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Mission Statement
History of KUMCGW
Worship Services
Directions to Church

Korean Ministry
English Ministry
Children's Church
Youth Church

Profile and Photo

Photo Album
Sharing


Sharepoint Home
Contact Information
Resources and Links
Connectional    Churches
Korean Bible Study


Archive | Home | audio 고속 저속

2005.11. 27. 홍인표 목사

들으라! 사랑하라! 가르치라! (Listen! Love! Lesson!)

신명기 6:4-9

1.하나님은 몇 분이십니까? (4절)

2.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5절, 참조 마가 12:28-30)

3. 하나님을 사랑하는 3단계를 말해 보십시오 (5절)

4.언제 어디서든 행동과 말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7절)

토의할 질문

1.한국 이슬람 협회에서는 알라(神의 아랍어)의 한국어 번역을 "하나님"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과 다른 신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호칭에 대해 알아 보십시오.

2.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의미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3.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4.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자녀들과 함께 그것을 나누어 보십시오.

1.

어디선가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법률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단호한 표정에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상대들도 기품과 학식이 있어 보였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듯 했습니다. 일대 다수의 논쟁이었지만 매우 일방적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내뱉는 법률 해석은 마치 해부대에 올려진 시체가 생기를 찾아 다시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젊은이는 법조항들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상대방은 법에 관해서라면 자칭 타칭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법률가가 물었습니다. "우리의 법에서 제일 중요한 조항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이 젊은이는 예의 그 자신감있는 태도로 막힘없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위 이야기는 복음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30대의 젊은 청년인 예수님은 이 법률가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제가 다시 한 번 이 법률가의 질문으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계명 중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기본적인 물음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시며,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와싱톤 한인교회에 부임해서 첫 설교를 할 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우뚝 서는 말씀,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서슴없이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신 그것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중요한 계명인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들어라! 사랑하라! 가르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계명의 처음은 잘 들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흔히 우리는 말하고 하나님은 듣는 역할로 관계 설정을 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말하라 하고 명령하신 구절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귀를 항상 열어 두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말을 귀로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닫아 놓으면 귀가 열려 있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을 주시면서 들어라 하는 명령으로 시작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뚫린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열고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들어라 하는 명령 이후에 나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하는 첫번째 말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라는 우리말 단어도 사실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이 고민하여 만들어 낸 것으로 한 분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성경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러나 현재 일각에서 이 단어를 神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만들려는 노력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습니다. 주변의 어느 민족도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로서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걸 알고 믿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8백만의 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힌두교인들은 최고의 신 한 분을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3억 3천의 신을 섬깁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각자의 조상이 죽으면 모두 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도나 도교인들은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이원론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 한 분께서 다스리신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탄과 그 추종자들도 반란자들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결국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음도 의미합니다. 인간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리석어서 우리 삶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을 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기 이전부터 끝날까지의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는 구절은 시대를 막론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모든 신실한 자들이 그 어떤 것보다 귀하게 여겼던 말씀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구절에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집트 바로 왕에게 가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말씀하시는 대신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당신의 이름을 말한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분이 누구신지 알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나와 시나이 사막을 전전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관계를 맺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그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이름이 다르면 다른 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연애하는 청춘남녀를 보십시오. 얼마나 다정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릅니까? 그런데 연애하는 사람이 자기 애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그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자기가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 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 하면서 어떻게 연애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따귀를 얻어맞고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거죠. 바로 제 얘기입니다. 제가 저의 아내와 연애할 적에 저질렀던 잘못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지금은 아내가 된 그 때의 마음 착한 애인이 용서해 주고 결혼까지 해 주어 얻어맞고 쫓겨나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그런 일은 말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성경을 읽고 배우는 우리에게는 매우 초보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혼란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치 않은 이들이 많습니다. 아니 실은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도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을 그대로 성경의 하나님에 대입하여 상상을 합니다. 특별히 한국인들은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샤마니즘의 전통이 뼛속 깊숙이 박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의 하나님이 누구시든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 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게 여기는 듯 합니다.

사랑하라는 명령 이전에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 사랑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연애하는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제대로 알 지 못 하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데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분은 여호와이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전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른 그 분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하늘님도 아니고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신도 아닙니다. 각자가 다른 신을 섬겨도 결국은 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거짓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건 마치 연애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최고의 미인을 사랑한다고 하니 결국은 모두가 동일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전제를 분명히 한 후에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

그렇습니다. 두번째 명령은 사랑하라 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우선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심장을 말하는데 심장은 성경에서 흔히 감정을 말합니다. 내 모든 감정으로 사랑하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감정이 생기면 사랑이 식었다거나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모든 감정으로 사랑하라고 하셨을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같은 좋은 감정도 포함하지만 그러지 않으려는 악한 감정도 포함합니다. 내 현재의 감정이 어떻든지 혹은 내 의지가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여 기에서 실패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이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뜻이라는 단어는 영혼 혹은 목숨이라고 하면 이해가 더 쉽겠습니다. 영혼까지도 아끼지 말고 혹은 목숨을 다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현재도 북한이나 중국 혹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기독교 신앙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우리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목숨을 아끼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버려라는 이 명령을 실제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사는 이들은 이 말씀이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적 욕망을 채우고자 했던 파우스트와 같은 욕망이 내게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내 영혼을 다해 사랑하지 못 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목숨을 내놓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의 말씀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힘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육체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저와 여러분이 가진 돈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단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때 세번째 단계가 제일 어려워야 하는데 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감정 혹은 의지보다는 생명 혹은 영혼이 소중한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생명 혹은 영혼보다 재물을 더 귀하게 여기다니요? 이 말씀은 사람들이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들의 돈은 못 쓴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어느 누구도 생명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지금 당장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겠습니까? 예라고 대답하실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내 돈을 써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려면 이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4.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내 자녀들에게 전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세번째 명령은 가르치라 입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에 잘 맞는 우리말은 연마하라입니다. 칼이나 화살촉을 날카롭게 갈 듯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을 항상 날카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칼이나 화살촉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입니다. 전쟁에 필요한 무기는 평상시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자원의 낭비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기를 평상시에 준비해 두지 않으면 정작 전쟁이 나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 사랑도 전쟁 때 쓰일 무기와 같을 수 있습니다. 날카롭게 날이 선 검은 전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연마해야 합니다. 연마한다는 말은 그 의미에 반복 행동을 포함합니다. 그 반복하여 연마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제게는 이제 한 살 반이 조금 지난 딸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 오기 얼마 전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모양이 어딘가 아픈 듯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물건을 집어서도 허리를 펴지 못 하고 힘들게 옮기더군요. 갑자기 왜 저러는가 유심히 살펴봤더니 한동안 다리가 불편하셨던 할머니를 흉내낸 행동이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저와 아이 엄마 그리고 주변에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거지를 아주 작은 것도 따라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갑작스런 제 딸의 행동을 보고 저나 제 아내의 습관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때도 있습니다. 제 딸 지현이가 모방하는 모습을 보고 그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한편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제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 한 채 습관적으로 하는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지현이는 그걸 모방할테니까요.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은 말보다 훨씬 강력한 교육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반복된 행동으로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행동으로만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말로도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도 그 의미 속에는 반복된 행동을 포함합니다. 잔소리를 끌어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듯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순서에 주의하십시오. 행동으로 가르친 후에 말로 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분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걸 행동이 없이 어떻게 말로써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상반되는 행동을 하면서 말로 전하기만 한다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유달리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부모님들은 유대인의 교육에 대단한 관심을 보입니다. 유대인의 천재교육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종류의 서적이나 세미나는 금새 매진이 되고 성황을 이룹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서적이나 세미나는 한국 부모님들의 잘못된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인 관점에서의 유대인 교육을 전하지 못 합니다. 모든 가정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흐름은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탕을 둔 유대인 교육의 초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지만 한국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라는 걸 그 부모들로부터 보고 배워 실천에 옮기지만 한국 부모님들은 모범되는 행동은 없이 잔소리만 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집에 있을 때에나 바깥에 나갈 때,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가르치라는 다음 구절의 말씀도 사실은 부모의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해라가 아니라 부모들이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5.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내리십니다. 여호와,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손에 매고 - 팔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 이마에 붙이고 집의 문설주와 문에 쓰라고 하십니다. 심장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신체 기관이 팔입니다. 그 곳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매어 표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잡아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식으로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또 머리에 붙여 기호가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감성뿐만 아니라 지성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이성으로도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한다는 걸 겉으로 내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집의 문설주와 문에 쓴다면 우리 집에 드나드는 이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섬겼던 그 하나님을 사랑하란는 말씀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걸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메시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강림절 첫 날입니다. 이 기간이면 해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감격하며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왔습니다. 올해도 당신의 외아들이라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그 사랑을 감사함으로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김없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단계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건 그리고 명령하시는 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분이나 의지에 관계없이 항상, 우리의 영혼보다도 소중하게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재물로 당신을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계명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계명에 순종하는 이들이 그 순종을 통해서 땅에서 오래도록 잘 사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축복은 제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부모된 자들이 여호와,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의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보고 들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 배우고 몸에 익힐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축복 또한 누리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메시아께서 다시 오시길 기다리며 준비하는 이 강림절 기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여 약속된 축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붙잡아 매어 주소서.

우리 이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끌리도록 인도하소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