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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최지훈 전도사

"그리스도인의 용기"

요한복음 14:1-14

오늘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과 마음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매일의 삶 앞에서, 또 갑자기 생각지 않게 찾아온 큰 어려움 앞에서 삶을 붙잡아주는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인간은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또한 우리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이 사회의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심한 불안은 많은 경우 그것은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심장질환이나 고혈압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그 원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두려워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근심과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조여 매고 꽃 피우지 못하게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사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전들을 감당하고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으며 살기 위해서는 분명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존경받는 감리교 선교사였던 E. Stanley Jones 박사는 “가시로 변화된 인생 (Transformed by Thorns)"이라고 하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속 사람은 믿음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졌지 결코 두려움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두려움이라는 곳은 내게 낯설은 지역이다. 그러나 신뢰는 나와 친근하다. 삶이라고 하는 기계에 있어서 믿음은 기름과 같으나 두려움은 모래와 같도록 나는 그렇게 창조되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질 때 나는 두려움과 의심과 불안을 가질 때 보다 더 잘 살아간다. 걱정과 두려움 안에서는 나의 존재는 숨을 쉬지 못하고 허덕이게 된다. 그러나 믿음과 자신감속에서는 나는 마음껏 숨을 들이마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걱정으로 사는 것은 현실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안과 근심에서 건지고 참다운 믿음과 용기로써 살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한계를 안고 사는 우리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만이 우리를 불안에서 해방시켜서 용기를 가지게 할 수 있는데 그 진리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용기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철학적인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죽으신 지 사흘만에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사셨습니다. 인류의 새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부활의 증인이었던 사도들의 증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입니다.

사람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망하고 없어지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이 땅위에 사실 때 사람이 당하는 아픔과 억울함, 실패와 저주를 다 경험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버림을 받으시고 결국에는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완전히 망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사흘 때 되던 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절망과 허무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은 갑자기 길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뵈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뜨거워지고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던 불의의 세력이, 허무와 사망의 힘이 그들 눈앞에 서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안에서 무너진 것을 보고 그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며 그것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능력에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부활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불안에 빠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이 있다.” 그리고는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 또한 주님이 가신 부활과 영생의 길에 함께 참여하시게 하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듯이 그의 부활도 우리를 위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지 죽음 뒤의 부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땅을 사는 동안에도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허무와 실패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삶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4:8-10)...우리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6:10)” 로마서 6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이 부활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로써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의 손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진 후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갈 때부터 그의 앞길은 내리막을 달리는 듯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마침 요행히 자신의 도움으로 왕의 술 관원이 출옥하고 복귀하게 되었을 때 혹시 희망이 생기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바로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들어가 있던 한 종이 하루아침에 이집트를 다스리는 총리대신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나라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도 아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 부인 사라는 아흔 살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희망이 없어져 버린 상황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어져 버린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는 백 세가 되던 해에 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갑자기 그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에게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이삭을 돌려받은 아브라함은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 영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이 되던, 아니면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날이 되던 간에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생명으로 나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협하는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부활을 향한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사는 그 구체적인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도마가 묻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곧 부활에 이르는 길,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태평양의 한 섬에서 길을 잃은 미군 병사가 이 마침 그 섬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I am the way." "내가 길입니다. 나를 따라 오십시오.” 그 사람이 인도하는 대로 함께 가서 결국은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나 희망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나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시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믿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부터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 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사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 안에 있는 우리는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고 용기를 가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믿음으로 어두움 뒤의 빛을, 절망을 이기는 소망을, 십자가 뒤에 부활을, 그리고 죽음 뒤에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용기이며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에 보면 스데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서 여러분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합하셨습니까? 복음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처럼 믿음은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4: 10)”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14:12)”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심지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은 역시 이렇게 썼습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한 주님의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결단코 주님의 부활하심에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용기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참 용기를 가지고 사는 길은 예수님을 믿고 그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삶을 고난과 희생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근본이 참 사랑입니다. 참된 용기입니다. 참된 지혜입니다. 요한 1서 4장에 보니까 이런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4:13-19)” 예수님은 참 사랑이시며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던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과 나의 일 가운데 나타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입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을 왜 하며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내 삶을 통해 나타나시도록 하는 분명한 목적과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곳에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가는 선교사입니다.

더욱 실제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용기를 가지고 살려면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기도하셨고 다니엘도 매일의 기도의 습관을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함으로 주님과 교제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갓난아이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분명 고난의 때도 있었고 어둠의 기간도 있었으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 거기서 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때까지 인도하여 주신 손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패배가 아닌 최후의 승리와 부활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모습입니다.

한국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한동대학교의 이야기를 실은 ‘갈대상자’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무모해 보였던 학교 출발의 이야기에서부터 기독교대학이라는 정체성을 공격하는 여러 세력과 싸우며 무려 40여 차례나 되는 고소 및 고발, 그리고 결국은 총장, 부총장이 구속되는 일까지 김영길 총장 부부가 겪은 일은 사람이 어떻게 과연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학생 정원을 제한하고 대신 국내외 2만여 명의 후원자들이 대학 후원금을 내는 ‘갈대상자’라는 독특한 모금방식으로 연간 20억원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동대학교는 지금 99년에 1회 졸업생을 배출한지 불과 5년만에 정직한 교육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학교로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점 인플레이션도, 부풀려서 발표하는 취업률도 없습니다. 무감독 양심 시험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위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교수진과 학생들이지만 매년 “포항 한동대 대기업 무더기 입사”라는 뉴스를 쏟아냅니다. 기업체 취업담당자들 사이에서 ‘한동대학교 학생들이면 믿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김영길 총장의 부인이며 “갈대상자”를 쓴 김영애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나는 길목 길목마다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그분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난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감히 외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되어갔다...나는 한동대 곳곳에 가득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한 자로서 그분을 증거하는 증언대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우리의 잘못과 실패, 두려움, 고통스러운 경험들, 그리고 작은 상처들까지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도록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

참으로 놀라운 부활 신앙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주님과 믿음으로 나의 삶을 합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함께 교제하는 가운데 부활을 바라보는 믿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