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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7.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10)-물과 성령으로
요한복음 3:1-15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I._____________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거듭나다”의 의미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_________________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II.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___________과
_________으로 거듭납니다.
(1)____________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2) 물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등으로 이해합니다.
중요한 것은___________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III.오늘 그리스도께서____________에 살아계십니까?
* 함께 나눌 물음들
1. 부활절과 연관된 가장 뜻깊었던 경험을 나눕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 어렵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 삶 속에 가져다 준 경험과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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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쁜 날입니다. 오늘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죽음의 권세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죄의 권세도 깨뜨려졌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승리를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승리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생명에 삼킨바 되었습니다. 미움은 사랑에 삼킨바 되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살맛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는 빈무덤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어두움의 승리는 사흘, 곧 잠시 뿐임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전통적인 인사가 있습니다. 먼저 영어로 말씀드리면, 한사람이 “Christ is risen!" 하면 상대방이 화답합니다. "He is risen indeed, Hallelujah"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면 그 인사를 받는 사람은 “주님은 과연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로 회답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도 이 인사를 서로 나누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과연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인생 길에 새로운 생명,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함께 참여함으로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 처럼 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새 생명의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오셔서 이 새로운 생명, 거듭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오늘도 우리를 거듭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지난 주일과 같은 본문인 요한복음 3:1-15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먼저 지난 주일 드린 말씀을 잠깐 복습 해보십시다. “거듭난다”는 말에는 세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시, 두번째로,” 둘째는 “철저히, 근본적으로,” 셋째는 “위로 부터, 하늘로 부터”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말은 조금 더 착해지거나,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인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위로 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거듭남이 인간에게 필요합니까?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고.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그분의 주권이 우리 삶 속에서 회복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때 우리는 참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먹고 입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 참으로 살맛나고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될 때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지막 대적인 죽음을 정복하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난 생명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II.
이제 오늘 말씀의 주제를 살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How? 어떻게 하면 거듭난 존재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도 예수님께 같은 질문을 여쭈었습니다. 3:4를 보면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또 3:9을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본문 3:5의 말씀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라.” 여러분,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이란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의미하고, 성령이란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수양이나 노력의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도우시고 일깨우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듭남의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에 우리는 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양한 해설이 제기 되는 것은 물에 대한 이해입니다. 종교개혁자 John Calvin은 이 물은 성령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7:37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생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받게되면 성령을 뜻한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물과 성령으로”라는 말씀이 “성령과 성령으로”라고 이해되기에 좀 부자연스럽습니다.
Ironside 같은 목사님은 이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예배소서 5:26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성서학자들은 베드로전서 1:23의 말씀,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않을 씨, 곧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구절에 기초해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Augustine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물을 세례로 이해합니다. 베드로전서 3:21의 말씀을 보면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으로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세례의 의미가 일종의 예식의 차원으로 전락되어서 문제이지 이 세례에는 참으로 거듭남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6:3 이하에서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게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은 세례를 뜻합니다. 그러나 세례예식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세례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여러분, 오늘 2부와 3부예배 시간에 13명의 성인들과 7명의 청소년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왔던 우리의 옛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생명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이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준비없이 세례를 받기 때문에, 세례를 받고도 자신이 거듭났는지 안났는지도 모릅니다. 꼭 무슨 뜨거운 체험을 해야만 거듭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기 전에도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아직 세례예식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리스도를 삶 속에 모셔드림으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셨으면 그분은 거듭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게되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결심, 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 위에서 우리는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세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물을 세례로 이해하는데 대하여 동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3:14 이하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들이 나와서 많은 사람을 살상한 적이 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아 놓으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구리뱀을 바라보면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구리뱀이 무슨 특효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을 때 그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우리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게 됩니다.
III.
2000여년 전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을 열고 살아나셨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 삶 속에서도 부활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오늘 내 인생 속에 살아계신가?의 문제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느끼며 변화된 인생, 참으로 용기있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지난 3월11일 Atlanta 법원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켜 판사를 포함, 네 사람을 죽이고 도주했던 Brian Nichols가 경찰에 투항하게 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그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범인은 소유한 총기로 저항하지 않고 흰천을 내밀어 투항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경찰에 투항하게 된 이면에는 범인에게 인질로 잡혀 자신의 아파트에서 7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를 설득한 Ashley Smith라는 여성의 믿음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3월12일 새벽 2시경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총을 꺼내들고 위협하는 Brian Nichols에게 끌려 자신의 아파트로 갔습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성폭행하고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치솟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범인은 그녀를 침실에서 접착 테이프와 전깃줄로 묶고 욕실에 끌어다 앉혔습니다. 범인은 타올로 그녀의 머리를 덮어 눈을 가린 후 샤워를 하고는 T-셔츠 있는 곳을 말해주자 가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침실로 들어와 묶을 것을 풀어 준 범인과 그녀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내일 아침 그녀의 딸을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도 했고, 조금 이야기가 진전되자 Rick Warren 목사님께서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의 33장 첫 단락을 읽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단락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세상은 위대함을 권력, 소유물, 명성, 지위로 측정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진정한 성공은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범인과 이야기하면서 Ashley는 4년전 자기 남편이 싸우다가 칼에 찔려 그녀의 팔에 안긴 채 죽어간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또 그가 법원에서 도주해서 여기까지 오게된 것도 기적임을 말하면서 그 이면에 분명히 뜻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당신이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 많은 죄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경찰에 붙잡히기 보다 당신 총에 맞아 죽고 싶다고도 이야기한 범인을 Ashley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경찰에 투항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팬 케이크를 구어서 아침식사까지 제공한 Ashley에게 범인은 점차 마음을 열었습니다. Cell Phone을 갖고 Ashley에게 딸을 만나러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떠날 때는 돈을 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딸을 만나기 위해 나오면서 경찰에 연락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그녀의 아파트를 에워 쌌을 때 범인 Nichols는 흰천을 흔들며 순순히 투항했습니다. Ashley는 TV 인터뷰에서 “Nichols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며 나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했다”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Ashley 자신이 걸어온 인생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10대 때에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서 1년 동안 보호관찰 처분을 받기도 했고, 음주 운전, 과속, 폭행사건에 연관되어 거칠고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남편이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난 후 5살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간호 보조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Ashley는 이번 일을 통하여 언론으로부터 영웅, 챔피온, 천사의 칭호를 들으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출판 교섭은 물론 영화제작 제의까지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던 두려움과 공포의 7시간, 이 여성이 이를 극복한 용기와 지혜의 원천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안에서 얼룩진 과거를 접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주님을 믿는 믿음,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위기를 극복하고 한 생명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은 과연 다시 사셨습니다. Ashley Smith 여인이야말로 Proof of Easter,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거듭난 인생, 살맛나는 인생,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과연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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