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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5. 조영진 목사

"믿음은 삶입니다(13)-돈 있는 분들께"

야고보서 5:1-6

그리스도인은 재물에 대하여 어떤 이해를 가져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은 돈의 문제에 있어서 세상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그렇게 달리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몇해 전(2000년 10월7일) 조선일보 한 모퉁이에서 재미있는 통계 자료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통계조사 연구기관인 갤럽 연구소에서 돈과 믿음과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였습니다. 이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인의 55%는 “돈이나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신앙심을 해친다”는 생각을 갖고 반면에, 32%는 “돈이나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오히려 신앙심을 높인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생각은 소득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가운데서 “돈이 신앙심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연봉이 $15,000 미만인 응답자 중에서는 돈이 신앙심을 해한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각각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연봉이 $15,000에서 $30,000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돈이 신앙심을 해친다는 사람이 53%,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30%로 나타났습니다. 연봉이 $30,000에서 $50,000 사이에 속한 사람에게서는 돈이 신앙심을 헤친다는 사람이 49%,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39%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연봉이 $50,000 이상되는 사람에게서는 돈이 신앙심을 해친다는 사람이 62%,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25%로서 그 격차가 크게 벌어져 나타났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통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돈과 신앙심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I.

오랜만에 야고보서 연속설교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난 8월 한달을 쉰 금번 연속설교는 당초보다 조금 연장되어 앞으로 몇차례 더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야고보서 5:1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오늘 설교 제목을 이 시작하는 말씀 그대로 택하려다가 “돈 있는 분들께”라고 바꾸었습니다.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라는 제목을 붙이면 많은 교우들께서 나는 부자가 아니니까 나하고는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하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얼마간, 많든지 적든지, 돈은 가지고 계실 것 같아서 “돈 있는 분들께” 라고 오늘 말씀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예배를 드리시면서 왜 교회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가? 마음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야고보서는 믿음은 바로 삶인 것을 강조합니다. 믿음과 삶은 결코 분리 될 수 없습니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의 이분법적인 인생은 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은 삶 속에서 고백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로 삶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우리의 경제생활, 돈과 재물의 영역에서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돈지갑에서도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분명히 일깨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 속에서 재물에 관한 말씀들은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복음서를 주의깊게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재물에 관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들이 뜻밖에도 많은 사실 앞에 놀라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과 같이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을 새롭게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Atlanta에서 큰 교회를 섬기셨던 한 미국연합감리교 목사님은 현대교회에서 목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는 물질주의의 거센 유혹과 도전 앞에 놓인 성도들에게 재물을 바로 쓰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II.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를 향해 도전합니다. 깨우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들으라고. 듣고 깨달으라고. 듣고 말씀 안에서 새 인생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1) 먼저 사도 야고보는 재물이 갖는 유한성을 지적합니다.

본문 5:1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 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고 여러분의 옷들은 좀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요, 불과 같이 여러분의 삶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옛날 재산이라고 하면 곡식과 옷 그리고 금과 은 같은 보물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물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썪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곡식도 썩어 못먹게 되는 때가 있고, 의복도 좀먹어 못입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금은 녹이 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여기서 녹이 슨다는 말씀은 유한함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재물은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 오면 다 두고 가는 것들입니다. 사는 동안 잠깐 맡아서 가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 재물은 유한합니다.

그 재물이 갖고있는 효능도 유한합니다. 최근에 새로 집을 장만한 가정에 가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돈으로 아름다운 집은 살 수 있지만, 아름다운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안락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단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인생의 지혜는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돈으로 행복을,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야말로 유한한 것입니다. 돈의 효능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2)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은 돈을 쌓아 놓는 죄악을 말합니다.

여러분, 재물이, 돈이 좀이 먹고 썩게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쌓아 두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 왜 돈을 버십니까? 쌓아두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바로 쓰기 위해서입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그럼 저축은 하지 말라는 말인가? 물으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저축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많은 경우 우리는 내일의 안전, 은퇴 후의 보장을 위해서 저축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쌓아 놓으면 안전하겠습니까? 얼마나 쌓아 놓으면 은퇴 후 편안히 살 수 있습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까? 그렇게 쌓다가 보면 언제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한가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중요한 도전이 있습니다. 저는 지혜롭게 어느 한도 내에서 저축하는 것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씀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쌓아 놓은 재물이 우리의 내일을 보장해준다고 믿으신다면, 우리는 분명히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누가 12:13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농부는 농사를 잘 짓고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곳간 크게 짓고 여러해 먹을 것 쌓아두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말씀의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합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부당하게 돈을 버는 부자들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5:4을 보십시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들의 아우성 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당하는 압제와 탄식의 외침에 귀를 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어도 정당하게 벌어야 합니다. 남을 부당하게 희생시켜서 돈을 버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입니다. 형제와 자매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하면서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계실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들의 탄식, 그들의 호소가 주님의 귀에 들어갔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강조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일손이 필요해서 하룻동안 Hispanic 사람들을 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시는 권사님께 저는 늘 당부합니다. “권사님, 넉넉하게, 많이 주십시오. 한인교회에 와서 일하면서 마음 상하지 않도록 많이 주십시오.” 우리 한인들의 비즈니스에서 일하는 타인종들, 여러분, 우리 어려워도 넉넉하게 주기 위하여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불행하게도 L.A.에서 4.29와 같은 폭동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때는 한.흑간의 갈등이 아니라, 한.히스패닉 갈등일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와 자매의 피눈물 위에서 쌓은 재물은 복이 아니라, 화 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빼앗긴 사람들의 탄식과 눈물에 민감하십니다.

(4) 넷째로, 돈있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재물에 대하여 결산하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재물을 쌓아 놓은 사람들에게 닥쳐 올 비참한 날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이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재물을 어떻게 썼는지 보고 드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사치와 자신의 쾌락만을 위하여 썼다면, 우리는 주님의 책망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자신 만을 위해서 쌓아 놓고 즐겼다면, 한달란트 받았던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지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돈있는 분들에게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이 가지면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이 맡긴 사람에게서 많이 찾으실 것입니다. 많이 맡겨주신 이유는 그만큼 많이 나누라고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나누는 부자는 자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것이다.”

이 나눔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길입니다.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가장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결산하는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맡겨 주신 재물을 바로 써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순간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영원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III.

오늘 강단에 귀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Gunston Koinonia Center, 이제는 이름이 바뀌어서 재외한민족센터의 설립 초기부터 밑거름이 되어 오신 김영자 집사님이십니다. 저는 집사님께서 펴내신 노란 두부 저금통 이란 책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서 오늘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집사님의 말씀을 들으시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재외한민족센터 이사장 김영자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주 안에서 신앙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됨을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작년 5월 30일, 31일 양일간 와싱톤한인교회에서 ?이민의 나라 미국, 그리고 그 땅에 한인들?을 주제로 뉴욕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를 초청, 학부모님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장소를 허락하여 주셔서 때 늦었지만 교우 여러분과 조영진목사님께 마음으로 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그저 평범한 할머니이고 소박하게 믿음을 지키는 평신도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번듯하게 이루었거나 성공한 삶을 살았노라고, 내세워 자랑할 것이 없는, 그동안 많은 고생과 시련의 연속적인 고단한 삶의 여정을 살아 왔습니다.

목사님께 오늘 순서를 부탁받고 마음으로 무척 망설이고 주저 하였습니다. 아시겠지만 제 맏딸과 사위, 손주, 손녀가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어머니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어쩌나, 이야기 중 실수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지만 성령님의 도우심과 교우 여러분의 따듯한 마음으로 감싸주실 줄 믿으며 또한 자녀들의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믿어 이 자리에 설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한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이 나의 것, 나의 소유가 아니라 온전히 주님에 속했다는 비밀입니다. 그렇기에 자랑거리가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있어도 비굴하지 않는, 자랑도 부끄러움도 초월하여 당신이 도구로 쓰시겠다면 모두 내어 놓아 당신께 영광을 돌리며, 당신이 지목하여 부르는 성도에게 용기를 주어 그 분도 부족과 수치가 변하여 그도 하나님 역사에 동역자로, 용사로 세워지는 일이라면 제 개인과 가정사 그 이상 생명까지도 다 내 놓을 용기와 믿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1942년 평안남도 강동군 고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때 우리집에 긴급 이주령이 내려 서울로 야반도주하듯 월남하였습니다. 8살 되는해 6.25 동란이 일어나 부모님 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한강다리가 끊겨 고무다리를 건너 아비규환 영등포 역을 뒤로하고 기차 꼭대기에 실려 오르락 내리락 몇 일 만에 부산에 도착, 범천동 학교 운동장에 가마니를 깔고 보니 얼굴은 석탄연기로 새까맣고 눈만 반짝거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부산 피난민 생활 속에서 꿈 많은 여중,고를 졸업하고 1968년 서울로 시집을 갔으나 심한 생활고와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1972년 남편은 무작정 브라질로 기술자 이민을 가자고 했습니다. 이민 가방에 이불과 포대기, 밥그릇 4개, 숫가락 4개, 아기 기저귀 40장 그리고 $400불을 달랑 들고 브라질에 도착해 보니 아는 사람도 반기는 사람도 하나 없는 현실에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고마운 반공포로의 도움으로 브라질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은 도착한 다음 날이 둘째의 첫 돐이였으니 엄마 마음을 여러분들은 미루어 짐작하시겠지요.

남편은 현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건강마저 잃게되자 어린 두 자녀와 남편, 4 식구의 생계는 오직 갓 이민 온 새댁인 제게 맡겨졌습니다. 혼자서 하루 20시간 이상을 헐떡여 일을 하고 간장마저 없어 소금으로 아이에게 밥을 비벼 먹이며 가족의 생계를 억척같이 지켜 그나마 조금씩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갈 무렵, 미국 가면 새 사람되어 새 생활하겠다는 남편 말에 그나마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1984년 미국으로 재 이민을 오게 되었읍니다. 하지만 무능한 남편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폭행은 날로 심해져 종래 한쪽 눈을 맞아 실명하고 폭행을 견디다 못해 긴 20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만은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글을 익히기 위해 숙제를 하지 않은 날은 밥도 굶기며 부산을 떨었습니다. 지금 돌아 보면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 딸이 삐뚜로 나가지 않고 잘 자라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이젠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어 사는 두 딸에게도 고마울 뿐입니다.

“노란 두부 저금통? 이란 자서전을 올해 3월에 내었습니다. 혹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목이 좀 특이하다고 물어 오시는 분이 가끔 계셨습니다. 1987년은 미국에 온지 3년이 되는 해 였습니다. 가게의 수입이 쏠쏠하여 주머니가 두둑해져도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내 가슴을 비게 했습니다. 이 허전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물음을 향해 나아가다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 새로운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결심이 서서 우선 하루 몇 달러라도 저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게는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은행가기도 여의치 않아 노란 두부통을 저금통 삼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10년쯤 모으니 5만 달러가 모였습니다.

돈이 모이니 꼭 쓸 곳, 급히 사용할 곳이 왜 자꾸 생기는지? 가게 매상이 현저히 떨어지니 자꾸 딴 마음이 생겨 손이 두부 저금통에 간 적이 부끄럽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고 이를 종잣돈으로 하여 재외한민족센터를 건립할 대지 15에이커를 1998년 로턴에 구입하였습니다. 지금까지 7년 동안 100만 달러를 상회하는 성금과 후원금으로 저희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독지가의 희사금이나 유명 인사의 기념물이 아닌 바람벽도 문으로 알고 밀쳐 나가는 꿈을 가진 고단한 이민자,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는 산 믿음의 역사입니다.

옷을 수선하고, 구두를 고치고, 청소를 하여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여 이제는 워싱턴 동포들의 참여와 뉴욕,한국에서도 지인의 소개로 참여자가 늘고 있으며 2003년 12월 대통령 단체상과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센터 건립을 위한 종잣돈으로 2만달러를 지원 받았습니다. 재외한민족센터(구. 건스톤코이노니아센터)는 140년 한민족의 이주,이민 역사에 700만 재외한민족의 중심이 되는 센터를 세워 재외한민족의 권익을 신장하며 동질성의 회복과 우리 정체성을 세워 재외한민족의 발전과 교류를 도모하는 터전이 되고 조국의 통일과 번영에 기여 하기 위하여 설립된 순수한 동포 자생 단체입니다. 오는 10월1일 금요일 7시에는 폴스처지에 있는 성공회 성십자가 교회에서 역사에 떠밀려 시대에 끌려 세계로 흩어져 잊혀진 동포, 그리운 얼굴들, 시할린, 중국, 독일 동포 인사들을 초청하여 국적을 7번 바꾸며 살아 온 기막힌 까랜스키(고려인)의 한을 워싱턴 동포와 가슴으로 나누는 동포간담회를 갖습니다. 여러분을 초대 하오니 꼭 오셔서 동포의 정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와싱톤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썩지 않으면 그대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을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당신의 탈랜트와 주님이 주신 선물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심판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까? 저는 이일에 좋은 동역자, 후원자 그리고 우리가 짐을 나누어지고 하나님 역사에 동참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 김 집사님께서는 큰 돈 버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Tailor Shop의 재봉틀 앞에 앉아서 고달픈 하루 하루를 살아오신 분입니다. 김 집사님께서 이런 귀한 일을 하셨다면,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오늘도 재봉틀 앞에 앉으셔서 재외한민족센타를 통하여 이루어 질 역사를 꿈꾸시며 가슴 벅찬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말씀 붙들고 한번 제대로 살아 보십시다. 돈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보십시다. 재물의 영역에서도 주님의 뜻 앞에 순종해 보십시다. 돈 있으신 분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주님 말씀 붙들고 새롭게 시작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