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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0. 조영진 목사
"믿음은 삶입니다(17)-돌아서게 하는 일"
야고보서 5:19-20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사명은 무엇입니까?
돌아서게 하는 일입니다.
형제들, 이웃을 진리에로 돌아서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이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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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쁜 날입니다. 감사한 날입니다.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마땅한 날입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가 쉰세살 되는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53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 놀라웁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금년에는 한국 선교에 헌신하시다가 은퇴하신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생일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어 더욱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도 여기 이렇게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53년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마음껏 주님을 찬양할 일입니다.
오늘 이 뜻깊은 주일에 마침 야고보서 연속설교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열일곱번에 걸쳐서 계속된 금번 연속 설교의 주제는 한가지였습니다. 믿음은 삶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믿음은 결코 추상적인 생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삶입니다. 아니 믿음은 삶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대로 살아갑니다. 야고보서 연속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하루 하루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고백되어야 함을 살펴 보았습니다. 믿음은 우리 언어생활, 입술에서도 고백되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인내의 덕 속에서도 고백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또한 기도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은 예배에서도 표출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부자와 가진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대우는 없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있는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를 살피고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I.
믿음은 이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 길에서 우리가 해야할 또 한가지 중요한 숙제가 있습니다. 잊어서는 안되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중요한 숙제를 사도 야고보는 그의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5:19-20).”
초대 교회 안에서도 종종 믿음의 길을 걷다가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혹은 희랍 철학이나 동방의 신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이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권면했습니다. 믿음이 흔들려서 진리의 길에서 떠난 사람들, 그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웠습니다.
이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교회 멤버 한사람 더하는 일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5:20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영혼을 죽음에서 건지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적당히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진리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종착역은 바로 멸망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면 형제와 자매를 진리되시는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을 죽음에서 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죄를 덮어주는, 용서함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II.
교회는 바로 이 돌아서게 하는 일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일을 위하여 이땅에 세워졌습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도 이 일을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1) 먼저 돌아서게 하는 이 일은 본문 말씀이 권면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처음 교회처럼 오늘 이 시대의 교회 안에서도 미혹되고 진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에 주는 상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답지 못하기에 떠나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교회는 돌아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함께 믿음의 길을 걷다가 진리를 떠나는 그 영혼들을 진심으로 염려해야 합니다. 그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안고 돌아서게 하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이 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오늘 우리 교회는 과연 돌아서게 하는 일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를 돌아보는 이 일이 부족함은 계속 지적되어 오는 문제입니다. 앞문으로 들어왔다가 뒷문으로 빠져 나가시는 성도들을 붙들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 나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 말고도 돌아서게 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나가셔서 열심히 진리의 길을 가시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찾아오는 성도들 조차도 돌아보지 못한다면 과연 주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돌아서게 하는 이 일을 위하여 기쁘게 우리 모두를 쓰실 수 있겠습니까?
(2) 그런데 돌아서게 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맡겨주시는 사명입니다. 목회자 만이 아닙니다. 와싱톤한인교회, 곧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숙제입니다.
많은 경우 돌아서게 하는 일은 목회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사명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신도 된 우리는 주일예배 참석하고 헌금이나 내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시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신 평신도 여러분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병신도(?)로 절하시키는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돌아서게 하는 이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진리를 떠난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돌아서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손잡고 진리 가운데로 돌아서게 하는 이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일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3) 돌아서게 하는 일은 교회 안으로만 국한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분 가운데서”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는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아서게 하는 이 일을 위하여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땅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돌아서게 하는 일이 일어 날 수 있는 황금어장입니다. 교회안에서 내 주변만 바라보면서 돌아서게 할 사람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땅 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헤매고 있습니다. 진리를 떠나서 그릇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릇된 길인줄도 모르고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아가서 외쳐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 길은 죽는 길이라고.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돌아서라고, 생명의 길로 돌아서라고 외쳐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백성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에 헌신하셨던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돌아보면서 또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느껴 보았습니다. 은둔의 나라로 알려졌던 한국, 중국과 일본, 소련같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겪던 이 나라에 선교사님들은 찾아오셨습니다.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시면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학교를 세우셔서 문맹을 퇴치하시고 새 역사의 날을 열어 가셨습니다. 전도자로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셨습니다. 한 세대의 헌신으로 끝나지 않고 2세대, 3세대로 이어가면서 돌아서게 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소외된 사람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젊음의 때, 편안히 미국에서 살아가실 수 있었지만, 낯설고, 물설은 한국 땅에서 오셔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돌아가신 Eli Mowry 박사님 같은 분은 결혼하면서 바로 신혼의 꿈이 깨어나기도 전에 한국을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동대문 교회를 섬길 때 이 교회에 출석하셨던 Dr. Roberta Rice 같으신 분은 초등학교 다닐 때 한국에 의료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결심을 하셨는데, 그 결심을 바꾸지 않으시고 의사가 되어 한국을 찾아 오셨습니다. 한평생 결혼하지 않으시고 생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도 생명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미 우리는 시작하였습니다. 멕시코와 도미니카 공화국, 방글라데쉬, 만주 땅에서 또 금년에는 아프리카에도 가서 돌아서게 하는 일에 헌신 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또 우리의 주변을 향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도 계속해 갈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또 교회 밖에서, 믿음의 백성들을 향하여,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을 계속해 가야 합니다.
III.
오늘 기쁜 날입니다. 감사한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또한 새롭게 결심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 이 일을 위하여 우리 모두 새롭게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와싱톤한인교회에 이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진리를 떠나 방황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돌아서게 하라고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목회자 뿐 아니라,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생명을 살리는 일,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 그 삶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이 돌아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웃을, 땅끝까지 나가서 생명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역사를 낳습니다. 사랑은 얼어붙은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서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Alice Gray여사가 엮은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레위스 라웨스는 1921년에 싱싱 감옥의 교도소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싱싱 감옥만큼 거칠고 험악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교도소장 라웨스가 은퇴하게 되었을 때, 그 감옥은 가장 모범적이고 인도주의가 넘치는 교도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싱싱 감옥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라웨스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라웨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교도수 담장 밖에 묻혀 있는 내 아내, 캐서린 덕택입니다.”
캐서린 라웨스는 남편이 교도소장이 되었을 때 어린 세 자녀를 둔 젊은 어머니였습니다. 사람들은 캐서린에게 절대 교도소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경고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첫 농구 경기가 열렸을 때, 그녀는 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예쁜 세 아이들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들어가 죄수들과 함께 관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여러분을 돌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또한 저를 돌봐 줄 거라고 믿습니다. 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감옥의 죄수들과 그들의 전과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들어온 한 죄수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죄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점자를 읽을 줄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점자가 뭔데요?” 그녀는 그에게 점자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몇 년이 지나자 그는 그녀의 사랑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캐서린은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 장애자를 위해 수화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캐서린 라웨스야 말로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싱싱감옥에서 살다 가신 예수님의 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레위스 라웨스는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리 교도소장이 그의 일을 맡았는데, 죄수들은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음을 거의 즉각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다음 날 캐서린의 시신은 교도소에서 1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그녀의 집에서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날 아침 산책을 하던 대리 교도소장은 굳은 얼굴의 죄수들이 마치 큰 무리의 가축 떼처럼 교도소 정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그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에 젖은 눈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캐서린 여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죄수들을 향해 “좋습니다. 여러분,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녁까지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간수 없는 죄수들의 행렬이 감옥에서부터 그녀의 집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캐서린 라웨스를 향한 그들의 마지막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들은 모두 교도소로 돌아왔습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다 교도소로 돌아왔습니다.
캐서린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었습니다. 험악한 죄수들을 돌아서게 한 그리스도의 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시대 속에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돌아서게 하는 이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삶입니다. 정말 믿음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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