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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0.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7)- 물이 포도주로"
요한복음 2:1-12
요한복음은 기적을_________________으로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를 보여주는____________으로서
이해합니다.
I.예수님께서는 이 처음 표징을 갈릴리_________에서 행하셨습니다.
___________을___________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II. (1)결혼잔치에서____________가 모자랐습니다.
인간의___________는 한계를 지닙니다.
(2)이 처음 표징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일꾼들의
_________________을 봅니다.
(3)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_______________의 역사를 가져다
주십니다._______________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III. 이 표징을 행하셨을 때 그의____________들이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 함께 나눌 물음들
1. 삶의 여정 속에서 나의 계획, 나의 준비가 무너지고 깨어지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눕시다.
2. 내 삶 속에서 혹은 주변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거나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누십시다.
3. 예수님 안에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살맛나는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나는 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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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 분이 계십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신 이 분은 친구 분의 자동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교통편을 제공하기 위하여 우연히 저희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출발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시는 친구 분을 따라 이 김선생님도 열심히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어머님의 신앙생활을 지켜 보시면서 종교란 인간이 죽음이 두렵기에 만들어낸 것일 뿐,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다면 필요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셨던 선생님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믿음의 세계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셨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공부하신 선생님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많은 기적들이었습니다. 동화 속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신화같은 이 이야기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수요 성서연구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기적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가질 수 있게 하실 수 있으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연 법칙 안에 갇혀계신 하나님만을 믿는데 있습니다. 또 우리 생각에는 기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실 때 선생님의 귀와 머리, 그리고 가슴이 열리셨습니다. 그렇구나, 문제는 내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에 달려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면서 기적을 믿는데 대한 주저와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과 함께 신앙생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일생 자신이 피워 온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게되는 기적같은 일도 경험하시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서가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독특한 관점에서 증거했다는 점입니다. 우선 기적이라는 말 대신에 표징이라는 어휘를 사용합니다. 기적은 단순히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를 넘어서서 그 분이 과연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기적의 역사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소개 됩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이적을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임을 소개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세상의 빛, 우리에게 빛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역사 속에서예수님은 Life-giver,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증거합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2:1-12은 예수님께서 전도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행하신 기적을 소개해 줍니다. 갈릴리 지방의 가나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결혼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 또 제자들도 잔치에 초대받아 즐기고 있었는데, 이 집에 그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서 최고봉을 차지하는 음료였습니다. 정말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예수님께로부터 의외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라고 말한 것이 저희들에게는 편치않게 들리는데, 사실은 “여자여”라는 말은 당시에 상당히 높은 존대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속에서 “내 때”라는 말을 성서학자들은 대개 3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는 아직 본격적으로 전도할 때가 오지 않았다는 의미로, 둘째는 요한복음서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로 십자가의 때, 영광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으로, 셋째는 아직 이적을 행할 때, 메시야적 활동을 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을 시키든지 그 말씀대로 행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놓여있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이 물을 떠서 잔치 맡은 사람들에게 갖다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일꾼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했을 때, 잔치는 탈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잔치 맡은 사람은 이렇게 늦게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II.
여러분,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입니다. 놀라운 변화의 역사입니다.
(1) 먼저 이 말씀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준비, 사람의 계획은 늘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들은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예상외로 많이 왔는지, 아니면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는 결혼 축하연의 기간이 너무 길었는지 그만 잔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포도주가 동이나고 말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잔치, 상상 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결혼 잔치를 준비한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염려는 상상할만 합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캄캄하고 아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 인생 여정 속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꼼꼼히 따지고 대책을 세웁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현실은 그렇게 계획 속에 담겨지지 만은 않습니다. 문제가 터지기도 합니다. 계획이 틀어지기도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바람과 물결이 밀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철저하기 이를데 없는 준비의 과정으로 우리는 우주선 발사 계획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지만, Apollo 13호는 사고를 만나서 위기를 겪고 극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챌린저호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는 그렇게 철저히 점검하고 준비했지만, 그만 사고로 공중에서 폭팔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의 현실을 깊이 느껴보게 된 참사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인간이 갖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현실 앞에서 주저 앉거나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일어서야 합니다.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 문제, 이 한계를 넘어서는 기댈 언덕, 반석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반석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기댈 언덕은 어디에 있습니까?
(2) 포도주가 떨어진 당황스러운 현실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 이 문제를 털어 놓았습니다. 처음 예수님의 대답은 차거웠습니다. 그것이 자신과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일렀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세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는 두사람의 믿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한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다른 한사람은 일꾼들입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의 대답이 차겁게 느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반응이 부정적으로 느껴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어려움을 그대로 지나칠 분이 아니시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일꾼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꾼들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섯 개의 물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그들은 물을 부어 채웠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 물을 떠서 잔치를 맡은 사람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인 줄 뻔히 알았지만 일꾼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때 그들은 놀라운 표징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기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룩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됩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수아 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너가라고.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이 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섰을 때 강물이 멈추어 섰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걸어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인간의 준비에 구멍이 생기고, 인간의 계획이 무너져 내려도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붙들고 순종하는 사람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이 있습니다. 전에는 보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길이 열려지게 됩니다. 내 인생을 붙들고 인도하시는 주님 안에서 새날이 열려집니다. 위기를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기쁨이 회복되는 새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물이 얼음이 되는 것 같은 물리적인 혹은 표면적인 변화가 아니라,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룩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도 일어납니다.
여러분,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조금 착해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좋지 못한 습관 몇가지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조금 더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물론 이같은 변화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표면적인 변화를 넘어서는 질적으로 다른 인생, 근본적인 인생의 변화를 우리 주님께서 가져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바뀝니다. 희망의 내용이 바뀌게 됩니다. 새로운 눈으로 인생과 역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날은 기쁜 삶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늘 심각해 하거나 우울증 비슷하게 엄숙한 모습만을 지니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모습이 아닙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덤덤하던 인생이 기쁨의 인생, 살맛나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외쳤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인생, 이 인생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잔치에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에 기쁨을 안겨 주십니다. 진정한 기쁨,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십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살맛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Trina Paulus란 사람이 Hope for the Flower(꽃들에게 희망을)이란 그림책을 펴냈습니다. 우리 인생이 추구해야 할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나누면서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작은 줄무늬 애벌레가 태어났습니다. 찬란한 햇빛에 감탄을 하면서 배가 고프면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자라갔습니다. 어느 날 이 줄무늬 애벌레는 먹는 것을 중단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는가?” “지금 같은 삶은 재미없는데...” 그래서 애벌레는 서늘한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땅위의 세계는 황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신통한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른 애벌레를 만나 흥분했지만 모두들 과거의 자신처럼 먹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도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구나” 실망했습니다.
어느 날 애벌레는 기를 쓰고 걸어가는 벌레들의 행진을 발견하고 가보니 높은 기둥이었습니다. 좀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서로 꿈틀거리고 밀치는 애벌레의 더미. 애벌레로 이루어진 기둥이었고 꼭대기는 구름 속에 가리워 있었습니다. 애벌레는 흥분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 먹고 지내는 것 이상의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고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한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너 왜들 이러는지 아니?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니?” “나도 금방 와서 무엇 때문인지 몰라. 그러나 모두들 이러는 것을 보면 하여튼 좋은 일이 있을 꺼야.” 그 애벌레는 안녕하고 뛰어들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곧 충격적인 현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사면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는 삶이었습니다. 밟고 올라서느냐, 아니면 밟히느냐의 치열한 싸움으로 친구란 없었습니다. 동료란 하나의 장애물이요 위협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을 발판으로 삼고, 기회로 이용해야 하는 세상, 줄무늬 애벌레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올라와 이제는 상당히 높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불안한 물음. 그것은 “꼭대기엔 무엇이 있을까?” 이었습니다. 그러나 밀리는 힘에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해 볼 틈도 없다.”고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노랑 애벌레가 이 소리를 듣고 “너 지금 무어라 했니?”물었습니다. “아니, 혼잣말했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어.” “그래? 나도 그런데.” 노랑 애벌레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궁금한데 알아낼 도리도 없고 해서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버렸어.” “모두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좋은 곳일 꺼야.”
노랑 애벌레를 만난 후 줄무늬 애벌레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방금 이야기한 그 노랑 애벌레를 어떻게 밟고 올라설 수 있단 말인가?” 줄무늬 애벌레는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정상에의 길을 막고 섰는 노랑 애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자 네가 올라가느냐 내가 올라가느냐 이거다” 단호한 선언을 하고 그녀의 머리를 밟고 올랐습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려와 “미안해” 사과의 말을 속삭였습니다. 이날이 계기가 되어 그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꼭 껴안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둘은 나날이 즐거웠습니다. 둘은 푸른 풀밭에서 먹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제는 포옹하는 일도 시들해졌습니다. 서로의 털 하나 하나까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의 가슴속에는 다시 예전과 같은 물음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삶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먹고 이렇게 사랑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 고민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정상 위엔 무엇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줄무늬 애벌레가 단호히 결단을 내리고 정상에의 길을 떠나려는 때였습니다. 기둥 주위에서 쿵 소리가 났습니다. 떨어진 벌레들이었습니다. “꼭대기... 그들은 보게될거야. 나비들만은..” 그들은 이 말을 하고 죽었습니다. 알고 보니 정상에서 떨어진 벌레들이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결단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노랑 애벌레는 무언가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지만, 올라가는 것이 높은 곳에 도달하는 길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에 안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혼자서 나섰습니다.
쓸쓸한 마음을 안은 노랑 애벌레는 어느 날 나뭇가지에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저씨 도와 드릴까요?” “아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래야만 된단다.” “아저씨, 나비요? 나비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네가 되어야 할 바로 그것이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며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준단다. 그리고 달콤한 이슬을 마시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 준단다.” 노랑 애벌레는 의심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내게 보이는 것은 단지 솜털 투성이의 한 마리 벌레뿐인데, 내 자신의 내부에 나비가 들어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아저씨 어떻게 내가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한 마리의 애벌레를 기꺼이 포기할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너는 나비가 될 수 있단다.” “그럼 목숨을 버리란 말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단다. 너의 겉모습은 죽어 없어질 것이지만, 너의 참 모습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란다.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이지,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나를 봐라. 고치를 만들고 있지 않니. 마치 숨어 버리는 것 같지만 이것은 커다란 도약이란다. 그리고 네가 나비가 되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단다. 애벌레들의 모든 포옹보다 훌륭한 것이지.” 늙은 애벌레는 고치 속에 자신을 담아갔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너는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는 모험을 하기로 하고 나무에 달려 실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놀람 속에서 서서히 고치 속에 자신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줄무늬 애벌레는 완강히 도전, 좌우 안 보고, 감상적인 생각을 잊어버리고, 열심히 밟고 올라 정상에 도전했습니다. 거의 목적지에 가까워 왔을 때 위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벌레들이 “야,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구나”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애벌레가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고 있잖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줄무늬 애벌레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렇게 짓밟고, 밀고해서 정상에 올라왔는데 아무 것도 없다니... 또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기둥은 여기 저기 수없이 서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올라온 이 정상의 길은 잘못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갑자기 허무가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난 물음이 있었습니다. 삶에는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기다림을 택한 노랑 애벌레의 모습이 눈에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그때 찬란한 노란 날개를 가진 한 생명체가 기둥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멋있는 모습에 모두들 기어오르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높이 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감탄 속에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 노랑나비는 무언가 낯익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랑나비는 줄무늬 애벌레에게 무언가 속삭이는 듯 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 문득 지난 날 들은 말이 생각되면서 “나비들만이 꼭대기를 볼 것이다”는 말이 기억되었습니다.
혹시 저 노랑나비가 노랑 애벌레가 아닌가?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가득차 올랐습니다. 그는 결단을 하고 방향을 돌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내려가며 그는 소리 쳤습니다. “꼭대기엔 아무 것도 없단다.” 애벌레들은 서로 쑥덕거렸습니다. “공연히 샘이 나서 그렇지. 꼭대기도 못 올라가 보고 오는 주제에...” 그중 하나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도 그런 말하지마. 어쩔 도리가 없잖니?” “아니다.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어.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올라갈 것이 아니라 나비가 되어야 해.” 줄무늬 애벌레는 내려왔습니다. 그도 자신의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하고 나무에 달렸습니다. 고치로 몸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어두캄캄해서 두려움이 몰려왔으나,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고 느끼고 고치 속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고치는 열리고 줄무늬 애벌레도 나비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벌레의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비의 인생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나비의 인생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은 벌레에서 나비로 변화되었습니까?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 변화를 체험하였습니까? 오늘 참으로 살맛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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