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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31. 최지훈 전도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시편 145:14-21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그가 체험한 대로 노래하였습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 나열되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들을 살펴 보십시오.

1. 하나님은 모든 ______________________을 붙드시고
________________을 일으키신다.

2. 하나님은 그를 바라는 모든 생물들에게___________________________ .

3.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 .

4. 하나님은 그를 부르는 자들에게 ________________________ .

토의를 위한 물음

1.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느낀 적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압박아래 있고 피조물들이 파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14절부터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사실들을 볼 때 우리의 삶과 생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우리는 간혹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오랫동안 들어왔고 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내 삶 속에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냐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스스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에 당면할 때 하나님은 한없이 멀리 계시고 나와 상관이 없는 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골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쟁터에 휩쓸려 골리앗과 맞서게 되고 왕의 신하가 된 후에도 온갖 음모와 시련을 겪은 후 결국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기까지 그가 믿은 하나님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명을 건져 주시고 방패와 산성이 되어주신 참 신이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한 유명한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영원히 주님의 집에 거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디에 계신지 알아갈수록 요동하는 삶의 파도 속에서도 빛을 향해 항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넘어지는 사람을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을 일으켜 세우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시고 하필 넘어지는 사람들, 눌린 자들을 회복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짐승들의 세계를 약육강식 (弱肉强食)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사회에서도 경쟁에서 이기고 스스로의 힘과 가치를 세우는 것이 질서로 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그저 운명에 떠맡겨져 있다면 넘어지는 사람, 비굴하게 눌린 사람들이 과연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을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고난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기고 승리하는 것에 뿐만 아니라 넘어지고 주저앉은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세우시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 앞에서 쫓겨다니다가 아둘람이라고 하는 동굴 속에 피신했을 때 그의 주변에 여기저기서 사람이 모였는데 사무엘기상 22장에 보면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사람들이 모여서 거의 사 백 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때 왕의 군대를 지휘하던 다윗이 도피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이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지도자가 된 다윗은 버림받은 사람들을 붙들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필시 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향하여 예언하기를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넘어지는 사람을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죄와 무지와 사망에 묶여있던 이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망이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주님은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은 누구든지 일으켜 세우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편만(遍滿)하게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시편은 말하기를 만물이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데 주님께서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거리를 주신다고, 주님께서 손을 펴시어서 살아있는 피조물의 온갖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하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온 우주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사람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 동안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심지어는 들에 핀 꽃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입히시고 먹이시는 것으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욥기서 38장 41절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까마귀 떼가 먹이가 없어서 헤맬 때에, 그 새끼들이 나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를 때에, 그 까마귀 떼에게 먹이를 마련하여 주는 이가 누구냐?” 시편 139편은 주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과 나의 생각을 주님께서 모두 알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 시편의 말씀처럼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는 것 보다 훨씬 우리와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반드시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모든 만물에게 때를 따라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피조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다고 주님의 선하심을 표현했습니다. 나를 만족하게 하는 모든 선하고 온전한 선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성경의 엘리야 선지자는 극심한 기근 중에서 처음에는 까마귀가 가지고 오는 떡을 먹고 살다가 나중에는 사렙다라고 하는 한 과부의 집에 머무르며 살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오바댜라고 하는 한 왕궁의 관료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왕의 핍박으로부터 숨기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람이 현대 과학 문명과 물질주의의 이름으로 너무나 우리 스스로에 의지하는 삶을 구축할 때 우리는 자칫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배제하기 쉽습니다. 사실 우리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잊어버립니다. 모든 피조물을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의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이 많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은 너무나 유혹적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면 내가 만족을 얻을 것이라는 그것이 바로 피하기 어려운 거짓된 유혹입니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인터넷이, 사람들에게 무한한 선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추구하는데 진력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심지어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가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령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눈앞의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 것이다.” 단지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마술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그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항상 오늘 먹을 음식이 어디서 올지 모르도록 근근히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힘쓰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가” 하고 물을 때에 다윗의 시가 대신 증언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시는 그 모든 일은 의로우며 주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속이시거나 부당하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요한 1서 1장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라도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거룩한 사랑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은 말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진심으로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 주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선행을 많이 쌓는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이 가까이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의 크고 작은 죄가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태초부터 계시고 아브라함 때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여 온 분께 감히 입을 열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를 부르는 자에게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어린아이같이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한 비유의 가르침에서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간음하는 사람과 같지 않고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런데 세리였던 다른 한 사람은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말합니다. “주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이 나중 사람이 먼저 사람보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린이와 같은 겸손과 믿음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부르도록 합니다.

성경은 더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를 의지하고자 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모습으로 주님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만드셨지만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해서 그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결과로 오늘도 이 세상에는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압박받는 사람이 있고 배고픔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찾아오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참된 회복을 향한 소망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져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께서 그 배 안에 들어오셨을 때 그가 던진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찼던 기록이 복음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주님은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눌린 자를 붙드십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온 세계의 구석구석을 채우시며 그 말씀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때를 따라 먹이시고 그들의 소원을 만족케 해 주십니다. 주님의 모든 길은 의로움과 긍휼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진실로 부르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서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간 사람이 있으면 돌이켜 회개하고 믿음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 후에 이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이제 이런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라고 하는 무궁한 자원이 내게 있으니 인생을 마음껏 편안하게 살아보자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주 예수님께서 가장 잘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이러한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우리는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 스스로도 가지면서 이 땅을 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넘어지는 사람을 붙들어주고 눌린 사람을 일으켜주며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의로움과 긍휼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을 온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기름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왔음을 모두에게 전하며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소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