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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6. 조영진 목사

"참 감사합니다."

시편 136:16-26

한해를 돌아볼 때 감사한 것뿐입니다.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해 주신 사랑이 감사합니다.
진실된 감사의 삶을 위해서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삶을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까?

희망과 기대 속에서 맞이했던 2004년도 어느덧 마지막 주일에 이르렀습니다.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 우리 인생의 또 한 페이지가 이제 넘겨지려고 합니다. 금년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저물어 가는 2004년의 문턱에서 돌이켜 보면 그저 감사한 것 뿐입니다. “참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주님께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금년 한해 일이 잘 풀리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난 해에 비해서 건강도, 비즈니스도 나아지고 발전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해를 마감하는 문턱에서 감사드리는 것은 모든 일이 잘되어서만은 아닙니다.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픔도 있었습니다. 고난도 있었습니다. 실패와 좌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아침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며 이 고백을 주님께 드립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무슨 까닭입니까? 무슨 이유로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까? 무슨 근거 위에서 우리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한 해를 마감합니까?

I.

이 아침 우리는 시편136편 16절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 시는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과 레위족속의 찬양대원들 혹은 예배에 참여한 백성들이 함께 불렀던 감사의 노래로 추정합니다. 본문 말씀은 찬양의 리더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역사를 소개하면 후렴으로 찬양대원들 아니면 일반 백성들이 함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응답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6편에서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은 먼저 1절부터 3절에 이르는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이어서 4절부터 9절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역사를, 10절부터 15절까지는 에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16절부터 22절에서는 광야생활과 가나안땅 정복의 역사를 이룩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23절부터 마지막절 까지에서는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에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과정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또 광야생활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200만 가까이 추산되는 사람들이 먹고 입고 마시며 움직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불편함과 고생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땅 정복 역시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 군사력으로나 장비로나 가나안 족속들과는 대적할 수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나안 정복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이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낱낱이 헤아려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많은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반복해서 주님께 감사드리도록 일깨우고 있습니까?

그들은 역사를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대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이 사랑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 인자하심에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거듭 거듭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가 영원함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순간에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했습니다. 그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한결같았습니다. 그 사랑은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사도 요한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이념이나 단순한 idea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행동하시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 속에 함께 하시고 일하셨습니다. 역사의 사건들 속에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역사는 바로 성탄의 사건, 그 아들을 보내 주신 기쁨의 소식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결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오심으로 새롭게 확인되었습니다.

II.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눈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를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가지는 새로운 눈,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에서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관(觀) -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의 빛에서 우리 인생을 이해하고 바라봅니다. 이 세상의 역사 역시 아무런 목적도, 길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안에서 길과 지향점이 있음을 믿고 바라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이 눈입니다. 이 눈에 따라 인생을 기쁨과 감사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도 하고, 비관하면서 절망 속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유명한 성서 연구가인 Matthew Henry는 집에 도적이 들어 많은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먼저는 내가 도적질 안하고 도적 맞게된 것을 감사했고, 둘째는 훔쳐가되 모든 물건을 다 가져가지 않고 좀 남겨 놓은 것을 감사했고, 셋째는 물건을 도둑맞고 생명을 도둑맞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도둑 맞았다고 울며불며 안타까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둑맞고도 이렇게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둘 사이에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 사건을 보는 눈입니다. 관점입니다. 손해보고 잃어버렸다는 관점에서 보면 안타깝고 화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도둑맞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함께 했음을 깨달으면 우리는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감사하면서, 그 아픔을 딛고 새날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III.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우리 모두 돌이켜 보십시다. 광야 길을 헤쳐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어제도 결코 평탄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마음 아프고 괴로운 고민의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로 놀라움과 충격 속에서 헤매이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또 물론 아름답고, 흐뭇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기쁜 감격스러운 날도 있었습니다. 저절로 감사가 솟구치는 신나는 때도 있었습니다. 금년 한해 우리에게 임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하심을 기억하면서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우리를 주님의 품안으로 인도해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십시다.

금년 한해동안에도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 품안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부르심에 응답한 형제와 자매들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 이 주님의 부르심 안에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엄청난 자비의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입니다. 잠깐, 영원의 빛에서 보면 1초의 백 분의 일, 아니 만 분의 일이란 순간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80년, 100년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또 우리가 대륙을 횡단하고, 세계를 주름잡고 다닌다 해도 광대한 우주의 빛에서 보면 하나의 점안에서 움츠리고 뛰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고 미미한 인생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인생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불러 주셨다는 사실,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엄청난 사실, 여러분,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 가슴 벅찬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외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저 혼자만 흥분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2) 또한 우리는 우리의 인생 과정이 평탄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고난과 좌절의 풍랑이 불어 닥쳤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여러분,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딪쳐 싸우고 있는 고난의 가시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를 고통 속에 가두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과 괴로움이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과연 영원한지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 험한 풍랑을 헤쳐 오셨습니까? 아직도 견디기 힘든 고통의 짐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까?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감사하십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찬양하십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영원하시다는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위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우리를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 모릅니다. 내 급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태평하신 것처럼 느껴질 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마침내는 정금같이 귀한 존재로 우리를 빚어 주십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고난과 패망의 심연 속에서 예레미야는 그가 기록한 애가 3:19이하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히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이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또 시편 기자는 119:71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친히 일러주신 그 법이, 천만 금은 보다 더 귀합니다.“

네덜란드 태생으로 2차대전 중 유대인들을 돕다가 나치들의 캠프에 잡혀 들어가 온갖 고생을 겪었던 코리텐 붐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은 마치 수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안쪽을 보면 온갖 실들이 엉켜있어 볼품이 없는데 바깥쪽을 보면 그 엉켜있는 실들이 아름아운 그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고난을 엉켜있는 실들로만 보고 실망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의 실타래를 통하여 아름다운 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영원하신 주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위에서, 이 믿음의 눈으로 고난을 보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3) 한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해 주신 것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감사와 함께 정말 별일 없었던 것, 평탄하게 살아온 것 역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드라마틱 한 것, 극적인 상황 속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495번 벨트웨이에서 사고가 났는데 몸이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정말 찬양할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년 내내 벨트웨이를 운전하고 다녔는데도 사고 한번 나지 않은 것은 더욱 감사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건강에 이상이 와서 걱정했는데 기적적으로 나은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한 것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한해동안 감기 한번 안 걸린 것은 더욱 감사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 평범해 보이는 삶 속에 임하는 비범한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나는 언제나 건강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다만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나도 사고날 수 있습니다. 나도 건강에 빨간 신호등이 켜질 수 있습니다. 내 사업에도 어려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건강하고 내 인생이 평탄했으니 정말 감사한 일 아닙니까?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더 감사해야 되는 이 현실을 우리는 많은 경우 잊고 있습니다. 그저 당연한 현실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한 선배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장암이 발견되어 사망선고를 받기까지 하셨던 이 목사님께서는 이 고난의 학교를 잘 마치시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장암 수술을 받으셨을 때 일입니다. 수술 후 나와야 하는 Gas가 나오지 않아서 한참 고생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의사들이 회진을 와서도 묻는 질문은 Gas가 나왔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수술한 의사 선생님이 홍콩인가를 출장 가셨는데 전화로 목사님의 용태를 물으면서 첫 번째 질문이 Gas가 나왔는가였습니다. 드디어 며칠이 지나서 Gas가 나왔습니다. 온 의사와 간호원들이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인사를 받으면서 목사님의 깊이 깨달으셨습니다. 건강할 때 잘 나오는 것에 대해 한번도 감사한 적이 없었음을 뉘우치셨습니다. 여러분 잘나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밥 잘 먹고, 탈없는 것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해야합니다. 아파 보면, 건강이 흔들려 보시면 아십니다. 건강함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기에 2004년이 평탄했다면 여러분은 더욱 감사드리셔야 합니다. 별다른 문제없이 달려 오셨다면 더욱 감사드려야 합니다. 더욱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양해야 합니다.

2004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고백은 한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시편 136편의 노래는 오늘 우리들의 상황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도 반복해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도 한번 해 보십시다. 제가 감사의 내용을 말하면 여러분께서는 다 같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우리를 주님 앞으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고난의 골짜기에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도 붙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평탄한 길을 걷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