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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17 최지훈 목사 문형일목사

"기쁨이 있는 삶"

스바냐 3:14-20; 누가복음 3:10-18

지금 우리가 지내는 강림절에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 주마다 하나씩 촛불을 켜면서 오시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구체적 으로 새기는 것입니다. 주로 강림절 첫째 주일은 '희망'을 생각하며 불을 켜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세 주는 평화의 주님, 또는 사랑의 주님 등으로 여러 가지 주 제를 붙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에 이 세번째 주일, 즉 오늘은 기쁨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오늘 붙이는 초의 색깔은 보라색 대신 분홍색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여러분, 기쁨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쾌락(pleasure)을 향한 손짓은 많아도 진정한 기쁨(joy)은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영혼을 깊이 적시는 기쁨을 경험하면서, 적어도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계시면서 살고 계십니까? 잠깐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있습니다만 실상 삶이라는 것을 놓고 보면 그 자체를 기쁨으로 지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어쩌다가 어려움이나 실패가 파도처럼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히려 실망과 낙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혹 기쁘게 사는 것은 가정과 일에서 특별히 복을 많이 받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인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참된 기쁨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환경에 좌우된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더 없이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커다란 어려움을 만난 가운데서도 기 쁨이 충만한 때도 있고 가장 있는 것 없이 살았던 때를 돌아보면서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선천적인 성격 때문에, 또는 어떤 불우했던 과거의 기억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때에도 스스로 기쁨을 거부하는 듯이 보일 때도 있고 그 반대로 기쁨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가 참 중요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그리고 깊이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온 맘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역경과 좌절도 이기게 하고 변함없는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그리고 그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실체는 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야말로 놀라운 기쁨의 근원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6:11).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가 주를 찬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만나는 크고 작은 일 가운데서, 심지어는 낙심이 되는 때에라도,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고 내 편이 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것은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눈과 귀와 이성으로는 나의 마음을 누르는 짐을 느낀다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 계시다는 사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쁨을 창조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스바냐서의 말씀은 "기뻐하라"는 외침으로 시작됩니다. "도성 시온아, 노래하여라…온 마음을 다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하늘에서 바라보신다는 것도 아니고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말도 아니라 "그 분이 너희 가운데에 계신다" 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전쟁과 영욕으로 얼룩진 갈등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를 향한 징벌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서 그 가운데 와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당신의 백성을 보고 기뻐하시며 노래하시며 사랑으로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그저 옛날에 듣기 좋도록 씌여진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 바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수 많은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새 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당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우리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오늘 우리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모두 이런 저런 모습으로 성탄을 준비하고 기대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그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나 천사들과 같지 않고 말 그대로 사람들의 세상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는 여인의 몸을 통해서 한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밑에서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옷자락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나고 싶으면 어떤 깊은 종교적인 체험이나 수련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여느 누구를 만나듯 그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었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도 나무 위에만 올라가면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우리 중에 살았던 사람이었고 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심지어는 세리들과 죄인들도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가서 치유와 안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 사이로 몰래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만진 후로 병고침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호수를 건너던 배가 폭풍에 휘말렸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 안에 계셨고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특별한 보호나 여과 장치 없이 우리 중의 하나로 계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는 어디나 악하고 위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미워하고 해치려는 사람들도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라크나 수단을 찾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위험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배신당할 것을 각오하고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 땅으로 오셨습니다. 아니 그런 것을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시기와 미움과 폭력이 존재하는 인간 사회 속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이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고통스러운 면과 정면으로 부딪치셨고 그 쓴 잔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죽음을 경험하기까지 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과 화해하시고 그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를 때에 우리에게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무슨 이유에던지 어려움과 실패와 좌절에 빠진 것 같은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누구이건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곁에 계시기를 원하시고 우리 편이 되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절망과 낙심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5장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면서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감옥에 있던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그러면서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기쁨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 입니다. 우리 눈에 답답하고 두렵고 실망스러운 때가 있을지라도 기도로 전능하신 주님께 맡기면서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로 살기에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기쁨은 두 세 사람이 모일 때 더 커지고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린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는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과의 만남은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그 자체가 희열이요 축복입니다. 요한 1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강림절의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을 가득히 체험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날마다 기쁨과 감사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지만 혹 잃어버린 기쁨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큰 선물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무엇을 해야 되느냐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또는 이슬비처럼 쏟아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의지적으로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마련하고 또 덮여 있거나 구멍이 뚫린 그릇을 고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영성 생활이라고 하는 것의 시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의 또 다른 한 군데를 주목합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는 사자(messenger)로 요한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요한이 한 일은 무엇이었냐 하면 회개의 세례를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천국이 다가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할수록 진정한 회개의 과정, 즉 구체적인 삶의 변화와 마음의 돌이킴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은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한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것은 회개와 믿음에 걸맞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이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 내 옆사람이 아무것도 없거나 부족한데 나는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기적인 마음의 틀이 깨지기 전에는 거기에 참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섬기는 데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면 이 강림절에 주십시오. 섬기십시오. 또 요한은 세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정해진 것 보다 더 받지 말아라."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이웃을 속이는 거짓된 삶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멸의 대상입니다. 이런 것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지 말고 깨뜨리고 버려야 하나님의 기쁨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 군인들에게 준 가르침이 나옵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거짓 고발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탐욕의 지배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이용하려 드는 모습이 혹시 내게 있다면 그것 역시 돌이켜야 할 것 중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구체적인 삶의 결단과 변화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회개와 함께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옛 모습에서 돌아서면서 그리스도께 소망을 품고 예배와 성례전에 참여하면서, 서로 고백과 기도를 나누면서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어느 순간에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임재하여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강림절과 성탄절이 지날 즈음이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의 옷장이 좀 달라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지갑과 크레딧 카드의 회개가 있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술의 회개가 있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내 삶 속에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삶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겉모습만의 조건으로, 내가 모태 신앙이라서, 목사라서, 존경 받는 신앙인이라서 등의 이유를 핑계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참 기쁨에의 길을 그냥 지나치는 것입니다.

이 년 전에 방글라데시로 선교 여행을 갔을 때 플로리다의 한 감리교회에서 우리 선교팀과 합류해서 함께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여행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에서 알려지고 나서 여러 사람들이 여행 경비에 보태라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교우가 생각 밖의 제법 큰 기부금을 보내셨습니다. 이 분은 그렇게 넉넉하신 분도 아닌데 하면서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더니 정작 본인도 사실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결단을 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 간접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100불이냐 200불이냐 생각하다가 200불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만일 이 분이 마음을 바꾸었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하기로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나서 전화가 왔는데 그 분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러시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그 돈을 드리고 나서 그 후로부터 너무나도 기뻐서 그 기쁨을 그냥 가지고 있을 수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 기쁨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강림절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쁨의 이유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어떤 모습에 처해 있던지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불의가 있는 인간의 사회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그 주님이 우리의 연약하고 어려운 그 때에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찾아오신 그 주님이 이제 그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이러한 참된 기쁨을 위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또한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과 더 가까와질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기쁨이 있는 삶을 선택합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은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당신의 아들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 차고 넘치기를 원하십니다.
돌이켜 주님을 기다리오니
내 곁에 계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