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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2. 문형일 전도사

"그리고, 그들은 길을 떠났다"

창세기 35:1-5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서는 베델의 삶, 성화(Sanctification)의
삶을 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우상을 땅에 묻고,
정하게 몸을 씻고 새 옷을 입는 예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모든 식구들,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의 은혜를
살아갈 구원의 공동체 그들은 함께 믿음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버리고, 묻고, 씻고 떠나야 할 것들 때문에
오히려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995년,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방글라데시 한 시골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라민 은행’ 이라고 부르는 무담보 소액 융자를 실시했는데, 이 사업의 목적은 농촌의 여성들에게 자립할 수있는 기회를 주는데 있었고 힐러리 여사는 정말 이 사업이 여성들을 자립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여성들과 함께 회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여성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수입이 있고 재산도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재산은 다름 아닌 집에서 키우는 소, 닭, 오리들이었습니다. 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여인들이 힐러리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소가 있습니까?” 힐러리는 “아니오, 나는 소가 없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그럼, 당신은 자기 소득이 있습니까? “나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돈 버는 일은 그만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인들은 “아이들은 몇인가요?” 힐러리는 “딸 만 하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 참 안됐군요! 소도 없고 자기 소득도 없고, 아이도 딸 하나뿐이라니.”

여러분 누가 참으로 안된 사람입니까? 힐러리입니까? 아니면 방글라데시 여인들입니까? 참고로 힐러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방글라데시 여인들의 눈에는 소도 없고 자기 수입도 없고 아이도 하나밖에 없는 이 여인, 비록 그가 가장 잘 사는 나라, 아니 그래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나라 대통령의 부인이라도 부럽고 동경 할 대상이 아닌 동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많이 가지는 것 또 높이 올라가는 것, 남들이 부러워하는 힘을 갖는 것이라 믿는 우리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I.

많이 가지는 것, 높이 오르고 남을 지배하는 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이루어 주셔야하는 안정, Security, 복, Blessing 이라고 믿는 야곱의 가정에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4장은 분노, 복수, 살인과 폭력,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슬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시작은 야곱이 삼촌 라반을 떠나 모든 가족을 데리고 아버지 이삭이 살던,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가나안 땅으로 역 이민을 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며 복을 달라고 애원한 야곱은 그렇게 두려워하며 걱정하던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합니다. 그러나 형을 믿지 못합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가축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형이 다시 와서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즉시 형을 떠나 세겜, 타 인종들이 사는 땅으로 들어갑니다. 아마 야곱은 언제 자기를 죽일 지 모르는 두려운 형보다, 내가 예전에 함께 살았던 그래서 내가 형과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과 장남의 복을 다 빼앗은 것 때문에 멀리 도망쳤다는, 그 숨기고 싶은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 보다, 오히려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아니 내 과거를 묻지 않는 새 땅이 더 편할 것이라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보다는 오히려 새 이름 이스라엘을 쓰면서 사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받들고 인사를 하며 살아야 할 야곱보다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 받아주는 새 땅, 하몰 이라는 사람이 다스리는 세겜에서 새로운 이름, 지금 우리들이 미국에 살면서 편의에 의해, 혹은 미국 사람들을 위해, 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 “identity"를 위해 영어 이름을 쓰는 것처럼 새 이름 “이스라엘”로 사는 것이, 나와 내 자녀들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우리가 처음 이민 와서 그랬던 것처럼, 야곱은 자녀들의 학교와 교육,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사이, 조금 큰오빠들은 다 들로 나가 양을 치며 생계를 돌보고 있는 사이, 이민 와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외로워하는, 그래서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던 딸 디나에게 세겜이라고 하는 그 땅 세겜을 다스리는 하몰의 아들이 접근해서 디나의 관심을 끌고 디나를 욕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디나에게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아니라 그의 오빠들, 그리고 야곱에게 집중합니다. 피해를 입은 여자 디나의 입장은, 그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부모 형제들의 이야기는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서로 다른 부인 4명을 통해 각각 자녀들을 낳았고 그 자녀들은 한 아버지의 더 많은 사랑을 받고자 항상 경쟁하며 살았던 어머니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남보다 더 뛰어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존 경쟁의 법칙을 어려서부터 배우며 살았습니다. 아니 형, 에서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던 아버지, 야곱을 닮아 각각 살아 남는 법, 강자가 되는 법, 남을 속여서 라도 부자가 되는 것을 연습하는 살벌한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세겜에서 행한 일은 살인과 약탈과 복수였습니다. 한 사람 세겜, 하몰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온 세겜의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한 여자 디나의 복수를 위해 온 세겜의 여자들, 어린아이들, 모든 재산을 약탈하고 폭행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자기의 아들들을 야단치지만 칼을 든 아들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다루듯이 하는데도,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는 아들들, 상처받은 딸 디나, 이 소식을 듣고 이제 자기들을 죽이려할 것이라 근심과 걱정에 빠진 야곱을 상상해 보십시오. 처음 얍복강을 건널 때는 형, 에서 한 사람만 걱정하면 됐지만 지금은 그가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상황을 걱정해야하는 그래서 이제는 다시 돌아갈 땅도,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는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 나를 누가 이민국에 신고하지 않을까? 같이 일을 하면서도 동료들을 믿지 못하고 자녀들을 학교에도 보낼 수 없고 자녀들이 아파도 호소 할 수도 없는 한마디로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Undocumented People이 된 것입니다.

이제 다 끝이 났습니다. 자녀들의 더 좋은 미래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 땅에 큰 꿈을 안고 American Dream을 안고 이민 왔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영주권을 받을 길이 없어지고 그래서 가정의 불화가 생기고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깨져버린 가정, 먹고살기 위해,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녀들은 계속 문제만 일으키고, 학교도 가지 않고 마약과 탈선으로 집을 나가고 직장에서는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한국으로 돌아 갈 수도, 이 미국에 살수도 없는, 양쪽 틈새에 갇혀 버린 이 미국에 지금 살고 있는 수많은 이민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이민자들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노비들과 소와 양과 염소와 12명이 넘는 자녀들과 4명의 부인들이, 부와 명예와 힘이 지금 야곱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진정 야곱은 그가 가진 그것들 때문에 행복합니까? 진정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원하던 복이 이것뿐입니까? 야곱은 그 복을 지금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처음에 말씀드린 방글라데시 여인들과 힐러리가 나눈 대화를 기억해 보십시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자라는 것이 전혀 없고 세상 사람이 누구나 부러워하던 그 힐러리가 이 야곱과 같은 처지에 놓인 정말 안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 만의 생각입니까?

II.

좀더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야곱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야곱이 받은 복, 아니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복은 진정 무엇입니까? 그리고 정말 우리가 구해야 할 복은 무엇입니까?

먼저 야곱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은 “두려움, Fear”의 하나님입니다. 처음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꿈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 17절에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상대로 이해하는 것, 그 마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번째 은혜입니다. 이 두려운 존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우리 죄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회개이며 그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깨달음, “Awakening"을 갖게 되고 이것을 우리 감리교에서는 선재적 은혜, Prevenient Grace라고 말합니다. 이 깨달음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 나의 죄를, 나 대신 갚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 그리스도의 희생이 믿어지지 않고, 그 은혜가 아니면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그 은혜의 보혈로 이제는 나의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에서 나의 아버지.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믿고 깨닫게 될 때 구원이 있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가 바로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 그래서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 의롭다 여겨주심, 죄 없다 인정받음, Justification 이 됩니다.

III.

오늘 읽어주신 35장은 이런 두려움의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칭의, Justification 이후에 시작되는 새로운 삶, "New Life", "New Birth" 거듭남, 거룩함을 향해 자라 가는 성화, Sanctification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두려움의 존재로 아는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구원받은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34장의 야곱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서 베델로 올라가, 거기에서 살아라. 네가 너의 형에서 앞에서 피해 도망칠 때에, 너에게 나타난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쳐라.”

이 말씀을 하는 하나님이 예수님 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 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을 증거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너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만이 진정 우리가 사는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현명해도, 미련해도 너의 지혜 되어 사용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잘 났으나, 못 났으나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강하여도, 약하여도 너의 힘이 되어 일으키리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의로워도, 악하여도 너를 나의 피로 바꾸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송명희 시인이 쓴 “너는 내 것이라” 라는 찬양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제 더 이상 돌아 갈 곳도, 의지 할 곳도 없다고 생각하는 낙심하고 절망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소다 가지고도 불쌍해져 버린 인생 야곱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 그것이 우리를 살리지 못하는 헛된, 거짓 된 소망을 붙들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네가 나의 것이라는 표시로 나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 갈 때 했던 야곱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십니까? 그것은 아마 야곱으로 하여금 그때 네가 어떤 상태였는지 줄 아느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심지어 베개 하나도 없어 돌을 베고 자던 사람이 바로 너 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지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이 있는 것이나, 아주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많다, 적다 나눌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이거나, 이스라엘이거나, 문형일 이거나 Brian Moon 이거나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이 네 이름을 이제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렇게 말해 놓으시고서 오늘 그를 부르실 때는 야곱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된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 이스라엘로 만드시기 위해 아니 이스라엘이 다 되었을 때라도 사실 우리는 야곱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성화 되고 심지어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때가 사실은 죄인이었을 때 그리고 여전히 죄인인데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변해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모자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부족함을 가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민 온지 오래 되었어도, 그래서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자랑 할 만한 자녀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더라도 우리는 역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단을 쌓지 말고 하나님께 단을 쌓아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자녀도 없고, 있어도 문제만 일으키고 있더라도, 비록 불법체류자의 신분이라도, 건강이 나쁘더라도, 끊고 싶은데 계속 되는 유혹으로 끊어지지 않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살 소망을 다 잃어 버렸더라도, 우리는 베델로 돌아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 자리에, 우리가 그 때 약속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신 그 놀라운 구원의 경험과 체험 위에 하나님께만 단을 쌓아야 합니다.

IV.

이 말씀을 들은 야곱은 즉시 반응합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커다란 시련을 이기는 방법으로 가장 크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야곱, 야곱의 모든 자녀들 아직 완전하지 않더라도, 아직 실수가 있더라도, 아직도 야곱의 근성이 각자에게 남아 있어 그렇게 끙끙대며 죄 가운데 살더라도, 그리고 아직 마음에 완전한 확신이 없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새롭게 결심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기를 결정합니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모든 계획과 뜻과 의지를 다 베델로 돌아가는데 쓰기로 결심합니다. 세겜에서 이루고자 했던 이민자의 꿈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단을 쌓고 베델에서 사는 것으로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자기의 의지를 다해 그렇게 한번 살아보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가기 싫더라도, 하나님이 가라 하시니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그렇게 해보기로 작정합니다. 성공한 이민 자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 일을 위해 야곱은 네 가지 행동 지침을 자기 모든 가족들에게 따르도록 명령합니다. 먼저 첫째로는 그 동안 하나님과 함께 섬기어 오던 모든 우상들을 다 땅에 묻기로 결정합니다. 그 우상은 이삭의 아버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우상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으로 오기 전에 만들고 섬기며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전통과 관습들 이제는 그래서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것들을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배운 새로운 우상, 새로운 유행, 모든 사람들이 다 O.K라고 말하는 유행들을 땅을 파고 묻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땅, 히브리말로 아담인 그 땅에 이제까지 몸으로, 생각으로 만든 모든 우상을 섬기며, 땅에 묻으며 흘린 땀과 묻은 먼지, 흙들을 깨끗이 씻은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그 열심을 성령의 물로 씻은 것입니다. 묻고 씻으며 새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새롭게, 더 깊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기억 할 것은 그들이 이 우상들을 묻은 그 자리를 단지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밑”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곳에 남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노란 리본을 붙이거나 팻말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도 없습니다. 다시 파내는 일을 막기 위해서, 또 이 일이 또 다른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의 헌신과, 놀라운 구원의 경험이 화석처럼 굳어져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다 묻고 다 씻은 이 사람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식구들이 입고 있던 냄새나는 헌 옷, 누더기 Rag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입고 있는 누더기가 바로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 탐욕이었습니다. 그 중 탐욕은 욕심은 우상 숭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탐욕이 우상 숭배라면 결국 야곱이 명령한 우상을 버리는 것, 새 옷을 입는 것, 몸을 씻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라는 그것입니다. 새 옷을 입는 사람은 목욕을 하지 않고 더러운 채로 새 옷을 입지 않습니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 새 몸을 만들지 않습니까? 몸에 맞는 옷을 입기 위해 열심히 체중 조절을 하는 것이 바로 몸을 씻는 것입니다.

새 옷에 새 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새 몸을 만들지 못하면 새 옷은 맞지 않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새 술이 있기 때문에 새 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새 사람, 새 몸,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화입니다. 날마다 우상을 묻고, 몸을 씻으며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몸은 계속 성령의 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매일 죽어야 합니다 물 속에 은혜의 강에 잠겨야합니다. 변화된 새 사람이 마땅히 입어야 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7절 이하에 새 옷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에 그런 것에 빠져서 살 때에는,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에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가는 삶, 그것이 성화의 길, Sanctification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4번째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고 나서, 그들이 다 함께 길을 떠난 것입니다. 야곱과, 그의 자녀와 부인들과, 노비들과 짐승들, 모두 같이 제단을 쌓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죄를, 우상을 땅에 묻고, 몸을 씻고 새 옷을 입더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성화를,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사람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기 대단히 힘든 사람 모두가 포함됩니다. 또한 모든 창조물,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 별과 동물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다 저와 여러분의 성화를 위한 동반자들입니다.

내일 저녁 저는 미 감리교 장정에 의해 준회원, Probationary Member가 됩니다. 그 동안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특히 와싱톤 한인교회, 조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의 사랑과 격려가 없었다면 이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다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구원의 준회원, probationary Member들로 살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그 날 우리는 Full Member, 정 회원이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아가다 구출된 영웅 로빈슨 크루소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 교회로 거룩함을 끊임없이 이루기 위해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고 모이는 교회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와싱톤 한인교회, 아니 우리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의 비전은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균형 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드린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함께 그렇게 살도록 우리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사는 길을 알고 계시며, 그 길을 먼저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시며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다 함께 그 길을 떠나라고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