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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5. 조영진 목사
"늘 새롭게 하소서(5)-하나님의 백성들"
베드로전서 2:9-10
교회의 갱신은 우리 자신의 갱신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합당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생각과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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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 전입니다. 여름철에 갖는 전교우 수양회 시간에 진지한 토의가 오고 간 적이 있습니다. 주제는 “와싱톤한인교회의 교인이 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것(minimum requirement)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최대한의 요구는 제한이 없으니까, 우리 교회 교인이 되려면 적어도 무엇이 요청되는가? minimum requirement를 가지고 논의했습니다. 여러 가지 논의들이 오고 갔습니다. 적어도 주일예배는 참석해야 되지 않는가? 주일예배 드리는 외에 자신의 신앙 성장을 위하여 한가지 프로그램에는 참여해야 되지 않는가? 재정적인 헌신도 필요하다.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많은 의견들이 제기되고 토론이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싱톤한인교회의 교인되기 위하여 최소한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조건 내걸지 말고 그냥 누구나 나오시면 됩니까? 물론 교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아무나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와싱톤한인교회의 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삶과는 다른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이 세상 사람과는 아무런 구별도 없고, 따라서 부담도 없는 생활이라면, 구태어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가 무엇입니까? 내 마음대로 살아가려면 왜 예수를 믿으시려고 합니까? 왜 교회에 적을 두십니까?
지난 10월31일 종교개혁기념 주일부터 시작된 연속설교의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개신교의 근본 정신 가운데 하나는 끊임없는 교회의 갱신에 있음을 말씀 드리면서 “늘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 밑에서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주일에는 교회의 개혁은 “내가 보기에,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뜻과 비젼이 중요하며 이 뜻, 이 비젼이 교회 갱신의 근거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주일에는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의 제목 밑에서 개신교가 지닌 약점, 많은 교파와 분열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번째 주일에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소금과 빛이 되는 것, 책임있게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말씀드렸고, 넷째 주일에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는 갱신의 필요에 대해서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참된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다음 주일에는 마지막으로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봄으로 금번 연속설교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I.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강하게 일어나는 교회 갱신운동의 중요한 초점은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는데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교회 사역의 엑스트라들이 아니고 주연 배우라는 외침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교회들이 당면한 최대의 숙제입니다. 저희 교회도 지난 세 번째 장기계획에서부터 평신도 사역 개발에 우선 순위를 두고 함께 씨름해 왔습니다.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는 이 숙제는 먼저 평신도가 누구인가?라는 이 근본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으신 베드로전서 2:9 이하의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일깨움을 가져다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음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알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먼저 오늘 이 말씀의 배경으로 많은 성서학자들은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는 장면을 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의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에집트땅에서 건져 내었는지 잘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면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 제안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듣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겠다고 약속함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언약이 이루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공동체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모습은 이제 혈통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차원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 위에서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 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베드로전서의 본문 말씀 속에서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네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값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택하심을 받은 족속입니다. 둘째는 “왕과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란 백성의 죄와 허물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은 바로 왕의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속하였기 때문에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셋째는 “거룩한 민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구별된 민족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들”입니다. 내 생명,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대로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에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종교개혁 운동의 명제 가운데 하나였던 만인제사장설(Priesthood of All Belivers)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캐톨릭 교회는 사제와 평신도가 구별이 되어서 사제만이 성경을 읽고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현실에 대해서 Matrin Luther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임을 강조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일고있는 교회 갱신 운동은 평신도의 제사장 됨을 회복하기 위하여 성경을 되찾은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수받은 목회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ministry, 사역도 평신도들에게 돌려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첫 번째 종교개혁이 성경을 평신도들에게 돌려 주었다면, 사역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주는 이 운동이야말로 제2의 종교 개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평신도의 사역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1) 먼저 우리는 평신도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희랍어 laos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단순하게는 “백성”, “백성의 무리”를 뜻하지만, 성경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뜻합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안수 받은 목회자와는 다른 일반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안수 받은 목회자를 포함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었습니다. 결코 안수 받은 목회자에게 종속되거나, Second class Christian 같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은 모두가 평신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안수 받은 목회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이 평신도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고 성례전을 행하며 교회의 질서를 지켜 가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에서 안수함으로 성별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평신도는 상하의 dl중 구조가 아닙니다. 명령하고 듣고하는 그런 구조가 아닙니다. 목회자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신도 곧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평신도는 사역의 내용이 다를 뿐, 함께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역자들입니다.
(2) 이어서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신도 근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전기공학을 공부하시고 평신도 사역자로 헌신하시는 조태한 집사께서 평신도를 목회의 파트너로 삼아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 책 속에서 집사님은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하여 ‘평신도 근성’을 넘어서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평신도 근성’이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는 분들은 목회자와 전문 사역자들이고, 우리는 그분들을 시간나는대로 도와드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근성을 지닌 사람들은 주일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차세대 사역 교사나 찬양대에서 섬기는 정도만 되어도 1등 신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사역자도 아닌데,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공부할 일이 뭐가 있으며, 더군다나 복음을 전하고 나가서 선포하는 일은 일부 광신자 혹은 열심히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 스스로를 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평신도 근성'에 사로 잡혀 있지는 않은지, 주님 앞에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데도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지루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조 집사님은 평신도야말로 사역의 주체이며 주연 배우들인데, 스스로를 엑스트라로 착각하고 있다고 일깨웁니다. 제게도 종종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바쁘신데 도와 드려야 할텐데 죄송합니다.” 참 감사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목회자들을 돕는 조연 배우들이 아니십니다. 여러분들 이야말로 주연 배우들이십니다. 저희 목회자들이 오히려 조연이고, 무대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입니다.
인도에서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셨던 Stanley Jones 목사님의 말씀은 제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말씀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현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농구 시합을 하는데 관중석에 앉아서 구경을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자기가 나가는 교회 목사가 Michael Jordan 같은 슈퍼스타가 되어서 설교도 잘하고 심방도 잘하고 행정도 잘 하고 하면 박수 갈채를 보냅니다. 그러나 목사가 시원치 않으면 박수 갈채 대신 책망을 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은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 성경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은 관중석에 앉아있는 평신도들이 경기장으로 내려와 선수로 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코트 밖으로 나가 코치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니다. 참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든 교우들이 사역의 주체임을 깨닫고 관중석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평신도 근성에서 깨어 일어나 주연배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헌금을 내서 목회자에게 사역을 맡긴다는 이 수동적인 생각, 사역은 전문 사역자의 몫이고 우리는 봉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이 생각의 틀, 이 Paradigm이 바뀌어야 합니다.
(3) 세 번째로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을 자원봉사의 차원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헌신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되신 여러분, 여러분은 그냥 믿고 천국가는 이 삶만을 위해서 부름받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로 삶으신 분명한 뜻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 우리의 삶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좁게 말하면 선교라고 말할 수 있고, 넓게 말하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모든 사역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나누는 것 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사역의 중심입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주신 놀라운 은혜를 전함은 모든 사역의 근본입니다. 이것은 입술로도 전해야 하고 우리의 변화된 삶으로도 전해야 합니다. 이 과제는 자원봉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을 자원 봉사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는 자기가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해도 된다는 그런 의미가 있어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역이 과연 그런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자원봉사를 넘어서는 부르심에의 응답입니다. 헌신입니다. 내게 주신 은사와 노력, 경험과 기회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헌신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평신도됨의 회복을 위해서는 평신도 근성을 넘어서고, 자원봉사의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4)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특별히 한인교회, 한인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삶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변함없이 고백되는 것입니다.
오늘 한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지탄을 받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내용 때문입니다. 특별히 세상 속에서의 삶의 내용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 속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모습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중생활에 있습니다. 이 이중생활이야말로 복음을 전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우는 최고의 걸림돌입니다. 한국 사회 속에서 전인구의 25%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고, 세계에 내보내는 선교사의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고 특별히 한국의 정치와 정부, 학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25%보다 훨씬 높다고 하는데, 왜 한국은 아직은 부패 지수가 높고, 잡혔다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왜 사기를 당했다고 하면 장로에게서 속은 사람들이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들 예수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진정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의 모습을 참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모습을 새롭게 되찾는 이 갱신운동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모두 요청됩니다. 특별히 한인 그리스도인된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요청됩니다.
III.
금번 연속설교는 다음 주일 목회자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는 일에 대해 말씀을 드림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어쩌면 대단히 전하기 힘든 설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해 전 VA연회에서 Revealing Christ, 그리스도를 보여주자는 캠페인을 전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운동의 목적은 2000만불을 모금해서 VA연회 안에 새롭게 교회를 세우고 또 기존 교회를 갱신하는데 쓰자고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2000만불 가운데 55%인 1,100만불을 새로운 교회 개척에 쓰고 15%인 300만불을 성장하는 교회 건축 지원, 15%는 기존교회의 갱신, 나머지는 개척교회의 지원 및 기타를 위해서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슈가 되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기존교회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기존교회를 새롭게 세워갈 것인가? 라는 문제였습니다. 결국 고심하며 논의한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기존 교회를 갱신한다는 것은 기존 교인들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어지는 교회의 갱신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저입니다. 여러분입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평신도의 모습을 되찾으면 교회는 새로워집니다. 우리들이, 와싱톤한인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된 모습을 되찾으면 이 땅은 새로워집니다. 우리들이 새로워집니다. 여러분과 제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내가, 내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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