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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24 김영봉 목사
"예상 밖의 성탄"(Unexpected News of Christmas)
--누가복음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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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구유에 뉘어지시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경배를 합니다.
1. 내용 연구
1)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3절)
2) 베들레헴에 있던 많은 어린 아기들 가운데 메시야로 태어나신 아기를
식별하는 표시는 무엇이었습니까?(12절)
2. 토의를 위한 질문
1)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생각하며, 예상 밖의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설교에 언급된 것 이외에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십시오.
2)당신이 목자였다면 천사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겠습니까? 목자들은
어떻게 그 소식을 곧이곧대로 믿었을까요?
3) 당신은 성탄의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들에 속한다고 생각합
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습니까? 아니라면 왜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4) 성탄의 은혜를 받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가지만 말하고 실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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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탄의 사건은 '예상 밖의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탄'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 백 년 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야가 탄생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메시야' 즉
헬라어로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하나도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당시에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은, 메시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에서야, 즉 그분이 진실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초대 교인들은 구약성경을 뒤져 보았고,
그제서야 구약성경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는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탄의 사건이 얼마나 예외적인 일들로 가득했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태어나신 방식
자체가 예상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믿으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당시, 마리아와 요셉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되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당시로서는 마리아의 태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라고 생
각할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메시야의
부모가 될만한 객관적인 자격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 마리아가
누군가에게, '내 태 중에 있는 아이가 하나님의 메시야입니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당장에 마리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럴만한
자격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인 나사렛도 메시야가 태어날만한
지방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성경에 대해 해박했던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라는 말을 듣고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 1:46)라고 반문했겠습니까?
불과 50여년 전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텍사스(Texas)나 아칸사(Arkansas) 같은
곳에서는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굳이
지방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어디 어디 출신은 안 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메시야가 나올만한 유력한 후보지들을
생각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 리스트(list) 안에 나사렛은 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붙여진 '나사렛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분의
정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2.
시기를 따져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즈음,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있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시작된 때로부터 유대인들은 얼마나 간절히 그를
기다려 왔던지요!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혹시나?'
하면서 기대를 걸었고, 그 때마다 그들은 참담한 실망에 빠졌습니다.
주전 5세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을 이끌고 돌아와 유대
왕국을 재건한 스룹바벨(Zerubbabel)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룹바벨이 혹시나 메시야가 아닐까 하고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이기는 했지만, 예언자들이 말했던
'하나님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주전 2세기에, 유대인들은 다시금 헬라
사람들에 의해 지배 받으면서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
마따디아스(Mattathias)라는 인물이 봉기를 일으켰고, 그의 아들 중
마카비(Maccabeus)라는 사람이 오합지졸의 군중을 막강한 군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는 헬라의 점령군들을 몰아내고 빼앗겼던 성전을 되찾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을 지킬 즈음에 유대인들은 '하누카'(Hanukkah)를 지킵니다. 바로,
마카비가 성전을 되찾은 그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타운에 가면 요즈음 '메노라'(menorah)라는 일곱 가지의 촛대 장식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하누카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마카비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사람도 비범한
전사(warrior)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번번히 실망하고 좌절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할아버지에게, '내가 보지 못한 메시야를 너는 보리라'고 말씀했지만, 그
할아버지도 결국 메시야를 보지 못하고는 아버지에게, '내 아버지도, 나도 보지
못한 메시야를 너는 보리라'고 말씀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그 메시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나라고 그것을 보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메시야가 오리라는 예언을 믿는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갔습니다. 그것은 예언자들의 소망(wishful thinking)에 불과했다고
생각하고는, 모든 희망을 접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는 이렇듯 메시야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가장 낮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동방의 점성가들이
보았던 그 징조를 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찬송가
120장의 가사처럼, 모두 잠 들어 있었습니다. 밤 하늘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었고, 모두 잠잠히 있었습니다. 진실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 자는 동안에,
메시야는 탄생하셨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일이었습니다.
3.
메시야의 탄생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예외성'은 탄생의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가 어떻게 짐승이 머무는
헛간에서 태어나, 짐승의 먹이통에 눕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11-12절).
여러분, 이 말씀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목자들이 받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했으니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니, 베들레헴에 어린 아이들이 하나 둘이 아닐텐데, 그 중에서 누가
그리스도이신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천사의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찾으라!'
세상에! 예상을 뒤집어도 분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뒤집는다는
말입니까? '베들레헴에서 가장 큰 집을 찾으라. 주인집 침대에 그 아기가
뉘어있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우리 예상에 좀 맞는다 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
시의 제사장 집을 찾으라. 그곳에 그 아기가 뉘어 있을 것이다'라거나,
'회당(synagogue)에 가 보아라. 그곳에 뉘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해도, 그
럴듯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의 메시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믿고 베들레헴의 헛간을 찾아 전전했던 목자들의 행동은 기적 중에도
가장 큰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그분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magi)이라고 알고 있는 점성가들(astrologers)과
오늘 본문에서 본 목동들입니다. 여러분, 여기서도 이상한 것을 발견하시지
않습니까?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입니다. 종교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별을 보고 점을 치던 사람들이었고, 좋게 말하면, 별을 보고 우주의 운행을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목동들은, 당시의 사회 계층으로 보면, 가장 낮은
계층에 속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이민자들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미국 땅에서,
하루의 일감을 찾기 위해 옹기 종기 모여 기회를 기다리면서 추위에 떨고 있는
불법 체류 라티노(Latino)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율법에 통달한 율법학자도 아니었고,
흠 없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 힘쓰던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 가운데는 아무도 메시야의 오심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유대교가 자격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좋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격 미달이었다는 뜻입니다. 다 잠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메시야가 오셨다는 '복되고 기쁜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신실하게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금식을 하며 선행에 힘쓰던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통해 복된 소식을 전해 준 대상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 힘겨운, 신분이 불안하여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언제 일자리를
떼일지 모르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상을 뒤엎어도 분수
없이 뒤엎으신 것입니다.
4.
저는 성탄 이야기에 이토록 '예외성'이 충만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일어난 일마다, 하나도
예외 없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혹은 예상을 뒤집는 일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새로운 자각에 전율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즐거움과
흥미가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바로 저 자신이
성탄의 은혜를 받을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뿔사! 오늘 주님이 나셨다면, 저는 주님의 나심을 알아볼만한 믿음의 눈도
없었을 것이며, 그 복된 소식을 전해들을 대상으로 뽑히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의 성탄 이야기에서 제사장같은 직업 성직자는 완전히
제외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직업적인 성직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직을
직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위험이 따릅니다. 참된 신앙을
유지하기에 가장 어려운 직업은 술장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닙니다. 목회직이 참된 신앙을 유지하기에 가장 어려운 직업입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에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듯 말입니다. 성탄
이야기에서 보듯, 하나님의 은총을 독점할 것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실은
그 반대일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곳에 오히려 은혜가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에 대한 조크에 목회자들이 자주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를 예로 듭니다. 어느 집사님께서 천국에 가셨답니다. 천국의 문지기인
베드로가 반갑게 나와 맞아 주고, 앞으로 살 집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천국에 오신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 집사님은 목사님을 맞이하기 위해 천국문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올 때와는 달리, 수십명의 밴드가 나와서 그 목사님을 환영하는 연주를 하고,
출입문 입구에는 그 목사님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기독교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위인들이 화환과 꽃다발을 들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 집사님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찾아가 항의를 합니다. "베드로님, 아니, 제가 올 때는
사도님 혼자서 나와 맞아 주시더니, 목사님이 온다고 이렇게 밴드까지
동원하고 플래카드까지 내걸고 이럽니까? 천국에서도 이렇게 사람 차별을
합니까? 정말 실망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측은한 표정으로 이 집사님을 쳐다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집사님, 목사님이 천국에 오시는 것이
지난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여러분, 혹시, 저보다 천국에 먼저 가셨다가 그곳에서
팡파레가 울리거든, 제가 오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열 두 사도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해도, 기분 상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조크를 들으면서 혹시 여러분 중에, '좋아하고
있네. 당신은 예외라는 말이지? 무슨 근거로? 꿈 깨시오!'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압니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는 모두 다른 목사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적어도 나는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제나 '나는 아니야!'라고 예외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예외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제외되어 버립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는 이 성탄의 은총을 받을만한 대상에서
예외일지 모른다는 자각이 듭니다. 저는 목자들처럼 신분이 불안하지도 않고,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상태에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마리아와
요셉처럼 그렇게 낮은 자리에 있지도 않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위치 때문에 저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해 달라는 요청을 사양하느라 괴롭습니다. 과거에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영예로운 직함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사양하느라 곤란을 겪곤 합니다.
이러다가 제 마음이 정말로 높아져 영 타락하고 말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돌아 보아도, 이 성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돌아보실만한 조건이 없습니다. 딱 하나 있다면, 제 마음이
제 상황으로 인해 타락할 가능성뿐입니다. 제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안주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니라, 제 삶에 필요한
장식품 정도로 전락하게 될 것을, 주님은 걱정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5.
이 묵상의 끝에 저는 하나님께 여쭙니다. "주님,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성탄의 은총에서 제가 제외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그 은총을 받는 수혜자들 가운데 포함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두 가지의 대답이 제 마음에 깨달음으로 왔습니다.
첫째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지금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것을 과분한 것으로 여기고,
내 스스로를 위한 씀씀이를 줄이고, 하나님의 은총 외에는 나에게 절대적인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라고 해서
당연히 믿음도 좋은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더욱 깨어서 기도하고 근신하는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위치가 제 자신의 영달과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겸손하고 낮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물질이 저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신실한 청지기로서 살아가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더 높고, 더 크고, 더 비싸고, 더 보기좋고, 더 영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탄의 은총을 받을만한 분들과 함께 하고,
저의 것을 더 많이 나누어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는 '복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는 영예를
얻게 되고, 어려운 분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같이 아파함으로 인해, 그분들에게
임하는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만, 주님의 은혜는 눈이 내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 누리에 골고루, 똑 같은 눈이 내립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쌓인 눈은 금새 바람에 날려가 얇아지게 됩니다. 녹을 때도
가장 먼저 녹습니다. 그렇게 불려간 눈은 낮은 골짜기에 더해집니다. 눈이
녹을 때도 골짜기의 눈이 가장 늦게 녹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은총은
낮은 곳, 어려운 곳, 슬픔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곳에 더 많이 쌓이게 됩니다.
자만심과 교만심으로 인해 뾰족하게 솟은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 수
없습니다. 아니, 은혜가 내리지만 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낮은 곳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슬픔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뭔가
적선하려는 마음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은 그분들의 마음에 아픔을
줄 뿐입니다.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낮은 곳에
처하여 진실하게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아픔에 참여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만이 하나님의 천사의 역할로 쓰임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비록 저 자신은 성탄의 은혜로부터
제외되기에 가장 알맞는 위치와 상황에 있더라도, 성탄의 은혜를 힘 입고,
그 은혜로써 더 많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준에
이를지 모르지만, 그분의 넉넉한 사랑을 믿고, 할 수 있는 한, 더 깨어있고,
더 근신하며, 더 단순하게 살며, 더 많이 나누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은혜'는
주시는 분의 마음이니, 제가 어떻게 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릴뿐입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저의
묵상과 고백에 공감하십니까? 여러분도 스스로의 처지와 환경을 돌아볼 때,
성탄의 은총을 받을만한 사람들로부터 제외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십니까?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제외되지 않을 가능성이
약간 남아있는 셈입니다.
진실로 그것을 인정하신다면, 지금의 영적 생활에 만족하지 마시고,
더 깨어있고, 더 근신할 수 있기를 빕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새 해 맞이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절통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은총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신실한 청지기로서 가능한 한 단순하게 생활하십시다.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보시고, 비싼 것 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찾으시고, 눈에 좋아 보이는 것보다는
몸에 좋은 것을 찾으시고, 큰 것보다는 내게 맞는 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렵고 아프고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그들을 위해 아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 가진 것을 나눌 수도 있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총이 여러분에게도 고일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이렇게 신실하게 살아 보십시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아니야. 나는 주님의 은총을
받아 마땅한, 목자들같은 사람이야. 나같은 사람이 못 받는다면 누가 받을 수 있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혹시나, 착각이 아닌지, 정직하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진실로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
보아도 도움을 구할 데가 없어, 손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울고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성탄의 소식은 바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탄의 은총이 넘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넘치는 그 은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흘러가도록, 혹시 여러분에게 닿는 도움의 손길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물질을 받겠지만, 주는 분은 더 귀한 것
즉 주님의 은혜를 여러분을 통해 받게 될 것입니다. 진정, 도움을 받는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돕는 분들입니다.
며칠 전, 새벽 묵상을 하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언제 받아본 적이 있느냐?
돈을 주고 사기는 하지만,
노동을 하여 벌기는 하지만,
공을 세워 상을 받기는 하지만,
빼앗거나 훔치기는 하지만,
비참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네가 언제
아무 조건 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본 적이 있느냐?
네가 언제 주어본 적이 있느냐?
돈을 받고 팔기는 하지만,
받을 것을 전제하고 주기는 하지만,
노동을 대가로 보수를 주기는 하지만,
탈취 당하거나 도난 당하기는 하지만,
적선하는 마음으로 가진 자의 횡포를 부려본 적은 있지만,
네가 언제
아무 조건 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본 적이 있느냐?
네가 한 번도
조건 없이 받아본 적도 없고
조건 없이 주어본 적도 없으니,
그런 네가 어찌
조건없이 주고
조건없이 받는
내 은혜를 알겠느냐?
이런 묵상를 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 앞에서 별 수
없는 죄인이며, 그분의 은총이 아니고는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기도하십시다.
오, 주님,
불쌍한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교만과 자만의 착고에서 풀어 주소서.
안일과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더 많이 비우게 하시고
더 많이 나누게 하시고
더 많이 기도하게 하시어
은혜 받을만한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은혜 받은 자들로서
조건 없이 주고 받는 은총의 삶을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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