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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조영진 목사

"늘 새롭게 하소서(6)-함께 손잡고"

베드로전서 2:9-10

목회자는 교회 갱신을 선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목회자가 개혁의 대상이 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목회자들에게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 함께 손잡고 새 날을 열어갈 수
있습니까?

몇 년 전입니다. 한 교계 신문에 실린 글이 한국사회와 교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갈릴리 교회를 섬기시는 이동춘 목사님께서 기고하신 이 글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금 한국교회는 복음이 들어온 이래 최대의 위기에 놓여있다. 앞뒤를 돌아보아도 교회들의 아픔의 신음소리와 드높아야 할 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져 짓밟힌지 오래다. 한국교회에는 웬 총재, 고문, 대표, 박사, 이사장, 공동의장 등 높은 자리가 그렇게도 많은지. 세상사람이 비웃는 줄 모르고 자라목처럼 목을 쳐드는 교만은 예수 이름의 칼날 앞에 여지없이 쓰러져야한다. 이 시대의 양심이 되어야 할 목회자가 양심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목사들이 모이면 걱정이 앞선다. 점점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와 장년에 이르기까지 집회가 줄어들고 따라서 예산이 미달 사태를 빚고 큰일났다고 긴장하고 있다. 당연한 결론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서 박터지게 싸우는 것을 교회 밖에서 안믿는 사람들이 말리는 세상이 됐으니 이같이 되고서야 무슨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 되겠는가? 한국교회가 결국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조소와 발에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다.

자! 이제 정신을 차려보자. 교회가 제자리로 돌아와야 되고 다시 세상의 빛이 되어야한다. 그럴려면 문제는 간단하다. 목사가 죽으면 된다. 목사가 죽으면 교회는 화평하고 목사만 죽으면 세상에 빛이 된다. 2000년에 한국교회의 과제는 딱 한가지이다. 그것은 목사가 죽는 것이다.

이 글이 소개된 후에 와싱톤 중앙장로교회를 섬기시는 백순 장로님께서 반론을 한국일보에 게재하셨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였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이 목사님의 글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한국교회의 전체의 모습이 아니며,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또 많은 목회자들이 기쁜 소식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죽을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목사가 살아야 교회도 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쓰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사가 죽어야 합니까? 살아야 합니까? 살 것은 살고 죽을 것은 죽어야겠지요.

오늘 말씀은 참으로 망설여지는 설교입니다. 저 자신과 많은 동역자들에 관한 설교일 뿐아니라,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부족하기 이를데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런 설교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를 향해 물어보면 대답은 분명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갱신에서 목회자의 갱신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갱신의 과제는 우선적으로 목회자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설교를 저는 금번 연속 설교에서 맨 마지막으로 미루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설교를 드릴만한 자격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저 자신 그렇게 되고 싶은 열망이 있기에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I.

오늘 교회의 갱신에서 중요한 과제는 목사부터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지적처럼 서글픈 소식이 없습니다.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데 앞장서야 하는 목사가 세상의 지탄과 개혁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이 현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여러분, 목사들에게서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갱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까? 무엇이 죽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가 누구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써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분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분이(우리 주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습니다(4:11).”

이 말씀은 처음 교회에 있었던 지도자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처음 교회에는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라는 말의 의미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인데, 사도들의 권위는 모든 교회들에게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 바나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또 바울 같은 사람들도 사도로 꼽혔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로, 주님의 부활과 살아계심을 증거했습니다. 둘째로는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앞일을 말하는 사람들이기 보다는, 주님께서 그 현실 속에 주시는 말씀을 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교회를 순회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셋째로 복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이 교회 저 교회를 순회하는 사람들로 오늘의 선교사 같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넷째로 교사나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교사와 목사는 따로 따로 있었다기 보다는 같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교사 혹은 목사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한 지역에 정착해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각각 사역들을 담당했는데 이들의 사역의 목적을 오늘 본문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4:12).” 이 말씀은 바로 목회자의 일감이 무엇인가를 밝혀줍니다. 목회자들은 바로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게 하는 일이 중요한 job description 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 처럼 목사는 농구장에서 활약하는 수퍼스타 선수가 아닙니다. 관중석에 앉아서 박수치던 교인들이 내려와 뛰는 선수들이고, 목회자는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로 하여금 잘 뛸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돕고 작전을 세우는 코치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사명이며 삶입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같은 목회자의 사명과 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특별히 오늘 한인교회의 현실에서 극복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목사들은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는 물량주의, 물질주의의 혼탁한 물결을 넘어서야 합니다.

오늘 목회자의 능력은 많은 경우 교인수와 교회의 예산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목회의 성공도 얼마나 큰 교회,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는가로 측정되고 있습니다. 교회로부터 많은 사례를 받는 사람들은 그만큼 목에 힘을 주고, 권위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목사들은 목회 전선에서 패배자처럼 취급받기도 합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취급하지 않아도, 목사 자신이 그런 자격지심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목사의 성공이 교회의 싸이즈에 달려 있습니까? 목회자의 평가가 교인수나 일년 예산액으로 좌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의 성공 여부는 우리 주님 앞에 가봐야 압니다. 이 땅에서의 사역이 끝나고 주님 앞에서 결산하는 그날 가봐야 압니다. 그때 주님께로 부터 칭찬 받으면 목회 성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싸이즈가 작고 미미한 교회에서 무명의 목회자로 살았다해도 그 목사님은 성공한 것입니다. 영원한 성공자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리 큰 소리 치고, 수만명 모이는 교회를 섬겼다고 해도 우리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그 목회자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해 주고, 알아주고, 그 교회 예산이 엄청났다 해도 우리 주님 모른다고 말씀하시면 실패한 목회입니다. 영원한 실패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가 자라는 것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교회가 자라는 것은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숫자나 물질에 매인다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목회자의 생각과 사역이 물질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물론 저보고 목회하면서 배고파 본 적이 없으니까 한가한 소리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원칙 마저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본질적인 모습마저도 내려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국교회는 물량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물량주의의 거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 물결에 떠밀려 가는 한 교회의 내일은 없습니다. 교회는, 목회자들은 여전히 지탄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 둘째로 목회자들이 벗어버려야 할 옷은 권위주의입니다. 반면에 입어야 할 옷은 섬김의 옷, 겸손의 옷입니다.

목회자들에게 요청되는 리더쉽은 Servant Leadership, 섬김의 지도력입니다. 낮추고 비우는 리더쉽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한국의 목회자들은 권위주의에 사로 잡혀서 껍질이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데 익숙해져서 진정한 섬김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비판도 사절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옳은 것처럼 독선의 덫에 물려있습니다.

한국감리교회의 인터넷 자유 게시판에 게재된 최동호님의 글 가운데서 몇 항목을 인용합니다.

목사님 .... 부디 ...
- 지나가시다가 교인을 만나시면 차에서 내려 인사하십시오. 창문도 안내리고 손만 흔들지
마시구요.
- 어디 초대 받으시면 마땅히 상석만 찾지 마시고 먼저 하석을 찾아 앉으십시오.
- 식사할 때 집사님이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보십시오. 당연히 목사니까 기도한다고 생각
지 마시구요.
- 일년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십의 십조를 해보십시오. 다 버려야 얻는다고 설교하시는
목회자가 ‘그래도 그렇지’하고 십조를 못하시는 것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신지...
- 목사는 하나님만 심판하신다는 이상한 논리를 버리시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보십시오.
-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하십시오...
- 누가 목사님을 비판하거든 불러다 혼낼 생각하지 마시고 왜 그런가 기도해 보심이 ...
- 저는 요.. 완벽한 목사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그냥 지금보다 좀 더
용기있고 좀 더 개혁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지 않고 뭔가 변화가 항상 느껴지고 개선의 여지가
있고 담벼락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목사님이기를 바랍니다.
- 기도 많이 안해도 좋습니다. 새벽예배 형식적으로 나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눈빛만
뵈도, 아 진짜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 교인 천명으로 늘려달라고 애절히 부르짖는 목회자 바라지 않습니다. 현재있는
교인들만이라도 제대로 양육하면 우리가 알아서 늘려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많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십의 십조 아직 못바쳐 보았습니다. 섬기는 인생이 위대함을 깨달았기에 섬기는 자의 길로 목사가 되었는데, 어느덧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는데 익숙해져가고 있는 제 자신을 또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외침의 소리들에 저를 포함하는 목회자들 귀를 열어야 합니다. 권위주의의 갑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본받아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길, 섬김의 참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3)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진정한 모습을 찾는 이 길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신 평신도 여러분의 이해와 격려가 필수적입니다. 이 일 역시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손잡고 이룩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되신 여러분들, 목사도 인간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라는 말은 완전하지 않은, 부족함과 허물, 약점과 모자람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교회나 훌륭한 목사를 찾습니다. 완벽한 목사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한 목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목사들마다 받은 은사와 능력에 따라 강점이 있는가 하면,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몇해전 영어 회중에서 목회자를 구할 때, 목회자에 대한 희망을 말하라고 했더니 여러 가지 요구가 나왔습니다. 설교도 잘하고, 심방도 잘하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하고, 행정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사도 바울이 와도 안되겠다.”

동북부 한인 선교감리사로 섬기시는 김상모 목사님께서 쓰신 병든 믿음을 위하여 라는 책 속에 실린 글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력서”라는 제목의 글인데, 그 이력서가 너무 훌륭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1. 학력: 한국일류신학대학원 졸업, 미국일류신학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2. 목회경력: 한국 10년, 미국교회 10년
3. 이중언어: 레이건대통령 연두교서 통역정도, 한국어유창
4. 작문실력: 대학논문 1등상 수상
5. 저술: 설교집(베스트셀러) 10판 거듭한 것만 10권
6. 호소력: 대학생국제웅변대회 1등
7. 설교: 15-20분 넘지 않음
8. 외모: 남성미 사진모델 입상
9. 성격: 온유겸손, 내향성이나 때로는 외향성, 절대 화를 안냄
10. 행정: 절대 독재 안함
11. 비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세우려 함
12. 심방: 24시간 가능함
13. 체격: 아담하고 건강함
14. 재정: 교회재정은 절대 알려고 하지 않음
15. 교인사랑: 1불헌금 교인이나 100불 헌금 교인이나 똑같이 대함
16. 취미: 심방
17. 가족: 자녀가 다 출가하여 경제적 부담없음
18. 연령: 지긋한 나이지만 아주 젊게 보임
19. 헌금: 절대 십일조 강조 안함
20. 목회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음
21. 도서비: 위와 같음
22. 생활비: 주는대로 받음
23. 자동차: 차가 없으면 걸어다닐 각오가 서 있음
24. 주택: 형편에 따름
25. 사모성격: 어머니 같이 인자하고 입이 무거움
26. 사모외모: 미인도 박색도 아님
27. 사모의 능력: 교회 세크리터리(secretary) 혹은 전도부인 적격
28. 사모의 학력: 대학원졸업, 그러나 똑똑한 체 안함. 이중언어 능함.
29. 기타: 교회가 원하면 언제든지 사임함

여러분, 이런 목회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 역시 부족함과 허물을 안고 있는 인간임을 기억하시고 끌어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목회자와 함께 동역하시면서 한가지 기억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목사도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부르셔서 목사로 세우셨다는 이 사실, 그분의 소명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부족함을 여러분도 아십니다만, 그 이전에 우리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분을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 목사의 소명이 분명하다면, 정당하다면, 우리는 이 점에서 목회자들을 인정하고 그의 소명을 존중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며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훌륭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모자라고 부족해도, 이 사실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분에게 목사의 사명을 맡기셨기에, 그분을 부르신 주님 때문에 존중하고 함께 사역함이 필요합니다.

이같은 격려와 사랑이야말로 목사가 참으로 목사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경험하는 교회 안에서의 분열과 아픔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훌륭한 목사가 생동하는 교회로 자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만, 또한 훌륭한 교회가 생동하는 목회자, 성숙한 목회자로 자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갱신은 혼자서 소리높여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성도들과 함께 이루어 가는 과제입니다.

시골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하도 설교를 못해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마지막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목사관 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어린 소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손에 든 계란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설교 못하셔서 오늘 예배보고 떠나신다지요. 지금 우리 집에서 기르는 닭이 막 낳은 계란인데, 오늘 이 계란 잡수시고 제발 설교 좀 잘하세요.” 목사님은 그 계란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는 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서 그 교회는 목사님을 다시 모시고 새롭게 출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과 격려야말로 목회자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길입니다. 이렇게 목사와 성도들은 함께 손잡고 갱신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III.

지난 10월31일 종교개혁기념 주일부터 시작해서 저는 “늘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 밑에서 여섯 번에 걸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종교개혁은 Martin Luther나 John Calvin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개혁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끝없는 갱신이야말로 개신교의 근본 정신입니다.

교회의 갱신은 교회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의 비전이 중요합니다. 이 뜻, 이 비전이 교회 갱신의 근본입니다. 개신 교회가 갖는 취약점은 많은 교단과 빈번한 분열입니다. 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됨은 획일성(Uniformity)을 뜻하지 않고,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됨(Unity in Diversity)을 뜻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주님의 도구로 부름 받았습니다. 오늘도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책임 있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그저 모인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벽을 뛰어넘는 진정한 공동체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소그룹, 속회는 이 시대 속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오늘 교회개혁의 중심과제는 평신도를 깨우는 일입니다. 적당히 재어서 믿음 생활하는 평신도 근성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평신도가 아니라 병신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종교개혁은 평신도의 사역을 바로 찾고 꽃을 피우는데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 개혁은 목사들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물질주의의 탁류와 권위주의 속에서 섬김의 모습을 잃어 가는 이 현실을 목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원의 빛에서 진정한 목사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성도들과 함께 손잡고 변화된 내일을 열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남의 탓하지 마십시다. 나는 괜찮은데 누가 문제라고 자신을 제외시키지도 마십시다. 오늘도 교회는 갱신되어야 합니다. 그 갱신은 바로 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교회가 바뀝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바뀝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갱신하는 일에 부지런을 떨어보십시다. 이 시대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우리 모두 힘을 모아보십시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하라고 와싱톤한인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나를 부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