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Mission Statement
History of KUMCGW
Worship Services
Directions to Church

Korean Ministry
English Ministry
Children's Church
Youth Church

Profile and Photo

Photo Album
Sharing


Sharepoint Home
Contact Information
Resources and Links
Connectional    Churches
Korean Bible Study


Archive | Home | audio video-56K video-230K

2005.04.17.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13)-생수를 주십시오

요한복음 4:1-1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다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I. 예수님께서는_________________에 있는________마을
우물가에서 여인과 대화하셨습니다.

II. (1)예수님께서는 _____________대화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 대화는 많은___________을 뛰어넘는 은혜의 역사
였습니다.
(2)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
__________인 세계가 전해졌습니다.
(3)___________의 선물을 알고__________이 누구신지를
알면_____________를 얻을 수 있습니다.

III. 가장 중요한 만남은________________와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그 사람 속에서___________에
이르게 하는 샘물을 주십니다.

* 함께 나눌 물음들

1. 우리 삶 속에서 갈증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육체적인 목마름을 넘어서는 영적인 목마름을 경험한 적이
있으십니까?

2. 내 삶 속에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깨달으셨습니까?
어느 길로,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함께 나눕시다.

3.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

요한과 더불어 라는 제목 아래 10권의 요한복음 설교를 출판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92년 4월26일의 일입니다. 이지연 집사님이 주일예배에 참석키 위해 아이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강남 YMCA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집사님은 요금을 지불키 위해 만원짜리를 기사에게 건넸습니다. 기사는 주머니를 뒤지다가 잔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차에서 내려있던 집사님은 아이들에게 잔돈을 빌려 요금을 지불하였습니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기사로부터 만원을 되돌려 받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집사님은 사기당한 것과 같은 기분으로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전 주간에 있었던 ‘신앙대강좌’ 생각이 났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아침에 나에게 무소유를 훈련시키는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마음이 곧 평강을 얻었습니다. 아이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근처 가게에서 잔돈을 바꾸는데, 아이가 소리를 쳤습니다. “엄마! 아까 그 택시 아저씨가 길 건너편에서 창 밖으로 만원을 흔들며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가 보세요.” 그러나 집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다, 저 아저씨는 그 돈을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다. 저 분은 만원보다 더 소중한 평강을 내게 주셨단다.” 그리고 집사님은 길을 걸으면서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분이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이라면 오늘을 계기로 주님을 믿어 저분도 이 평안을 얻게 하소서!”

여러분, 인생을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만원 고스란히 날린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냥 떠나간 택시 기사를 원망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만원을 잃었지만 그 만원에 좌우되지 않고, 지배 당하지 않고, 그 만원을 통하여 마음의 평강을 재 확인 한 것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원을 갖고 떠난 운전기사를 오히려 고마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다 줍니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깊고, 흔들림이 없는, 감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I.

오늘 우리는 요한 4:1-15에 기록된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가운데 널리 알려지고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상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전처럼 귀히 여겨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실 때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팔레스타인의 남북의 거리는 약 200km, 125마일 정도 되었습니다. 유다에서 갈릴리로 돌아갈 때 사마리아를 거쳐서 직접 가면 3일 정도가 걸렸고, 사마리아를 피해서 돌아가면 6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갈릴리로 돌아가시는 길에 수가 라는 동리에 이르셨습니다. 이 마을은 유서가 깊은 곳으로 야곱이 판 우물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에게서 은 일백개를 주고 사들인 땅이며, 훗날 요셉의 시체가 매장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셔서 잠시 쉬셨습니다. 낮 12시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오게 되면서 예수님은 이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처음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함으로 시작된 대화는 점차 삶의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져 갔습니다. 이 대화는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도 노출되게 했습니다. 그 여인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문제도 논의되었고, 마침내는 동네로 돌아가 메시야, 구원자를 만났다고 외치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대화 속에 담겨있는 힘, 주님과의 대화 속에서 일어나는 인생 혁명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II.

이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주시는 주님의 멧세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이 생명을 살리는 대화가 예수님에 의하여 시작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시니까 먼저 시작하신 것은 당연하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당시의 상황이나 논리를 생각해 보면 이 대화의 시작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 여인에게 말씀하셨다는 이 사실은 여러 장벽을 뛰어넘는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먼저 이 대화는 당시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세상을 떠난 후,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는 주전 720년 앗수르라는 강대국에 의해 북왕국이 먼저 멸망하면서 더욱 골이 깊어졌습니다. 북왕국을 정복한 앗수르가 그 땅에 여러 민족을 이주시켜 살게 함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혈통은 많이 뒤 섞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남왕국 유다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성전을 다시 지을 때, 함께 짓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그 이후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감정적인 대립은 더욱 격화되어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대로 유대인들을 향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이 여인은 유대인인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또 이 대화의 시작은 유대교 랍비, 선생과 여인사이의 벽도 뛰어 넘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길에서 여인들과 말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습니다. 아내일지라도 말하지 말라고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랍비들은 여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면 아예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에 벽에 부딪치거나 도랑에 빠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남녀의 벽, 이 차별의 벽을 주님께서는 먼저 뛰어 넘으신 것입니다. 이 장벽에 매이지 않고 여인과의 대화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 벽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길러 오는데, 대낮에, 정오경에 물을 길러 온 것을 보면 이 여인은 따돌림을 받는 여인 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죄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소외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대화의 문을 먼저 여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죄인이라고 제쳐 놓은 이 벽, 이 장벽을 뛰어 넘어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중, 삼중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이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편견의 벽, 차별의 벽, 소외의 벽을 무너뜨리시며 이 여인의 인생 속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여기 앉아 있으시게 된 이면에는 주님께서 먼저 벽을 무너 뜨리시고 우리 가운데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인생인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당하고 실망한 좌절의 벽, 혹은 다른 종교의 벽, 혹은 자신을 믿고 쌓아온 성채라는 벽, 재물과 출세에 대한 집착의 벽을 꿰뚫고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먼저 오셔서 주님과의 대화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2) 이어서 주님께서는 이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 주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보이는 세계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의 문을 열어 주고 계십니다.

이 여인이 물을 좀 달라는 예수님의 요청에 유대사람인 당신이 어떻게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반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했을 것이고 그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4:10).” 이 말씀과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와 이 여인이 이해하는 생수 사이에 서로 거리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여인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물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은 보이는 세계, 만져지는 세계를 말하는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를 말씀하십니다.

이같은 차이는 3장에 기록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 태어나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이는 것, 만져지는 세계만을 알고있는 니고데모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의 존재와 귀중함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면 이 보이지 않는 세계, 이 영적인 세계를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보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유한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보이는 것에 매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도, 세상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입니다. 참으로 가치있는 것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썪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 진정한 의미와 보람을 안겨다 줍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만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만원을 주었어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 이 내적인 자아, 영적인 성숙함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명예와, 이 세상 행복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믿음, 이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눈이 열려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치체계에 변화가 와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변화를 가져다주십니다. 오늘도 이 눈을, 이 perspective를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이 개안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영원을 바라보는 눈,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3)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또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4: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물의 물은 마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물,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주님께서는 이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생수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의 길을 열어줍니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생수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을 내어 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 혹은 영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드려지는 것은 믿는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목마름을 모릅니다. 영적으로 풍성하고 넉넉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목마름이 없는 참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생수를 부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삶 속에 오시면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참으로 풍성한 생명, 영원을 가슴에 품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여기 좋은 샘이 있다고, 여기 생명의 샘이 있다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이 샘에 오면,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면 생명수 샘물을 얻을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III.

우리 인생에는 많은 만남들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필연적으로 갖게되는 부모님과의 만남, 자라면서 갖게되는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인생을 함께 살아갈 배우자와의 만남, 하나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 처럼 우리 인생에 뿌리깊은 영향을 미치는 만남은 없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맛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안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을 주십니다. 이 샘물을 마실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진정한 가치의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쌓아도 쌓아도 여전히 모자람을 느끼는 갈증에 매인 인생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어린 생명들을 양육하시는 부모님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생수를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목마름이 없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양육해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이 생수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 생수를 맛보며 변화된 인생,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생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은 레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복의 무지개를 찾아다니며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 즐기는 성생활이나, 술 취해 기분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행복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생수를 맛본 사람의 고백입니다. 목마름의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지은 사람의 간증입니다.

Richard Blanchard라는 사람은 오늘 본문 말씀을 소재로 “Like the Woman at the Well(우물가의 여인처럼)”이란 복음성가를 지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후렴)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화 세상것과 난 비길 수 없네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아 주시리

문전도사님께서 찬양하실 때 조용히 묵상하시면서 우리도 그 찬양에 동참하십시다. 우리의 삶을 생수로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