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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25. 믿음은 삶입니다(12)-조영진 목사

"주님께서 원하시면"

야고보서 4:13-17

우리의 삶은 불확실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불확실한 인생,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의 고백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재작년 12월말입니다. 유방암으로 고생하시던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온 가족이 CA에 가서 장례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 원하시던 뜻에 다라 화장을 한 후 섬기시던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서 늘 걸으시던 길 주변에 그 재를 뿌렸습니다. 간략한 기도회를 드린 후 장인 어른부터 시작해서 온 가족들이 재를 한 움큼씩 집어서 뿌렸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재를 한 움큼 집어서 뿌릴 때 온갖 생각이 제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결국 인간이란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그 온화하신 음성과 미소는 어디로 갔을까? 베풀어 주신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헤쳐오신 험난한 세월의 아픔과 흔적도 결국 한줌의 재와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일까? 바람에 흩어져 가는 재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휴가철에 아침부터 너무 무거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결국 세월이 흐르면 다 썩어지고 유골만 남게 되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까? 이것이 우리 인간 존재의 전부입니까?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입니까? 여러분께선 이와 같은 인생의 reality, 실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갖고 계십니까?

I.

오늘 야고보서의 본문 말씀도 이런 삶의 현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4:13-14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년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달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해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에게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아서 잠깐 있다가 사라져 감과 같다고. 당시 유대인들은 상업에 재주가 많아서 어느 곳에 가든지 비지니스를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세운 왕들은 주민들을 모집할 때, 유대인들에게는 시민권을 주면서 끌어 들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가는 곳에 돈과 상업이 뒤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삶의 불확실성입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내일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어떤 때 우리는 한순간 앞도 알지 못합니다. 온갖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예측을 해 봅니다만 그 예측이 번번이 빚나갈 때가 많습니다. 9.11사태가 일어나던 날 아침 세계 무역센터 빌딩으로 출근하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몇 시간 후 그 빌딩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도 Sharp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또 그날 납치를 당해 테러의 도구로 사용된 비행기에 탔던 승객들, 그 누구도 잠시 후에 벌어질 일을 몰랐었습니다. 펜타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생은 그렇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의 문제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입니다. 우리는 이 땅위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이제 그만”하는 순간은 any time, 어느 때라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더 살고 싶어하는데도 죽음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자기 인생에서 죽음을 내 몰 수 있는 장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찾아오면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더구나 이 죽음의 순간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당황케 만듭니다. 태어날 때는 분명히 순서가 있는데,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40대에 가는 사람도 있고 80대에 가시는 어른들도 계십니다.

이 불확실성과 유한성은 우리 인생에 큰 부담입니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가져다주고, 유한성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우쳐 줍니다. 도대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 지 모르니, 또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무력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인생의 실상을 잘 아는 야고보이기에 돈 벌겠다고 한참 궁리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년동안 지내며 돈 벌겠다고 궁리하고 있으니 과연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인생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 불확실함과 유한성 앞에서 처절하게 허무를 느꼈던 솔로몬 왕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역사상 누구보다도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큰 일을 성취하였다. 궁전도 지어 보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어 보았다. 나는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온갖 과일나무도 심어 보았다. 나무들이 자라나는 숲에 물을 대려고 여러 곳에 저수지도 만들어 보았다. 남녀 종들을 사들이기도 하고, 집에서 씨종들을 태어나게도 하였다. 나는 또한,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그렇게 가져 본 적이 없을 만큼 많은 소와 양 같은 가축 떼를 가져 보았다. 은과 금, 임금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나라의 보물도 모아 보았으며, 남녀 가수들도 거느려 보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처첩도 많이 거느려 보았다. 드디어 나는 일찍이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혜가 늘 내 곁에서 나를 깨우쳐 주었다. 원하던 것을 나는 다 얻었다.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다. 나는 하는 일마다 다 자랑스러웠다. 이것은 내가 수고하여 얻은 나의 몫인 셈이었다. 그러나 내 손으로 성취한 모든 일과 이루려고 애쓴 나의 수고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었다(전도서 2:4-11).”

여러분, 오늘 야고보서 말씀은 내일을 위하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계획 없이 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지만, 삶의 reality, 실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불확실하고 유한한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II.

그렇다면 이같이 불확실한 인생, 허무한 삶의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서 불확실하고 유한한 인생을 넘어서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까?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4:15 말씀은 이렇게 길을 제시합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여기에 허무한 인생, 예측 불허의 인생을 헤쳐 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 고백위에 우리 인생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원하시면”의 고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믿음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인생을 말합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서 원하시면”의 고백은 우리의 유한한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 생명이 얼마나 계속될지, 언제 우리 인생의 종점이 찾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오늘과 미래를 아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바로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세월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세월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수술을 많이 하신 외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평생 수술을 하면서 깨달은 교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들 생각에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들도 살아나는 때가 있고, 또 자신있게 살아날 것이라고 믿어지는 사람 가운데도 죽게 되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원하시면 살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부르시면 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우리는 살것입니다.

(2) 둘째로 “주님께서 원하시면”의 고백 속에는 인생의 많은 계획을 세워도 주님께서 열어 주시지 않으시면 형통할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시면 인간이 아무리 닫으려고 해도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닫으시면 인간이 아무리 열려고 해도 안 될 것입니다. 잠언 16:9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 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여러분의 계획, 여러분의 꿈 속에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면”을 도입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다 계획해 놓고 주님께 도장 찍어 달라고 조르지 마시고, 먼저 계획 단계에서부터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서 이 땅을 찾아 오십니다. 여러분의 판단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제일 좋은 것 같지만, 주님께서는 다른 길을 원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문제에도 “주님께서 원하시면”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을 선택하고 비지니스를 시작하실 때도 먼저 주님의 원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주님의 원하심 안에는 불확실하고 유한한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인생의 허무함을 넘어서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확실한 내일을 두려움없이 헤쳐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유한성의 두터운 벽을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오늘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안에 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한줌의 재로 태평양 바닷가에 뿌려 지셨지만, 주님의 원하심 때문에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찬송가 411장을 즐겨 부르시고, 들으시면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라고 외치셨던 그 주님의 사랑, 그 주님의 원하심 때문에 죽음의 사슬은 끊어졌습니다. 유한성의 족쇄는 풀어졌습니다. 허무함의 먹구름도 사라졌습니다 .한 줌의 재가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주님의 원하심 때문에 유한성은 영원에 삼킨 바 되었습니다. 허무함은 생명에 삼켜졌습니다. 주님의 원하심은 유한성과 불확실함 그리고 허무를 넘어서서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내일을 열어 주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4) 이어서 야고보는 말합니다. 사람이 해야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된다고.

주님의 원하심 안에는 참된 선함이 있습니다 주님의 원하심은 우리에게 참된 선이 무엇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바로 선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하실 수 없는 선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이 선한 길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선한 길은 종교에 관심있는 사람만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선한 길, 선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일은 option,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이일은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원하심입니다. 이 원하심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Yes 밖에 없습니다. No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Yes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순종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선일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III.

우리 모두는 유한하고도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히 끝이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게다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허무한 인생을 헤쳐가는 길은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면”을 도입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삽니다. 주님께서 원하셔서 열어 주시는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며 또 이일도 저일도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그 주님 때문에, 그 주님의 원하심 때문에 우리는 불확실한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허무한 인생길을 용기있게 헤쳐갈 수 있습니다.

유명한 복음성가 작가인 Bill Gaither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영어 가사는 조금 더 분명합니다.

God sent his son, they called him Jesus
he came to love, heal and forgive
he lived and died to buy my pardon
and empty grave is there to prove my savior lives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주님 살아계시기에 우리는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 살아 계시기에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다스리심을 알기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 살아계시기에. 문 전도사님께서 이 찬양을 해 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