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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3. 김영봉 목사

"교회가 희망입니다"

여호수아 1:1-11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 방황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새로운 지도자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운 사람은 누구
였습니까?(1절)

2. 정치인, 장군, 재판관 등의 다중적인 임무를 맡아 가나안
정착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감당해야 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무엇입니까?(7-8절)
이 명령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3.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5, 9절)
왜 그런 약속을 주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 토의 문제

1. 오늘날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울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분별하고 그 뜻을 받들 수 있을까요?
연합감리교회의 파송 제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독과 감리사의 입장에서,
파송받는 목사의 입장에서, 교회의 입장에서 각각 생각해
보십시오.

2. 여호수아가 많은 사람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우직하게 그 뜻을
따를 경우,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반대로, 꾀와
지략과 술수와 재치와 타협으로 문제들을 풀어간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요?

3. 본문에 비추어 오늘의 와싱톤한인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
하십니까? 우리 각자는 어떤 태도로 미래에 임해야
하겠습니까?

1.

여러분, 얼마나 궁금하셨습니까? 또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새로운 담임목사가 결정되고 파송 되었다는데, 첫 번 환영 예배를 드릴 때까지 정식으로 선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셨으니, 아마 어떤 분들은 “뭐 이런 제도가 있나?”하는 생각도 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제가 그 사람입니다.

답답하고 궁금하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올해까지 삼 년 동안 연속해서 연합감리교회의 전통인 파송 제도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삼 년 전, 10년 동안 몸담았던 신학대학을 떠나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의 파송을 신청하고 그 결과가 날 때까지 몇 달 동안 전전긍긍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저를 다른 교회로 보내시려는 감독님의 뜻을 철회시키느라고 몇 주일을 힘들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올 해, 또 다시 예기치 않은 파송 결정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송의 결정 앞에서 제가 어려워했던 이유는 제 미래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두고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소비자 주권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이 제도를 고치는 일에 앞장서리라”라고 다짐도 했습니다. (제 직속 상관인 감리사님이 이 말씀을 들으셨으니, 이거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파송 제도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훈련 과정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그리고 소비자 주권주의 정신이, 저희 삶의 주인이 저희 자신인줄로 착각하도록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맡기고 기다리며 순종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것이 부당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시대에 뒤쳐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한을 주장하고 최대한 보장받으려 합니다. 그것을 위해 때로는 투쟁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러한 시대적 조류가 저희를 속여, 저희 삶의 주인이 저희 자신인줄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자주 멈추어 자기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물러서서, 하나님께 그 자리를 내 드리는 영적 훈련을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해 가며 그분의 손길을 따라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참된 길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길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삶의 성패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느냐 아니면 내가 주인으로 군림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파송 제도가 인간의 욕망과 술수에 의해 얼마든지 오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고,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점이 많지만,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하게 처신한다면 그리고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면, 우리 삶의 최종적인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고 되새기는 데 매우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런 깨달음 때문에 저도 처음의 불편한 감정을 떨쳐 버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이 파송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2.

저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부름을 받은 그 순간부터 저는 마치 호렙 산의 모세처럼 주저했고 피하려 했고 사양하려 했습니다. “내게 자격이 있으니 나를 불러 주시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저주저하면서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겠습니다”는 마음으로 임해 왔습니다. 기드온처럼 혹은 모세처럼 이 부름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제가 억지로 이곳에 온다면, 그것은 저 자신에게도, 교회에게도 그리고 하나님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키로 곡식을 까부르시듯,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흔드시고 고르시어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지난 번, 버지니아 연회에서 마지막 파송 예배가 드려진 후, 저는 그 콜로세움 한 가운데 서서 “주님, 이제는 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저는 주님의 제단에 놓여진 제물입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저를 죽여 주님의 제단에 바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저와 와싱톤한인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오직 주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것을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를 통하여 더 많은 잃은 영혼들이 복음 안으로 인도되어 이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간다면, 그리고 성도들의 헌신에 기초하여 균형 잡힌 선교 활동을 펼쳐감으로 이 세상을 주님의 뜻에 가깝도록 변혁시켜 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건강하고 진정한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하나님께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파송이 결정되고 얼마 지난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예배당에 홀로 앉아 기도하다가 성경을 읽는데, 바로 오늘 읽어드린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만났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꼭 제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려왔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도와 광야 여행을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그 고된 여행을 인도한 후 요단강 건너편 모압 땅에서 숨을 거둡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을 밟아보고 죽도록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만, 모압 땅에 있는 느보 산 정상에서 약속의 땅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써야 할 역사의 장(chapter)은 요단강 건너편에서 끝이 났고, 하나님은 이제 여호수아를 세워 요단강 저편에서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써가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이 당시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모세 아래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주목할만한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제 져야 할 책임은 모세가 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책임이 맡겨진 반면, 여호수아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점령하고 정착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형성시켜야 할 책임이 맡겨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세가 담당했던 과제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능력은 모세의 능력에 비해 많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는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엄청난 과제 앞에 여호수아는 홀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며, 지난 22년간 이 교회를 이끌어오신 조영진 목사님과 그 후임으로 파송 받아 이 자리에 선 저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영진 목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이 교회를 인도하여 아름답게 성장, 성숙시켜 오셨습니다. 모세의 외모가 조 목사님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철저한 헌신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비슷했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미련을 접고 자신의 장을 마감한 점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모세는 죽어서 나갔고, 조 목사님은 살아서 나가십니다. 죽어서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아직도 임기가 더 남아있고, 아무도 나가라는 사람이 없는데도,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는데도, 스스로 자신의 장을 마감하고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의 거취 문제로 인해 부끄러운 모습을 노출해 온 한국 교회에 조 목사님의 결단은 두고두고 좋은 귀감이 될 줄로 믿습니다.

목회 칼럼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난 몇 주일 동안 와싱톤한인교회의 역사를 읽고 배웠습니다. 특히, 1987년에 발행된 <와싱톤한인교회 삼십오년사>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 역사를 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그 내용이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 장대욱 장로님의 고어적 문체가 마치 개역성경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문제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문제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포토맥 강을 넘어 이곳으로 이사하는 과정은 마치 홍해를 건너는 과정처럼 드라마틱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임원 명부와 교인 명부는 마치 민수기를 읽는 것 같았고, 부록으로 첨가된 역대 목사님들의 설교문은 마치 신명기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54년 동안의 와싱톤한인교회의 역사는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40년 역사처럼 아픔과 슬픔과 상처로 얼룩져 있었지만, 이제 되돌아보니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큰 그림의 일부로 통합되어 결국 오늘을 아름다움을 일구어 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이렇게 보니, 제가 처한 상황이 여호수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해 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의 광야 방황을 통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훈련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빛을 환히 드러내도록 돕는 일을 받아 안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이상을 이미 모세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 비전 선언문(vision statement)은 이렇습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출 19:5-6절).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비전 선언문은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선언 위에 서 있습니다. 온 우주,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 그리고 ‘만물의 맡물’인 인간이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이 어떤 민족에 속했든, 어떤 나라의 시민이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든,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교육을 얼마나 받았든지 상관없이, 가진 것이 얼마든지 상관없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심오한 진리이며, 이 얼마나 쉽게 잊혀지는 진리입니까? 하나님은 이 사랑이 모든 생명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전 선언의 근거입니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들은 나중에 이 심오한 진리를 잊고 하나님을 편애하시는 분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선민으로 택함 받은 것처럼 오해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고 오해했습니다. 때로는 다른 민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박해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부터 선민의 자격을 박탈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내시어, 40년 동안의 광야 방황을 통해 단련시키시고 훈련시키시어,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하나의 나라로 성장해 가도록 섭리하신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을 제대로 인정하는 한 나라, 그분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가려고 힘쓰는 한 나라,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한 나라,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한 나라, 그분의 진리와 성품과 뜻을 가시적인 현실로 드러낼 수 있는 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택된 백성’,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라는 말이 모두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을 제대로 섬기는 한 나라를 세워 당신의 진리를 드러내고 당신의 사랑을 전하시려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를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도움을 받아 이 비전을 반쯤 이루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요단강 건너편에 정착하여 그 비전을 구체화해 가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선민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비전 선언문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비전이 교회에게 주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 비전 때문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채택한 비전 선언문, “복음 안에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균형 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드린다”는 선언문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비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와싱톤한인교회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벅찬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54년 동안 이 거룩한 비전을 착실히 구현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학대학 교수로 일하는 동안, 교회의 대형화에 대해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 경력을 가진 제가 이 큰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앞뒤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변명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이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목회위원회를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저는 그 앞에서 “만일 저보고 이 교회를 수 천 명이 모이는 거대 교회로 성장시키라고 요청하신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과업에 적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도우라면,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 없는 저의 진심입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 성장하는 것은 사양할 일이 아니지만, 성장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이제 저희 와싱톤한인교회는 반세기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의 반세기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통해 이루실 일을 함께 꿈꾸고 그 일을 이루어갈 시점에 서 있습니다. 교회를 간절하게 사랑하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소식을 접하면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교회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의 진리와 사랑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면, 그것을 드러낼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더욱 더 하나님을 잊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죽음의 권세는 이 세상을 더욱 널리 그리고 더욱 깊숙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집요하게 붙들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 헌신하는 거룩한 교회가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교회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이미 그 같은 헌신으로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빛을 더욱 선명하게, 더욱 널리, 더욱 깊이 발산할 수 있도록 전진해야 합니다.

4.

저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모세가 맡았던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과제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에게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잘 지키라는 것,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만을 요청하셨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전략가로, 때로는 장군으로, 때로는 재판관으로 행동해야 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요청은 단지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것을 우직하게 따르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일들이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또 다른 이상한 점은 이 단순한 명령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여러 번 격려하신다는 겁니다. 6절에서 “굳세고 용감하여라”, 7절에서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라”, 그리고 9절에서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거듭 여호수아를 격려하셔야 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많은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땅을 분배하고 하나님의 선민으로 형성시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치우침 없이 따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인 술수로, 군인의 전략으로, 재판관의 지혜로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휘둘러 일을 처리해 가면 오히려 쉬웠을지 모릅니다. 처신만 잘 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고 장기 집권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그 모든 술수와 전략과 지혜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순종하려 할 때, 인정보다는 비판을, 인기보다는 비난을, 찬사보다는 중상모략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이럴 경우, 여호수아는 좌로나 우로 몸을 비껴 요령을 부리고 타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9절에 있는 대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결코 버텨내기 힘든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듭 거듭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의 제 2의 반세기 역사를 도와 가는 과정에서 제게도 은총을 주셔서 오직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르게 해 달라고. 그 일이 어렵다고 해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게 해 달라고.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비전을 이루도록 제 힘껏 떠받치도록 해 달라고. 그런 다음, 저는 마음 깊은 감사를 주님께 올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벅찬 과제를 마주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제게도 방향을 주셨고, 원칙을 주셨고, 약속도 주셨으며, 용기도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견고한 발걸음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모세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조영진 목사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제게도 함께 하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용기를 얻은 여호수아는 11절에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알리시오. 양식을 예비하고, 지금부터 사
흘 안에 우리가 이 요단 강을 건너, 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소유하게 될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시오.

생각해 보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과제 앞에서 두려워했던 것은 여호수아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들도 모세 이후에 자신들의 운명이 어찌될지 몰라 두려워 떨고 있었을 것이고,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땅 문턱에서 지도자를 잃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딛고 일어나 담대하게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으니 두려워 말라고!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전진해 들어갈 것이라고! 그러니 백성들에게 두루 다니며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없이 계속된다고!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조영진 목사님 이후의 와싱톤한인교회가 어찌될지,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어떤 사람은 호기심으로, 어떤 사람은 걱정과 근심으로, 어떤 사람은 간절한 사랑의 마음으로, 또 어떤 사람은 시기심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여러분의 가족이나 속회원 중에 그런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약속과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여러분, 가족과 교인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혹은 저희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의 한인들을 만나시거든,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그동안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똑 같은 걸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비전을 붙들고 그 비전이 이끄는 약속을 땅으로 계속 전진해 들어갈 것이라고! 우리의 지도자는 전에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성령님 한 분뿐이시라고! 와싱톤한인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시오. 이 영광스러운 역사에 동참할 채비를 하라고. 이 역사는 한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저희 모두의 역사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의 미래는 한 개체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수많은 교회들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청합니다. 저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더욱 정성으로 기도해 주시고,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배전의 헌신을 다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 인생에 이것보다 더 값진 일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은 없습니다. 이 일이라면 기꺼이 인생 전체를 바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은 인류 역사의 참된 주인이시며,
저희 각 개인의 삶의 참된 주인이십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저희 각자와 인류 전체에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리석고 비뚤어져서
저희 자신이 주인 노릇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저희 자신에게 더 이로울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저희 각자의 삶의 주인이십니다.
주님만이 저희 와싱톤한인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주님만이 인류 역사의 참된 주인이십니다.

사랑의 주님,
저희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저희 교회의 미래를 주님께 드립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을 이루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 드러내소서.


이제 선교의 제 2의 반세기를 시작하는 이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저희 교회를 인도해 오신 것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 은혜를 더욱 충만하게 허락하소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진군해 들어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공동체로서
저희를 우뚝 세워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의 빛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소서.
더 많은 영혼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구원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