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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7. 문형일 전도사

"성령에 이끌려( Led by Spirit)"

누가복음 4:1-15

Time지, 2005년1월 17일 자는 미국 사람 1009명에게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을 물어본 결과를 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78%사람들은 항상 또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응답했고 80%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 매일 행복하게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한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35% 사람들은 자녀들, 손자 손녀들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17%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 혹은 종교라고 말한 사람은 11% 그리고 배우자라고 응답한 사람이 9% 순 이었습니다. 중요한 행복의 조건들 8가지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첫 번째, 77% 자녀들과의 관계, 두 번째는 76%로 친구, 우정, 세 번째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 75%, 배우자와의 관계 73%, 인생을 관리하는 능력 66%, 휴가, 휴식등 레져 생활 64%, 부모님과의 관계 63%, 예배를 비롯한 종교 생활 62%, 명절 즐기는 것이 50%순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매일 일어나시면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Time지의 보고와는 달리 실제 우리들은 위대한 불만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우리들 자신에 대해 불만족하며 살도록, 그래서 더 나은 것을 계속 찾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오래된 것 보다 새것이 더 좋은 것이고 약한 것 보다 강한 게 좋은 것이고 예쁘고 잘 생기고 날씬하고 부자로 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배워야 할 것과 읽어야 할 것과 해 야할 일들이 점 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전의 세대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보는데 점점 더 정신 질환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쟌 멕나이트(John Mcknight)는 그래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전문적인 환자들을 만들고 있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중국 철학자 Chuang tzu 는 "Active Life" " 살아 있는 삶"에서 불만족의 세대를 살아갈 우리를 향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만일 전문가에게 성가시게 할 문제가 없다면 그는 불행하다.
만일 철학자가 그가 강의한 것에 대해 한번도 도전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불행하다.
만일 비평가에게 그가 비평할 사람이 없다면 그는 불행하다.
이런 사람들은 목적이란 세상의 죄수들이다.
추종자를 원하는 사람은 정치적 힘을 구하며
명예를 구하는 사람은 자리에 연연해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자기 힘을 과시할 기회를 노리며
용감한 사람은 자기의 용감함을 드러낼 비상사태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칼을 가진 사람은 그 칼을 쓸 전쟁을 기다리며
인생의 절정을 넘긴 사람들은 장엄한 은퇴를 통해 의미 있는 인생을 산 것을 드러내려 하고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점점 더 어려운 사건을 맡아 그들의 실력을 자랑하기 원하고
예배 사회자나 음악가는 자기들의 재능을 자랑 할 각종 절기가 되기를 기다리고
자선 사업가나 사회사업가는 항상 자기들의 선행을 드러낼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만일 정원에 잡초가 없다면 정원사가 필요할까?
만일 시장에서 물건을 사주는 바보 같은 고객들이 없다면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사실과 다른 핑계거리들이 없다면 서로 시끄럽게 싸우는 일들이 생길 수 있을까?
처음부터 남아 돌만큼의 물건들을 만들지 않았다면 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들어라! 결과가 생기게 하라! 돈을 벌어라! 친구를 사귀어라!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라!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후회하며 죽게 될 것이다!

권력, 힘이라는 이 기계에 붙들린 사람은 삶에 기쁨이 없이 마치 기계처럼 오직 활동하고 변화하는데 인생을 허비한다. 행동할 기회가 오면 이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이제 이 사람들은 무정한 기계의 부분처럼 되어 버렸다. 물질의 세계에 노예가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을 급하고 필요한 일에 복종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이 사람들은 외부의 압력이나, 유행 풍조, 시장 경제, 특별한 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눌려지고 부서지고 만다. 한 평생 살면서 자기 자신들 속에 있는 올바른 생각을 회복할 수 없다.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없는 불쌍한 인생!

Time지가 보도한 미국인들의 행복 순서를 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 그렇게 열심히 바쁘게 땀을 흘리며 쌓아놓은, 명예, 돈, 학위, 부동산은 행복의 대열에 모두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나이가 젊은 사람들만 응답한 것이 아닐 것이고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 한 이 질문에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불만족의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Doesn't make sense) 대답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들이 우리의 성공에 앞설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가정이 우리가 밤새워 공부한 박사 학위를 따라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내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가 내가 땀 흘려 쌓아놓은 부동산, 증권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습니까? 어떻게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렵게 성공한 다이어트, 성형 수술을 앞지를 수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것과 이 사람들이 대답하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까? 제대로 사는 것, 살아있는 인생은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죄는 우리가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을 내는 모든 것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열심히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구분입니다. 남자와 여자, 미국과 한국, 남한고가 북한 전라도와 경상도, 잘 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이슬람과 불교와 천주교와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우리 인간들이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 낸 결과는 편을 만들고 금을 그어놓은 불만족, 평화가 없음입니다.

이 불만족의 시작은 에덴 동산, 첫 번째 하나님의 자녀였던 아담 때부터입니다. 선과 악을 알아 하나님처럼 살기 위해서 선악과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불만족, 죄, 편가름의 시작이 되었고 평화가 없이 기계처럼 욕심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나무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즉시 이루어 졌습니다. 우선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의 벗은 몸을 가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그늘 속, 어둠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아담과 이브, 두 사람 사이에 구분이 생겼고 하나님과도 어둠과 빛으로 구분이 생겼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난 후 나와 너는 더 이상 같지 않고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나의 나됨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짓말이 진실인줄 속아서 사는 불행한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읽어주신 누가복음 4장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을 살아있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유혹한 마귀와 이를 이겨내신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Chuang Tzu가 우려한 대로 힘의 노예가 되어 평범한 사람으로, 아니 일에 지치고 힘들어 편하고 쉬운 길, 자기의 영광을 구하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깨워주는 사건이고 잃어버린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일하러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러,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한 삶을 살도록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완전한 삶, 살아있는 삶, Active Life를 사는 비밀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나와 남을, 나의 슬픔과 기쁨과 눈물을,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유대 철학가요, 신학자인 마틴 부버는 한 천사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힘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기도 하시고 없애기도 하시며 수많은 고통과 질병을 땅에 내리셔서 땅에는 눈물과 고난이 있었고 슬픔이 하나님의 보좌까지 다다른 적이 있었습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이 인생의 고난을 마치 자기가 당하는 고난처럼 느끼기 시작한 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다른 천사보다 더 아름다웠고 그의 인생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보다 더 민감해져서 도대체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왜 땅에는 죽음이 있고 부패와 타락이 이 고난의 사슬로 남아 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아시는 주의 눈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 보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제가 1년 동안 이 땅을 다스려 보기 원합니다. 제가 이 땅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천사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한 해 동안 이 천사는 자녀가 없는 가정에는 자녀들을, 병든 자, 죽어 가는 자들은 모두 살려주었고 더 이상 이 당에서는 아픔 과 슬픔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름이 되자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수확을 천사의 도움으로 얻게 되었고 가을 에 거두게 된 곡식들로 창고는 터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천사는 이 영광을 모두 자기가 차지하고 흡족해 웃었습니다. 이제 약속한 일년이 다 되어가자 이 한해에 이룬 모든 것들로 앞으로 오랫동안 이 땅에는 행복이 이어질 것으로 알고 천사는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수많은 울음소리가 하늘 위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 울음소리에 놀란 이 천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순례자의 옷을 입고 땅으로 내려와 한 농부의 집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농부는 자기가 수확한 곡식으로 가루를 내어 빵을 구웠습니다.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이 빵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 먹으려고 하자 그 빵은 그 농부들의 입에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없는 흙처럼 변하고 맙니다. 같은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이 빵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부서져 흙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그 다음 집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기들의 머리를 뽑으며 자기들에게 거짓 행복을 베풀어준 이 천사를 저주하게 됩니다. 이 천사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쓰러져 묻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저에게 어떤 힘과 지혜가 부족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비밀은 이것이다. 땅의 모든 것은 반드시 썩어야 하고 슬픔으로 덮여 있을 때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땅의 영혼들은 홍수와 슬픔으로 더 비옥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서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비록 그것이 슬픔과 눈물과 한숨일지라도, 가진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하고 못나고 못 살고 못 배웠어도 그것이 은혜인 것을 그리고 그 인생 자체가 은혜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 천사는 눈물 흘리며 불행하게 살던 인생들 보다 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일하는 것이 행복이 아닌 것을 2005년, 오늘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1009명의 이 땅의 미국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하늘에 있던 이 천사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자녀가 배우자가 하나님이, 우리가 열심을 내는 일보다, 우리가 갖기 원하는 새로운 물건들 보다, 더 빠르고, 더 넓은 장소보다,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그 어떤 것 보다 더 중요한, 행복의 요소인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기 원하던 이 천사는 자기가 사람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을 자기가 맡아 하다가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은혜인 것을 이 천사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는 아기의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두 시간에 한번씩 먹이느라 새벽잠을 설치는 것이 실상 더 행복한, 건강한, 위대한 일인 것을 이 천사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때때로 이 천사처럼 되려고 노력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이런 천사가 내려와 우리의 모든 것, 인생을 맡아주기를 기다린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인생을 이 타락한 천사에게 넘겨주시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천사처럼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천사처럼 위대해지기를, 영광을 받기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일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과 함께 살러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주무시고 우시려고 오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돌로 빵을 만드는 일을 거절하셨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넓은 세상에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오히려 갈릴리 사람으로 사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천사가 그의 발을 받도록 그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시험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세 번째 네가 하나님이 되어보라는 그것입니다. 빵을 만드시면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만 만나면 됩니다. 전 세계 왕이 되면 나라들을 다스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면 마치 모든 영광을 자기가 받아버린 타락한 천사처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고쳤다, 내가 지었다, 내가 말했더니 되었다, 나를 통해서 변화된 것을 자랑하는 가장 무서운 영적 우월성, 하나님과의 대적이 되는 유혹을 주님은 이기신 것입니다. Ego, 내 자아가 늘 살아있는 그래서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구분하고 선을 긋는 평화를 깨는 일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깨어진 평화를 잇는 그 일을 몸으로 사시며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에덴 동산에서 실패한 선악과의 시험을 되돌리는 일을 이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마치게 되십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험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처럼 돌로 떡을 만드는 일이나 세계의 왕이 되는 일이나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놀라운 일을 하도록 유혹 받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너무 부족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유혹을 더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처럼 힘도 없고 부족한 사람은 마귀가 설마 유혹을 할 까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강한 자아를 가지고 하나님처럼 모든 일을 하려는 생각이나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하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다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결과는 같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마지막으로 그가 속한 모든 공동체를 파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Active Life, 살아있는 삶을 살기 위해 절대 돌로 빵을 만들지 않아야 되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빵은 밀가루, 곡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위대한 사람, 엄청난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갈 수 없음을 한탄하기 보다, 손바람으로 사람을 쓰러뜨리는 영적 거인이 되기 보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지나가는 사마리아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것으로 충분히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우리의 주도권을 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의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 우리 자신의 체면이나 이익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말씀하시는 진리의 소리만을 듣기 원합니다. 위대한 일이란 진리만큼만, 그 이상 , 그 이하도 아닌 그리고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이 시험을 사람이 빵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로 대답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위해 마귀에게 절하라는 요구에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나님처럼 되어 보라는 마지막 시험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로 자신 있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 신지 이미 알고 계신 진리대로 성령과 함께 사시고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14절, 15절은 그렇게 사신 예수님의 일하심에 대한 요약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갈릴리, 성령의 능력을 입고 다시 돌아간 그곳은 예수님이 생명의 삶을 사신 장소입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멸시하고 배척 당하지만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의 비결이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그곳, 그곳은 요단강도 되고 광야도 되고, 갈릴리도 되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영광의 요단강입니까? 성령이 인도하시는데도 아직 그곳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있습니까?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것, 그것 자체가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 표시임을 기억하십시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시험이 없습니다. 갈릴리로 인도하심을 받으셨습니까? 아마 그곳에서 우리는 죽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면 갈릴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그곳에 십자가가 준비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갈릴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거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던 그 자리로 이제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