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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27. 구경모 목사
"성도의 교제를 이어갑시다."
에베소서 3:14-21
우리의 만남과 사귐은 복음때문에 시작된 만큼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성도의 교제 가운데 우리 함께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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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여러분! 좋으신 주님의 이름으로 와싱톤 한인교회 교우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부족한 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불러주신 조 목사님과 와싱턴 한인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5년간 섬겼던 미국교회 목회를 마감하며 고별설교를 준비할 때는 고별설교가 제일 힘들고 어렵게 생각이 되었었는데, 막상 부임설교를 준비해보니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먼저 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이 제일 쉬운 일일것 같아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1964년 서울의 감리교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올해가 2004년이니 제가 굳이 나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미루어 계산하시기 바랍니다. 감리교 신학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후 해병대 보병장교로 지원해 많은 훈련과 임진강 하류지역의 애기봉 밑에서 전방소대장 생활을 마친 후 중위로 전역했습니다. 4년동안의 군 생활은 저에게 많은 도전과 경험을 주었습니다. 한 동안 입이 거칠어지고, 사람치기 좋아했던 부작용도 있었지만 해병대 군생활을 통해 강한 정신력과 어디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1994년 5월에 미국에 건너와 Wesley 신학원에서 신학 석사 공부와 Maryland의 동쪽끝 Ocean City 다가서 있는 Salisbury에서 목회를 함께 시작했습니다. 매주일 와싱턴과 솔즈베리를 오가며 목-주일까지는 목회를 월-수까지는 학업을 해야하는 쉽지않은 생활이었습니다. 솔즈베리라는 곳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닭공장 취업 이민과 병아리 감별이 한인들의 주된 생계였기에 교인들 역시 이제 막 한국에서 이민 들어와서 박봉과 힘겨운 육체노동속에서 늘 고단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처음 이민자의 삶을 사는 곳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많은 목사님들과 한인교회가 했던 전형적인 이민목회 (공항에 나가서 맞이하고, 아파트 얻어주고, 아이들 학교 넣어주고, 보건소에 데리고 가서 주사 맞히고, 일터에 가서 통역해주고, 그리고 함께 중고 자동차 구입과 그러서리 장까지 봐주는) 를 저는 90년 말에 해 보았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은 비자문제로 합류가 늦어져 3년여를 저 혼자 생활해야했던 외로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모든 이민자들이 나름대로의 고생과 추억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혼자 살면서 21끼 7일동안 연속으로 fast food restaurant에서 Hamburger와 pizza로 한 끼를 해결하며 살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그곳에서 처음 이민 오신 분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뒹굴었던 시간이 저의 목회를 얼마나 기름지게하고 깊어지게 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안에서 참으로 귀한 사랑과 정을 주고 받았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군대에서 막 제대한 지가 얼마안되 아직 기합이 들어서 혼자 살면서, 학업과 목회를 병행하는 삶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4년반 동안의 특별했던 한인 이민목회와 신학석사 과정, 그리고 준회원 목사안수 과정까지를 전부 마감하고 1999년 부터는 Anglo church를 담임하는 또 다른 도전의 삶속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온지 5년만에 그 알량한 broken English를 가지고 그저 하나님 한 분 만을 믿고 cross-cultural/racial ministry에 덤벙 뛰어들었습니다.
영어로 기도, 설교, 심방, 상담해야 하는 고충은 여러분께서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으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첫번째 토요일 밤에 잠 못 이루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시는 지혜와 담대함, 그리고 좋은 미국 친구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용기있게 달려들었고 5년이 지나 떠나 올때는 그들의 이웃, 친구와 가족으로서 많은 눈물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왔습니다. 여러분들과 헤어질때도 그렇게 아쉬워하며 눈물 속에서 떠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2000년 부터 New Jersey의 Princeton신학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고, 2001년에 정회원 목사안수 (elder)를 Peninsula-Delaware Conference 에서 받았습니다. 제 아내 이 선애도 지난 해 웨슬리를 졸업한 후 올 가을부터 Catholic University에서 Spirituality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 가혜는 13살 8학년, 아들 교빈이는 6살 1학년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저는 와싱턴 한인교회라는 한 울타리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교제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아시고 계십니까? 정확히는 모르시더라도 대충 성도들끼리,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끼리 하는 교제이고 사귐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아마 짐작하실 수는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에는 다른 이유로 친하게 지내고, 가깝게 지냈었지만, 우리는 이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때문에, 복음을 이유로 교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보면 우리가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을 믿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Communion of Saint, 성도의 교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라 함은 평신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들 간의 교제와 사귐, 사랑과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여러분과 저는 오늘부터 성도의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한 마디로 하나님 선물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가장 귀한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것, 그 분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드리기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신 것, 그래서 그 결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얻게 된 것,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이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선택해주시고,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고, 얼마나 기쁨이 되는 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받았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남들과는 다르게, 또 남들은 이해못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쁨이 넘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받는 일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고,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속에서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일단 은혜를 받은 후 그 은혜를 나누는 일은 수평적으로 교우들, 성도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 우리에게는 그 받은 은혜를 우리의 성도들과 또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기뻐하고, 더욱 크게 하고, 열매있게 하고, 확대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내 입으로 고백하고, 간증하고, 그것을 가지고 성도간에 서로를 권면하고, 위로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인도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올바로 나누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워 그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가서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인간적인 체면과 창피를 무릎쓰고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밖에 나가 전하고 간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전도라면, 교회 안에서 성도들간에 이처럼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 격려하며, 교제하는 것을 우리는 성도의 교제라고 부르는 것이고, 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가 더욱 자라나게 되고, 건강해지고, 열매를 맺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교인들은 이같은 나누는 기쁨을 부담스러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저 주일예배에만 참석함으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자기 속으로만 간직하며 신앙생활하는 선에서 그칠 때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좋지만 교우들과의 교제는 꺼려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교우들과 친교함으로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때문에 성도의 교제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로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충만할 지라도 이처럼 은혜를 이웃과 교우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성도의 교제가 없다면 우리의 받은 은혜가 오래 갈 수도 없고, 자라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건강한 것으로 검증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난 5년간 미국교회를 담임하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좋은 일 뿐 아니라 어려운 일, 실망되는 일, 곤란한 일, 그리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임신 9개월째 되는 젊은 엄마의 사산을 옆에서 지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정일을 10일 남겨놓은 때여서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의학적인 이유와 산모의 고집으로 이미 산모의 뱃속에서 죽은 아이를 정상아처럼 정식 절차와 과정을 밟으며 출산했습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Angela Mercy 로 지은 후 까맣게 죽은 아이를 정성스럽게 포대기로 싸 안고 온 가족이 저와 함께 가족 사진을 분만실에서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를 드린 후 묻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내외일지라도 임신 9개월째 죽어서 나오는 딸 아이를 보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가지고 있던 신앙을 포기하기가 지키기 보다는 훨씬 쉬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우들이 함께 슬퍼했고, 함께 기도하며, 그 가족을 돌보며 위로했습니다. 목사인 저나 교우들 그리고 가족들 누구나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이 가족에게 벌어졌나에 대한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었지만, 교회 전체가 함께 그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외는 이전보댜 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확실한 한 지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추후에 선물로 주신 또 다른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는 기쁨을 맛 보았으며, 제가 그 아이 유아세례를 주고 왔습니다. 만약 그 내외가 많은 성도들의 사랑과 돌봄, 기도와 위로가 없었더라면 그 분들은 분명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회의를 품었거나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저는 그때 성도의 교제의 필요성, 아니 성도의 교제의 위대성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믿음의 길은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기쁨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야하는 신앙과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맞딱뜨리게되는 모든 고난과 시련, 시험과 장애물까지도 함께 나누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신앙생활의 맑은 날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구름낀 순간, 비 내리는 시간, 태풍과 폭설의 기간까지도 함께 동행하며 기도하며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같이 배워가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받은 바 은혜를 기쁨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체험한 은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더 큰 은혜를 함께 사모하고자 하는 믿음의 친구, 신앙의 동역자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나눔의 기쁨과 재미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생기와 활력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는 신앙의 후배들을 만날때는 교제를 통해 그들에게 인내와 용기를 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나보다 영적으로 더 나은 사람을 만나 사귈 때, 내가 좁게 이해했던 은혜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에베소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충만해지길 바라노라? 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과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함께 자라나고, 열매맺고, 결실하고, 충만해 지길 기대해 봅니다.
? 성도의 교제를 생각할 때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성도의 교제를 하는 분명한 대 전제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 때문에 만나고 사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향우회로 모이고, 동창회로 모이고, 전우회, 동우회로 모이고, 직업별로 연합체를 구성해서 모이지만,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모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모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이는 것이고, 그러한 만남과 사귐, 연합과 사랑을 성도의 교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들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들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시는 사랑과 용서 안에서 서로를 돌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처음 만날 수 있고, 관계를 맺으며 사귐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빠진채 그 밖의 이유만으로라면 우리는 만날 이유나 사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하고 취미가 맞고, 성격이 맞고, 나하고 경제적인 수준이나 학벌이 비슷하고, 이야기가 통해서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서가 아니고, 같은 고향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저 사람하고는 내가 맞는 점보다 안 맞는 점이 더 많지만, 저 분과 내가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를지라도, 단지 한 가지 분명한 이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가 교제할 수 있고,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 목사님, 그거 너무 속 보이는 것 아닙니까? 사람을 순수하게 사귀고 만나야지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만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아닙니까?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자동차를 잘 팔아서, 또 가전제품이나 보험을 잘 팔아서 판매왕에 오른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저는 가끔씩 접합니다. 그 많은 동료 세일즈맨 가운데서 유독 남들보다 물건을 많이 팔아서 상금도 받고, 휴가도 가고, 신문에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들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물건을 한 개라도 더 팔기위해 고객의 집까지 방문하고, 그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일단 차를 산 사람이라도 정기적으로 자기가 먼저 전화를 걸어 자동차의 상태를 체크해주고, 자기 돈을 들여가며 밥 사주고, 선물을 한 개라도 더 끼워줌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환심을 얻어 결국에는 자기의 목적한 대로 자동차를 남들보다 더 많이 팔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자기의 경제적 유익을 위해서 사람을 사귀고,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을 우리는 나쁘다 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경제적 유익 정도가 아닌 그 사람의 신앙을 위해,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또 나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 우리 영혼의 well being을 위해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사람을 사귀고 만난다고 할 때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하는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에게 그러한 복음의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사귀고 만나야 할 사명감이 있어야합니다.
두 번째로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사귀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고, 자주 만나고 사귐이 깊어진 후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실망과 분노, 배신감과 섭섭함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주로 남습니다. 너나 할 것없이 누구나가 다 한계와 약점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의 지붕아래서 같이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다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많이 잘 알게되고, 식상하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교인들간에, 또 교우들과 목회자들간에 교회 안에서 갖는 사귐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지 않고 인간적인 사귐만으로 인해 더 형편없어지고, 악화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교제 사이에 계실 때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분 때문에 우리의 교제는 건강해지고, 풍성해지며, 축복이 됩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저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셨지. 나를 용서해주신 그리스도가 저 분도 용서하시겠지. 주님이 저 사람을 붙들어 쓰시는데는 다 뜻이 있으실테니 내가 왈가왈부해서는 안되지? 라며 우리의 교제와 사귐 가운데 예수님을 집어넣자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지난 5년간 미국인 회중을 섬기는 목회를 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와 그들이 함께 5년동안 울고 웃으며 한 동네와 한 교회 안에서 지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너무 다르고, 그리고 삶의 태도나 양식도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은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오직 단 하나의 이유, 예수님때문에, 복음때문에 우리는 만났고, 사귀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 환송 만찬을 차린 자리에서 George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우리 모두를 가슴 뭉클하게 했습니다. ?구 목사, 당신이 나를 두 번 울렸소. 첫번째는 당신이 우리 교회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새로 오는 한국목사로 인해 우리 교회가 곧 크게 잘못될 것 같아 울었는데 이제 5년이 지나 당신이 떠난다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동안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정이 들어서 그 헤어짐때문에 너무 슬퍼서 두 번째로 울게 되었소.?
그렇습니다. 만약 그 분과 맥도날드에서 만났었다면 한 사람의 미국인 할아버지와 한 사람의 한국인 젊은이로서 무심코 지나쳤을 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 분과 영어학원에서 만났었다면 제 부족한 영어와 거슬리는 액센트때문에 무시하고, 무시 당하는 사이로 지나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만난 사이였고,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사랑을 조금씩 서로 나눌 수 있었고, 그 교제때문에 다른 모든 인간적인 차이점들, 피부 색깔이나 언어, 그리고 모든 문화와 생활 양식을 극복한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 사람의 성도로서 저에게는 George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그런 깊은 성도의 교제를 와싱턴 한인교회 교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와싱턴 한인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껏 그래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성도의 교제를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족한 사람과도 깊은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꼭 잊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는 우리는 예수때문에 만난 사이라는 것과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사귀어 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부족한 젊은 목사를 보아도 예수님때문에 우리가 만났고, 그분의 심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주십시오. 저도 여러분들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다 보겠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 감사예배를 드릴 때 격려해 주셨던 한 선배목사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눔으로 성도의 교제에 대한 오늘 설교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목사는 교인을 섬기기 위해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도 목사를 잘 섬기면 곧 예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오해하며 신앙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와 교인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목사와 교인이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 속에 우리가 앞으로 나누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성도의 교제의 해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와싱턴 한인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우리 함께 더 깊고, 더 풍요롭게 성도의 교제를 이어가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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