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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6.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8)- 성전을 성전답게"
요한복음 2:13-25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즈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_____________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I. 성전 뜰에서 소, 양, 비둘기 같은___________을 파는 사람과
을 바꾸어 주는 사람을 내 쫒으셨습니다.
II. (1)성전이 인간의_________으로 짓밟힘을 참지 못하셨습니다.
(2)__________하는 집의 모습을 잃어감에 분노하셨습니다.
(3)이 일을 행하시는 표징으로_________을 말씀하셨습니다.
III.오늘의 교회가 정화됨은 작은___________이 되는__________자신
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함께 나눌 물음들
1. 오늘 주님께서 보실 때 분노하시게 되는 교회의 모습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왜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합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3. 성전된 내 몸, 내 삶 속에서 어떤 것들이 고쳐져야 합니까?
어떤 모습이 정결케 되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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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널리 알려졌던 영적 지도자의 한사람이며 목회자였던 AW Tozer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이야기 하는 하나님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한없이 좋으신 하나님 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도 그저 용서해 주시기만 하는 하나님, 그러기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도 없으시고 더 이상 경외감도,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도 필요없는 그런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찬양이 모든 교회들에게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이 과연 성경이 말해주는 하나님이십니까? 이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까?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그저 받아 주시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성경의 하나님이십니까? 그런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과연 정확하고 정직한 하나님 이해입니까? 꾸짖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은 과연 구약으로 끝나신 것입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I.
오늘 함께 봉독한 요한복음 2:13 이하의 말씀은 좋기만 하신 예수님이 아닌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유대사람들의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습니다. 성전에 이르셨을 때 성전 뜰에서는 제물을 파는 사람,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법석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소나 양, 비둘기 같은 제물은 본인이 기르던 것 가운데서 직접 가져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먼 길을 걸어오는 동안 이 제물이병이 들든지 아니면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제사장들에게서 판정을 받으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길이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제사장들의 검사를 받은 제물들을 성전에서 판매했습니다.
또 돈을 바꿔주는 일 역시 순례자들의 편리를 위하여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각처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성전에 제물을 드리러 오면 성전세를 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세는 자기들이 사용하는 그 지역의 돈이 아니라, 반드시 히브리 돈으로 내어야 했습니다. 그 환전의 필요성 때문에 돈을 바꿔주는 일이 성전 뜰에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쫒으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 등 제물과 함께 성전에서 내쫒으셨습니다. 또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고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걷어 치워라.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공관복음서를 보면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이 사건이 예수님의 전도활동 기간의 마지막에,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그 주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전도활동 초기에 일어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학자들 사이에는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이 성전 정화 사건이 두 번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사건은 한번 있었는데, 요한복음이 갖는 특성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하기 위하여 복음서 앞에 기록하겠다는 견해입니다. 어쨋든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온유하시기 이를데 없으신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며 채찍을 드셨습니다. 양과 소를 성전 뜰에서 내 쫒으시며 돈 바꾸는 상을 들어 엎으셨습니다.
II.
이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도전의 말씀이 있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화를 내셨습니까? 성전이 인간의 탐욕으로 짓밟히는 것을 주님은 참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처음 미리 검사받은 제물을 판매하거나 돈을 바꾸어 주는 일은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허락 하에 이루어져 온 이 비즈니스는 점차 폭리를 취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악덕 비즈니스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돈 바꿔주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순례자들이 성전세를 내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시작된 이 일도 그 수수료로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는 악덕 비즈니스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영국의 성서학자에 의하면, 당시 성전세를 통한 성전의 연수입이 75,000파운드 정도였는데 반해, 환전 수수료는 9,000파운드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은 불의와 횡포를 그대로 넘기실 수 없으셨습니다. 성전의 뜰이 탐욕으로 짓밟히는 것에 침묵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발하셨습니다. 채찍을 들어 내쫒으시고 상을 들어 엎으셨습니다. 제물인 양과 비들기들을 내어 몰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도하는 장소의 거룩함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성전인 예배당, 아니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과연 주님께서 보시기에 괜찮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주님께서 채찍을 드실 수 밖에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 안에도, 이땅의 이민 교회 안에도 인간의 탐욕은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세상에서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고 직함에 매여있지는 않습니까? 교단별로 배분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합니다만, 연합집회가 있으면 무슨 대회장이 그렇게 많습니까? 대회장 한사람이면 되었지 거기에 대표 대회장, 상임 대회장, 명예대회장 등 왜 그렇게 복잡합니까?
교회가 경제적인 힘을 지니면서 내부 치장과 탐욕을 채우는데 매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들이 무슨 차를 타는지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배당을 최고급 재료로 지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까? 좀 허술하게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당을,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안받으십니까? 또 성도 여러분들, 교회 안에서의 타이틀이나 직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세력을 규합하고 과시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까? 섬기라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 왜 그렇게 섬김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버릴 것은 속히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채찍을 드시기 전에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상을 뒤엎으시기 전에 고쳐야 합니다.
(2) 둘째로 주님께서 분노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집이 장사꾼의 소굴로 바뀐 것을 견디실 수 없으셨습니다.
장사판이 벌어진 성전의 뜰은 본래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원래 예루살렘 성전은 몇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가는 가장 거룩한 지성소, 매일 제물이 드려지는 성소,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는 제사장의 뜰, 남자들이 들어 갈 수 있는 남자들의 마당, 그 뒤에 이어지는 여자들이 들어가는 여자들 마당, 그리고 그밖에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여기에 진을 치고 법썩을 떠는 바람에 이방인들은 기도하러 와서도 제대로 기도드릴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장소가 그 모습을 잃어가는 현실 앞에서 가만히 계실 수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집의 모습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늘도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의 사역 속에서 기도는 우선 순위를 지녀야 합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는 물리쳐야 합니다. 기도가 사라진 교회는 그 생명이 끊어진 교회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무릎에 의하여 그 생명이 유지되어 갑니다.
지난 주 뉴욕에서 모인 우리 한인연합감리교 Partner 교회 협의회 모임 기간 중 New York시 주변의 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맨하탄에 있는 Time Square 교회의 기도회 모임에 참석했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회가 시작되기 10분 전쯤에 들어갔는데 벌써 자리가 상당히 차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제단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회가 시작되자 열심히 찬양을 하고 통성기도를 드렸는데, 그 통성기도가 20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통성기도의 원조라는 한국교회가 무색할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인종이 모여서 뜨겁게 예배드리는데 그들은 기도로 뭉쳐져 있었습니다. 기도는 바로 Time Square 교회의 생동력있는 사역의 열쇠였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기도의 처소가 짓밟힐 때 주님은 침묵하실 수 없었습니다. 장사꾼들을 몰아내시고 기도의 처소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기도의 처소를 되찾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도 기도하는 처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넓고 큰 베드룸과 화려한 욕실은 많은데, 여러분의 집안에 기도의 처소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집은 기도의 처소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습니까? 주님께 무릎 꿇는 기도의 시간을 위하여 거룩히 구별된 장소가 있으십니까? 기도하는 곳이 우리의 무관심에 의하여, 탐욕에 의하여 사라져 가고 있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슬퍼하십니다. 안타까워하십니다. 기도하는 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기도의 처소를 회복해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을 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무슨 표징을 보여 주겠소? 다른 복음서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결케 하는 겁니까?” 이 질문을 제기 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 유대 사람들은 이 말씀의 참뜻을 몰랐습니다. 당시에 헤롯왕이 이 성전을 46년에 걸쳐서 지었는데, 사흘만에 짓겠다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너뜨리라고 말씀하신 성전은 바로 예수님의 몸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당신의 부활을 뜻했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위를 지니신 분이심은 부활의 사건, 부활의 표징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구원자 되심을 보여주신 결정적인 증거는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4대성인의 한사람 정도로 족할지 모릅니다. 위대한 스승 되시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는 권위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성전 뜰에서의 판매를 끝내실 만한 자격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 사실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성전, 우리의 교회도 정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교회를, 기도의 처소를 잃어 가는 교회들을 정결케 고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고침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모든 교회들도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III.
오늘 교회들이 씻김 받는 이 일은 바로 성전된 우리들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 주님의 영이 거주하시는 거룩한 전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고쳐져야 합니다. 작은 성전이 되는 우리 자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구조의 개혁도 좋습니다. 체제의 개편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나입니다. 나부터 정결케 되면 교회는 정결케 됩니다. 나부터 새로워지면 교회는 새로워집니다.
금번 뉴욕의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Time Square 교회 외에 우리 2세들이 많이 나가는 Redeemer's Church와 Brooklyn Tabernacle를 가서 보았습니다. 세교회 모두 생동하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 있게, 효율적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교회를 보고 돌아오면서 제 가슴속에 다가온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왜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 이 교회들은 부흥이 일어나고 있을까? 왜 생명을 살리는 기사와 이적들이 나타나고 있을까? 제가 깨달은 것은 이 세교회 모두 성령께서 거리낌없이 역사 하실 수 있도록 열려있는 교회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어떤 인간의 계획, 인간의 머리, 인간의 생각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공부했는가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9,800여명이 모인다는 Brooklyn Tabernacle의 Jim Cymbala 목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열어 보여주시는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욕심, 내 계획, 내 생각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전은 성전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성전된 우리 모두는 진정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능력 있게 펼쳐 가실 것입니다.
성전을 깨끗케 하신 주님의 역사는 오늘의 교회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탐욕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전은 참으로 성전다워야 합니다. 성전은 참으로 성전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성전 되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과 저는 성전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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