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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6. 조영진 목사

"생명의 복음(3)- 믿는 사람들에게는"

요한복음 1:6-13


태초부터 계신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I. 빛이 이땅에 오시기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입니다.
그는 빛에 대하여 전해서 모든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II. 참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빛이 임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사람들, 곧 그
이름을----------사람들에게는--------------------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III.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무엇입니까?
(1)하나님과---------할 수 있는 특권
(2)-----------의 은총
(3)--------------안에서 살아감
(4)-------------의 상속

* 나눔을 위한 물음

(1)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깨달음과 실감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진정 이 사실에 대한 감사를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2)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주어지는 특권은 무엇입니까?
예수 믿어서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3)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입니까?

“생명의 복음”이라는 큰 제목 밑에서 드리는 요한복음 연속설교의 세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요한복음서가 기록된 목적과 서론 부분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설(Pre-Existence)에 대한 말씀들을 전해드렸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신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은 빛으로 묘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빛이 어둠 속에 비추었다로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참빛이 우리에게 비추기 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님 나시기 6개월 전에 태어난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예비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말라기 이후 중단되었던 예언운동의 맥을 되살리는 세례 요한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태어났음을 밝혔습니다. 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몇주 후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모셔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인생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눈을 감았습니다.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었습니다. 귀를 막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했다는 죄목을 씌워 사형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외면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빛되신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새날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빛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됩니다. 이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듯 혈통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때 임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을 모셔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누히 말씀드립니다만,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는 차원도 넘어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맞아들인다와 같은 의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라고 옮겨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삶 속에, 우리 가정 속에 모셔들임을 의미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의 주인공되시는 예수님을 모셔들임입니다.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아 가셨던 예수님 그분을 우리의 삶 속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셔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여년전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돌아가신 것으로 끝났다면,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믿는 것으로 족할 지 모릅니다.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넉넉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끝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고 사셨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후 또 다시 돌아가신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단순히 머리로 알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분을 모셔드리고 예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특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믿어서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무엇입니까?

(1) 먼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특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엄청난 특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직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직통라인은 통화중일 때가 결코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셔서 어떤 때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언제나 귀를 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정말 엄청난 특권입니다. 엄청난 자랑거리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위대하시다는 사실 앞에 여러분 가슴 뿌듯하지 않습니까? 신이 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제가 괜히 허풍떠는 것입니까? 저 혼자만 신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이 특권 앞에서 좀 흥분하시기 바랍니다. Bush 대통령과 아무때나 독대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 어깨에 힘주고 신나 하실 것 같은데, 하나님과 언제나, 어느 시간에나 독대할 수 있다면 더 신나는 일 아닙니까? 더 흥분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 엄청난 특권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용서의 은총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자람과 부족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용서해 주시는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절망입니다. 앞길이 캄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직 한번의 기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기회를 망치면 우리는 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탓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어제가 어떠했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새날의 기회, 새 인생의 챤스를 주십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이 용서의 은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저 덤덤히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과거를 용서 받았어도 그저 시큰둥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인생인지, 하나님의 용서가 없으면 희망이 없는 인생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그렇다고 죄 지으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잣대로, 스스로의 삶을 살펴보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 앞에서 처절하게 좌절을 느껴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용서의 은총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폐결핵으로 투병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이 꺼져갈 때, 하나님과 담판을 짓기 위해 일주일 동안 산상기도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성령받고 병고침 받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집회를 인도하시는 강사님은 목요일까지 다른 것 하지 말고 회개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성령께서 임하실 것이라고 여러번 강조 하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나도 한번 제대로 회개해 보아야 하겠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소나무 하나 뽑을 각오를 하고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지었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성령께서 제 삶을 조명해 주시면서 잊어버렸던 온갖 과오와 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에게서 돈 빌리고 미처 갚지 못한 것까지 낱낱이 기억되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제 자신에 대해 깊은 절망을 느껴 보았습니다. 이 절망 속에서 주님의 용서를 간구했을 때, 제 가슴 속에 다가온 주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은 저를 다시 일으켜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확신 속에서 용서받은 기쁨으로 춤을 추며 찬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죄인됨을 깨닫고 보니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3)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는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성공하는 것, 좋습니다. 돈 많이 버는 것도 괜찮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귀합니다. 가족이 화목하게 사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은 임마누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 사랑보다 더 안전한 그늘은 없습니다. 그 사랑보다 더 지혜로운 스승은 없습니다. 그 사랑보다 더 분명한 우리 인생의 지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해서 언제나,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도 고난이 닥쳐올 수 있습니다. 건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업에 붉은 신호등이 켜질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고난이 닥쳐와도 피난처가 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 고난 마저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합력하여서 유익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저 앉고 가라앉는 인생이 아닙니다. 오뚝이 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난과 그 아픔에 삼켜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새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사랑 때문입니다. 끈질기고 변함이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작년 연말 서남아시아 지역에 밀어닥친 지진 해일로 말미암아 1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대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재난 앞에서 각 종교들의 해석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불교는 희생자들은 각자의 업보에 따른 삶을 살다 간 것이며, 다음 생에서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슬람교는 모든 것이 위대한 알라의 뜻이며 유한한 인간은 이를 알 수 없다. 이번 참사는 인생의 유한함을 일깨워 주며 짧은 생애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자연 재해까지 조정하시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 고난 속에서 함께 손잡고 돕는 믿음의 고백이 필요함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갖는 이성의 한계 때문입니다. 재난 피해자들이 더 많이 죄를 지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재난 속에서 들어야 할 멧세지는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는 이 재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지를 압니다. 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음을 믿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인류가, 피해지역 주민들이 함께 손잡고 일어설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 이 사랑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4) 넷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는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용서함 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교제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죽음을 정복하는 생명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오늘 생명을 누리다가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내일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생명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특권은 요한복음서 설교를 드리는 동안 앞으로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III.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가운데 이룩하신 은혜의 역사에 대한 응답입니다. 믿음은 바로 먼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랑의 역사 앞에 우리가 드리는 응답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 감사함으로 “Yes"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응답을 귀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응답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자녀된 놀라운 특권을 귀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결단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광범위하고 영원히 영향을 미치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되는 이 일에 한분도 빠짐없이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당신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원하고 계십니다.

Oklahoma에 있는 Phillips 대학 신학교와 Emory 대학교의 Candler 신학대학원의 설교학 교수로 널리 알려지셨던 Fred Craddock교수가 전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Craddock 교수가 Yale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테네시주의 Gatlinbug에서 잠시 쉴 때였습니다. 부인과 함께 조용한 식당을 찾아가 둘만의 식사를 즐기려고 하는데, 고상하게 보이는 백발의 한 노신사가 테이블 마다 방문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Craddock교수는 우리 테이블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 노신사는 이 테이블에도 와서 인사를 청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Craddock교수가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자 이 노신사는 반가워 하면서 나도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Craddock교수는 이거 또 목사에 대한 이야기구나, 사람마다 한가지 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노신사는 자기 이름은 Ben Hooper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는 산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서 늘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자랐습니다. 학교 친구들도 놀려댔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자랐습니다. 게다가 주말에 시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쏘아보는 눈초리가 더욱 부담스러웠습니다. 사람마다 저 아이 아버지는 누구일까 속삭이는 것이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Ben Hooper가 12살되던 해에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Ben은 언제나 교회에 늦게 갔다가 일찍 빠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목사님이 축도를 빨리 끝내는 바람에 그만 교인들 사이에 섞여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목사님을 만났을 때 목사님은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누구지? 누구의 아들이지?” 이 말을 듣자 Ben은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져서 목사님께서도 나를 그렇게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Ben을 곰곰이 살펴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Wait a minute. I know who you are.(잠깐 기다려봐.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안다.) I see the family resemblance. You are a son of God(너 무언가 닮은데가 있구나. 너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리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Boy, you've got a great inheritance. Go and claim it(너는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어. 가서 청구하거라.).” 노신사는 이 말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였다고 이야기 하면서 일어나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그때 Craddock교수는 기억이 났습니다. 이 노신사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테네시 주지사를 두차례 역임한바 있는 Ben Hooper 주지사인 것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외롭고 소외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되찾았을 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온갖 어두운 그늘을 헤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의 자취를 남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위대한 특권을 누리시게 되었습니다. Please go and claim it! 여러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특권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