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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13. 믿음은 삶입니다(8)-조영진 목사

"온전한 사람"

야고보서3:1-12

행함이 있는 믿음은 언어생활에서도 고백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혀는 다스려지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언어생활이 다스려 질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절제있는 언어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의 지혜를 모아 놓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딸 셋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딸들은 모두 다 미인이었는데 그러나 제가끔 한가지씩 결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은 게으름뱅이이고, 한사람은 훔치는 버릇이 있고, 한사람은 남의 말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에겐 아들 셋이 있는데 그 딸들을 자기 며느리로 주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딸 가진 아버지는 자기 딸들은 이러 저러한 결점이 있다고 하자, 시아버지 될 사람은 그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주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아버지 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 며느리를 위해서 많은 하인들을 고용했습니다. 훔치는 버릇이 있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커다란 창고의 열쇠를 맡기고는 뭐든지 꺼내어 가지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며느리에게는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서 오늘은 남을 중상할 일이 없느냐고 매일 아침 물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 아버지가 딸들이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첫째 딸은 하고싶은 대로 게으름을 부릴 수 있어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도 물건을 갖고 싶을 때 얼마든지 가질 수 있으니까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시아버지가 남녀관계를 요구하니 괴롭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는 막내 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녀는 시아버지까지도 중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장사꾼이 거리를 걸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참되게 인생을 사는 비결을 살 사람은 없습니까?.” 그 소리를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인생의 비결을 사려고 모여 들었습니다. 그중엔 랍비도 몇 명 끼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어서 팔라.”고 조르자 장사꾼은 말했습니다. “인생을 참되게 사는 비결이란 자기 혀를 조심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그 말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언어생활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이미 1장에서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을 더디하라고 권고한 야고보는 오늘 3장 본문에서 다시 덕스러운 언어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먼저 사도 야고보는 혀가 갖는 엄청난 힘을 말하기 위하여 두가지 비유를 듭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과 배의 방향을 결정 짓는 키입니다. 말을 부리려면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아무리 거센 말이라 할지라도 일단 입에 재갈을 물리면 우리는 그 말을 원하는대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또 배의 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그 키의 방향에 따라 배가 움직여집니다. 재갈이나 키는 작지만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시대 유명한 장군이었던 서희는 성종 12년 글안군이 쳐들어 왔을 때 적진에 들어가 적장 소손녕과 담판하여 유리한 조건으로 적군이 물러가게 했습니다.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세치 혀로 적군의 침입을 물리친 것입니다. 흑인들의 민권 운동이 한참 열기를 올릴 때, 워싱턴의 링컨 메모리알에 모인 25만명의 군중 앞에서 Martin Luther King 목사님께서 외친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노라)”의 연설은 언제 들어도 우리의 가슴을 울려줍니다. 노예 주인의 아들들과 노예의 자녀들이 한 식탁에 앉게 되는 날, 인간이 피부 빛깔이 아니라 사람됨에 의해서 평가 받는 날이 올 것을 꿈꾼 그의 외침은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5 하반절 이하를 보면 이 혀를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이 혀가 갖는 파괴적인 힘을 지적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 지옥 불에 타버립니다.” 또 3:8에서는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합니다. 이 혀로 주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찬양하는 그입이 형제의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까지 비관적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3장 1절 이하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된다고 까지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사람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입술을 바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언어생활에서 덕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II.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의 혀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어생활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입술에 재갈을 먹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몇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첫째는 무엇보다 언어생활에 진실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한 말들을 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말할 때마다 한번 묻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진실한가? 뜬 소문에 근거한 거짓된 말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듣고 확인한 진실된 내용인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거짓된 이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합니까? 거짓된 이야기 일수록 고소하게 들리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로 말에 조심해야 하는 것은 훗날 우리가 한말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3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될 것이다.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 여러분, 두려운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데 좀 진실한 말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을 말해 영원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순간에 당하더라도 영원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진실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말인가?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혀는 훨씬 덕을 세우고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거짓된 말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2) 둘째는 내 입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말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해 주신 단어 가운데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입술이 덕을 세우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LA에 있는 Glendale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영어목회를 하시는 Sam Park 목사님의 말씀 속에서 기억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세들이 부모님께 대해서 갖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부모님들이 너무 자기들 중심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카펫 위에 물컵이 있었는데 자녀들이 부주의해서 그만 물컵이 쓰러지면 1세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왜 조심하지 않고 그렇게 물을 엎지르느냐고. 그런데 부모님께서 부주의해서 물컵을 쓰러뜨려 카펱을 적시면, 똑같은 상황인데도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여기에다 물컵을 갖다 놓았느냐고. 부모님들 입장에서만 말씀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덕을 세우는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3) 셋째는 비슷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싶이나 비판적인 이야기 보다는 긍정적인,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세우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비판과 책망 보다는 칭찬과 격려입니다. 켄 블랜차드가 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책은 이 사실을 잘 가르쳐줍니다. Sea World에서 고래 쇼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 큰 몸집의 고래들이 하늘 높이 점프하면서 묘기를 보여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느낀 저자에 의해서 쓰여진 이 책은 결국 고래의 훈련방법에서 인간관계를 바로 세워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잘했을 때 즉시 칭찬하고, 실수했을 때는 책망하지 말고 관심을 다른데로 유도하며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격려하는 것입니다. 잘한 것을 칭찬해 주는 고래의 반응과 반대되는 것은 뒤통수 치기 반응입니다. 이것은 잘못한 일에 초점을 맞추어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고래 반응보다는 뒷통수를 치는 반응에 더 익숙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좀 더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책망과 비판보다는 칭찬과 격려의 언어를 더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이 아닙니까? 시원치 않은 제자들을 앞에 놓으시고도 주님은 그들이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 보고도 너는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도들은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처음교회에서 반석같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칭찬과 격려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줍니다.

(4) 넷째로 입술을 다스리는 훈련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침묵의 훈련입니다. 하루에 얼마의 시간을 아무말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침묵의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고, 음악이나 TV를 듣거나 보아야만 무언가 허전하지 않은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침묵의 문을 통하여 보다 깊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기도시간 마저도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듣기 보다 말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일년에 한 두차례 개인적인 수양회를 갖는데 이 시간 처럼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전화도 없고, 말 거는 사람도 없는, 세상과 차단된 환경에서 조용히 침묵 속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영적인 깊이를 새롭게 체험합니다. 내면의 자기를 좀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고, 주님의 말씀을 좀 더 예민하게 듣게도 됩니다.

진실된 언어생활은 침묵의 훈련없이는 어렵습니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을 기다리는 침묵의 훈련이야말로 혀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원천입니다.

(5)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내 자신의 영적인 깊이, 곧 성령님의 도우심과 충만케 하시는 은혜가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여러분, 말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세계의 표출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마태복음 12:3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여러분, 입술만, 혀만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그 입술, 그 혀를 움직이는 우리의 가슴과 머리, 우리의 내면세계의 다스림이 없으면 결코 혀는 다스려 질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하기 전에 이 말이 진실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는 말인가? 물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이란 그런 생각이나 여과의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브레이크가 작동이지 않으면, 혀를 다스리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혀를 다스리는 인생은 바로 우리 영혼의, 마음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야만 가능해 집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는 이 영혼의 브레이크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내 인생을 지배하셔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내 삶을 다스리셔야만 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절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인생을 지배하시면 절제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입술에도 절제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성령안에서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시는 인생을 간구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혀를 다스리는 온전한 인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 혀에 재갈을 물리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III.

오래 전, 1880년대의 일입니다.
이태리 남부 나폴리의 가난한 가정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겨우 초등교육을 마치는 둥 마는 둥하고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했습니다. 이 소년은 어려운 공장 일에 시달리면서도 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장래에 명성을 날리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감동에 젖어들고 그때마다 나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소년의 포부를 알고 있는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든 어린 아들의 꿈을 펼쳐주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 성악 레슨을 주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마침내 소년이 첫 레슨 테스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선생 앞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지도를 받은 일이 없는 소년의 노래는 그 선생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습니다. 선생은 이 소년이 꿈을 버리고 공장 일이나 열심히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노래 소리는 마치 겨울철 바람에 떠는 덧문 소리 같구나. 그래가지고서야 무슨 노래를 하겠니? 아예 돌아가서 공장 일이나 열심히 하렴.”
소년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흐느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모든 것을 짐작했습니다. 우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같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아들의 꿈을 세워 주고자 했습니다.
“얘야! 울지마라. 너는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단다. 네 목소리는 그 선생이 분별을 못했을 뿐이지 내가 보기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란다. 두고 보아라. 너는 분명히 훌륭한 가수가 될 것이다.”
소년은 엄마의 말을 듣고는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엄마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고 말고,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가수가 될거다. 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아이가 흔치 않단다.”
소년은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다시 꿈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성가대장이 이 어린이가 하도 열심히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성가대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소년은 성가대에 들어가자마자 곧 뛰어난 소질을 나타내었습니다. 성가대장은 이 소년에게 좀 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이름 있는 선생에게 소년을 소개했습니다. 그 소년이 정식으로 레슨을 받을 때의 나이가 18세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1894년, 그는 나이 21세에 나폴리 성악 콘테스트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 1898년 밀라노의 릴리코 극장에서 그를 스카웃 하여 계약하였고 1900년에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 출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유럽 전역과 미국에까지 명성을 떨쳤으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607회나 출연한 기록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음악에 관한 기초 훈련이 충분치는 못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을 가지고 부드럽고 감미롭게 청중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과로로 병을 얻어 고향 나폴리에 돌아가 48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었지만 세계는 영원히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한 시대를 휩쓸었던 가수, 「엔리코 카루소」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입술을 다스리는 사람, 언어 생활이 덕스러운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오늘 나의 혀는 어떻습니까? 다스려지고 있습니까? 생명과 세상을 살리는 사랑과 격려의 언어를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다스리시는 멍에를 맨 입술입니까? 내 언어 생활의 브레이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