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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3 (조 영진 감리사)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여러분, 다시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지요. 저와 저희 가족은 여러분의 염려와 기도해 주심으로 은혜 안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3년째를 맞는 알링톤지방 감리사의 사역도 큰 과오 없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역회를 주재하면서 많은 미국인 교회들에게 이야기 한 것 처럼, 여러분의 기도의 뒷받침은 저의 사역에 큰 격려와 용기 그리고 지혜의 샘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교우 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10월30일 저는 뜻깊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LARCMC Virginia 라고 해서 Virginia에 있는 Lutheran, Anglican, Roman Catholic 그리고 UMC 가 모여서 교회의 하나됨을 다짐하며 함께 연구하는 모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금번 모임의 주제는 “ The Gospel: The Heart of Christian Unity,” (복음: 기독교 일치의 핵심) 이었습니다. 주제 강사는 전에 Wesley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Texas에 있는 남감리교대학의 Perkins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계신 Ted Campbell교수 였습니다. Perkins신학대학원은 김영봉 목사님께서 석사학위를 받으신 학교입니다.

Campbell교수님은 첫날 강의에서 신약과 초기 교회 역사에서 증거된 복음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안겨 주는 강연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이 기쁜 소식입니까? 그 기쁜 소식의 알맹이, 그 내용은 무엇 입니까? Campbell 교수님은 서로 다른 교단들이 하나될 수 있는 기초로서의 복음, 특별히 신약성경과 초기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의 내용을 세가지로 요약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결정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 (the narrative of God’s decisive acts in Jesu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둘째는 이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 (claim of continuity with God’s work in Israel,“according to the scripture”), 그리고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가 인류의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는 증언 (claim that God’s work in Jesus has brought about human salvation)을 들었습니다. 좀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입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속에서 역사하신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결정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그 예수님안에서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성탄의 계절은 이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이 기쁜 소식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계절입니다. 그 때 오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계절입니다. 상업주의의 물결에 정신 없이 떠밀려갈 때가 아닙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그냥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그냥 지낼 때가 아닙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마태복음1:18-25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마리아의 잉태와 정혼한 그의 남편 요셉의 이야기 입니다. 그동안 김 목사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의 이야기를 두번 전해 주셨기에, 저는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마태복음서의 증언에 촛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앞에서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나심과 그의 사역, 죽으심과 부활을 구약 성서의 빛에서 조명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역사는 바로 구약성경 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어졌던 약속의 성취로 봅니다.

좋은 예로 마태복음에는 “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라는 표현이 열 한군데 등장합니다. 특별히 1장, 2장에는 이같은 말씀이 다섯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 나신 것 외에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 헤롯의 박해를 피해 에집트로 도피 하셨다가 돌아오신 일, 헤롯이 두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죽여서 많은 사람이 슬픔에 잠긴 일, 에집트에서 돌아오신 후 나사렛에서 사시게 된 일, 이 모든 일들을 마태는 구약의 말씀과 연결시켜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속에서 결정적으로 일하셨음을 증언하는 좋은 예 입니다.

특별히 오는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이사야 7:14과 연결 시켜서 이해합니다. 이사야 7장을 보면 아하스란 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 유대 나라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속에서 큰 어려움을 만났읍니다. 시리아의 왕이 북왕국 에브라임 백성과 그들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과 함께 군대를 동원, 쳐들어 와서 위협할 때, 예언자 이사야는 아하스왕 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되기 전에 아하스왕이 미워하는 저 두왕의 땅이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유대 나라가 위기 속에 직면했을 때, 아기의 탄생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징조가 될 것이라는 멧세지 였습니다.

마태는 이같은 이사야의 외침의 의미가 이사야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넘어서서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이 성탄의 사건 속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 입니까?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징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여러분과 저를 포기하시지 않고,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싸인입니다. 세상을, 우리 인생들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산 증거 입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어디에서 우리 모두를 바라보시며 채점만 하시는 분이 아나라, 오늘 이 시간도, 지금 이 자리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탄의 사건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이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II.

(1) 그런데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은 기쁜 소식이기 전에 사실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소식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시는 분 이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욕망의 불길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시는 분이 십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엉망인 우리의 분장도 잘 아시는 분 이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엄청난 부담입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거두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하는 세금보고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감을 깨닫는다면, 다시 생각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된다는 이 요청은 정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털어도 먼지 안 나오도록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이 부담스러운 마음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앞에 서 본 경험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이 경험을 경외감(Awe)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진정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본 사람들은 똑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모두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 분의 현존을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부담스러운 일만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깊이 느끼며, 부담감에서, 부족함 앞에서 괴로워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짓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위선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고 거짓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니 부족하기에, 모자라기에, 거짓스럽기에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부족하기에, Savior, 구원자가 필요하기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성탄의 사건은 부담스러움을 넘어서는 자유 입니다. 부족함을 싸매어 주시는 용서 입니다. 거짓으로 얼룩진 우리 모두를 고쳐 주시는 치유의 은총입니다.

(2)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고난과 역경, 질병과 실패의 풍랑을 헤쳐갈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 같은 절망의 물결이 밀려올 때, 온 세상에 나홀로 남은 것 같은 외로움에 휩싸일 때, 그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기도와는 정반대되는 일들이 밀려와 낙심이 될때 우리는 탄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 보다고.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성탄의 사건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라고. 나는 너희들을 결코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늘도 임마누엘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16장에서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제자들이 뿔뿔히 흩어질 것을 내다 보시며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6:32).”

그렇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숨을 곳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의 고백처럼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도 주님 거기 계시고, 음부 밑바닥에 자리를 펴도 거기 주님 계십니다. 바다 끝에 가도 거기 주님 계시고, 어둠속을 달려가도 거기 주님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품, 주님의 그 사랑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임마누엘, 이 진리로 부터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도망은 불가능 합니다.

(3)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품은 우리 인생의 종점, 죽음이 찾아와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분리(Separation) 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는 작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 모든 관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돈도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공헌도 죽음 앞에서는 끝 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이별이며, 종점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헤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헤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의 끈질긴 사슬 앞에서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 하십니다. 죽음 너머 미래의 길에서도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여전히 좋은 목자이십니다.

죽음 앞에서도, 죽음 너머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셨던 김정준 박사님께서는 “내가 죽는 날” 시를 남기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폐결핵으로 인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신 후, 한국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셨던 구약학자 이셨습니다:

내가 죽는 날

내가 죽는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이르니” 찬송을 불러주오
또 요한 계시록 20장 이하를 끝까지 읽어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는 이것을 새겨주오
"임마누엘" 단 한마디 말을!

내가 죽은 날은
비가와도 좋다
그것은 내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하고
하늘나라 올라가는데 내 길을 준비함이라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를 보여줌이라!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거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리라.

오! 내가 죽는날
나를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부르시는 날
나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다만 주님의 뜻이면
이 순간에라도 닥쳐오기를
번개와 같이 닥쳐와 번개와 같이 함께 사라지기를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내가 옮겨진 그 나라에서만
내 소식 알 수 있을 터이니
내 얼굴 볼 수 있을 터이니

참 귀한 시 입니다. 임마누엘, 이 귀한 진리를 깨달으셨기에 김박사님은 자신 묘비에 “임마누엘” 이 한 마디만을 새겨달라고 하셨습니다.

III.

그러기에 임마누엘의 소식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꺾이지 않는 희망을 안겨 줍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새날을 꿈꿀 수 있습니다. 절망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든든합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이 소식은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임마누엘의 소식을 우리에게 확증시켜준 성탄의 사건 역시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입니다.

금년은 제 삶의 여정에서 뜻깊은 해 였습니다. 제가 마흔살이 되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조목사가 무슨 소리 하나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의 실제 나이는 마흔살 보다는 많습니다. 제가 마흔살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1967년10월4일에 받은 폐수술 때문입니다. 수술 받는 날 아침 다락방을 펼쳤을 때, 그날의 본문 말씀은 여호수아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 처럼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고 거듭,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속에서 큰 위로를 받고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수술의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마쳤지만 출혈로 인해서 다시 열고 조치를 취하고 수술을 끝냈습니다. 하지만 다시 출혈이 시작되어 수술실에서 28시간 가량을 보냈습니다. 제 몸에 있는 피는 다 쏟고, 남의 피로 다 채울만큼 수혈을 받았습니다. 잠시 의식이 돌아 왔을 때, 저는 희미한 의식속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주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수술실에서 살아 나온 후, 저는 제 나이를 새롭게 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주어지는 세월은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선물로 알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래 살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할 때, 면접시험에서 당시 학장이셨던 홍현설 박사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조군, 그 몸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몸으로 40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셨습니다.

수술받는 날 제게 주셨던 주님의 약속,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 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것 처럼, 제게도 함께 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지난40년 세월 속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주신 40년의 세월이 결코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도 많았습니다. 절망과 낙심을 안겨준 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해주신 이 길은 가장 좋은 길,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23년 와싱톤 한인교회를 섬겨온 시간 속에서도, 시원치 않은 영어 실력으로 52교회, 80명이 넘는 목회자들과 26,000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속한Arlington 지방을 섬기는 지난 3년 반의 세월 속에서도 임마누엘, 주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했습니다. 앞으로도, 또 제 인생에 죽음이 찾아와도, 저는 임마누엘의 진리는 흔들림이 없을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1장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에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 마태복음서는 그 마지막을 어떻게 끝맺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28:20은 이렇게 끝납니다: “…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아멘, 아멘 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탄의 사건은 임마누엘의 진리에 대한 가장 힘있는 외침입니다. 임마누엘의 진리를 우리에게 확증 시켜주는 사건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오늘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현장 속에서, 새롭게, 그리고 뜨겁게 체험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