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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4. 최지훈 전도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마태복음 6:9-10
죄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며 인간사회에 아픔과 갈등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는 삶을
사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순종함으로 받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이다’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며
사랑의 하나님과 화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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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따라야 하고 공동체 위에는 섬기는 지도자의 권위가 서 있어야 합니다. 만일 각자가 스스로가 좋은 대로 행동하고 권위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큰 갈등과 아픔을 불러올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립되어야 할 올바른 질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이것은 우리의 자아를 굽히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위에, 우리의 삶 속에 임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의 매일의 사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고 주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과 세계를 돌아보면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많은 갈등과 아픔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세상을 선하게 지으셨는데 왜 이 세상에는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죽음과 절망과 싸우고 있는지요. 지난 주에는 온 한국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테러의 아픔을 한층 더 가슴 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근본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세상에 들어온 이유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길을 택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 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다”고 했습니다.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역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후로 사람은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 하십시오 (3:1-5).”
그러므로 참 자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임하셔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예레미야서 31장 31-33절에 보면 이런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죄로 인한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회복의 길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에 모시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는 참 사랑을 위하여 생활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야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살펴 보면 모두가 연약한 인간입니다. 참 사랑을 실천하기에 연약합니다. 어느 누가 못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번 단기 선교 기간 중에 현지에 계신 선교사님과 경험담을 나누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단기간 동안 선교팀으로 왔을 때 간혹 선교 단원들이 함께 일하던 현지인 사역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주소도 나누고 연락처를 나누고 메모도 쓰고 심지어는 마지막 날에는 서로 울면서 기도해 줍니다. 아름다워 보이지요? 여기에 무슨 악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지 선교사님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 대단히 조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의 열매가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본인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선교 사역의 목적을 흐리게 하고 심지어는 사람들 사이에 질투와 상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짦고 감정적인 만남은 진실한 사랑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역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참 진실한 사랑으로 일하기를 원한다면 이럴 때 본인들의 뜨거운 마음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지침과 지도자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 사역도중에는 하나님이 더욱 더 나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 중심이 되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어떻게 진실하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열매맺는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감정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어떻게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지 않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라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 (14:15, 2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참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우리와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자식들 그리고 가족들을 대할 때 말로 해서 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론적으로 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끼는 것 없이 무조건 주고 싶은 나의 마음대로 다 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에야말로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지혜를 구하여야 할 때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리실 수 있다면, 우리와 함께 기쁨도 아픔도 겪으시고, 친구의 사랑도, 제자들의 배신도 사랑으로 대하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아버지는 비교적 말씀이 적으신 분이신데 특히 저에게 목사가 되라는 말씀은 한번도 하지 않으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저도 부족하지만 목회사역을 돕고 있고 제 동생도 올해 감리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골 교회를 담임하시고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목자의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그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엔가 깨달았습니다. 제가 누구한테 성을 낼 때마다 몇 번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얘야,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그 즉시로 화 내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줄 아니?” 그럴 때면 그저 한 종교적인 교훈처럼 들리기보다 어린 나이에도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고 찾아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하루가, 일 주일이, 그리고 일 년이 가 버립니다.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일이나 운동에도 자신들을 쏟아 붇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삶이 황량해집니다. 자기 자신을 상실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묻게 됩니다. 바쁘게 혹은 힘들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목적과 자아를 찾지 못하면 허무와 싸우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 나의 삶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나 자신을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저는 신학교를 거의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도 도대체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과연 내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간은 길고 긴 어두움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인도자로 모시기로 했을 때 비로소 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는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으로 저에게 오셨습니다. 소극적이고 타의적이 아닌 적극적인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하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가 무엇을 시키기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다른 사람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값비싼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돈을 허비하는지에 대해 기분 나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칭찬하시고 그 한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뜻을 우리 삶에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중학교 때 일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수련회 때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저는 제가 좀 더 큰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한참 외치며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그런 믿음을 주면 나를 위해 죽겠느냐?” 저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갑자기 기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나 스스로의 힘으로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매일의 삶 속에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우리는 한 번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그 분의 삶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도록 그런 기도를 하신 분은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을 예지하고 게셨습니다. 어찌 주님이라고 마음속에 고민과 슬픔이 없었겠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하나님의 정의 사이에서 죽을 정도로 고민하셨습니다.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께서 매를 맞으시고 고통스런 죽음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반역과 무지와 미움을 속죄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주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흘리신 의로운 피가 믿는 우리의 죄를 씻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우리가 회개하여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아가 믿음으로 삶의 인도자로 모신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뜻을 기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은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을 때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임하시는 소망을 가지고 나아오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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