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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Home | audio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2006. 12. 17 문형일 목사   최지훈 목사   

그 사랑 있기 때문에...

누가 복음 1장 24절-56절

7년 전, 중국 심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26살 조선족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안원, 미국으로 하면 경찰 서장 정도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고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으로, 안정되게 살아가던 평범한 가정의 장남, 그에게 작은 꿈이 있다면 그저 돈을 좀 모으게 되면 원하는 대학도 가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효도도 하고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미국에 한번 가보고 싶은 그 런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경험도 없고 영어도 서툰 청년에게 수퍼마켓 생선부는 고마운 직장이 되어 미국에 오느라 진 빚도 4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다 갚게 되고 그동안의 고생이 이제 기쁨이 될만할 때 청년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혈압, 심장병, 신장이 나빠져 지난 3년,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를 받고 남들이 일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에만 Part-Time 일을 하면서 어렵게 투병 생활을 계속합니다.

6개월 전 중국에 계시던 부모님은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의 소식을 병원을 통해 듣습니다. 아들이 위독하니 빨리 와서 한번 만나보라 연락을 했습니다. 본인 몸에 있는 세포가 오히려 본인의 장기들을 공격해서 망가트리는 혈관염이라는 불치의 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미국 의사들도 고치지 못해 신장, 심장, 뇌 각 기관들이 서서히 작동이 중지되어 결국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 걸린 것을 알지 못한 부모님은 당신들의 신장이라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식시킬 요량으로 옷가지만 든 가방을 들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본 아들의 상태는 신장이식 정도로는 끝날 수 없는 중한 병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보고 싶은 아들을 반갑게 만난 것도 잠시 그 후 아들은 응급실로 자주 실려 가게 되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3개월을 보냅니다. 아들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하나 있는 침대는 아들에게 양보를 하고 두 분은 바닥에서 잠을 잡니다.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 하나, 부엌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DC, 500불 렌트비, 약값, 몇 주 만 있다가 가려고 한 방문 계획은 취소되고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Baby-sitter를 자청하시고 아버지는 걷지도 못하는 아들의 손발이 되어 집에서 밥을 해 먹이는 생각하지 않던 눈물의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난 월요일, 아버지가 차려 준 아침을 같이 먹고 11개나 되는 약을 다 먹은 아들이 갑자기 이상한 코고는 소리를 내기에 뒤를 돌아다본 아버지는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기와 이야기하던 아들의 굳어가는 몸을 보았습니다. 눈 깜박할 사이, 사랑하는 아들과 한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고 이별 하게 되었습니다. 심장 마비로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 보다 먼저, 불효자식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한번, 누워만 있으니 답답하다고 졸라서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나가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참 좋다고, 그리고 옆에서 자기를 간호하는 나이든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주던 그 마음 착한 아들은 그렇게 이 낯선 땅에서 날아 보지도 못하고 33살, 윤국철이라는 이름만을 남기고 젊음을 마감했습니다.

검시관 사무소 , Medical Examiner's Office는 워싱턴 외각 South East, 허름한 병원 한 편에 있었고 거기서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윤명화, 최월자 두 분을 화요일 오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주일마다 인사를 하던 낯이 익은 분, 그러나 그날, 두 분의 슬픔과는 상관없이 스쳐가는 검시관 사무실 복도에서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윤명화 선생님은 “하나님이 너무 아들이 아파하니까 이제 그만 고생하라고” 부르신 것 같다 오 히려 저를 위로 하셨습니다. 교회에 다녀 본적도, 하나님의 이름도 불러본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저에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들 아픈 것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비록 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고마운 사람들 잊지 못할 것입니다.”

원치 않는 삶의 변화가 주는 은혜 깨닫기

우리 삶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갑자기 변화 될 때 (Interruption in our lives) 우리는 당황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진행되지 않고 고난과 슬픔으로 심지어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올 때 우리는 이렇게 분노합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우리의 분노를 받아들이지도, 우리의 이의 신청을 (Objection) 받아들이지 않고 흘러갑니다.

한 달 간 계속된 감기, 그 감기 때문에 경기를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가는 아이를 울며 바라보아야 했던 최재원 교우 가정, 두 주 전에도 웃으며 교회에 오셨던 그리고는 갑자기 Stroke 로 갑자기 입원하신 김의상 집사님, 대학교 3학년, 젊은 나이에 청천벽력같이 백혈병의 진단을 받은 Daneal Na, 그 누구도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원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음 에도 우리의 의지와는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찾아온 이 고난. 이 고난 보다 힘든 것은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입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도 은해가 계속 아파도 김의상 집사님이 말씀도 못하고 누워 계시고 Daniel 은 키모 치료를 받고 있는 채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 고난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인생의 비밀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하나님은 이 고난 가운데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런 일은 또한 하나님과의 싸움을 시 작하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도대체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더 참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입니다. 무엇이라 변명이라도, 아니면 위로의 말씀이라도 하시면 마음이 풀어질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를 말리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파리하게 말라가는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없다라고 수 도 없이 외쳤는데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아니 그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 또한 우리에게 병도, 고난도, 눈물도,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우리를 괴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을 얻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는,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하나님.

우리 삶에 허락하신 이런 아픔과 슬픔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난의 반대편에서서 나의 힘과 나의 생각으로는, 나의 상식적인 인생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도록 요구하시는, 그래서 심지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죽이기까지 하시는 무자비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도록 강요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우리처럼, 우리에게 똑같이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하나님은, 이 왜라는 질문 앞에서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처럼 우리에게 영원히 저주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사랑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니 그런 우리들에게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래서 때로 우리에게 두려움과 부담스러움으로임하고 그 때문에 엘리사벳은 24절에서 솔직히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과 은혜가 두렵고 부담스러워 내가 다섯 달을 숨어 지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의인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다는 이 한 가지 죄 아닌 죄 때문에 평생을 눈물로 산 사람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마다 제사를 드리러 온 모든 사람들은 수군댔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하나님께 지었기에 하나님이 태를 닫으셨을까? 남편 사갸랴의 영 적 권위도 아이가 없다는 이 한 가지 때문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원망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기도도 드렸지만 상황은 오래 동안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천사의 방문을 받기 전까지 이 부부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는데(물론 조금 늦기는 했지만) 사가랴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고 하나님은 사가랴가 믿지 못한 것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당연히 아버지가 누려야 할 모든 기쁨을 열 달 동안 연기하십니다. 하나님이 좀 심하시다 싶게 사가랴는 기쁨을 또 다시 보류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아내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 동안이나 누리지 못합니다. 그 나이에 임신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다보니 의논도 할 수없고 창피한 마음도 있고, 또 남편 사가랴가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법 원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와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고난을 경험 하는 것도 힘들지만 또 같은 식으로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도 우리는 당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인생의 가장 작은 일 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숨어 지내는 엘리사벳을 찾아온 사람, 그 사람 또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는 마리아였습니다.

34절, 자기에게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말해준 천사 가브리엘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묻습니다.
이런 일을 6개월 먼저 당한 엘리사벳은 이미 그 해답을 25절에서
주님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사람들에게 당하는 내 부끄러움을 없이 해 주시던 날, (다른 말로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에 나에게 이런 일을 베풀어 주셨다.

마리아를 위해 엘리사벳을 준비시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엘리사벳을 통해 마리아의 믿음을 굳세게 하셨습니다. 아이를 도저히 낳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그 때까지 엘리사벳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도 마찬가지로 도저히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경험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엘리사벳의 하나님을 통해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 된 하나님은 마리아의 입을 통해 이렇게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 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그가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39절에서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엘리사벳에게로 갔다

마리아에게 서둘러 찾아 갈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한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을 위해 마리아를 위해 이미 여섯 달 전에 아니 마리아가 태어나기 전, 몇 십 년 전에 사람들로 부터 숨겨놓으신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과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 부르신 하나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 초자연, 초능력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감당 못할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사랑을 표현하신 하나님. 그렇다면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우리가 감당 못할 두려움과 놀라움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지. 아니 오히려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기들을 구원하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 다른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우리에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통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과 관습과 믿는 것이 다르다고 몰아내 버린,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밖에 있던 그 정죄 당한 모든 사람들을 도로 회복시키셔서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엘리사벳 에게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의 모든 시간이 필요했고, 마리아에게는 할머니, 엘리사벳의 위로가, 아니 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준 엘리사벳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실 이런 일들이 우리들의 삶속에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죽음, 질병, 실패 그때 우리도 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말문이 막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에도, 또 그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남편이 있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아이들과 이웃이 있었고, 속회가 있었고, 교회가 있었고, 가게가 있었고, 아침부터 나가야 할 직장이 있었고, 만나야 할 손님들이 있었고, 해야 할 전화가 우리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왜 아픈지, 아들이 왜 죽d야 하는지, 가게가 왜 안 되는지, 왜 나는 실패하는지, 왜 이런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는지. 왜 라는 이 끝없는 우리의 질문에 하나님은 그럴만한 일이 있다 대답하십니다. 왜 엘리사벳에게 처녀 때 아이를 주지 않으셨나요? 그럴만한 일이 있다. 왜 마리아에게 처녀로 잉태하게 하셔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게 하셨나요? 왜 꼭 그렇게 아기로 세상에 오셔야 했나요? 그럴만한 일이 있다. 그럴만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럴만한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함께 하겠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십니다.

28절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쉬운 말로 제가 이렇게 고쳐보았습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지요. 너는 이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마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 알고 그러는거야, 너를 살리려고 그러는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그러는거야, 말씀하십니다.

잡초 무성한 강기슭에서
나는 한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소녀여,
초록 윗도리로 가리고 어디로 갑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쓸쓸합니다.
그 등잔을 빌려주시오.”
그녀는 검은 눈망울로 저녁 어스름 속
나를 놀려다보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곳,
강기슭으로 온 것이랍니다.
석양이 질 무렵엔
등잔을 강물에 띄우렵니다.
나는 무성한 풀섶에 혼자 서서
그녀 등잔의 조촐한 불꽃이
끝이 흘러감을 지켜보았습니다.
밤의 침묵이 깊어 졌을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소녀여,
그대 등잔에 모두 불 켜졌으나
그 등잔 들고 어디로 가렵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쓸쓸합니다.
그 등잔을 빌려 주십시오.”
그녀는 검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한 동안 서서 생각한 후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제가 온 것은 등잔을 하늘에 바치고자 함입니다.
나는 선 채로
그 등잔 공허롭게 타고 있음을 한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달그림자도 없는 한밤중 어둠 속,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소녀여,
등잔을 높이 받쳐 들고
무엇을 빌고 있읍니까
내 집은 어둡고 쓸쓸합니다.
그 등잔을 빌려주십시오.”
그녀는 한 동안 서서 생각한 끝에
어둠 속의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제등놀이에 참가하고자
저는 등잔을 가져온 것이랍니다.”
나는 선 채로
그 등잔 하염없이 멀어져 감을
무수한 등잔 속에 섞이어 멀어져 감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인도의 시성이라 불리는 Tagore, 타고르의 시 Gitanjali, “기탄잘리, ” “신께 바치는 노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을 향해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 사실,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신, 그래서 너와 내가 사귐을 갖는 것, 그것 자체가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녀는 놀라운 하나님의 초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빛 그 자체로 소녀에게 나타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알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소녀처럼 삶 가운데 놓치고 있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기쁨 더 큰 복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사명 한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하나님을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그 일은 단순히 아름다운 말과 올바른 행동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과 좌절과 실패와 낙심과, 우리 가진 모든 냄새나고 때 묻은 고집과 편견까지 다 쓸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삶속에 상처입고 구멍 나 보이고 싶지 않은 그 은밀한 비밀까지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 하실 날이, 사용 하실 뜻이 있다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이상 실패와 절망이 힘을 발휘할 수없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으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실패와 절망을 고치실 것이기에 말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을 주는 사람 (Fire lighter), 그리고 기쁨을 끄는 사람(Fire fighter)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믿음과 사랑의 불을 붙이고 잘 타도록 격려한 엘리사벳, 그리고 마리아를 통해 우리는 더 큰 불,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삶 속에 갑자기 시작된 이 두려움과 기쁨의 여정을 서로 나눔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말씀드린 윤문철군이 지금 천국에 있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병원에서 자기를 위해 통역으로, 또 매 주일 교회 Ride를 한 우리 교회 한 청년을 통해, 같은 중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생활 부조를 담당한 고마운 분들을 통해, 무료 치료를 담당한 의사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의 죽음으로 끝이 난 것 같았던 삶이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하는 더 많은 아들들, 위해서 기도해 주고 도와주는 많은 이웃들을 얻게 되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윤명화 교우가 알게 된 것입니다. 최재원 교우의 딸 은해의 회복을 또한 믿는 것은 그 딸의 병실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속원 들을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병상에서 치료를 받는 모든 교우들, 회복 중에 있는 교우들을 주님이 치료 해 주실 뿐 아니라 이 혹독한 고난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을 저는 또한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너는 내 것이라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곡도 좋지만 송명희 시인이 쓴 그 가사가 참 마음에 듭니다.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현명해도 미련해도 너의 지혜 되어 사용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잘났으나 못났으나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강하여도 약하여도 너의 힘이 되어 일으키리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의로워도 악하여도 너를 나의 피로 바꾸었으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에 한 절을 제가 더해 보았습니다.

너는 슬퍼해도 기뻐해도 내가 임마누엘 함께 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는 다 주의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 모두, 한 사람 한사람 값을 치루고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이 사랑에서 시작되고 주의 피로서 마치게 된 것을 우리는 서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필요했던 것처럼 저에게는 여러분이 여러분은 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탄이 주는 우리의 기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사랑하는 우리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마련하신 성탄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 있기 때문에, We are O.K. 우리는 괜찮습니다. 힘들어도 눈물나고 고통이 있어도 We are O.K. 괜찮습니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또 다시 오실 주님의 그 사랑,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