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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1.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14)-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요한복음 4:16-30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_____________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I.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을 예언자로,
뒤에는____________로 알게 되었습니다.
II.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오시면
(1)__________의 참 모습을 알게 됩니다.
(2) 진정한____________의 삶을 깨닫게 됩니다.
(3) 예수님께서 바로______________가 되심을 알게 됩니다.
(4) 그리스도의_____________으로 나서게 됩니다.
III. 예수님께서는 오늘_________가운데,__________속에
오고 계십니다.
* 함께 나눌 물음들
1.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변화되어
갔습니까? 정리해 보십시다.
2. 내 삶 속에 예수님께서 오심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내 삶 속에 오신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함께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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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해야되는 일, 알아야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오늘과 같이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에서는 알아야 할 것들을 바로 선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알아야 할 것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정말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내용들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앎의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식만큼 우리 인생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만큼 우리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만큼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언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인생과 역사 속에 오셨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얼마나 놀라운 변혁의 역사가 나타났는지 증거해왔습니다. 이 변화의 역사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우게 되면서, 예수님을 믿게되면서 많은 교우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삶 속에 오시면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혁의 역사가 여기 저기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일입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요한 4:16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어지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과 여인 사이에 쌓여있는 많은 벽들을 뛰어넘어 먼저 대화의 문을 여신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삶 속에 깊이있게 다가가셨습니다. 이 여인 역시 대화 속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점차 깊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유다의 한 남자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대화가 계속되면서 그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꿰뚫어 보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보통사람이 아니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대화가 좀 더 깊어지면서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예언자의 차원을 넘어서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언자가 오시면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이라고 이 여인이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곧 당신이 메시야, 구원자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리스도 곧 구원자를 만난 여인은 바로 동네에 돌아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내가 한일을 모두 알아 맞히는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면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의 증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게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이 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시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지만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지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그 삶 속에 예수님을 모셔드리지 못한 분이 많으십니다. 예수님에 관한 지식은 상당히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과의 교제, 사귐은 상당한 먼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예수님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진정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삶 속에 임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히브리서 기자가 3:1에서 외친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II.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여인의 삶 속에 오실 때 이 여인의 삶은 놀라운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오시면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내 인생의 참 모습을 알게 됩니다. 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과 생수에 관한 대화를 이어 가시다가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아닌 밤에 홍두깨 격입니다. 왜 잘나가시다가 사생활의 문제로 옮겨 가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같으면 예수님, 그것은 사생활(Privacy)에 관한 것입니다. 그점은 건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예수님의 돌연한 요청에 이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주제를 놓치지 않으시고 계속 파고 드셨습니다: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운 상처를 건드리셨습니다. 이 여인의 아픔을 그대로 들어내셨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에 걸친 결혼 모두가 깨어졌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픔, 이 상처를 들어내셨습니다. 보게 하셨습니다. 아파하는 모습을 기뻐 보시는 새디스트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아픔을 싸매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여인에게서 참 생명이 회복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리도 이 진통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부족, 우리의 실패, 우리의 얼룩이 들어나게 됩니다. 보여지게 됩니다. 다시는 뒤돌아 보고 싶지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꾸미고 포장했던 그 밑바닥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시원치 않은 인생인지를 보게 됩니다. 아직 하나님 앞에서 이 부족한 모습, 이 죄인된 실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회개의 관문을 통하지 않고는 십자가의 사랑을 이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슴 깊이 체험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실상을 보게 하시는 것은 고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싸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부족한데도 맞아 주시고 받아 주시는 그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꾸미고, 덧붙이고, 쌓아 놓는 모습으로 자신을 달래려는 그 허상들을 깨뜨리시기 위함입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시원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맞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게되면서 우리는 진정한 예배의 삶을 깨닫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대화의 주제를 예배의 문제로 바꾸어갑니다. 선생님은 내가 보니 예언자이신데 어디서 예배드리는 것이 합당합니까? 사마리아인 조상들이 주장해 온 그리심산입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예루살렘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자신의 수치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대화의 주제를 예배 문제로 돌렸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적절한 해석 같습니다만,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언자로 보이는 예수님께 자신이 지녀온, 아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궁금히 여겨온 예배 장소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대하여 영원히 기억될 대답을 주셨습니다. 4:21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 참되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한다.” 이제는 예배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디서 예배드리든지 영과 진실로, 우리의 전존재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영으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머무시는 우리의 영이 드려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한가지 예배가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은 공동의 예배 뿐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일날,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로 끝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4시간이, 일주일 168시간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돈을 예배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예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명을 예배하기도 하고, 권력을 예배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무엇이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지, 무엇이 진정한 예배의 삶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오시면 우리는 그분이 과연 누구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그리스도, 구원자 되심을 알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 분이 누구신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음을 들어내셨을 때, 이 여인은 내가 보니까 선생님은 예언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좀 더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 여인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고, 그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다. 내가 곧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여기까지 가야합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어도, 예수는 훌륭한 스승 정도이지 구원자가 아니라고 믿으신다면, 여러분, 교회 나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이 믿음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믿고 예수님께 인생을 거는데서 오는 부담에 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입 맛에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자신의 믿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 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삶을 거시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주장이 성경의 말씀보다 권위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아셔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분을 좀 깊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4)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는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알려야 합니다. 이 기쁜 소식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된 이 여인은 그대로 우물가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 맞히는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의 삶 속에 오셨을 때, 그는 나가서 전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주보의 알리는 말씀을 보시면 내용이 분명치 않은 한 광고가 실린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일단 와 보세요” 여러분, 무슨 이야기 같습니까? 금년에 저희 교회가 세운 중요한 계획 가운데 하나는 앉아서 새로운 교인을 받는 교회에서 나가서 전하는 교회로의 전환입니다. 그동안 전도사역팀에서는 이일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나 혼자만 믿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엄청난 이기주의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5월15일 성령강림 주일에 k시작해서 각 속회에서, 또 각 교우들이 복음을 전할 대상자를 기도하는 가운데 선정한 후 우리는 함께 기도해 갈 것입니다. 교회 설립기념 주일 즈음까지 부지런히 권면해서 초청할 것입니다. 한번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많이 기도해 주시고, 빠짐없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III.
그리스도라는 메시야가 이 다음에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이 다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너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다음에도 오시겠지만, 지금 여기에 오시고 계십니다. 이 아침 이곳에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를 찾아오셔서 변화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모셔드릴 때는 내일이 아닙니다. 오늘입니다. 이 다음이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New York에 있는 Brocklyn Tabanacle 교회를 섬기시는 Jim Cymbala 목사님께서 쓰신 Fresh Faith(푸른 믿음)이라는 책 속에 나오는 아밀라 라는 여인의 이야기는 바로 현대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욱 가슴 아픈 그러나 놀랍고 감사한 이야기였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제 설교를 줄입니다.
Jim Cymbala 목사님 방에 찾아온 아밀라 라는 이름의 여인은 낮고 탁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빈민들이 사는 허름한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일곱 아이 중 셋째였는데 아버지는 큰 호텔의 주방에서 일했고, 부모님 모두 푸에르토리코 이주민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 여인의 추억은 “싸우고 소리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 주정뱅이였고 가족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이 여인이 처음 아버지와 맞선 것은 9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두 분이 소리지르며 싸우자 아밀라는 나서서 대들었습니다. “엄마를 때리면 난 아빠를 죽여버리겠어요!” 그러고는 어머니께로 돌아서서 계속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빠를 피해 제 방에 가 주무세요. 제가 엄마 방에서 잘 테니까요.” 아밀라는 그것이 상황을 호전시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일생의 최대 실수였습니다. 그날 밤, 부모님의 방에서 아버지는 그녀를 겁탈했습니다. 그녀가 겨우 4학년때였습니다.
얼마 있다가 또 집안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다시 한 번 엄마를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그 흉측한 일이 또 벌어졌고, 그녀가 간신히 내뱉은 말은 “아빠, 안 돼요, 난 이게 싫어요”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뭐, 싫어? 그럼 엄마를 또 두들겨 팰까?”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녀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너 엄마한테 아무 소리도 말아라. 만약 한마디라도 한다면 네 어미를 죽여버릴 테니까.”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습니다. 가정 생활이 이 지경이니, 학교 생활은 더욱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또 한번 아버지가 밤에 부르면, 드라이버나 칼을 침대 밑에 두었다가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무기를 사용할 때가 되었을 때는 용기를 잃었습니다. 밤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굴복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이고 지나고 열 여섯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밀라는 형제들이 모두 그랬듯이 가능하면 빨리 집을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녀에게 탈출구는 동네에 사는 리처드라는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동급생이었는데, 결혼해서 먼 친척이 빌려준 집에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십대 남편과의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남편을 가까이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당한 악몽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남편은 그녀에게 마약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냄새를 맡는 정도였으나 점점 더 깊이 빠져 코카인, 그 다음에는 헤로인 주사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흥분시키고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1년 남짓 지나 끝났습니다. 그녀는 다른 남자들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이 남자, 저 남자와 어울리면서 24시간 시름을 잊고 무엇엔가 취해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별의 별 일을 다 했습니다. 신발 공장, 빵집 등 배운 것이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대화해 주고 거처를 제공해 주는 남자라면 누구에게든지 몸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약까지 제공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꾸준히 일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가 바텐더 교육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지만 일자리는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한 곳에서 바텐더가 아니라 심부름꾼으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술집은 스트립쇼를 벌이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춤추는 여자로 일하면서 4년을 보냈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내가 인생을 망쳐 버렸구나. 이건 내가 정말 원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러다가 길버트라는 친구를 만나고 나서 그가 좋아서 그와 교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춤을 추다가 중간에 그냥 기절해 버렸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임신 중이었습니다. 아기 아빠는 아기에게 관심이 없었고, 좀 있다가 그녀의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녀는 혼자 남았고, 임신한 몸으로는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전기 요금을 못 내 전기도 끊겼습니다. 그녀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죽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정맥을 끊든지, 강에 뛰어들든지... 면도날을 꺼내 손목을 그었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끊을 만큼 깊게 긋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굴욕스러웠지만 어머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에 아버지는 계속 집에서 난동을 부리고 경찰서에 불려 가고 하다가 아예 집을 나가 버린 후였습니다. 때가 되어 아밀라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기를 길이 막막했습니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그녀는 다시 전에 하던 일을 했고, 대신 어머니가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한판 싸우고 아파트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18층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뛰어내리려니 무섭고,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가시는 성당에 가서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녀는 계속 떨고 울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제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이건 모두 당신 책임입니다.”
한편 여동생의 남편은 과거에 엉망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동생 카르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제부는 그녀 가족과 어머니를 교회에 초대했고 그녀는 선선히 응했습니다. 그날 목사님이 강단에 나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그녀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과거가 어떻든지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용서하시고, 지나간 생애를 과거로 덮으십니다.”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 처지를 하나님이 어떻게 아셨을까? 제부가 목사님께 다 불어 버렸을까?” 온갖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갑자기 그녀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솟아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회중에게 기도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하셨을 때,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한 여인이 따라오더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밀라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다음 주일 다시 교회에 나갔는데, 그 때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님의 평강”이었습니다. 그날 그 부목사님이 그녀에게 심발라 목사님을 한번 만나 보겠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심발라 목사님을 만난 아밀라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무슨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저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솔직히 여기 앉아 있으면서도 저는 자신이 더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고백해야 했는지 모르겠군요. 하여튼 이제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목사님은 죄와 사단에게 갈기갈기 찢긴 불쌍한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의 눈길은 마치 “이제 그 다음은요? 저는 구제할 도리가 없나요? 저를 그냥 거리로 쫓아 버리고 싶으신가요? 아니면...?”하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심발라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아밀라, 이제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들어가서 하나님께 능력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깨끗케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당신을 이곳에 부르신 이유는 그 진흙탕에서 건지시고 갈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나와 함께 들어갑니다. 온 회중이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목사님은 마이크를 잡고, 하나님께서 오늘 밤 특별히 한 사람을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 아밀라는 회중 앞에 섰습니다. 목사님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녀가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원한다고만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며 함께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3)”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아밀라는 집에 돌아가 아들 비니를 돌보고 있는 어머니께 외쳤습니다. “엄마!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제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렸고 저는 구원받았어요! 그분이 나를 깨끗이 씻으셨어요! 저는 이제 바뀌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걱정거리 딸이 드디어 올바른 사람이 되려는가? 그날밤 그녀는 난생 처음을 잘 잤습니다. 깨끗이 씻겼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 악몽도, 마약도, 자학도, 낙심도 사라졌습니다.
부목사 내외는 아밀라를 자기 집에서 모이는 월요 제자훈련반에 참여시키고 돌보았습니다. 그녀의 변화는 현저했습니다. 그녀는 달라보였고, 눈에는 생기가 돌았으며, 옷차림도 단정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죄로 얼룩진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경건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법률 회사의 비서로, 다음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취직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성가대에 들었습니다. 일이 년 후에 Brooklyn 교회가 방송국 공연장을 빌려 연주회를 크게 열었을 때 그녀는 간증을 했고, 이어 목사님 사모님이 작곡한 “보혈의 능력으로 나 정결케 되었네”가 연주되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흐르는 보혈
정결케 하는 능력 있도다
그 보혈에 구원의 능력 있도다
그 보혈로 나 정결케 되었네
흰 눈과 같이 되었네
지금 내 마음 깨끗하구나
예수의 보혈로 참 자유 얻었네
성가대가 노래하는 동안에 대형 스크린에 아밀라의 사진들이 하나하나 계속 비쳐졌습니다. 죄로 인해 무너진 곤고한 삶의 단면들이 화면에 비치다가 다 사라지고, 끝으로 흰 가운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6000여 관중은 모두가 울먹였습니다.
그녀는 구원받은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치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교회의 한 남성을 알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여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정에 사내 아기를 주셔서, 비니와 함께 네 식구가 된 그들은 1987년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거기서도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심발라 목사님 친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십니다. 지금도 내 삶 속에 오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달라집니다.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새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원히 목마름이 없는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오고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나의, 우리의 그리스도,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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