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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4. 황의경 전도사
"하나님께 배우는 사랑의 방법"
요한일서 4:7-12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속에서 배우고 실천하라고 두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간단한 계명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부모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고 닮으라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그들을 진정 사랑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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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아마 “사랑”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유행가 가사에서부터, 책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제일 흔하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사랑”이란, 오늘의 본문말씀을 기초로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동으로 보여주셨기에 그 사랑을 경험하고 믿는 사람은 그 사랑을 바탕으로 삶을 이루어갑니다.
오래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핍박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설교를 한 후 한 어린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꼭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셨나요? 다른 방법으로 하시면 안됬나요?” 제가 그 어린이에게는 신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희생제사의 풍습 등을 들어가며 설명하였지만, 나중에 그 질문을 생각하던 저 또한 어린아이 같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가 직접 이 땅에 내려오시지 않고 그 아들을 보내셨을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나 엉뚱한 질문이지만,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자녀를 길러보신 부모님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마음이지만, 자녀가 다치거나 너무나 아파할 때 부모의 마음은, ?내가 대신 아팠으면, 내가 대신 다쳤으면?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픈 것이 차라리 사랑하는 자녀가 아픈 것을 지켜보기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그 사랑은 자신이 겪을 수 있는 그 아픔보다 더한, 사랑하는 외아들이 고통과 희생, 모욕과 처참한 죽음에 이르는 것까지 지켜보아야만 했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깊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셨기에 그 사랑을 경험하고 믿는 자는 어떤 시험이나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버리지 못하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개인의 삶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부모나 형제, 자녀나 동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하여도 그것에 대한 증거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상대방의 삶속에 깊이 심어있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그저 나혼자의 느낌이고 감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말도 못 걸고, 피해 다니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스타일입니다. (웃으실 줄 알았습니다) 사춘기때 일기장을 보면, 이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 생각하여 누구를 사랑한다는 단어를 자주 썼음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배우며 깨달은 것은 나의 사랑은 내가 인정한다고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인정 해주어야만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누구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 상대방이 나의 그 말을 인정해주고 믿어줄 때만이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자녀를 두신 모든 부모님은 내가 내 자녀를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고백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그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타내고 계십니까? “자녀들에게 만일 너희 부모님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함을 믿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추측이 되십니까? 만일 그들에게 “어떻게 부모님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함을 아느냐?”라고 그 증거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답할까요? 부모의 자녀를 향한 사랑은 저울질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고, 부모님들 또한 자녀들이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방법을 몰라서 그 사랑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수련회 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하루는 작년부터 함께 사시는 부모님께서 제 여동생에게 이렇게 물으셨답니다. “의경이가 언제나 늦게 들어오는게, 혹시 우리가 이제 같이 살아서 불편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그러자 제 동생이 “엄마, 언니는 나랑 살았을 때도 언제나 늦게 들어왔어요. 집에 있는 적이 없어요.” 제가 이 말을 듣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집에 들어올 때 자주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사들고 옵니다. 그것이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제가 아무리 맛난 음식을 사들고 와도, 제가 일찍 들어와 부모님과 저녁도 함께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성하고 꼭 일주일에 한번은 저녁시간 전에 들어와서 부모님과 식사를 해야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시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 사랑의 표현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사역을 오래하면서 깨달은 진리중의 하나는, 내가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방법을 깨닫고 이해하며, 또 그 동일한 방법으로 가족과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면 훨씬 많은 사랑의 열매와 결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그러한 사랑의 기술과 방법과 열매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상처에 치유를, 또 넘어진 자를 일으키는 힘과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역하면서 부모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들을 봅니다. 그들중 세 가지에 대해서 나누어보려 합니다. 첫째는 자녀에게 베푸는 물질을 통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제일 의아했던 것 중의 하나는, 제가 미시간에서 자랐을 때에는 16살이 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곳은 학생들이 거의 한 명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제가 너무 궁금해서 학생들 몇에게 물어보니, 어떤 학생은 돈벌 이유가 없는데 왜 하느냐, 아니면 하고 싶어도 엄마가 그 시간에 공부나 더하라고 하셔서 못한다는 답이었습니다.
자신의 용돈을 스스로 번다는 것은 자녀에게 경제적인 자립심과 돈의 소중함, 그리고 일과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주는 귀한 삶의 레슨입니다. 자녀들에게 물질적으로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 부모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자녀들이 돈 때문에 불편하고 구차한 삶을 살기 원치 않으시고, 부모님께서 다른 것으로는 돕기가 어려운 탓에 물질으로라도 채워 주시고자하는 표현이고 방법이고 마음이고 정성인 것을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에 빗대어 보면, 언제나 물질적인 축복이 증거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미시간에서 2번째로 학비가 비싼 사립대학을 다녔습니다. 이 학교는 주로 학생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Kellogg회사 부사장 자녀나 Credit Union 사장 자녀등 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층이 아니면, 그렇지 못하지만 장학금을 받고 오는 학생들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에 다니면서 제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배웠는데 그것은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하는 방법입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제 친구들이 주로 부유층 자녀들이었는데, 첫 학기 시작하자마자 그들은 아르바이트 할 일을 찾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부자인데도 비싼 학비는 보조를 받을지언정, 용돈과 교과서 비용은 자신들이 벌어야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여, 모두가 4년내내 학교식당 접시 씻기부터 일을 같이하며 보냈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의 생활 신념 때문에, 경제적으로 보면 저와 그들은 너무도 차이가 있지만, 모두 열심히 일하여 아껴 쓰는 생활과, 또 부족하여 함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여 주셨던 일도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생활, 또 경제에 대한 것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생활을 배우니, 그 때 이후로 저는 돈이 있거나 없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반면에, 아버님께서 미시간 주립대에서 오랫동안 Campus Ministry를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유학생들의 생활을 가까이 지켜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였던 유학생들이 IMF가 터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많은 학생들이 depression을 겪고, 신앙을 버리고, 공부를 그만두거나, 심지어는 몸까지 파는 학생들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삶을 주심으로 표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1-33).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물질이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을 구할 때에 다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을 때 주지 않는 것이 더 힘듭니다. 물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더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더 힘든 사랑의 방법을 선택하실 때에는 자녀들의 삶속에 더 값있는 삶의 교훈과 방법을 가르쳐주시게 됩니다.
부모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 중 두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정작 필요한 대화나 친밀한 교제, 가정예배, 그리고 부모자녀간의 기도의 시간과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기독교 설문지에 이런 자료가 나왔습니다. 각 가정에서 하루에 자녀와 어머니가 대화하는 시간이 5분 정도이고,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2분 50초 정도라고 합니다. 저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와 지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라면 부부끼리 나누어야 되는 시간,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희생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먹고 쓰는데 시간을 줄이고 편리하게 살수 있는지를 계속 추구합니다. 그래서 “fast food”, “instant food”, “drive through”가 등장하게 되었고, 심지어 햇반”이라는 밥도 나오게까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주에 투자되는 시간을 줄여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삶의 여유나 만족이 그 만큼 늘은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바쁜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매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런 바쁜 삶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주님과의 교제를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방법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성숙해지는데 꼭 필요한 것임을 언제나 저희에게 가르치시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랑의 방법을 가정에도 적용하기를 원하시는 줄 압니다.
Mother Teresa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This world is more hungry for love than the bread.” “이 세상은 빵보다 사랑에 더 굶주려 있다”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자녀들이 “사랑결핍증”에 걸려있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할 관계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채워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녀가 부모의 시간과 참여를 원할 때, “아빠는 바빠서 안돼”, “엄마는 다른 일해야돼.” 한다면, 자녀들의 마음속에는 부모가 자신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고 이해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된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잘못 표현되는 사랑의 방법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가 학업성적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Greater Washington의 교육열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강합니다. 학업적으로 많은 갈등과 압력을 받고 자라는 저희 어린이, 청소년들이 잘못 이해하는 한가지 부모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대학을 가야지만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고학년 초등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질문중의 한가지는 부모님께서 나에게 바라는 목표입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 하나님 잘 섬기면서 자라는 것등등의 답도 있었지만, 주로는 성적 잘 받는 것, TJ 가는 것, 좋은 대학 가는 것등 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대하는 모습이 성적과 비례하다던가, 공부를 위하여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부모님의 사랑이 conditional하다고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이해의 결과는 자녀들이 자신에 대해 “low self-esteem”즉 낮은 자아관을 형성하게 합니다.
제가 홍정표 목사님께서 영어목회를 하실 때 2년 동안 가까이서 vision of peace교인들과 사역한 적이 있습니다. 주로 상담과 기도 사역을 하였는데, 그 사역을 하면서 알게된 것은, 3명중의 1명은 자신의 직장에 대해서 너무나 힘들어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길 원하는 2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일과 하버드졸업생이 많았었는데,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의 결정에 순종하여 대학을 정하고 전공을 결정하고, 또 졸업 후에도 좋은 직장을 다니는데, 매일 직장 가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너무나 힘들고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앙이 자라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가지고 계신 목적에 대해서도 기도하고 싶고, 알고 싶지만, 안다 하여도 이제 와서 다시 대학을 갈 수도 없고, 하고 싶었던 전공을 다시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갇힌 듯한 인상을 받아,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중요합니다. 능력이 있고 재능이 많으니 좋은 학교에 가는 것도 충분히 자녀들이 이룰 수 있는 꿈입니다. 또 이 나라에서 Minority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문직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자녀를 향한 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갈 길을 시험해보고, 자문하고, 기도하고 확신하여 걷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길을 선택하여 걸을 때에는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좌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자녀들이 부모님으로부터 필요한 사랑은, 내가 어떤 성적을, 어떤 학교를 가게 되더라도 부모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라는”사랑의 확신이며, 그 확신은 오히려 그들이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으시고 사랑하시며, 우리가 잘못할 때나, 실수할 때, 우리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할 때 오히려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교회가 240명이 넘는 어린 영혼들, 또 젊은 영혼들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뿐만이 아니라 다른 큰 한인 감리교회들도 모두 청소년 사역자를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 중에 있고, 2세, 3세사역의 미래가 너무 어두워 많은 교회와 교역자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학교에 대해서 세미나를 할 때마다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탕자가 나중에는 사랑해주었던 아버지의 품에 돌아오듯이, 가정에서도 만일 자녀가 잠깐 방황한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알면 꼭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듯이 저희 2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을 간두, 아니면 직장을 가진 뒤,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 잠깐 방황한다 하더라도 교회에서 사랑을 받았던 교인이나 학생은 꼭 그 교회로 돌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자문해야 하는 것은 우리 2세들이 한인교회에 다닐 때에 그 교회로부터 진정 사랑 받았다고 느끼고 자랐냐는 것입니다. 만일, 만일 사랑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저희가 어떤 방법을 써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저희교회나 아니면 다른 한인교회로 남기를 원한다면, 그들의 마음속에 ?나는 정말 이 교회에서 사랑 받았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저희가 그들이 이해하는 방법으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표현하기 쉬운 방법, 우리가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라, 받는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저희교회에 많은 사역자들과 선생님들, 또 교회학교를 위하여 보이지 않게 애써주시는 권사님들, 장로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사랑이 어린 영혼들이 신앙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은 힘이 되고 결실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외에 전교인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차세대 사역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기도로 도와주시는 것, 그리고 선생님으로, 또는 보조교사로 헌신하는 일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들이 부족하다는 말보다, 지원하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으셔서 Waiting List가 있다고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사역자로서의 제 작은 소망입니다.
저희가 진정한 사랑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각 개인 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함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방법은 인간이 사랑하는 방법과는 비교가 안되게 깊고 또한 실천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힘이 저희를 살리고, 치유하고,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을 경험하면, 우리도 배운 그 사랑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또 그 사랑으로 아내를,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사랑하게 될 때에 비로소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함께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다면 주님께서 아름다운 열매로 모두의 삶속에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나눈 내용들이 부모님께서 불편히 들으실 수도 있는 내용인 것을 압니다. 저도 편한 내용으로서는 것이 더 쉬운 일이지만, 이것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어야 된다 생각했기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저희 교회학교 사역자들과 선생님들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 추구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모님들과 함께 한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이 진정한 열매가 맺히리라 생각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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