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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 21 문형일 전도사(2부)  최지훈 전도사(1부)  홍인표 목사(3부)  차동빈 목사(4부)

"분노, 외로운 나의 그림자 "

아담은 아내 이브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으며 이렇게 말했다.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내아이를 얻었습니다.”
곧 또 아벨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벨은 양치기 가인은 농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인은 자기의 농작물을 하나님께 바쳤다.
아벨도 마찬가지로 예물을 드렸는데 그의 가축 중 첫 번째 짐승을 드렸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예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가인은 너무 화가 나서 마음 깊이 그 분노를 쌓아 결국 화난 것이 얼굴에까지 드러났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왜 떼를 쓰고 있느냐? 왜 그렇게 골이 났느냐? 네가 잘했다면 내가 왜 너를 받지 않았겠느냐? 네가 계속 그렇게 화를 내고 있으면 사자가 그 먹이를 덮치려는 것처럼 죄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 화를 잘 다스리도록 해라.“ 가인은 동생과 할 말이 있다고 들로 같이 나갔다. 가인은 아벨에게 다가가 그를 죽였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다. 그가 ”몰라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뭐 그 아이 보는 사람인지 아세요?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부터 나를 부르고 있다. 네가 동생의 피를 흘렸고 땅이 그 피를 받았으니 이제 너는 이제 땅에서 쫓겨나 방황하게 될 것이다. 네가 땅을 경작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가장 좋은 것들을 수확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 땅에서 집도 없이 떠돌게 될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 네게 주신 벌이 너무 커서 내가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땅에서 던져버리시니 내가 이제 영원히 당신의 얼굴을 볼 수도 없습니다. 나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니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사람은 그 죄의 일곱 배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하시고 그에게 표시를 주셔서 아무도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가인은 하나님과 함께 있던 그 곳을 떠나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에덴의 동쪽으로 떠났다.

유진 피터슨 메시지(번역 문형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와싱톤 한인교회 Prison Ministry 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창원입니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자유를 잃고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교도소와 유치장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시안계 사람들이 미 전역에 4000명 가량이 있습니다. 그들 중 10분의 1인 약 400명의 사람들이 한국계 사람들로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1/4분기 동안에 Maryland 주에서만 69명의 한인들이 마약 소지 및 살인 미수로 기소되었습니다. 또 한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 Fairfax County를 비롯해서 각 County , City Detention Center에 수감되는 교포들이 지금도 매일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수감이 된 한인들이 언어와 풍습이 달라 겪는 고통도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같은 방 동료들로부터 받는 신체적 학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주의 이름으로 먹이고 마시고 옷을 입히며 찾아보는 사역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 일을 먼저 저희 와싱톤 한인교회 Prison Ministry 팀에서 지난 성탄절을 기해 시작했습니다. 한인들에게도 책을 통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 Chuck Colson 이 시작한 Prison Fellowship Foundation의 지원과 훈련을 통해, 저희 팀은 한인 재소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장소로 직접 방문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부활절 전에 한글 찬송, 성경책을 51곳의 Virginia Prison 과 Detention Center에 보내드렸으며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이곳 Arlington Detention Center의 Chaplain Earl, V. Karl 목사님의 Good News Jail & Prison Ministry를 후원하는 Banquet에 와싱턴 한인교회의 이름으로, 그리고 와싱톤 성악 아카데미 회원들이 같이 참석해서 찬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면서 우리 한인들의 관심과 후원을 알렸습니다.

저희 Team이 Virginia State Department of Correction의 책임자들로부터 Virginia State Prison 한인 수감자들의 명단을 받았는데 짧게는 5년 길게는 종신형 plus 28년의 중형을 받고 복역중이며 그 들의 죄목은 뺑소니(Hit& Run), 음주운전(DUI), 절도, 배우자 폭행을 비롯해서 마약, 성폭력, 무기 소지, 살인까지 포함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형을 다 마치게 되면 바로 한국으로 추방되어 이곳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다시 한번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들 중에는 한 순간 참지 못한 분노와 순간적인 판단의 잘못으로 인해 우발적인 범행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아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난데일에서 체포된 한 여성은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계속해서 항의하는 바람에 오히려 업무 집행 방해로 구속된 일도 있습니다. 저희 와싱톤 Prison Ministry 팀이 지난 5월 5일 Richmond Prison 담당자들과 회의를 가졌을 때 그들이 부탁한 일을 잊지 못합니다. 먼저 우리 한인들이 이 Prison으로 오지 않도록 교회에서, 그리고 Community 차원에서 계몽과 교육을 부탁했습니다. 이미 수감된 사람들, 또 그들의 가족, 그리고 출감후의 모든 After-Care 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빨리빨리,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과 서두름 때문에 일 평생 본인 자신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이런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 사역 팀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이 아침, 이 귀한 시간,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한 순간의 분노, 한 순간의 실수로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와싱턴 Prison Ministry는 여러분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 그리고 많은 지원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이해 할 수 없는 나 사랑하기 시리즈, 그 세 번째로 분노, 외로운 나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제일 처음 “이해 할 수 없는 나 사랑하기” 에서 저는 우리 안에 우리 자신들이 싫어하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내가 싫어하는 또 다른 나가 있다는 것을 인정 할 때, 그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우리 자신, 나 자신을 사랑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자랑하고 남에게 자신 있게 내 놓을 수있는 천사 표와 같은 나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쉽게 말씀드리면 마귀 표와 같은 나 가 똑같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나는 정말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끄러운 사실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기심, 그 은혜로 자신이 구원받은 것처럼, 로마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것을 간절히 권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해 할 수 없는 나 사랑하기” 에서는 우리가 살면서 이런 저런 상처를 받았어도, 그 상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다시 사랑하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를 중단하는 것은 마치 쇠에 녹이 스는 것처럼 서서히 쇠 자체를 사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사랑하면서 살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선택하는 차원이 아닌 명령의 차원입니다. 가능하면, 혹은 형편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 어떠한 환경에서도 무조건,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몸과 영혼에 녹이 슬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우리가 죽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의 존귀한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을 멈추는 일입니다. 사랑을 멈추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때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지만 서로 사랑하도록 지어진 생명 공동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해 할 수 없는 나 사랑하기 그 세 번째로 우리 모두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마음의 분노, 그 분노가 어떤 것인지, 분노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왜 분노하면 안 되는지 살펴봅니다. 분노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도 가고 어떤 사람들은 자살도 하고 심지어 가족끼리 살인도 하게 되는 우리가 매일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내 안에 깊이 숨겨진 또 하나의 이해 할 수 없는 나입니다.

집사님께서 읽어주신 창세기 4장은 아담의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일어난 이 살인사건은 수배 중인 어떤 전과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한 부모 밑에서 한 솥 밥을 먹으며 살던 아담과 하와가 낳은 한 핏줄, 살과 피를 나눈 형과 동생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저에게 성경을 쓰도록 하셨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 아담 집안의 살인 사건을 빼버리고 곧장 이스라엘의 구원, 홍해를 가르시는 것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 가정, dysfunction 가정의 문제를 솔직하고 자세히 우리에게 읽도록 하셨습니다.

저 같으면 저의 집안의 부끄러운 , 저의 조상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려 노력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뿐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 한국에서 공직자들이 청문회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 후보자의 가족들의 과거입니다. 누가 빨갱이였다, 아니다, 누구는 일본의 앞잡이였다, 형사였다, 또는 이북으로 월북한 사람이 있다 없다, 심지어 그 자녀가 군대를 안간 것 가지고도 그 후보자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판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어쩌자고 이런 생각 할 수도 없는 살인 사건으로 오히려 문제를 만드시는 겁니까? 이런 일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생길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그냥 이 사건을 기록하게 하셨느냐는 말입니다.

가인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자기 동생을 죽일 정도로 화가 난 것입니까? 무엇이 가인을 이처럼 살인으로 몰아갈 만큼 화나게 만들었습니까? 아벨은 또 형에게 죽음을 당할 만한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놀랍게도 이 살인 사건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고 또한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믿는 예배자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각각의 예배, 그리고 그 예배의 결과 때문에 즉 가인과 그의 예물은 거부하시고 아벨의 예배만을 받으신 하나님, 그것 때문에 이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아이들을 키운 부모, 아담과 이브입니까? 아니면 살인자 가인입니까?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하나님입니까? 누가 이 사건을 책임져야 합니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인과 하나님입니다. 마치 에던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한 후 그를 찾아오신 것처럼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다니십니다. 창세기 4장 4절 후반 절부터 7절까지 표준 새 번역 개정판에 나오는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를 보면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가인은 지금 누구에게 화가 났습니까? 아벨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실은 아우 아벨이 밉고 싫은 것, 그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가인은 하나님께 직접 화를 내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물어보시는데 그는 말이 없습니다. 그 가인이 입을 열어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들로 나가자.”

들, 광야, 사막으로 들어가자고 가인이 동생을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가인이 그 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죽입니다. 형제도 자매도 아니 부모도, 죽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누가, 과연 이긴 사람입니까? 가인입니까? 대답하시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정말 분노가 힘이 있는 가라는 것입니다. 가인의 분노가 정말 힘이 있습니까? 비록 아벨이 그 힘이 죽기는 했지만 정말 가인이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벨에게 분노한 것은 결국 하나님께 분노한 것입니다. 아벨을 죽인 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창조주에게 도전한 것입니다. 동생을 죽인, 살인자 가인에게 먼저 찾아와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인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가 강한 줄 착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당신이 아우를 지켜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일 수 있었습니다. 분노가 승리한 것 같습니다. 악이 선을 이긴 것 같습니다. 가인이 분명 하나님을 따돌리고 일을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는 이 장면이 구약에서 손꼽히는 인간 비극의, 눈물나는 슬픈 장면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힘을 믿고 자기 꾀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린 가인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혹한 형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맞아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도록 어떤 표를 찍어주십니다. 이 표 때문에 사실 가인은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 살게 됩니다. 여기서 혼자라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이 결혼을 해서 에녹이라는 아이까지 낳기 때문입니다. 제 말씀은 가인과 하나님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
처음 집사님이 읽어주신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는
“가인은 하나님과 함께 있던 그 곳을 떠나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에덴의 동쪽으로 떠났다.”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 꺼지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분노와 함께 사는 땅, 그것이 바로 이 놋 입니다. 이 땅의 특징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들이 떠돌아다니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사는 그래서 사랑이 없이 살기 때문에 그 땅은 아무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자리에 복수와 분노만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살았지만 결국 죽은 것입니다. 그 증거를 가인의 자손 라멕이 한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장 23절-24절에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 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 일곱 갑절이다.”

가인도, 라멕도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분노가 자손 대대로 이어지면서 더 커져가지만 이 분노가 힘이 있습니까? 분노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분노는 그림자입니다. 분노는 우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분노는 힘이 없습니다. 사랑이 힘이 있습니다. 사랑이 분노를 이깁니다. 아니 사랑만이 분노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분노는 Control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분노는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분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습니다, 분노 속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습니다. 더 많은 죽음, 더 잔인한 죽음, 더 커지는 분노 이것은 마치 2세기 그리스 철학자였던 에픽테투스가 갈파한 것처럼 분노를 잠재우려면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는 먹이를 줄수록, 분노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 점 커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커져도 분노는 그림자입니다. 분노는 본질이 아닙니다. 존재가 아닙니다. 그 그림자는 사실 가장 외로운 그림자입니다. 누구도 돌보지 않아 마음대로 자라버린, 마치 머리를 산발하고, 쓰레기를 가득 실은 카트를 밀고 다니는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하는 홈레스처럼 모든 사람들이 피해 가는 가장 철저히 버림받은 불쌍한 인생, 그것이 분노이고 분노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분노하는 사람 옆에는 아무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철에 이런 사람이 타면 모두 그 사람을 피해 내리던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노는 자기가 만든 창살 없는 감옥에 자기를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도 나가지 못하고 남도 들어오지 못하게 위협하는, 외로운 감옥, 그 속에서 고통 하는 가인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냄새가 싫어서, 그런 것처럼 분노하는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 분노라는 그림자가 싫어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피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벌,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분노, 용서하지 못해서 회개하지 못해서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자기의 더러운 그림자와 함께 생명 없이 오래 오래 살도록 하신 것, 이 벌처럼 무서운 벌은 이 세상에 또 없습니다. 사형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더 가혹하다고 말합니다. 가인은 자기가 택한 유죄 판결로 인해, 하나님과 기소 전 협상을 통해(Plea Bargen)을 통해 이 종신형을 얻어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 벌이 사형보다 가혹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서 이미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만든 것, 그것이 분노의 끝입니다.

분노하는 것, 부인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분노하도록 지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분노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정말 죽도록 분노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지나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다면, 죽이고 있다면 그 분노는 분노의 도를 넘어 나와 나의 형제를, 그리고 실제로는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독이 된다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독은 내 형제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 할 수있는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형벌을 자신에게 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제 하나님 앞에 다시는 설 수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예배자로 설 수 없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바로 회개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께 분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그 때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연합 감리교 찬송가중에 When Cain Killed Abel 이란 곡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보 에 악보를 넣어드렸습니다. 제가 1절 2절을 부르고 3,4절을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When Cain Killed Abel (가인, 아벨 죽였을 때)

1) When Cain killed Abel in a fight, and Jacob stole another's right, when Joseph's brothers gave him chase, God wept and mourned their fall from grace.
가인 아벨 죽였을 때 또 야곱 거짓말 할 때 요셉 팔아 버릴 때에 주님 눈물 흘리셨다네
2) In every family, small or great, when jealousy twists love to hate, and rival turn to enemies, God weeps at our hostilities.
가족들이 서로 서로 미워하고 싸울 때에 원수 되어 싸울 때에 주님 눈물 흘리신다네
3) And when in church and world today such feelings still come into play, when brothers, sisters stand apart, God weeps for every broken heart.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 형제 자매 대적 할 때 주님 가슴 찢겨지시네.
4) Good Christians, join in God's lament, weep now and mourn, be penitent, and pray to God: Forgive us all, restore us as before the fall.

형제 자매 우리 모두 회개하고 화해하세 주께 용서 빌고 빌어 우리 고쳐 주시기 기도해

기도합니다. 이 시간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형일, 너는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느냐? 네가 지금 미워하고 있는 그래서 그 미움 때문에 이미 죽인 그 형제, 자매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째서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이냐?
죄가 너의 생명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죽음의 힘으로 분노의 힘으로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사랑으로 오직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대답하실 차례입니다. 아니 이번이 여러분 생애에 있어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대답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생명을 택하십시오. 지금,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분노 때문에 울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가슴은 우리의 분노 때문에 산산이 찢기셨습니다. 분노를 주님께 맡기기 원합니다.

주님, 주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셔서 다시 주 앞에 서서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게 하소서. 분노의 사람,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사람, 치유의 사람, 회복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 인 아 벨 죽 였 을 때
또 야 곱 거 짓 말 할 때
요 셉 팔 아 버 릴- 때 주 님
눈 물 흘 리 - 셨 다 네


가 족 들 이 서 로 서 로
미 워 하 고 싸 울 때 에
원 수 되 어 싸 울- 때 주 님
눈 물 흘 리- 신 다 네


교 회 에 서 나 세 상 에 서
분 노 가 일 어 날 때
형 제 자 매 대 적 할 때 주 님
가 슴 찢 겨- 지 시 네

형 제 자 매 우 리 모 두
회개 하 고 화 해 하 세
주께 용 서 빌 고 빌 어 우 리
고 쳐 주 시 기 기 도 해

오 소 서 나 의 주 -님 자 비(은혜, 기쁨 사랑 평화, 용서) 베푸소서.
오 소 서 나 의 주 님 알 렐 루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