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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 Home | audio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2006. 10. 29 강현식 목사

참 좋다! (So Good!)

창 1:1-5, 31

1.

토론토를 떠나서 워싱턴에 온지 약 3주 정도 되어 갑니다. 토론토에서의 7년의 삶이 짧지 않았던지, 제법 향수병 같은 그리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에 순간순간 쓸쓸해지기도 했지만, 교우 여러분들의 따뜻한 환대와 담임 목사님과 동료 목회자들의 자상한 배려 때문에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와싱톤 한인교회에 와서 제 인생의 그 어느 시절보다 더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저와 같은 은혜를 경험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내와 살짝 떨어져 계셔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로서 우리는 그 창조 사역을 어떻게 이 어갈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오늘 본문인 창세기 1장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하늘, 땅과 바다와 식물, 해와 달과 별, 동물과 짐승, 그리고 마침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창조의 비밀’ 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의 독특한 창조 기법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되, "있어라, 생겨라, 되어라!"는 말씀과 더불어 더 일관되게 거듭 반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좋다, 좋다, 참 좋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창조의 과정이 지속되는 엿새 동안 빠짐없이 반복된 하나님의 탄성, "좋다"는 표현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있어라, 생겨라, 되어라’로 시작한 창조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마무리 공법’이었던 것입니다. 이 창조 과정의 마 무리 공법으로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는 피조물들은 그저 단순한 물질에 불과했습니다. 태양은 그저 불덩어리였습니다. 바다는 거대한 물들의 집합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그저 흙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좋다’고 선언하시는 순간, 모든 피조물들은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워졌습니다. 가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뮤직 가든’이라는 조그만 공원이 있습니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길을 만들고, 길가에는 갖가지 꽃들과 수목을 심었습니다. 시원한 온타리오 호수와 화려한 고층 빌딩 숲, 각양각색의 멋진 요트들과 어우러지면서 참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런 공원입니다. 그런데 그 곳은 가장 바쁜 도심 한 가운데 놓여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스쳐지나갑니다. 일에 쫓겨서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공원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 오피스 안에서 바쁜 사무를 처리하며 출퇴근을 거듭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원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원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만끽하는 사람에게 뮤직 가든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아, 좋다!’ 하는 순간 그 곳에 뮤직 가든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가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것의 좋음을 발견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탄생시키고 창조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창조 사역의 분수령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 속의 풍경들을 보면 그 어떤 것도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시골 들판, 해바라기, 감자 먹는 광부들의 모습, 별이 빛나는 밤, 야윌대로 야위고 귀까지 잘린 볼품없는 자화상, 자기가 살던 단 순하기 그지없는 방,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지나쳤지만 그러나 고흐는 그것들이 그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치가 부여되고 의미가 부여되었더니, 그랬더니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새 창조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조 사역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좋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 중에 몇 가지나 그것들의 좋음을 발견하고 누리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늘 은혜를 갈구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이미 넉넉한 하나님의 은혜를 도처에서 발견하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우리 삶 속에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것들의 좋음을 깨닫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것들, 그것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우리가 너무 자주 놓치지만, 사실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세 가지 좋음이 있습니다. 나의 좋음, 너의 좋음, 그리고 하나님의 좋으심이 그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창조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는 길은 이 세 가지 좋음을 진정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좋음을 발견하고, 이웃과 타인 그리고 다른 피조물의 좋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좋으심을 진실로 깨닫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영적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함께 이 세 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3.

’자기 자신’의 좋음 자각하기

내 존재의 좋음을 발견하는 것은 창조 사역과 영적 여정의 첫 출발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참 좋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좋게 여기는 일에 통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내가 내 자신을 좋게 여기는데 어려움을 느낄만한 허다한 삶의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런 경험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로부터 까닭 없이 야단을 맞았다고 느끼는 경우, 아이들은 무언가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 의식이 자라면서 친구들과 비교할 줄 알게 되고, 남보다 못한 자신의 모습을 각인합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좋지 않아’ 하고 암기하면서 학습합니다. 성인이 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좌절과 실패의 경험은 ‘자신의 좋지 않음’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다스려지지 않는 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게으름과 불성실이 이런 사람들의 영혼 안에 주렁주렁 열매로 맺히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또 다시 그를 좌절시킵니다. 우리의 내면 깊이 뿌리 내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의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나’를 향해 좋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를 지으신 분이 나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나를 지으시고, 나를 향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그 진짜 선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개야! 너, 참 좋다." 이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꾸준히 이 음성에 여러분 중심의 귀를 기울이시는 분은 마침내 스스로 자신을 향해 ‘참 좋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내면 안에서 일어나면, 내 존재와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 사역을 이어가실 것입니다.

’너’의 좋음 발견하기

‘너’에 대해, 이웃과 다른 피조물에 대해 참 좋게 여기는 것은 창조 사역이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치 않게 어렵습니다. 나를 좋다고 여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인생의 경험도 대단히 부정적인 것들 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헨리 나우웬은 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향해 품고 있는 막연한 적대의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정말 때때로 명백한 적이나 원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각과 의견이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섭섭하게 했다는 이유로 우리의 가까운 이웃을 향해 은밀한 적대감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증오나 분노 같은 명백한 적대감도 무섭지만, 사실은 냉소나 무관심, 선입견, 편견, 외면과 같은 태도는 우리 일상 속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더 무섭고 더 심각한 적대감이기도 합니다.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사역했던 나누웬은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솔직함과 낯선 사람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마음을 여는 ‘환대의 태도’를 경험하면서, 주저 없이 마음을 열고 환대하는 장애인들의 태도야말로 영혼의 장애를 앓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영적 태도임을 깨닫습니다.

환대(Hospitality), 그것은 타인을 향해 조건 없이 따뜻하게 환영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환대가 얼마나 소중한 영적 태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 온 낯선 손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살진 송아지와 빵과 물을 융숭하게 대접합니다. 그러나 그 손님은 그냥 지나치는 낯선 손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소원이었던, 아들을 얻게 된다는 소식을 가져다주는 너무나 소중한 손님이었던 것입니다. 즉, 너 그리고 우리의 이웃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약속을 선물로 가져다주는 소중한 손님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낯설고 거북스럽고 어렵게만 여겼던 이웃들들 향해 환대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은 우리에게 약속 있는 선물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메신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낯선 저에게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으니, 제가 혹시 여러분들에게 약속 있는 선물을 가져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타인을 향해, 우리와 다른 이웃을 향해 ‘참 좋다’고 여기며 살자는 것은 환대의 영성을 실천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을 지으시고도 ‘참 좋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좋으심 깨닫기

하나님의 좋으심을 참으로 알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사는 것은 창조 사역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삶은 모든 것이 새롭고 창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좋으심을 깨닫기가 사실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요. 부정적인 자의식을 가진 자신을 향해서나, 적대감을 느끼는 낯선 이웃을 향해서 참 좋다고 선언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대상으로 접촉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향해 ‘참 좋다’고 느끼고 고백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좋으심을 참으로 알고 깨닫고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관상기도에 대해서 심심치 않게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 성인신앙 교육 과정 중에 김미혜 전도사님이 인도하시는 영성훈련 반에서 이 기도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상 기도, 즉 Contemplative Prayer에서 ‘Contemplation’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명상 혹은 묵상’이라고 번역하는데, 조금 어려운 말로 ‘관상’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 의미가 깊고 풍부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은 말인데, 굳이 관상이라는 말을 단순하고 쉽게 풀이 하자면, ‘하나님의 좋으심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맛보아 안다" 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고 하는 유명한 영성가가 자주 사 용하던 표현인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맛보아 아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고 집중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맛보아 알 수 있는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좋으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좋으심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지속되지 않을 때가 많고, 하나님의 묵묵부답, 냉정함, 까닭을 알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해서는 하나님의 좋으심에 우리는 심각한 회의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상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삶의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좋으심을 깊이 맛보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좋으심을 맛보는 데 관상기도는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관상 기도의 핵심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품었던 마음과 뜻과 정성 까지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내 자신을 내어 드린 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소유하시도록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달콤한 분이되십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것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 맛을 잃어버립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좋으심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됩니다.

관상 기도를 통해서 이런 경험을 해보실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관상기도를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관상기도나 영성훈련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참 좋다고 고백하며 사는 삶, 좋으신 하나님을 깊이 누리며 사는 삶, 그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려면 관상 기도와 다를 바 없는 영적인 자세 하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주 쉬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신앙의 행위 가운데 마음이 빠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뜨겁게 찬양을 부르는 것 같지만 마음이 드려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그저 시간과 자기 열심만을 드릴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수 천 가지 업적을 쌓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옛 영성가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께 진실하고 겸손하게 마음을 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어느 때보다 여러분과 가까이 계시면서 하나님의 좋으심을 맛보아 알게 하실 것입니다.

4.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일구시는 그분의 창조 사역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우리 자 신의 고귀함과 좋음을 자각하고, 우리에게 소중한 약속을 가져다주는 우리 이웃들의 좋음을 깨달으며, 마지막으로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드리며, 그 분과 동행하는 ‘참 좋은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흑암과 혼돈과 무질서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 시절에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창조의 거룩한 사역을
온전히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의 좋음을 자각하게 하시고,
낯선 타인과 이웃과 피조물들의 좋음을 발견하게 하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좋으심을
마음 깊이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 닮은 진정한 창조자들이 되어
흑암과 혼돈과 무질서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일군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