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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Home | audio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2007.10.14 (김영봉 목사)

교회 설립 56주년 감사 예배
“우리의 믿음에 관한 소문”
(The Story of Our Faith in God)
--데살로니가전서 1:6-8

1.

1951년 10월 14일 오후 3시, 와싱톤 DC의 16가에 있는 Foundry United Methodist Church 예배당에 32명의 한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Foundry UMC는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미국 망명 시절에 다녔던, 역사성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기에 모인 32명은 당시 와싱톤에 부근에 살던 100여명의 교민들 중에서 ‘화부한인교회 설립을 위한 초청장’에 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심정을, 고 장대욱 장로님은 1987년에 발행된 <와싱톤한인교회 삼십오년사>에서 이렇게 술회한 바 있습니다.

이 당시 조국은 6/25동란을 만나 민족이 생존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고, 조국을 떠나 이역에서 지내는 많지 않은 교포들 또한 전란에 싸인 조국을 염려하며 애를 태우고 있을 때였다. 전란의 조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전화(전쟁으로 입은 화)를 목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애타는 심정이 더 강렬하였다. 그들은 이미 나라 없이 타국에 유리하는 서글픈 족속이 아니고, 자주국의 당당한 국민이요 신생국가의 엘리트로서 자긍과 이상으로 부풀은 가슴을 안고 있었다. 이런 자긍과 긍지가 안겨주는 책임감 또한 대단하였다.

그들 가운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자녀들이 있었다. 조국의 동란으로 설레는 마음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주고 받는 인사가 “우리 서로 기도합세다”였다. 이런 인사는 교인들만 아니고 온 교포들의 하나같은 솔직한 기원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미국교회에 나갔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 덜했고, 조국의 평화와 안위를 간구하는 절박한 기도의 소통도 없었다.

이렇게 하여 모이기 시작한 것이 ‘화부한인교회’가 되었고, 이 지역 최초의 한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화부’라는 말은 와싱톤 DC를 한문으로 표기한 말의 줄임말이어서, 나중에 ‘와싱톤한인교회’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니, 1951년 이전에도 몇몇 가정끼리 모여서 예배드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교회 이름까지 달고 모인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분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다른 주로 이사를 가면서 자연 해체되었기 때문에, 명실공히 1951년 10월 14일에 모인 32명의 집회가 이 지역의 첫 한인 교회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

한 교회가 56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오늘과 같이 생명력 넘치는 교회로 자리 매김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떠나기’에 이력이 난 이민자들의 교회로서 56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며칠 지나면, 50년 이상 우리 교회의 역사와 함께 하신 분들이 모여 ‘희년 모임’(Jubilee Club)을 시작한다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뿐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갱신하며, 일신 우일신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진실로 칭찬받을만한 일입니다. 자화자찬하는 것같아서 조금 게면쩍기는 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교회 설립 56주년을 감사하는 예배를 위해 말씀을 준비하면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나와 있는 말씀을 택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 반도에 있던 데살로니가 시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특별히, 오늘 읽어드린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그리스 반도 전체에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음에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8절에 보면,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6절에서 언급하고 있듯,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들이 널리 퍼지고 있으며, 그런 소문으로 인해 다른 교회들이 격려와 자극과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56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교회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보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관한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 진실에 입각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그것이 다른 교회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지침이 되며, 격려가 되고, 또한 위로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5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맙니다. 사실, 현재의 모양이 초라할수록 목소리를 더 크게 높여 과거를 자랑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요! 우리도 그렇게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믿음에 관한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그 역사의 길이만큼이나 많은 소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소문들 가운데는 헛소문도 있고, 부끄러운 소문도 있고, 또한 자랑스러운 소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헛소문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은 다니지 못한다.” 이 헛소문은 아마도 초기에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주로 대사관 주재원들이나 유학생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생겼을 것입니다.

와싱톤 지역의 한인 이민사를 들춰 보니, 1970년을 중심으로 한인 이민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1970년에 이민자의 쿼터가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 때부터 다양한 계층의 이민자들이 유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대사관이나 영사관 주재원, 유학생, 혹은 유학을 마치고 취업한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분들이 거의 20년 동안 우리 교회의 주된 구성원이었으니, 나중에 이민오신 분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문은 그 당시에도 진실이 아니었고, 지금도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분위기를 아는 분들이라면 동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운 것, 가진 것, 잘난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교회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낮아져 섬기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오늘, 우리의 믿음에 관한 세 가지의 좋은 소문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진실이며, 또한 앞으로 더욱 진실이 되기를 바라는 소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간다면, 다른 교회들의 모범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소문이 세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중에서 담임목사로서 제가 가장 감사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래서 앞으로 더욱 강화시키고 싶은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 와싱톤한인교회는 높은 도덕성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 지역에 꽤 오래 살면서 교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깊게 관찰한 분들이라면, 이 소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도덕적으로 아무 흠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56년 동안 우리 교회도 이런 저런 잘못을 범해 왔을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 내에 갈등도 있었고, 먼 과거에는 교회가 갈라지는 아픔도 여러 차례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어찌 허물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어려움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고, 지난 80년대 이후로는 높은 도덕성을 지키면서 갈등과 분열이 없는 안정적 성장과 성숙을 이어왔습니다.

높은 도덕성이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의 성숙은 높은 도덕성을 열매로 맺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도덕성에서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뭔가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필경 높은 도덕성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고, 그 도덕성은 그 사회를 정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같은 높은 도덕성의 힘이 성숙한 교회에서 흘러 넘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교회의 도덕성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도덕성과 비례합니다. 따라서 와싱톤한인교회가 높은 도덕성으로 소문이 나 있다면, 우리 교회를 섬겼던 담임목사님들의 도덕성이 그만큼 높았다는 뜻입니다. 지난 56년간 일곱 분의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저는 한 분을 제외하고는 그분들을 직접 알지 못하지만, <와싱톤한인교회 삼십오년사>를 읽어보니, 모두들 높은 도덕성을 겸비하신 분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56년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23년 동안 우리 교회를 섬기신 조영진 감리사님은 한인연합감리교회 내에 ‘높은 도덕성’에 있어서 모범적인 인물로 꼽히는 분입니다. 1998년,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확장하고 나서 갑작스럽게 부흥했습니다. 이 부흥의 원인에 대해, 조영진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메릴랜드와 DC와 버지니아의 어느 곳에서든 3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좋은 위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저는 조영진 목사님의 높은 도덕성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까지 15년여 동안 와싱톤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묵묵히 섬겨오시면서 보여준 청렴함과 진실함과 전적인 헌신의 소문이 교민 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그 소문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왔다고 생각합니다.

4.

아직 생존해 계신 분을 너무 추켜 세우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의 어느 TV 프로그램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도 이제 2년이 넘었으니, 제가 부임할 때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나 싶어서 조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말씀을 드리려 하다가, 그랬다가는 분명히 말하지 말라고 하실 것 같아서, 그저 제 판단에 따라 말씀을 드립니다.

조영진 감리사님의 ‘아름다운 퇴장’은 제가 멀리 소문을 내고 싶은 일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감리사로 ‘승진’(promotion)되어 교회를 떠난 것으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 혹은, 목회에 지쳐서 숨을 돌리기 위해 조금 수월한 일을 찾아 가신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분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더 오래 교회에 머물렀다가는 내가 교회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떠날 때를 분별하기 위해 기도해 오셨습니다. 어느 때, 어떤 방식으로, 어디로 떠날 것인지를 두고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2004년부터 지교회를 시작할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조 목사님의 건강 상태로는 지금 제가 하는 것처럼 두 캠퍼스를 오가면서 설교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지교회를 담임하여 교인들을 분산시켜야 하는데, 새로운 목사를 데려다 세우면 분명히 소수의 사람들만 나설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당신 자신이 지교회를 담임하여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연락을 하셨습니다. 혹시 버지니아로 이사할 형편이 된다면, 저를 와싱톤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 감독님에게 천거해 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조 목사님을 처음 만난 날, 그분에게서 들은 내용입니다.

저는 두 주일만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뉴저지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생겼습니다. 조 목사님께서 사임할 뜻이 있다는 소식이 버지니아 연회 감독님에게 전해졌고, 감독님은 조 목사님에게 감리사로 일해 달라고 청하신 것입니다. 조 목사님은 두 주일 간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청하고는,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감독님의 부름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이고, 감리사의 업무가 체질에 맞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순종해야 한다고 믿고 감리사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즈음, 저도 파송이 된다면 순종하겠다는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20년이 넘게 피땀으로 일군 교회를 스스로 알아서 떠난다는 것, 떠나는 이유가 ‘더 있다가는 교회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는 것, 그리고 떠날 때, 교회 임원들이 일부 교인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마련한,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전별금을 깨끗하게 사양하신 것, 그리고 퇴임 후에도 직접적으로 제 목회에 간섭할 수 있는 정당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선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것?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소문으로 널리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교회는 목회자들의 ‘부끄러운 퇴장’으로 홍역을 겪어 왔습니다. 또한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의 갈등은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질병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조목사님의 아름다운 퇴장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일들이 누적되어 우리 교회가 높은 도덕성을 지닌 교회로 소문이 나게 된 것입니다. 높은 도덕성과 관계하여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또 한이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 가운데 어느 한 분의 이야기만 드릴 수가 없어서 여기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이 되는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 분들이 모여서 교회 일을 섬기다 보니, 교회가 하는 일들도 보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5.

둘째, 와싱톤한인교회는 의식있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수술 때문에 마취 당했던 사람이 깨어날 때, 우리는 “의식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의 ‘의식’은 생리적인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정신적인 상태에 대한 비유로 쓰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의식이 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바르게 되어 있어서 마땅히 생각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 사람은 의식이 없어”라고 말하면, 아무 생각이나 판단이나 가치 기준이 없이, 그냥 동물적인 충동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와싱톤한인교회는 의식이 있다”라는 말은 우리 교회가 타락한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철저하게 따져가며 행동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숙해 가면, 의식 있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말은 진리에 대해 깨어나고, 죄에 대해 깨어나며, 의에 대해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깨달음 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게 됩니다. 미신적인 신앙인들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신앙을 통해 복을 빕니다. 부정한 일을 꾀하면서도 그 일이 성사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교회는 의식이 있는 교회가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피곤하게 따져 가면서, 옳은 일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교회가 의식 있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발견한 것 중 하나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예배 형식이나 교회의 행사에 있어서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점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보를 보시고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 부분이 없었습니까? 잘 모르시겠습니까? ‘교회 설립 56주년’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더 익숙한 용어는 무엇입니까? ‘창립’이라는 말 아닙니까? 왜 ‘창립’이라는 말 대신에 ‘설립’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를 알아 보니, ‘창’자는 무엇을 창조한다는 뜻인데,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어서, 굳이 ‘세우다’라는 뜻의 ‘설립’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로, 교계 신문이든 교민 신문이든, 자주 볼 수 있는 교회 광고에 우리 교회 광고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우리 교회는 담임목사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내세우는 교회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특별하게 보이는 점들이 생겼습니까? 의식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바른 것을 찾아 하려는 의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같은 의식은 우리 교회가 교민 역사의 중대한 사건에 주도적인 참여를 해 왔다는 점에서도 확인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신대 문제에 대한 우리 교회의 참여입니다. 얼마 전, 미 하원에서 정신대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 이것은 미주 전역에 있는 한인 교민들의 결집된 힘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움직임의 뿌리가 1992년 11월, 우리 교회에서 열린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증언을 듣고 난 후, 우리 교회의 여선교회원들이 주동이 되어 시작된 운동이 최근의 결실로 맺어졌다 할 수 있습니다.

6.

셋째, 와싱톤한인교회는 영성 깊은 교회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986년부터 5개년씩 장기 계획을 세워 목회를 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4차 장기 계획의 4년차에 서 있습니다. 내년에는 5차 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까지의 네 번의 장기 계획을 보면, 그 때마다 강조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장기 계획에서는 차세대 목회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두 번째 장기 계획에서는 신앙의 내적 성숙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세 번째 장기 계획의 초점은 평신도 사역 개발에 있었고, 네 번째 장기 계획의 초점은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도록 돕는 일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살펴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교회는 성도들의 영성의 성숙에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높은 도덕성’과 ‘칼날같은 의식’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도덕성은 자칫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로 흐를 수 있고, 외적인 도덕성과 달리 내적으로 불행을 느끼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영성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도덕성은 율법주의가 되고, 인간의 공로감만 부추길 수 있습니다. 영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의식의 칼날은 이웃에게 해를 입힐 뿐입니다. 한국의 어느 국회위원이 하도 독설이 심해서, “어떻게 바른 말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할까?”라는 동정을 사고 있다고 하는데, 영성에 깊이 뿌리를 두지 않은 사람이 의식화되면 이렇게 됩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른 말을 덕 없이 쏘아댈 수 있습니다.

영성이 모든 것의 바탕이요 원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영성이 깊어져 가면, 자연히 우리가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잡히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도덕성이 높아지는 것은 그 결과여야 합니다. 우리가 의식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 결과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도덕성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감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비수처럼 꽂힐만한 말도 덕이 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난 2년여 동안 이미 2차 장기 계획과 4차 장기 계획에 천명된 영성 목회의 방향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려고 힘써 왔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영성 깊은 교회로서 더욱 좋은 소문이 나도록, 내년에는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며, 치유되고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지 교회 생활에서만 모범적인 신자가 아니라,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과 여가 생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7.

56년의 긴 세월 동안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시고 이끌어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영성이 깊고, 높은 도덕성을 갖추었고, 또한 의식 있는 교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소문이 더 사실에 가깝게 되도록, 더욱 힘써 기도하고 헌신해 주시기를 빕니다. 먼저, 우리 각자에게 이 소문이 현실이 되도록 힘쓰십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를 두고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소문 앞에서 “나는 이런 소문을 듣기에 자격이 있는가?” 물어 보시기를 청합니다.

나는 과연 깊은 영성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깊어져서 모든 좋은 것들이 거기서 흘러 넘치도록, 영적 생활에 힘쓰고 있습니까? 영성 깊다는 소문이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혹시 나는 이방인이 아닌지요?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흘러 넘치는 도덕성이 내 삶에 드러나고 있습니까? 혹시 나는 미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상 생활에서 내가 판단하고 선택할 때, 내 신앙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까? 혹시나 내 알량한 도덕성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흘러넘치는 높은 도덕성을 소유하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 안을 수 있는 영성을 소망하고 추구하시지 않겠습니까?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내 속에 진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의를 향한 열망이 커지고 있습니까? 혹시,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타협하고 묵인하며 외면하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혹시, 나대로의 정의감에 불타서 세 치 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영적 살인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르고 의로운 것을 추구하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영성을 소망하고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각자가 이 질문 앞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다짐을 가질 때, 저와 여러분 각자의 삶에 희망이 있으며, 우리 교회에도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희망은 우리 교회만의 희망이 아닙니다. 한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면, 그 파급 효과는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멀리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헌신과 희생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이 일에 헌신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특별한 은총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되어, 우리 모두를 통해 하나님께서 높아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회를 세우셔서
이 땅을 고치시는 주님,
저희 각자가 참되어
저희 교회가 참되게 하소서.
깊은 영성을 추구하며
그 영성에서 흘러 넘치는
진리의 능력으로써
의롭되 선하게,
바르되 덕스럽게
살아가게 하소서.
소문에 부끄럽지 않도록
저희를 이끄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