는 일에서만 만족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역사책에 저를 권력욕에 눈이 멀어 그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하는 폭군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참 기분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그가 그렇게 저를 평가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실로 권력 유지가 최고의 가치였고, 권력은 저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습니다.

이러한 제가 그 나사렛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100% 권력에 팔려 살지는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제가 100%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제 안에 아직도 신께서 창조해 놓은 영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하기야, 인간으로서 진리의 음성에 완전히 귀가 머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본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마모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처럼 철저히 탐욕과 물질과 권력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도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때로 이렇게 진리의 음성을 알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저처럼, 마음에 들려온 음성에 응답하라는 부드러운 초청을 끝내 외면하고 거부한다면, 알아 들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제가 어리석었다 싶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놓게 되는 것을, 마치 영원히 붙들 수 있을 것처럼 붙들고 있다가 모든 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 때, 제가 체면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의 초청에 좀 더 진지했더라면, 그래서 그가 왕으로 다스리는 진리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좀 더 듣고 그의 초청에 응했더라면, 저는 지금같은 실패자가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제 되돌아 보니, 그 때가 제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defining moment)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기회가 지나가고 말았으니 어쩐답니까? 제가 만났던 그 사람 예수는 저의 명령에 의해 이미 십자가 형에 처해진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모를 일입니다. 지금 저는 이렇게 인생의 나락에 버려져 캄캄한 어둠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요? 이렇게 끝난다면, 제가 그 동안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제게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아, 지금도 그분의 그 깊은 눈동자가 생각이 납니다. 잠시 경험한 것이었지만, 그분의 눈동자에 잠겨 느꼈던 그 깊은 안식과 평안과 성취감을 기억합니다. 제가 로마 제국에서 권력을 누리던 그 몇 십년 동안 저는 그런 순간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제게 그런 안식과 평안과 성취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총독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사람에게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했겠습니까? 로마 황제조차도 그런 것을 알지 못했음에 분명합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 순간도 머물지 못하고 부산히 움직이던 황제의 그 눈동자를! 불안과 탐욕으로 충혈되어 있던 그 눈동자를! 그것에 비하면, 그 사람, 나사렛 예수의 눈동자는 영원을 담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는 분명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가 알 수 없는 어떤 나라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진실로 존재할까요? 십자가 위에 달려 죽은 그 나사렛 예수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만, 제게 느껴졌던 그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 사람이지만 이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가 말한대로, 진리의 나라는 진실로 존재할까요? 그 나라가, 제가 그의 눈동자에 잠겨 경험했던 그런 곳이라면, 아, 저도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진작에 그분의 초청에 응하여 그곳에 가지 못한 것이 지금 이렇게 후회스럽습니다. 그 나라의 문 앞에서 되돌아서 나왔으니, 저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것이 제게 마지막 기회였을까요? 제게는 영영 다시 희망이 없을까요?

7.

기도하십시다.
눈을 감고, 잠시 제 이야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진리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진리의 나라로 들어오라는 초청을 들으실 것입니다. 이미 초청에 응답한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영성 생활에 더욱 진보하셔서 이 땅의 나라에 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마음껏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직도 저처럼 초청에 응하지 않고, 회피하고 모른 척하고 외면하며 거부해 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무엇입니까? 여러분으로 하여금 나사렛 사람 예수 앞에 무릎꿇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로마 황제의 자리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독의 체면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들리는 그 초청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여, 저를 받아 주소서. 저의 왕이 되어 주소서. 당신의 나라로 저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