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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구경모 목사

"사랑이 제일입니다"

요한1서 4:7-12
고린도전서 12:29-13:3, 13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따른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성도들이 공통으로 사모해야 할 은사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은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은사이고, 그때 까지도 영원히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게,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진하게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나누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언제나 사랑이 제일입니다.

언젠가 양승훈씨가 지은 "낮은 자의 평강" 이라는 책 속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증거하고,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려하는 자에게, 성경은 '겉옷까지 주라 (마5:4)': 세상은 '맞고소하라!' 구걸하는 자에게, 성경은 '거절하지 마라 (마5:42)': 세상은 '못 본체 하라!' 핍박하는 자에 대해, 성경은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세상은 '같이 핍박하라!' 구제할 때에, 성경은 '은밀히 하라 (마 6:4)': 세상은 '언론에 알려라!'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성경은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 (눅 6:30)': 세상은 '신고하라!' 주는 자가, 성경은 '복이 있다 (행 20:35)': 세상은 '바보다!'

수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늘 사랑이 선포되어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세상은 날로 더욱 각박해지고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영화나 연극, T.V.드라마 속에서, 노랫말 속에서 너무들 쉽게 사랑을 노래하지만 오히려 그 말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설교를 하는 저에게도 '사랑'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큰 도전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말로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주고 존중하기보다는 속박하고 소유하려고만 하고, 사랑을 쉽게 말하면서도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이용하기도 하며, 사랑의 원리 속에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거스르며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또는 사랑과 용서를 노래하면서도 쉽게 실망해서 포기해 버리고, 두 번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단번에 지워버리는 이야기들로 사랑을 설명하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른 종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낭만적인 사랑, 우리가 할 수 있는 본능적인 사랑, 우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실망스럽고 이기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오늘 우리에게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권하면서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속성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I Am Who I Am"이라고 존재를 표현하신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입니다.

요한은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그 분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준 그 사랑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와 화목하기를 그토록 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 편에서 먼저 정하시고, 뜻과 의지를 가지고 행하신 은혜의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능력의 근원이, 바로 이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지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이 사랑을 개인적으로 경험하여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닮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한 연로하신 목사님이 초대되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그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데리고 바다로 뱃놀이를 나갔을 때 갑자기 빠른 폭풍우가 밀려와 해안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바다 경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높은 파도에 밀려 배를 어쩌지 못하고, 결국 배는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Rescue line을 잡은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 중 한 사람에게 그 선을 던져주어야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크리스찬이므로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얻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찬이 아닌 아들의 친구가 예수님 없는 영생을 맞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자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아들의 친구에게 생명선을 던졌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친구를 구함과 동시에 배는 파도속에 밀려들어갔고, 그의 아들은 칠흑같은 밤의 성난 파도 밑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연로하신 목사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이 위대하시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던지시는 생명 줄을 잡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두명의 틴에이저들이 이 목사님께 왔습니다. "참 좋은 이야기인것 같긴 한데, 저는 그 스토리가 그렇게 실제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어떤 아버지가, 어떻게 다른 아이가 예수님을 믿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들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을 까요?"

그러자, 웃음으로 가득 찬 얼굴로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굉장히 비현실적이지?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나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조금이나마 표현해보고자 그 이야기를 했단다. 내가 그 아버지였고, 너희들의 목사님이 바로 내 아들의 친구란다."

사랑받을 자격 전혀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시는 사랑,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꼭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사실, 우리가 쉽게 나타내고,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절대 아닙니다. 나의 계획, 야망, 소유, 이기심, 성격, 취향 등을 절제하며 때에 따라선 포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나 그들의 기쁨을 생각하며 말하며 행동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정과 마음을 헤아리며 포기하지 않고, 받아주고, 용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선물로 받고 사는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용서하고 받아주는 사랑,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며, 함께 나누며, 나아가 전하며 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대하십니다.

오늘의 또 다른 본문, 고전 12장과 13장 속에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가 주어졌으며, 그 각기 다른 은사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눈에 띄는 은사나 교회 안에서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특정한 직분을 사모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영적으로 교만해지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와같이 오해되어진 상황 속에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각자는 모두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고, 눈에 띄는 은사나 존경받는 직분 보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더 중요한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공통으로 사모해도 되고, 사모해야 할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초자연적인 은사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확한 예언이나 신비한 방언, 기적같이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도, 은혜 넘치는 설교나, 논리정연한 신학적인 지식이나 굳건한 교리도, 남들에게 칭찬 들을만한 희생과 봉사, 그리고 약한 자를 세우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사회정의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빠져 버린다면 소용이 없고 울리는 징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듯 주옥같은 설교를 하더라도, 다른 교회가 감히 할수없는 크고 다양한 목회를 펼쳐 가더라도, 아무리 성공적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더라도, 아무리 효과적으로 신앙교육과 제자교육을 감당하고 있을지라도, 아무리 성실하고 드러나지 않게 구제와 봉사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리고 태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사랑이 빠져있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과격한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은사가 될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또 주님 앞에 설 때에, 신앙생활하며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순서가 바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 까지도 영원히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게,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진하게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나누었느냐 하는 것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자 성경공부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간단한 산수 시험을 내 볼테니 암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버스가 처음 정류장에서 3명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2명이 더 타고 1명이 내렸습니다. 다음에는 1명이 타고 3명이 내렸습니다. 다음에는 2명이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아무도 타지않고 3명이 내렸습니다. 다음에는 5명이 타고 2명이 내렸습니다. 마지막 정류장에서 7명이 타고 4명이 내렸습니다. 지나온 정류장 수는 몇개 입니까? 어쩌면 그 분 앞에 설 때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기대했던 예상문제와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실 지 모를 일입니다.

저와 제 가족은 40여년 성실히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는 아버님을 축하해 드리고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한국에 다니러 갑니다. 저희 아버님은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시거나, 교계에 이름을 떨치시거나, 혹은 대단한 목회를 이루신 분은 아닙니다. 500여명이 모이는 교회를 가족처럼 여기며 평생 섬기시다가 은퇴하시는 분입니다. 아버님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신 교우들이 대부분 저희 아버님을, 덕과 사랑이 많으신 분, 선한 목자, 양떼를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분으로 평가해 주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버님은 목회를 통해서 사랑의 은사만이 끝까지 남고 기억되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역과 목회도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야 합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은사일지라도 그것들이 사랑을 따라 이루어지고 열매맺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와 직임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이며, 모든 목회와 사역들이 온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윤활유입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올바로 세워주고, 하나로 묶어주며, 사랑만이 그 모든 일들을 빛나게 해주고, 사랑만이 그 모든 일들을 가능케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 한 기도, 사랑 없이 한 성경공부, 사랑 없이 한 대화, 사랑 없이 한 충고, 사랑 없이 한 목회는 하나님 앞에 서서 정산하는 그 날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한 것, 그래서 나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믿음도 사랑을 통해서 일하게 되는 것 (갈 5:6)"이라며 사랑 부족한, 사랑 빠진, 또 사랑 없는 믿음과 목회와 사역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사랑이 없이 공연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고,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교회의 부흥을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는 다양한 은사와 직임, 수많은 목회와 사역을 감당하면서 정작 중요하고, 끝까지 남을 사랑의 은사는 놓친 채 소용없는 일에 열심인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은사나 직분, 목회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해질 때 만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참 겸손과 인내도 가능한 것이고, 사랑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부흥과 성숙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Lip Service요, 위선이요, 공허한 외침이요, 성경말씀 그대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한 대상이 아니더라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때, 그 사람의 약점과 단점, 그 사람의 실수까지도 용납하고 감싸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십시요. 늘 보던 얼굴인데, 한번도 따뜻한 인사나 미소, 혹은 격려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해 보십시요.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옆에 앉은 이를 사랑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은사로 소유한 사람은 내 성격 그대로를 넘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 은사야말로 가족, 친구, 교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 주시는 능력입니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 라는 책 속에 있는 이상범 목사님의 글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화가는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이 훌륭한 것은 모델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좋은 그림은 모델이 아름답기 때문에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솜씨가 좋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훌륭한 화가는 비록 모델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훌륭한 그림을 그립니다. 좋은 사람이란 좋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지못한 사람도 사랑해서 결국에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능력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지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할 만한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할 마음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인간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도, 돈을 많이 버는 재주도 아닌,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니까요." 사랑의 은사를 사용하는 이들은 훌륭한 화가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해야만 하는가" 라고 묻지 않고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자도 없음을 기억하며 이 짧은 인생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하나님 주신 사랑의 은사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저와 제 가족은 교우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떠나갑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는데 돌이켜보니 감당할 수 없고 보답할 수 없는 교우들의 사랑의 흔적이 저와 제 가족의 맘 속에 너무 많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짧은 만남의 목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알게 해 주셔서, 그 분의 극진하신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의 교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는 이 사랑의 은사를 잘 가꾸고 나누어서 가장 깊은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받은대로 다른 곳에 가서도 그 사랑 나누고 전하겠습니다. 몸은 비록 떠나가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기도로 묶이는 줄 믿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 중에 기억하며 서로의 사랑의 삶을 위해 격려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보다는 오늘 더 많이 사랑해서, 어제 보다는 오늘 더 하나님께 한 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자라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조 시인의 시로 제 설교를 닫고자 합니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한 여류시인의 사랑 고백이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 삶과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두고 떠나는 와싱턴 한인교회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지를 깨달을 수 있게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엡 3;17-19) 지금 이순간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리고 그 사랑의 씨앗을 우리 각 사람 속에 심어 열매 얻기 까지 자라기를 기대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