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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 조영진 목사
"믿음은 삶입니다(16)-기도하십시오"
야고보서 5:13-18
기도는 문제 해결의 길을 넘어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어려워도, 기뻐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나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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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때 우리에게 임하는 여러 가지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기억 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용서함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길을 찾아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지를 깨달아 인생의 우선 순위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유능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땅 위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누리다가 죽음 너머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귀하고 귀한 특권입니다. 세상의 재물로는 살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귀한 특권,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직통 라인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대통령과 원하면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도 무릎을 꿇는 우리 주님과 직통 라인을 갖고 있다는 것 얼마나 귀한 특권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이 기도의 특권은 열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기에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여러분, 이 아침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기도입니다. 그 하나님과의 교제가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에게서 기도는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이며 기초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붙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없이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은 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1:4 이하에서 지혜가 부족하면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라고 권고한 사도 야고보는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 한번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어려움과 역경에 부딪쳤을 때 기도하라고, 질병으로 고통 당할때도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기쁠때는 찬양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런데 찬양도 기도의 범주 속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찬양의 가사들을 주의깊게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이 기도인 것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사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고백은 바로 기도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붙어있는 기도라는 점이 좀 다른 것 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많은 찬양시들을 보고 듣게 되는데, 거의 모두가 다 기도입니다.
저도 기도가 힘들고 자꾸 잡념이 들어서 집중이 안될 때는 찬양의 기도를 드립니다. 찬양 속에 내 자신의 고백, 내 자신의 감사를 담아서 드릴 때, 바로 기도의 세계가 넓게, 깊게 열려가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청년기에 투병하면서 불렀던 많은 찬양은 바로 저의 기도였습니다. 정말 기쁠 때 눈물을 쏟으며 감사의 찬양을 불렀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때 “나 이제 생명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내 기쁨 넘치네 내 기쁨 넘치네 (찬송가 27장 4절)”를 많이 불렀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 말씀은 고난 당해도, 즐거워도, 병들었을 때에도 기도할 것을 강조합니다. 조금씩 덧붙이는 말씀들이 있지만, 결국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기도의 사람으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엘리야를 소개합니다. 그는 주전 9세기 북왕국 이스라엘 때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바람 앞의 등불같이 위태로웠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백성들의 믿음을 일깨웠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기도의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고 그가 다시 기도했을 때 온 땅에 비가 내렸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죄의 담을 제거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 말씀은 병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연관되어서 5: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도 야고보는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하면서 주님께서 고쳐주실 때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고쳐주시는 역사가 나타 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부분을 병이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병고침을 위한 기도를 넘어서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죄의 고백과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 보시기에 합당치 아니한 것들은 고백되어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미움, 불순종, 게으름, 불신앙은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심령을 귀히 여기십니다. 회개를 통하여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제거 될 수 있습니다. 더 깊고, 더 넓은 은혜의 바다로, 기도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야를 예로 들면서 의인의 기도는 큰 효력을 나타낸다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의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회개함으로 죄의 담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진전이 없는 많은 경우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깊이 있는 회개를 잃었기에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무감각하고 무기력 할 때가 많습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는 회개는 영적인 부흥의 첫걸음입니다.
(2)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고대 유대인이나 이방인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관습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서 오늘도 병자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때 기름을 바르기도 합니다만, 많은 성서학자들은 여기에서 기름을 당시 사용하던 약의 뜻으로 이해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마리아인이 기름을 발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도 전도활동 할 때 나가서 기름을 바르며 병자들을 고쳤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쨌든 기름을 발랐다는 말씀은 약을 쓰면서 기도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의학과 하나님의 치유는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현대 의학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시는 길입니다. 꼭 기적적으로 낫는 것만이 하나님의 치유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넓고 다양한 길로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기도하면서 약을 사용하는 것, 바른 길입니다. 저 자신도 폐결핵으로 요양원에 있을 때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으면서 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약이 저의 몸 안에서 효력을 발휘하여 속히 건강을 찾을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말씀을 조금 범위를 넓히고 일반화 시켜 생각해 본다면, 기도한다고 해도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해야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않는 것은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씨름하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해결지어 주실 것인지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의 내용에도 집착하기 때문에 불안과 초조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꼭 이때, 이렇게 응답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우리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응답의 때와 응답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어서 목회실에 걸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성 Ignatius Loyola의 말인데, “Work as if everything depended on you. Pray as if everything depended on God.(모든 것이 내게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하라)”입니다. 아주 좋은 말입니다.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최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언젠가 마을에 홍수 경보가 내려서 모두 대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한사람은 홍수가 와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대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차가 와서 권면했고, 물이 차오르니까 경찰 보트가 와서 어서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물이 점점 차올라 지붕에 올라간 이 사람은 헬리콥터가 와서 대피하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만 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나아가 항의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건져 주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홍수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얼마나 애쓴지 아느냐? 세 번이나 사람을 보냈느니라. 첫 번째는 경찰차로, 두 번째는 보트로, 세 번째는 헬리콥터까지 보냈건만 네가 모두 거절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단다.”
모든 것이 내게 달려있는 것처럼 힘써 일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 말씀이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5:14를 보면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장로의 의미를 성서학자들은 사도들 보다는 낮지만, 각 교회를 섬기는 대표들로 이해합니다. 어쨋든 병으로 고생하는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또 5:16도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함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개인주의가 기세를 얻어가는 시대입니다. 개인주의 물결은 믿음생활에도 영향을 끼쳐서 믿음은 내 개인의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personal, 인격적인 것이지만, private 개인적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짐을 들어 주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요즈음은 Privacy Act가 강조되다가 보니까, 교회 안에서 아프신 분들 위해서 광고하고 기도를 부탁하는 일도 점차 조심스러워져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역사가 능력있게 펼쳐질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보기도 사역, 참으로 중요합니다. 고통의 세월을 헤쳐가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만큼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투병의 세월 속에서, 특별히 폐수술을 받던 도중 출혈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이다가 나왔을 때, 서로 위해서 기도함의 능력을 뼛속깊이 느껴 보았습니다. 기도할 힘조차 사라져 버렸을 때, 고향 교회의 권사님들이 밤을 지새우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는 그 소식은 제게 무한한 용기와 위로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기도하시던 어느 권사님은 환상 중에 제가 흰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을 보시고는 “조선생은 안죽는다. 승리한다.”고 확신하시며 이 멧세지를 목사님 편에 전해 주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싸워보자는 용기가 샘솟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여러분,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괴로울 때도, 지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쁠 때도 감사할 때도 찬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아플 때도, 힘들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III.
테레사 수녀님께서 미국 어느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 기자가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전할 멧세지가 무엇입니까?” 테레사 수녀님은 “더 많이 베푸십시오.”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하지 않았습니다. 수녀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미국인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라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움을 Lany Wolfe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복음성가 속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지쳐서 기도 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 처럼 흘러 내릴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위해 기도하네
문전도사님께 이 노래를 불러 주시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우리 이 찬양에 함께 동참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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