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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10 (이 현호 목사)

재미있는 교회, 의미있는 교회
Amusing Church, Amazing Church
로마 12:1-2

1.

미국에 딸을 둔 어머니가 딸네 다니러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좋은 시간을 보냈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경도 잘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긴 좋았는데, 딸아이가 매일 빚 갚으러 나가서 마음이 좋질 않았지. 묻기도 뭣해서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글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빚 갚으러 간다면서 나가는 거야.” 사실은 이 어머니의 딸이 빚 갚으러 다닌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 픽업(pick-up)하러 다닌 것을, 영어를 못 알아들은 어머니가 “빚 갚으러 다닌다”는 말로 들은 것입니다. 저희 집도 미국 온 이후 6년 넘게 매일 빛 갚으러(픽업하러) 다닙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아직도 빚 갚으러(픽업하러) 다니시는 분들 많으시죠?

2.

요즘 사람들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설교도 한 번 진하게 웃겨줘야 “은혜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단하고 복잡한 세상, 머리를 묵지근하게 만드는 피곤한 세상을 살다 보니, 집에서는 조금 느슨하게 쉬고 싶고, 교회에 와서도 심각하고 비장한 설교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듣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설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기준이 되는 ABC가 있습니다. Ability (능력), Beauty (외모), Character (성격), Degree (학력), Economy (경제력), Family (가문), 그리고 일곱째는 Gift (선물)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하나 더 첨가되었습니다. 그것은 Humor 즉 상대방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유머감각입니다. A부터 G까지 다른 조건이 아무리 뛰어나도 유머감각이 떨어지면 배우자 감으로 후한 점수를 얻지 못한답니다.

인생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재미는 삶의 양념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본 재료가 좋아도 양념이 제대로 가미되지 않으면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없듯이, 맛깔스런 삶을 위해서는 적절한 유머, 적절한 재미, 적절한 웃음이 가미되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사는 것이 무미건조해진 시대에는 사람들이 더 큰 재미, 더 짜릿한 재미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지나치게 삶의 중심부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양념이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재료가 없이는 음식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양념이 맛있다고 그것만 먹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양념은 맛을 더할 뿐,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음식의 본 재료가 아닙니까? 지나치게 재미를 좆는 세대의 문제는 결국 나중에 가서 삶의 허무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고리타분하고 따분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재미만 좆아서 살아서도 안 됩니다.

3.

2006년 겨울 어느 미국 신문에서 읽은 한 목사의 인터뷰는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교회가 급성장하여 미국 교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 교회의 목사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is a sin for churches to be boring.” “재미 없는 교회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큰 극장을 주일마다 빌려 예배하는 이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에 오는 순간부터 교회를 떠날 때까지 교인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서 온갖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목사의 설교도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을 빼놓는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 와서 실컷 웃고, 실컷 대접 받고, 실컷 얘기하다 가면, 거기에 하나님의 치유가 있고,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이 목사의 소신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매년 놀랄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신문기사를 읽고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과연 교회는 재미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까? 세상살이가 피곤하니까 교회까지도 교인들을 따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과연 맞는 100% 말입니까? 그렇게까지 재미를 추구하는 교회는 누구를 위한 교회입니까? 무엇을 위한 교회입니까? 누가 그 교회의 주인입니까? 좀 더 단호하게 묻는다면, 재미는 있는데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래도 그 교회를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재미 없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재미만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품은 주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것이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에 와서 웃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야 합니다. 따분한 교회는 저도 가기 싫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대접 받는 재미, 먹는 재미, 찬양하는 재미, 설교 중에 웃는 재미, 친교실에서 어울리는 재미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뭔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작년 말에 제 아내가 배추김치도 하고 무김치도 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배추도 무르고, 무도 물러 터져서 금새 김치를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소금에 저리기도 적당하게 했고, 양념도 잘 했는데, 무랑 배추가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김치를 많이 해놔서, 그 때 담근 김치를 한 달 넘게 찌개에도 넣고, 볶기도 하고, 김치전도 부쳐서 먹었습니다. 정말 힘겨운 기간이었습니다.

재미만 있고 의미가 없으면 마치 잘 담가졌지만 재료가 시원찮아 물러 터지는 김치와 같습니다. 재료부터 좋아야 합니다.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만 추구하고 의미를 상실하면 결국엔 공허해지고 맙니다. 우리는 재미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생존하고, 훗날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책과 강연을 통해 잘 알려진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말대로 “인간은 생의 의미를 발견할 때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재미가 삶의 양념이라면, 의미는 존재의 터전입니다.

4.

바울 사도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12:2a)고 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는 바로 지나치게 재미만을 좆아 사는 우리 시대의 풍조를 일컫는 말로 들려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쉽사리 타협해서는 안될 ‘시대의 풍조’가 여럿 있을 것입니다. 지나친 편의주의, 지나친 소비주의, 물질중심주의, 지나친 개인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지나친 경쟁주의… 열거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에 대해 단호합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

이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 살지 말라는 말씀은 소극적인 면입니다. 더 적극적인 면은 “하나님의 …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12:2b)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미 있다!” 하신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뜻이 곧 의미입니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편에서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임의로 부여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빛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뜻’ 혹은 ‘의미’가 무엇입니까? ‘속내’ (속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속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마음을 헤아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속내를 드러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 편에서 먼저 계시해 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존 웨슬리(John Wesley)의 표현대로, ‘은총 중의 은총’ (grace upon grace)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당신의 뜻을 열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속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 1:14)는 요한복음의 놀라운 선언이 이런 맥락에서 풀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은 말씀하시는 분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성육신은 곧 뜻 (의미)의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다 털어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펼치신 구원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속내(뜻, 의미)입니다. 친히 인간이 되셔서 낮고 천한 밑바닥생활로부터 당신의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고, 죄로 물든 세상이 뿜어내는 온갖 한숨과 절규와 눈물과 상처로 인해 신음하는 이들과 거리낌없이 친구가 되시고, 뻔히 죽을 자리로 흔들림 없이 행진하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의 삶이, 그 삶과 죽음과 부활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의미 중의 의미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미 있게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여주시고 그 뜻대로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그분처럼 살기를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몸 즉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12:1).

따분한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의미 없는 것이야말로 죄악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바꿔 말해야 합니다. “It is a sin for churches not to be meaningful.” “의미 없는 곧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회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인생의 참된 의미인 하나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가 되는 것! 저는 이것이 우리가 드릴 합당한 예배요, 교회가 추구해야 할 합당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믿음이 불편하십니까? 부담스럽습니까? Black Friday에 잠을 설쳐가며 장사진을 뚫고 명품 가방, 명품 옷 하나를 80% 세일 가격에 사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감수합니까?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교회는 부담을 감내하고서라도,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올 가치가 없는 곳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가장 큰 불편을 감수하시고, 가장 큰 부담을 고스란히 껴안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없습니까? 너무 무겁습니까? 그렇습니다. 무겁습니다. 재미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터전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표현대로, 존재의 터전(Ground of being)이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는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의미입니다. 생존과 생활의 원동력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는 없지만 기쁨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재미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의미는 기쁨을 줍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재미는 한 순간이지만, 의미가 주는 기쁨은 마음 속에서 지속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성경에 재미라는 말이 단 한 번 나오지만 기쁨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이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37편 4절 말씀에서 “기쁨을 오직 주님에게서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참된 의미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중 제일 긴 119편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아홉 번이나 등장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교훈, 계명, 법, 훈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에 참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미와 기쁨이 여기서도 함께 갑니다.

6.

우리가 재미에 휩쓸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12:2)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참회’(repentance)의 참된 뜻입니다.

사순절은 참회의 계절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계절입니다. 그저 엊그제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의 어제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오늘을 숨 고르며, 내일을 결단하는 것이 참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존재 전체,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 합당한 예배”로 드리는 것이 참회의 본질입니다.

또한, 사순절은 자신의 뜻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신 예수님(마 26:39), 그리하여 끝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요 19:30)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사순절은 재미는 없지만, 의미가 충만한 계절입니다.

재미는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우리를 참되게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재미는 삶을 맛깔스럽게 하지만, 삶을 완성하지는 못합니다. 의미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의미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줍니다. 의미 중의 의미인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에 구원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저의 설교 제목을 영어로는 Amusing Church, Amazing Church로 잡았습니다. 진실로 amazing한 교회는 웃고 즐기는 교회, 재미 위주의 교회, amusing church가 아니라 의미 중의 의미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걷는 교회입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amusing하지는 않을지라도, amazing한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면서, 한마음 한 뜻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도 사순절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거룩한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감사함으로 그 뜻을 살아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붙잡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의미가 되시는 주님,
당신은 또한 우리의 삶에 진정한 기쁨이 되십니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주님께 드려지는 합당한 예배가 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