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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20. 믿음은 삶입니다(9)-조영진 목사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야고보서 3:13-18

사도 야고보는 1장에서 말한 지혜를 재론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왜 세상의 지혜는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알고있는 속담 가운데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외국인들의 한국어 웅변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출전한 외국인 한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사촌이 땅을 사면 왜 배가 아픕니까? 이렇게 아픈 배는 활명수 먹어도 낫지 않습니다.” 남이 잘되면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고 이를 꺾어 보려고 하다가 보니 무리 수를 두고 비즈니스나 인생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때 쌀 한포에 1센트 한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소위 막말로 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이야기 아닙니까?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하는 시기심과 경쟁심이 불러오는 죽음에 이르는 병 아닙니까?

야고보서 연속설교의 여덟 번째 주일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임을 강조하는 사도 야고보의 편지는 믿음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혀를 다스리는 언어생활,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진실된 사랑의 삶을 강조합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는 1장에서 강조한 바 있는 지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거론합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1장에서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믿음으로 구하라고 강조한 사도 야고보는 오늘 말씀 속에서 지혜의 귀중함을 또 한번 일깨워 줍니다. 먼저 야고보는 지혜란 단순한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삶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1:13의 말씀을 보십시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다면 착한 행동을 통하여 그 지혜를 나타내 보일 것을 강조합니다. 말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생각만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지혜는 삶 속에,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보여져야 합니다.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참모습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혜는 지식을 바로 씀이다(Wisdom is the right use of knowledge.) 또 지식은 사실을 아는 것이요 지혜는 그 지식으로 무엇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Knowledge is knowing a fact. Wisdom is knowing what to do with that fact.)모두가 다 지혜가 갖는 행동, 삶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은 지혜를 두가지 모습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지혜요,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한 지혜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육신에 속한 것이며 또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늘에 속한 지혜는 영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분열과 파괴를 낳지만, 하늘에 속한 지혜는 하나됨과 평화를 낳습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이 어떤 지혜를 붙들고 사는가 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 땅에 속한 지혜를 붙들고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에 속한 지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붙들고 살아갈 것입니까?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땅에 속한 지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 인생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까?

(1)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야고보는 땅에 속한 지혜란 육신에 속한 것이며 악마에게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는 야고보의 이같은 주장이 좀 지나치지 않은가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땅에 속한 지혜에도 얼마나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들이 많이 있는가? 땅에 속한 지혜란 모두가 다 나쁜 것인가? 라고 물으실 지 모릅니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출발점에서 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땅에 속한 지혜로 족할 지 모릅니다. 그정도면 충분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계신 하나님, 온갖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혜가 과연 온전한 지혜입니까? 모든 진리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지혜가 과연 제대로 된 지혜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과연 온전한 지혜를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출발점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도 야고보는 이같은 지혜의 모습 가운데 하나로 시기심과 경쟁심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자기 중심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자기보다 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아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곧 자신이 하나님이 되기 마련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그 인생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잘됨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센트에 쌀 한포대 파는 일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 1:16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땅의 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길, 나의 길이란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안계시다면 괜찮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우리는 땅의 지혜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재철 목사님께서 쓰신 내게 있는 것 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몇 년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프랑크 시나트라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배우 겸 가수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부른 “마이 웨이(My Way)”란 노래입니다. 본래 “마이 웨이”는 이 노래를 만든 폴 앵카가 직접 불렀지만, 1969년 시나트라가 부르자 마자 그의 간판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나트라의 중후한 목소리로 불린 이 노래는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이 웨이” 하면 프랑크 시나트라를 생각하고, 프랑크 시나트라 하면 “마이 웨이”를 연상했습니다. 그 유명한 “마이 웨이”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제 끝날 시간이 다가왔으니/곧 마지막 커튼이 내려지겠지/친구여, 나는 분명히 말하려 하네/내가 확신하는 바 나의 경우를 말일세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네/거의 모든 길을 달려 보았지/하지만 무엇보다, 그 무 엇보다도/나는 나의 길을 달렸다네

몇 가지 후회되는 일도 있긴 했지만/돌이켜보면 그리 언급할 정도는 아니라네/나는 내가 해야만 했던 일들을 했었지/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일세

모든 정해진 코스는 물론이요/때론 샛길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내딛기도 했지만/그러 나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도/나는 나의 길을 걸었다네

물론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때론 내 능력에 비해 힘든 순간도 있었다네/그러나 난 견디어 내었었지/때론 의심이 일기도 했었지만/그 모든 것을 극복했었지/나는 그 모든 것 들과 맞서고 참아 내었다네/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걸었다네

사랑도 했고, 기뻤던 적도 그리고 슬펐던 적도 있었지/성공한 때도 있었고 실패한 때도 있었다네/그리고 이제 눈물이 진정되면서/그 모든 것들이 즐거움이었음을 깨닫는다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면/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말한다면 /아닐세, 그런 것은 아니라네/나는 단지 나의 길을 걸었을 뿐이라네

무엇이 인간의 길이며, 인간은 무엇을 얻어 왔는가/만약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모두 무 가치한 것이라네/굴복한 자의 비굴한 말이 아니라/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말하는 그런 인간 말일세/혹 과장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나는 나의 길을 달렸다네

의미심장한, 그리고 의지에 찬 내용입니다. 생전의 시나트라가 백발의 모습으로 의연하게 이런 내용의 “마이 웨이”를 부르면, 그는 정말 자신의 길을 멋지게 완주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당당한 모습이 더 진한 감동을 안겨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30년 동안이나 열창했던 그 자신의 “마이 웨이”는 어떠했습니까? 과연 바람직한 길이었습니까? 그가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노래했던 그의 “마이 웨이” 위에서 그 자신을 비롯하여 그의 영향 하에 있던 그의 가족, 자식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의 인생의 여기 저기에 얼룩이 있었고, 그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했었는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가 그토록 “마이 웨이”를 열창하다가 그의 인생 길에서 숨을 멈춘 뒤엔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가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부터 그의 재산을 놓고 전처와 현재의 처, 전처가 낳은 자식들과 현재의 처가 낳은 자식들 사이에 은밀하게 벌어졌던 재산 다툼이 그의 사후엔 불꽃 튀는 혈투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의 노래 “마이 웨이” 그 자체는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지만, 그가 걸었던 그의 “마이 웨이”는 허망한 욕망의 길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의 영향 하에 있던 사람들의 삶이 스스로 증명해주었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붙들고 마이 웨이를 걸어가면 허망한 종말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다면, 그냥 괜찮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기에 세상의 지혜로는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세상 지혜의 마지막은 패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2) 반면에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는 어떻습니까? 본문 3:17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이러한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그 분은 바로 순결하시며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순결하고,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음 - 이 모든 열매를 한가지 한가지 자세히 설명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덕,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한마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일 것입니다. 사랑은 순결하며 평화스럽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온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합니다. 진실된 사랑에는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바로 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경쟁심과 시기심이 발붙이지 못하는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땅에 평화를 심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께서 쓰신 이렇게 성숙하라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Charles Spurgeon 목사님께서 런던의 침례교회를 섬기실 때입니다. 당시 런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Spurgeon 목사님 외에 Westerminster 교회를 섬기는 Campbell Morgan목사님과 Church of Christ를 섬기시는 F.B. Meyer 목사님이 각각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스펄죤 목사님과 켐벨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는 큰 부흥을 이루고 있었는데, 마이어 목사님의 교회는 별로 부흥이 되지 않았습니다.

후에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그 자신이 스펄죤 목사님과 캠벨 몰간 목사님을 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시기심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질투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은 “시기의 영 대신 평화의 영을 갖게 해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던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의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캠벨 몰간 목사님의 교회와 스펄죤 목사님의 교회를 더욱 크게 부흥시켜 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그 목사님은 그 기도를 드리고 난 후에 비로서 참 평화를 경험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을 넘어 순결함과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 병도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가 임하면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활명수나 펩토비스몰 가지고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붙들면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III.

오늘은 아버지 날 이면서 동시에 졸업을 축하하는 주일입니다. 아버지 되시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르치고 물려주는 것입니다. 돈 열심히 벌어서 넘겨주어야 할지 모릅니다. 부지런히 가르쳐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다니도록 뒷받침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이웃을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늘로 부터 오는 지혜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잠언 2:6 이하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아라. 그것이 너를 지켜줄 것이라. 지혜를 사랑하여라. 그것이 너를 보호하여 줄 것이다. 지혜가 으뜸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을 얻어라. 지혜를 소중히 여겨라. 그것이 너를 높일 것이다. 지혜를 가슴에 품어라. 그것이 너를 존귀하게 할 것이다. 그 지혜가 아름다운 화관을 너의 머리에 씌워 주고 영광스러운 왕관을 너에게 씌워 줄 것이라.”

오늘 각급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시는 여러분께도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 여정 속에서 정말로 부지런히 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부터 오는 지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위해 그렇게 머리 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좀 우둔해 보여도 하늘의 지혜가 소중합니다. 하늘의 지혜가 우리의 인생, 오늘의 이 시대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갖게 될 때, 여러분의 인생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심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위에서 부터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지혜를 붙들고 살아가십니까? 하늘로 부터 오는 지혜 위에 내 인생을 세워가고 계십니까? 우리 가정은 바로 이 지혜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세상을 변혁시켜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