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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15)-또 하나의 양식"

요한복음 4:31-42


우리에게는 삶을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I. 이 양식은_______________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__________을
이루는 것입니다.

II. (1)예수님께서는 ___________ 의 뜻,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2)_________들도__________을 받아서 거두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3)_____________여인을 통하여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III. 지금은_____________가 되었습니다.

* 함께 나눌 물음들

1. 참으로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살 맛나는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나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그 뜻은 무엇입니까?

3. 그냥 떠밀려 사는 바쁜 인생 속에서 어떻게 하면 또 하나의
양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연속설교의 15번째 주일입니다. 오는 7월부터 Arlington지방 감리사로 섬기게 되면서 희망과 기대와 함께 아쉽고 섭섭한 일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요한복음 설교를 끝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일년반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아마도 5장에서 끝을 맺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계속 살펴 보겠습니다. 낮 12시쯤 되어서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사이에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대화 속에서 여인의 삶의 깊이를 보게 하시고 새로운 인생, 변화된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물에서 길어내는 생수를 넘어서서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과거, 현재 살고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닌 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삶의 현실을 보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며 소외되고 따돌림 받던 이 여인을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메시야, 구원자를 만난 감격을 동네 사람들과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쾌락 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빵 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욕구의 충족 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목숨을 지탱해 주는 먹을 것, 마실 것 외에 또 다른 양식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인생답게 살아가게 하는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 양식이 무엇입니까? 어디서 그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I.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동안 먹을 것을 구해온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권했습니다. “랍비님, 잡수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에게 잡수실 양식을 가져다 드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알듯 말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이 또 하나의 양식은 무엇을 뜻합니까? 양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마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살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이 먹고 마시는 것 외에 우리 인생을 유지하고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또 하나의 양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 합니다. 그저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것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의 양식이 있어야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갑니다. 생존을 넘어서서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또 하나의 양식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 사명을 깨달아 사는 것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직장, 가정, 사회에서 주어지는 책임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 귀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귀한 인생은 우리 인생을 꿰뚫는 내 인생의 사명,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양식이 있어야 우리의 인생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II.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또 하나의 양식, 그분의 삶을 붙들어 주고 지탱해 주었던 그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30대에 끝나신 짧은 인생이셨지만, 그분께서 붙들고 살아가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1)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본래적인 삶의 모습을 잃어버린 죄인된 삶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구원자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은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모두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데 있음을 밝히 보여줍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요한복음 10:1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 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 임하는 생명의 회복을 위하여 외치셨고, 또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땀을 쏟으시고 끝내는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 버리시고 생명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계실 때 뿐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성령을 통하여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또 하나의 양식의 좋은 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삶을 두드리셨습니다. 많은 벽을 뛰어넘어 대화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보게 하시고 새로운 인생, 새로운 양식을 주셨습니다. 남들로부터 따돌림받고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이 여인에게 살 맛나는 인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 생명을 살리는 또 하나의 양식, 삶의 사명은 사마리아 여인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찾은 이 여인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외쳤습니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 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Come and See).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이 여인의 증거는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많은 생명들에게 또 하나의 양식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4:39은 이 여인의 증거를 통해 맺혀진 열매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 동네에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것은 그 여자가 자기가 한 일을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또 여인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께 나타났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함께 머무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그곳에서 지내시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 만은 아니요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 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사마리아 여인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게 하는 이 생명운동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깊은 믿음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성 사람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또 하나의 양식을 소개해 주는 주님의 손과 발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3) 이같은 생명을 살리는 사명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들 역시 또 하나의 양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에로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37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너희가 심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해도 이제 나가서 거두는 수고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한사람은 심고 한사람은 거둔다는 말처럼 어떤 때 심는 사람이 다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심는 사람이 있고 그 결실을 거두어 드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쨋든 이제는 거두어 드리는 때가 다가오는데 제자들도 추수군으로 부름받았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일을 행하는 사명에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은 열두 제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이 사명은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하나의 양식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인생의 사명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일에 동참하는 이 양식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복음증거를 선교사와 열심히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지는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또 하나의 양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도 전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 처럼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사명입니다.

유명한 전도자였던 D.L. Moody 선생님이 하루는 시카고의 어느 길거리에서 전혀 만난적이 없는 낯선 사람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인 이십니까?” 그때 그 낯선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당신 일이나 걱정하십시오(You mind your own business)." 그때 Moody 선생님이 대답했습니다: “This is my business(이 일이 내 비즈니스입니다).” Moody 선생님 만이 아닙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의 business입니다. 참으로 귀히 여기고 가꾸어 가야하는 우리 모두의 business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우리의 이웃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열심히 전하시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기에 우리 교회는 계속 자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온 교우들이 또 하나의 양식,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일을 행하는 이 양식을 전하고 나눌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 처럼 “일단 와 보세요(Come and See)"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일은 오래 믿으신 분이나 새로 믿기 시작한 분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성경에 오래 믿으신 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되는 일에 면제된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 선교에 헌신했던 Hudson Taylor는 새로 믿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전도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한 중국인 목사님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국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 된 한 젊은이를 향해 물었습니다: “젊은이, 구원받은지 얼마나 되었나?” “예 석달쯤 되었습니다.” “그러면 몇 사람이나 그리스도께 인도했는가?”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 배우는 단계에 있습니다.” 중국인 목사님은 청년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기대하시지는 않는다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젊은이가 faithful witness, 신실한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네. 생각해 보게. 초에 불을 붙이면 언제부터 빛을 발하는가? 반쯤 타들어가야 빛을 발하는가?” “아닙니다. 불을 붙이면 바로 빛을 발합니다.” “마찬가지라네. 자네도 즉시 빛을 발하기 시작하게.”

여러분, 이제 막 믿기 시작했든지, 오래 믿었든지, 우리 모두는 증인의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또 하나의 양식을 소유한 백성으로 이 양식을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전도는 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까? 논리는 언제나 반대 논리를 낳기 마련입니다. 전도는 먼저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하면 됩니다. 전도의 결과는 우리 주님께서 맺게 하십니다. 틈이 나는데로 지혜롭게 전하고 초청하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도구로 쓰셔서 그 영혼을 깨우실 것입니다. 부르실 것입니다.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뜻밖에도, 정말 뜻밖에도 우리의 초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초청하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고 전하면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다음 주일 성령강림절을 맞아 시작하는 “일단 와 보세요” 운동에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III.

오늘은 어머니날입니다. 어머니의 희생, 어머니의 헌신을 기리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머니들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체험케 하셨습니다. 또 많은 어머니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또 하나의 양식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세월이 흘러 갈수록 감사한 것은 제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신 어머니의 믿음,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김동길 교수님의 말씀 처럼 아버지의 기도 때문에 예수 믿었다는 사람은 드물지만,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예수 믿었다는 사람은 수도없이 많습니다. 이 어머니 주일을 맞으면서 어머니의 믿음,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 또 하나의 양식을 일깨우는 일에 헌신하십시다. 부모로서, 어머니로서 또 하나의 양식을 물려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일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과 기도로 증거해 간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양식은 우리 가정에서부터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의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인생을 붙들어 주는 또 하나의 양식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사명을 깨닫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정에서 부터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향해서 전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미국 중서부지역 출신 상원의원이 있었습니다. 이 상원의원의 아버지는 목사님 이셨는데, 어느날 연노한 이 목사님께서 워싱톤에 있는 아들 집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목사님이 워싱톤에 머무실 때 하루 저녁에는 남미 출신의 한 외교관이 상원의원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예배에서 큰 감동을 받은 목사님께서는 아들 집에 들어오시다가 이 외교관을 만나자 대뜸 물으셨습니다: “Are you a Christian?(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러자 이 외교관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세를 바르게 하고 대답했습니다. “I am a Catholic(저는 캐토릭 교인입니다).” 그러자 이 노 목사님은 외교관 어깨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이 캐토릭 교인인지 개신교 교인인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외교관은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Good Night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연노하신 목사님께서는 그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남미 출신 외교관은 꽃을 보내오고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입관 절차가 끝나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목사님을 뵈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외교관은 무릎을 꿇고 목사님의 손등에 입을 맞춘 후 꽃다발을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아이 처럼 흐느끼면서 그 방에서 나온 후 말했습니다: “He was the first person who ever asked me a question about my soul(목사님은 내 생애에서 나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질문을 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계신 많은 가족, 친척, 친구들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그분들은 또 하나의 양식을 깨닫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양식,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인생의 사명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