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1.23.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4)- 영광, 은혜, 진리"
요한복음 1:14-18
성경의 하나님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계시는-------와----------로 나눌 수 있습니다.
I.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는-------안에 나타났습니다.
말씀이---------이 되어 오셨습니다.
II. (1)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외아들의------을
보았습니다.
(2)그는------와
(3)------------가 충만했습니다.
III. 우리의 믿음도------------되어야 합니다.
* 나눔을 위한 물음들
(1) 기독교 신앙은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금욕주의와 다릅니까?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무엇을 체험하였습니까?
내가 체험한 은혜와 진리를 나눕시다.
(3) 믿음은 몸으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성육신 될 수 있습니까?
|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볼 때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계시라는 말은 “열어서 보인다”라는 뜻을 갖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뜻을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세상 속에, 우리들에게 당신의 뜻과 존재를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서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로 믿게되는 신앙이 아니라, 먼저 우리 가운데서 당신의 존재와 뜻을 보여주신 계시 때문에 믿게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신 계시를 신학자들은 대개 두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일반 계시 혹은 자연 계시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계시입니다. 자연 계시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만물이나, 인간의 역사 혹은 양심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만물을 보면 얼마나 질서가 있고 아름답습니까? 이 세상 만물을 보면서 우리는 누군가 이 만물을 만드신 분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쓰고있는 안경 하나도 분명히 만든 곳이 있는데, 이 세상과 우주를 만드신 분이 안계시겠습니까? 또 역사를 보면 악이 이기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결국은 선이 이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자연 계시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연 계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은 미루어 알 수 있는데, 과연 그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보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닫기 위해서는 특별 계시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곧 구약성서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특별 계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I.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1장14절과 18절의 말씀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당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장 1절, 2절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모습이 가장 정확합니다. 가장 권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통하여 주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것,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아무리 귀하고 절묘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권위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나님,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는 도성인신(道成人身), 혹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은 바로 크리스마스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 인간 세상을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성육신의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몸, 육신에 대한 긍정입니다. 좀 더 넓게 말하면 물질, 이 세상에 대한 긍정입니다. 당시에 희랍사람들은 이원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지만, 몸은 죄악되고 부정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을 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떠나셨다는 가현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몸, 육신, 이 세상의 귀중함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금욕주의와는 다릅니다. 몸, 육신은 죄악된 것이기에 모든 욕망을 금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금욕보다는 절욕, 욕망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로 다스리고 절제하는 것이 귀중함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를 떼어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아픈 머리를 고치는 것입니다. 이 머리를 고치면 얼마든지 가슴 따뜻한 사랑과 아름다운 창작이 가능해 집니다. 욕망은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절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려지면 욕망은, 몸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II.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육신 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보고 체험한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 세 가지는 영광, 은혜, 진리입니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땅에서 그분의 영광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영광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호화로운 궁궐이 아니라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부자가 아닌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나셔서 가난한 세월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표적을 행하실 때 사람들은 신기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예수님을 향한 비난과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갔습니다. 3년도 못되는 전도 활동 기간 중 많이 굶주리시고 고달픈 인생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의 영광치고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예수님은 Homeless Person이셨습니다. 그분의 자신을 위한 아파트 한 칸도 없으셨습니다. 세상의 영광과는 먼 거리에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은 영광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흉악한 죄수들을 처형하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으시고 참으로 비참하게, 정말로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영광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가시고, 영광보다는 끔찍스러운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하는데 이해가 되십니까?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어 나가면 예수님께서 가끔 “내 때,” “영광을 받을 때”라고 말씀하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 때는 바로 죽음의 때, 십자가의 때를 뜻합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질 때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우고, 그 영광을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참 영광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것, 자신을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것이 최고의 영광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늘 세움을 받으시는 권사님들, 장로님들 이 진정한 영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여러분의 머리를, 여러분의 가슴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희생이 있어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불편이,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비우시고 순종하시면, 우리 주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영광,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충만한 은혜,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베풀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은혜의 대명사이십니다. 은혜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를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은혜의 바다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도 아니었습니다. 그 은혜는 알맹이가 있었습니다. 실속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적시는 단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 인생들을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적인 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우리 인생들을,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인도의 성자였던 썬다 싱에 관한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에 독실한 그리스도인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섬기는 왕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신하의 믿음에 대해 종종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왕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이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왕인 나로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때가 있는데, 이때처럼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준다고 명령하시면 되는데 왜 구태여 그 아들을 보내서 복잡한 방법으로 구원하셨는가? 그 아들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임금님께 아무날 아무시에 호숫가에서 만나 뵙기를 청원하였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자 신하는 왕을 모시고 호숫가에 나가 앉았습니다. 그러자 호수 건너편에서 배 한 척이 호수 가운데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왕의 아들이 배 안에 있고 배 주인은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배가 호수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배가 기우뚱하더니 그만 배 안에 앉아있던 왕의 아들이 호수 가운데 빠지고 말았습니다. 놀랜 왕은 즉시 일어나서 호수가로 달려가 아들을 건져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왕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왕이시어, 뛰어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아들을 구하라고 명령만 하시면 됩니다.” 왕은 화를 내면서 “내 아들이 빠졌는데 어떻게 앉아서 명령만 하란 말이냐”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신하는 왕을 진정시키면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어 맞습니다. 왕의 아들이 빠지셨기에 왕께서는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사랑하는 인생들이 죄에 빠져 있기에, 어둠 속에서 방황하기에, 죽음의 길을 걸어가기에, 그냥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물에 빠진 왕의 아들은 진짜 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의 아들처럼 분장한 인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선물을 받고,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여기 앉아 있음은 우리의 인생 속에 그 사랑이, 그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을 찾았다면 그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평안을 누린다면 그 은혜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은 그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의 충만한 은혜 때문입니다.
(3) 또 한가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진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진리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말하면 참된 도리, 참된 이치입니다. 거짓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입니다. 오늘날 진리를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인 진리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보편 타당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과학의 진리 못지 않게, 아니 그 과학적인 진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진리입니다. “정직해야 된다.” 삶의 진리입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역시 삶의 진리입니다. 역사에서,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삶의 진리입니다. 인생이 진리의 길을 걷지 않으면 과학적 진리가 오용되고 인류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진리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진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진리이십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리적 선언은 우리는 모든 선과 미와 애와 진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진리의 근원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만물을 만드셨다면 그분은 모든 법칙을 제정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원리를 아십니다. 삶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셨기에 그분은 우리의 목적과 길을 아십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니, 그분은 바로 진리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진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는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그분은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진리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진리의 길로 우리는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놀라운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성육신의 사랑은 우리를 향해 도전합니다. 특별히 오늘 세움을 받으시는 장로님, 권사님들을 향해 도전합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도 성육신 해야 됨을 일깨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것으로 평판이 드높습니다. 하나님 사랑한다고 입술로는 소리 높이 외치는데 과연 그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과 역사의 주님으로 믿는다고 입술로 외치는데, 그 고백이 과연 성육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육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성육신의 방법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권사님들, 장로님들 고시를 치르는 과정에서 또 한번 깨닫고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와 계십니다만, 저희 연회 Asian Ministries 책임자로 계시는 김명종 목사님의 손목시계를 보면 좀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시계 한 복판에 파란 원형의 조그마한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왜 시계에 스티커를 붙이셨는지 김목사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일생의 소원은 나의 모습, 나의 말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인데, 결심을 하지만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시계에 파란 원형의 스티커를 붙여서 시계를 볼 때마다 제 자신을 다그칩니다. 그렇지,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 예수님의 진리를, 예수님의 생명을 전해 주어야지. 믿음이 성육신된 삶을 살아가시려는 목사님의 모습 속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광을, 은혜를, 진리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 믿음을 우리는 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육신을 입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십시다. 특별히 오늘 세움을 받으시는 권사님, 장로님들 그렇게 사십시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삶을 통하여 은혜와 진리가 증거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영광을 추구하는 멋진 인생이 펼쳐지기를 빕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충만함 속에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혜에 은혜를 더해서 받았습니다. 이 은혜와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성육신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성육신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 우리의 사랑도 성육신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