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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9. 구경모 목사

"회개하고 사십니까? "

사무엘상 15:24-30
사무엘하 12:7-15
마가복음 1:15

2000년전, 오시는 예수님을 대망하며 그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의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대강절을 지키면서 회개함으로
우리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느 유치원 선생님이 어머니들을 초청하여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주고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가 자라서 장차 어떤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까? 나누어드린 종이에 그것을 써 주십시오." 그랬더니 어머니들은 그네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직업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과학자, 군인, 의사, 교사, 경제인, 운동선수 등등. 그런데 한 어머니가 색다르게 적어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하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이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보다 자기자녀가 가장 훌륭하고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솔직하게 남들에게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하고 난 후 솔직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 불찰이었고, 제 실수였습니다." 라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때로는 처벌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잘못이나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일일이, 낱낱이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입만 열면 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말과 회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한 우리의 허물과 잘못, 죄인된 성품과 언행심사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자백하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회개" 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교회에서 또 강단에서 자꾸 회개, 회개 라고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가기만 하면 회개하라고 하고, 회개해야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뭐 그리 큰 죄를 매일 짓고 산다고 울부짖고 매일 회개하라고 몰아 부칩니까? 신앙의 긍정적이고 밝은 측면, 예를 들면 소망이나 은혜, 기쁨이나 찬양도 많은데 왜 맨날 어둡고 부정적인 죄인과 회개타령만 하고 있습니까?"

맞습니다. 기독교신앙의 전부가 회개일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함에 있어 회개 말고도 배우고, 나누고, 실천해야 할 좋은 덕목과 주제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또 기독교신앙이 회개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시작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이냐?" 하는, 내 모습을 바로 보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그 때 나의 실존적인 모습은 누구나가 죄인의 모습일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죄의 문제에 대한,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회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Tylenol이나 Motrin을 먹어서 고통을 잠시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그 약효가 끝나면 우리의 머리는 또 다시 아플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늘 조심하며 살아도 우리는 또 다시 어쩔 수 없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시 51:5)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인생이 없고, 아무리 좋은 언어로 회개를 바꾸어 말하고, 아무리 긍정적이고 밝은 태도를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그 사실은 변함이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는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찾아오신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앞에서의 우리의 참 모습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b) 이 말씀은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자면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우리 모두가 의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의 몸을 입고 굳이 이 세상에 내려오실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면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역시 "바르고 의롭게 살아라" 라든지 "형제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라든지 "주일을 성수하고 기도 열심히 해라" 라는 종류의 말씀이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는 그 한 마디 였음을 우리는 오늘 분명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회개할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고, 이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 진 후에야 다른 것들을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경속에 등장하는 3명의 왕의 이야기를 통해 이 회개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회개와 연관 되 처음 등장하는 왕은 헤롯입니다. 막 6:14-30이하에 보면 헤롯은 예수님이 나실 당시 그는 이스라엘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동생이었던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의 처로 삼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예언자 세례요한이 나서서 "왕이시여, 이 일은 하나님 앞이나 백성들 앞에 옳지 못한 일입니다, 회개하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그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귀를 막고 살았고, 오히려 그런 말 해주는 세례요한을 괘씸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잘 춘 상을 준답시고 자기에게 바른 말 했던 세례요한을 잡아다 목 베어 죽이고 마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우리가 회개를 생각할 때 회개 자체를 무시하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냥 편한 대로 즐겁게 살다 죽으면 그 뿐이지 회개는 무슨 회개! 사람들은 다 불완전해서 적당히 잘못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뭐 그리 깨끗하게 산다고 시시콜콜 잘못을 빌고 회개하며 살 필요가 있나?" 하며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회개하며 사는 삶을 무시하며, 오히려 회개하며 사는 삶과 신앙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잡지사의 독자 질문란에 다음과 같은 편지가 실렸다. "유부남인 나는 지금 어느 여자와 부인 몰래 동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결혼을 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조언 부탁합니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 회개 같은 고리타분한 말은 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 글에 대한 답변이 다음과 같이 실렸다. "선생님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도덕이나 양심,그리고 회개에 있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조언받기 원하신다면 우리 보다는 가축병원 의사에게 문의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양심과 의지를 주셨는데, 우리의 언행심사를 판단하는데 기준이 되는 성경이라는 지침을 주셨는데, 그리고 여러 설교자를 통하여 그 내용을 쉽게 풀어서 항상 알려주고 계신데, 만약 우리에게 회개가 없다면, 우리가 돌이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불과 합니다. 헤롯왕과 같이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인생을 살면서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헤아리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 할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정하신 시간에 각 사람의 행한 행위대로의 심판이 분명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회개와 관련되어 등장하는 두 번째 왕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입니다. 오늘본문 삼상 15장에는 사울이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다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고, 순종치 않아 버림받게 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오기 전에 자기가 임의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 정하신 제사장 권을 침해한 후 하나님의 눈밖에 났던 사울이 이번에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전리품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진멸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얼마간의 전리품을 남겨놓았다가 발각되자 선지자 사무엘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왕이시여, 왕은 하나님께선 제사 드리고, 제물 바치는 것보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더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어쩌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임의로 판단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죄악을 범하십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종의 질책을 들은 사울은 그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내가 범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내 판단대로 하는 잘못을 하나님 앞에 저질렀습니다" 여기까지는 참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울왕은 회개를 하기는 했는데 용서까지도 자기가 하려는 잘못을 범합니다. 25절 말씀을 보니까 사울왕이 자기의 잘못을 사무엘 앞에 인정한 직후에 바로 직후에 이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여, 지금 당장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함께 예배드리십시다" 회개한 후 바로 이어서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 내가 회개했으니 빨리 용서를 내 놓으시오" 라며 용서를 독촉하는 모습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라기보다는 성의 없고 형식적으로 회개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무엘의 반응이 냉담합니다. "저는 왕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와 감사의 예배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깜짝 놀란 사울과 사무엘 사이에 밀고 당김이 계속 됩니다. 사울은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사무엘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티며 옥신각신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지친 나머지 사울이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내가 범죄 한 것은 사실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여, 당신이 나와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돌아가지 않는다면 회개한 내 얼굴은 뭐가 되고, 또 백성들과 부하들 앞에서 하나님께 회개했는데도 용서받지 못하는 왕된 내 얼굴이 또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정말로 나를 용서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겉으로라도 나를 좀 용서해 주는 척하면 내 체면이 서겠습니다" 지금 사울왕의 회개는 하나님앞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남들을 의식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자기의 체면을 고려한 회개였습니다

헤롯왕처럼 회개 자체를 무시하거나, 회개의 필요성을 묵살하는 삶은 아니지만 혹시 우리가운데 사울왕처럼 회개가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사울왕의 속마음이 이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참,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되게 시끄럽게 구는구만. 내가 사람을 죽였어, 간통을 했어? 그저 단지 전리품 몇 개를 그것도 나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고 귀한 것이어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그랬었던 것 뿐 이었는데 되게 빡빡하고 요란하게 구네. 일 더 커지기 전에 회개한다고 해야겠구만" 그래서 사울왕의 입에서 그렇게 회개도 빨리 나왔고, 용서도 빨리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작할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회개가 우리의 몫이라면,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회개했으니 하나님 어서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의례적으로 성의 없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헤아리실 수 있는 분이시고, 무성의하고 진솔하지 못한 회개는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에 천주교에 대한 대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소위 "후미에" 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에수님의 초상화를 땅에 놓고 거기에다 대고 침 뱉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살려주고, 밟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화를 밟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지만 밟고 지나감으로 자신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성화를 밟기 전 그들은 예수님께 너무도 미안한 마음으로 밤이 새도록 회개의 기도를 드렸으며, 아침이 되면 발바닥에서 피가 날 때까지 몇 번이고 깨끗이 발을 닦고 새 조리를 꺼내 신고 예수님 초상화 밟기가 벌어지는 장소로 나갔으며, 이 성화 밟기가 끝나면 뒷산에 올라가 하루종일 통곡을 하며 "오라셔" 라 불리우는 회개의 기도문을 외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회개를 경험하며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회개와 연관되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세 번째 왕의 이름은 다윗입니다. 그가 하루는 왕궁 옥상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 여인은 결혼한 유부녀였지만 한 눈에 반한 다윗은 그 날 이후로 다른 마음을 먹게 되고 범죄 하게 됩니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없는 사이 그녀와 정을 통해 그녀를 임신시킨 다윗은 그녀의 남편이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 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야를 싸움터에서 불러들여 그녀와 동침하게 해 뱃속의 아이를 그의 자식인 것처럼 가장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전우들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하는 우리야의 의지를 꺽을 수 없게되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번에는 그의 상관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우리야를 가장 싸움이 치열한 곳에 일부러 배치해 결국은 죽게 만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자기의 힘과 지위를 이용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99마리의 양을 소유한 부자 양 주인과 1마리가 전 재산이었던 가난한 양 주인의 비유를 통해 선지자 나단이 참으로 호되고, 가슴 떨리는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왕이여, 바로 당신이 양 99마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손님이 오자 가난한 사람의 전 재산인 그의 양을 잡게 했던 파렴치한 부자 양 주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당신에게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시오!"

그 때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 고꾸라져 "내가 하나님께 범죄 하였노라" 라고 회개를 합니다. 억울함과 원통함을 안고 죽어간 우리야에게 범죄 하였노라고 사죄하기보다, 부인에게 바람을 피워서 미안하다고 고백하기보다, 국민들에게 흉한 꼴을 보였노라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득죄 하였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헤롯왕처럼 "내가 왕인데 누가 뭐래?" 하며 세례요한을 처치하듯 나단 선지자를 처치할 수도 있었고, 사울왕처럼 "뭐 별것도 아닌 것 같고 이렇게 요란을 떨지? 적당히 보기 좋게 회개하면 되잖아!" 하며 하나님의 눈을 가볍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저울눈금 앞에서 거짓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씼지 못할 죄악을 저질렀다고 참담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의 위대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러한 진심 어린 회개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끝까지 버림받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다 부족한 존재들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누가 조금 더 선하고 덜 선하고를 따질 수 없는 그런 죄인들입니다. 세상 말대로 그저 도토리 키재기 하듯이 누구나 실수하며, 잘못하며, 범죄하며 살아가는 못난 인생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넘어지는 인생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보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구나 죄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고, 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 3;10) 고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의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자기의 과오와 실수, 잘못과 부족함을 놓고 회개할 때 우리를 의롭다 불러주시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칭의"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일 수 밖 에 없지만 이제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해주시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인이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나, 잘못도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며 부단히 반성하며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의롭다고 불리워 지는 사람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서 일생을 회개의 도를 이루어 가며 사는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라는 말은 구약속에서 2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슬퍼한다, 애통해한다" 라는 의미의 "나함" 과 "돌이키다 돌아서다" 라는 의미의 "슈브" 라는 2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약 희랍어에는 "메타노이아" 라는 단어로 회개가 사용되는데 "마음을 새롭게 한다, 마음을 변경한다, 마음을 고친다, 사고방식을 바꾼다, 목적이나 의도를 바꾼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에 복받쳐 울고 불며 자신의 잘못을 한탄하고, 원망함으로 감정적인 자기 만족에 그치거나, 사람들로부터 값싼 동정을 얻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한 것에 대해, 범죄 한 것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며,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그 길로 가지 않고, 가던 길을 돌이켜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그 길로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찬송가 가사 그대로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라며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회개이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서지 않겠네" 하며 두 번 다시 잘못 되었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서지 않는 것이 진정한 회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이루시고 싶으십니까?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진솔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아니면 친구나 교우간에 불화해서 불편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인간적으로 화해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가 되고, 진전이 없으십니까? 혹시 아직도 내가 주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회개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할 지 모릅니다. 우리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질적 양적으로 부흥 발전하기를 원하십니까?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선교 나가기에 앞서 영적인 무장을 위해 우리 모두 먼저 회개하십시다.

중세시대에 종교개혁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위대한 일을 감당했던 마틴 루터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거창한 사회의 구조적인 비리개혁이나 종교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개혁과 회개를 먼저 시작했던 사람이었고 진정한 종교개혁은 개개인 스스로의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에서부터라고 강하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수도사시절,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하루에 스무 번 이상 고해 성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담당 신부가 귀찮아서 "루터야, 루터야, 죄 좀 모았다 가지고 오너라" 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앞에 얼마나 회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헤롯왕처럼 인생이 다 그렇고, 인간이 원래 다 그렇지 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자체를 무시하며 사십니까? 사울왕 처럼 교회에 다니고, 교인이면 하나님 앞에서 적당히 회개해야 하니까 마음에도 없는 가식적이고 의례적인 회개를 하고 사십니까? 아니면 다윗왕의 경우처럼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득죄 하였노라 라고 고백하며 진정한 눈물의 회개를 이루며 사십니까? 그리고 한 번 회개했던 그 죄를 또 똑같이 짓고 매일 같은 회개만을 습관처럼 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한 번 저지른 죄는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고 그 방향과는 다른 쪽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지만, 또 경우에 따라서는 죄인 중에서도 괴수의 잘못을 범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해주시기 위해 죄 없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그의 이름에 힘입어 회개하기만 하면 어떤 죄든지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는 말씀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순전하게 사는 것을 기대하시기도 하지만 범죄 한 후에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솔직하게 그 잘못과 범죄를 회개하는 자녀들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대강절 기간입니다.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고 대망하며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겠습니까? 성탄장식도 과 감사의 선물도 필요하고, 카드도 주고 받아야하겠고, 특별 프로그램이나 촛불예배도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회개가 먼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과 심령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야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 들어와 거하실 장소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 오심을 앞서서 준비하고 예비했던 세례요한도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고 힘주어 회개를 먼저 외쳤던 것이었습니다.

2천년 전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목이 터져라 외치셨던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는 그 말씀이 오늘 회개와 관계없이 사는 우리, 회개를 습관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우리, 회개하고도 또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우리에게 절박하고 확실하게 다시 들려져야 할 줄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