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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16. 문형일 전도사

"웰빙 (Well-Being)"

시편 1편

행복하십니까?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행복을 위해 힘과 노력을 더 많이 쏟는데 왜 우리는
더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행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의 웰빙(Well-Being)은 오직 주님의 은혜의 강가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강가입니까? 아니면 광야입니까?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 New Life Style을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을 혹시 아십니까?

이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대는 지났다. 단지 먹고살기 위한 문제가 아닌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그 질을 따지게 된 시대다. 도심의 공해와 현대인의 바쁜 생활로부터 벗어나 몸의 평화를 추구하고 Fast Food 보다는 유기농 야채와 곡식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건강식을 섭취한다. 또 값비싼 레스토랑 식사대신 가볍게 생식을 즐기고 그 값으로는 향긋한 스파 마사지나(Spa Massage), 발 마사지를 즐기는 것이다. 매일 저녁 이어졌던 술자리 모임을 피하고 퇴근 후 곧바로 헬스클럽을 찾거나 요가 센터를 찾아 하루동안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리는 것 또한 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법이다. 짭짤한 야근 수당이나 상사의 눈에 들 수있는 기회인 휴일 근무에 대해선 털끝만치의 미련도 없이 주말이면 자신에 대한 봉사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문화 행사를 즐겨 찾는 것은 물론 다양한 레포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근교로 떠나는 주말 여행을 시도한다. 신문하단에 가득 실린 패키지 투어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휴가 때면 남들과는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동남아로 스파 여행을 떠나 화려하고 세련된 리조트에서 마음껏 휴식을 즐기거나 유럽의 낡은 농가를 빌려 목가적인 나날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 휴가를 위해 몇 달 치의 월급을 몽땅 털어 넣을 수있는 것은 바로 이들의 행복이다.

바쁜 시간에도 틈틈이 아로마 떼라피(Aroma Therapy)를 즐기는 것도 이들의 습관, 업무에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아로마 스틱을 꺼내 향을 맡는다거나 숙면을 돕기 위한 라벤더 오일, 아침의 피곤함을 날리기 위한 로즈 메리 향 같은 아로마 떼라피는 그들의 필수적인 생활 소품이다. 목욕을 할 때도 은은한 향초를 켜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 커피대신 솔 내음 가득한 차를 마시는 것은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피로를 없애기 위한 그들의 방법이다.

누군지 짐작을 하실 수 있습니까? 이 글은 아모레퍼시픽 (Amorepacific) 화장품회사가 인터넷에 띄운 Webzine, 인터넷 매거진에 “여유로운 삶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잘먹고 잘 살자”는 주장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 건강하게 하며 살아보자는 웰빙(Well Being) 그리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가는 웰빙족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글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해 웰빙의 삶은 규정된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몸과 정신 모두 편안해 질 수있는 마음가짐에 우선한다. 경쟁에서 뒤질까 조바심 내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웰빙은 그것만이 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남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쉬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웰빙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런 웰빙의 삶, 여유있게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의 질을 찾아 영양가 있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다가오는 미래에 이런 삶을 살려고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계십니까? 참고로 웰빙족이 되시려면 800불 짜리 자동차 운전 전용 운동화 정도는 신으셔야 하고 물 1리터 1병에 7불 정도 하는 한국산 심층수 정도는 마셔야합니다.

우리 시대는 진리의 홍수 시대입니다. 모든 것들이 일단 신문, 잡지, TV나 Radio, 인터넷에 뜨기만 하면 그 즉시 그것은 진리가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따라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그 진리들이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먹어야할 음식들이 있고 약이 있고 마실것이 있고 해야할 것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연식, 생식, 솔잎, 심지어 옛날에 연탄불이 꺼지면 불을 피우려고 아궁이에 넣었던 숱, 간장 상하지 않고, 냄새 안 나게 하려고 간장 독에 넣었던 숱도 먹어야합니다. 생수도 마셔야 하고 변비를 위해 숙변을 위해 커피도 마셔야하고 둥글래 차, 녹차, 오가 피차 도 마셔야하고, 조깅도 해야하고 야깅도 해야하고 Gym에도 가야하고. 아침형 인간이 되어 인생을 두 배로 살라고 깨우쳐 주는 바람에 각자의 체질과는 상관없이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직장에 가야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씨 나쁜 것은 용서를 받아도, 얼굴 못 생긴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형수술이 붐을 이루어 예전에는 필요에 의해서 행해지던 성형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대학 면접을 잘 봐 대학에 들어가려는 입학 성형,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취업 성형, 시집가고 장가 잘 가기 위해 하는 결혼 성형 수술로, 서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서로를 몰라보거나, 방학이 끝난 후 교실에 들어온 자기 친구들이 하도 많이 성형 수술을 해서 서로 몰라보는 그런 우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기 상실, 자신감의 상실, 마음의 상실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남의 뒤를 열심히 따라 가는, 아마 그래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앞에서 친절하게 인도해 주는 이 고급스러운 웰빙족의 Life Style은 오히려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아침 우리는 또 다른 웰빙족, 웰빙의 삶을 시편 1편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간단해서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된 복된 웰빙의 삶, 시편에 나오는 웰빙족은 처음의 웰빙족에 비해 더 먹을 것도, 마실것도 필요 없고 심지어 비싼 돈을 주고 신을 사서 신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두 번째 웰빙족 들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다윗, 그 다윗을 통해 지금의 중동지방의 왕들로부터 해마다 조공을 받던 위대한 야훼 하나님의 이스라엘 제국은 다윗이 죽은 후 하나님의 Torah, 말씀, 교훈을 을 떠나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의 웰빙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을 떠나갑니다, 더 좋은 신 (神) 들을 찾아, 마음에 맞는 우상과 점장이와 마술을 따라갑니다. 당시에 유행하는 삶의 스타일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들이 먼저 솔선해서 따라갑니다. Mass Media의 힘을 가진 왕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국가적인 웰빙 유행이 퍼졌습니다. 누가 더 우상 숭배를 누가 더 하나님을 배반하나 경쟁하였습니다. 그러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잘 먹을까 무엇을 잘 마실까 무엇을 잘 입을까 무엇을 잘 섬길까 하다가 바빌론에게 완전히 함락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까지 파괴되고, 모든 도시는 불타고 나라의 인재들은 포로로 잡혀갑니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치를 드러내고, 목에 줄을 멘 포로로 낯선 남의 나라까지 걸어가 바빌론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고 손가락질하며 침을 뱉는 수치를 당합니다. 제 마음대로 골라서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마음에 평화를 주던 우상들과 귀신들 대신, 끌려간 바빌론의 우상에게 절해야만 살 수 있는 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서로 감시하는 나라.

그래서 그곳에 끌려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감시하던 사람들에게 고발당해 풀무 불에도 던져지고 사자 굴에도 던져지게 됩니다. 모든 자유가 박탈당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바빌론의 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진리로 세뇌 당하는(brain wash) 땅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에 아름답게 들어있는 시편들이 모아지게 되었습니다. 낯선 땅, 이방 민족들에 의해 강제로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소망한 웰빙의 삶,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읽은 시편 1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처음의 시편들은 잘 지어진 회당에서 잘 훈련된 성가대의 찬양 후에 잘 먹고 잘 살게된 사람들이 아름답게 화음을 넣어 부르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수고하고 흙 묻은 발로 바빌론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는 동안 “네가 살던 나라 그 나라 노래나 하나 불러보라고 할 때” 가슴속으로 눈물 흘리며 불렀던 “고향의 봄” 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보리밭”이었습니다.

지금 이라크 포로들의 학대문제로 또 미군과 미국을 돕는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가 계속되는 이라크의 중심을 통과하여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강의 물줄기를 수로(水路)를 통해 사막에 물을 대어 농사짓던 그 때, 자기들이 땀을 흘려 만든, 사람이 만든 수로 곁에 억지로 끌려온 이스라엘이 바로 이 시편에 등장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온 그 사람들의 입에서 참된 Well Being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장신대 구약학 교수로 계시는 최 인기 교수가 히브리 원문을 따라 시편 1편을 번역한 것을 제가 조금 고쳐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복 있구나! 그 사람은
사악한 자들의 충고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함께 가지 않고
조롱하는 자들의 모임에 앉지 않으며
즉, 야훼의 교훈 안에 그의 즐거움이 있으므로
그분의 교훈을 가지고 밤낮으로 신음하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계절에 따라 열매를 내고
잎이 시들지 않는
물이 흐르는 수로들 가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
행하는 모든 것이 번성하리로다
그 사악한 자들은 그렇지 않다
한 갓 바람이 심하게 날려버리는 겨와 같다
그러므로 사악한 자들이 그 심판 자리에 서지 못하며
그 죄인들이 의인들과 함께 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실로 야훼께서 의인들의 길은 인정하시지만
사악한 자들의 길은 망할 것이다.

저는 여기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과 죄인들이 같은 사람,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심판자리에 서서 자기들의 생명과 죽음의 처분을 맡겨야하는 팔려버린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The people of nothing이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만든 법을 따라 자기들의 신들 따르며 무리를 지어 자기들을 다스리던 왕을 따라 점을 치고 제물을 바치고 음행하고 사악한 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서로 죄를 짓고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는 아직도 70년의 포로의 기간이 끝나지 않은 이 어두운 밤에 시편 1편은 어둠의 자식들이 된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웁니다. 그렇지, 우리에게도 수로가 있었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땀을 흘리며 파서 만든 이 바빌론의 수로처럼 내가 있던 그 이스라엘, 그 시온 성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던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우리 조상 이삭에게 야곱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고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말씀해주신 약속의 땅, 그 땅은 우리가 갈지도 않았고 우리가 먹던 그 열매들도 사실은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이 심은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마시던 그 달고 맛있는 예루살렘의 우물물도 사실은 자기들의 손을 파지 않은 거저 얻은 은혜의 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들이 바로 그 땅에 하나님의 은혜로 심겨졌던 나무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이렇게 노예로 뿌리째 뽑혀 바빌론에, 이방 땅에 와 살게 됨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눈물을 통해 뿌리가 뽑히고 나서야 그 전에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던 삶이 바로 복 받은 나무의 삶이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우리들을 물이 넘치는 수로 가에 심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고,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뜻하는 “묵상”을 하며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복 있는 삶, 웰빙의 정의를 다시 새롭게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의도적으로 150편의 시편 중 가장 첫 번째 시편의 자리에 넣고 외우게 됩니다.

모든 시편의 중심이 되는, 그래서 모든 시편의 눈(Eye), 초점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나가는 기도의 입구(entrance)로 삼았습니다. 내 존재의 Well Being은 바로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Well, 우물이 되신 하나님 옆에 심겨진 나무인 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또한 아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매일 매일 뜨거운 태양과 압제아래 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약속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통해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곁에 뿌리를 내리는 일 조차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라도 해서 복 받는 자리에 가도록 우리를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공효선씨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지난 부활절에 남편 되시는 윤석호씨와 함께 세례를 받으신 공효선씨는 우리교회에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신 새 나무이십니다.

2003年 12月 21日 저는 와싱톤 韓人敎會 12時 禮拜에 첫발을 딛게되었습니다. 이 첫걸음은 저의 자발적인 행동이 아닌 그저 친구 아들 세례식에 참석하러 갔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기회를 더 이상 늦추지 말라”는 그날 목사님의 설교 중의 한 말씀이 저의 가슴속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왜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아 왔을까. 너무도 후회되고 죄스러움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이 세례식의 자리에,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친구 아들을 축하 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날 오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희 남편과 교회에 함께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논하였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의 지난 결혼생활 18년 동안 이와 같이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제가 아주 어릴 적에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세 오빠와 네 자매가 홀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가슴 한구석에는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성년이 되었을 때 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곤 하였습니다.“나의 결혼 조건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수 있는 남자면 돼요.” 저는 결국 제가 원하던 대로 남편을 만났고 14년 동안 원하던 대로 시아버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게 되던 날 다시금 제 가슴은 이전보다 더욱더 텅 빈 공허함으로 심화되었습니다. 이렇게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가슴은 도리어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점점 더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남편과 항상 무엇을 하기 전에 계획 세우기를 중요시 여기는 저와는 사사건건 부딪혀서 결국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그 불만은 아이들에게도 전달이 되었지요. 심지어는 남편이 무엇을 사다주어도 맘에 들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갖다주어도 하나도 고맙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맘속엔 나는 “당신보다 일도 더 많이 하고 돈도 더 많이 벌고 또 아이들과 집안일 까지도 모두다 내가하는데 그 까짓 것 가지고 생색을 내지 마라“ 하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안엔 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날은 학교에서 학과 성적표가 나오는 날 이었습니다. 만약에 성적표에 B 나 B+ 라도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가 혹시라도 화를 낼까봐 조심조심 엄마의 눈치를 보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너희들이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렇지” 하고 화를 내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A를 받아오느냐”고 소리를 버럭 질러 버리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늘 저는 큰소리로 시작하여 큰 소리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남편에게...아이들에게... 그러던 중 하루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항의하기를 “엄마는 빨리 라는 말 밖에는 할 줄 몰라, 언제나 빨리 일어나, 빨리 밥 먹어, 빨리 공부해”. 아이들 은 머리가 컸다고 엄마에게 말대꾸를 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더 큰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새롭게 행복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또다시 계속되는 말다툼. 이런 싸움의 날들이 계속되면서 서로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로 그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희들을 조용히 품으로 안아주시어 우리를 화해의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 입니까. 이후 저희 부부는 매일 저녁 식탁에서 말다툼 대신에 서로 누가 성경공부를 많이 하나, 누가 성경을 많이 읽나 하는 것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인생의 목적도 없이 떠다니는 방랑자의 삶 그 자체를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자마자 깨달은 것은 먼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고, 또 그로 인해 잃었던 저의 짝, 남편을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한 줄기 밝은 빛이 18년 동안 잃어버린 인생의 의미를 한 순간에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찾으시려거든 하나님의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인간의 욕심으로 채워진 행복은 잠시 잠깐일 뿐이니까요. 사랑을 하시려거든 영원한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사랑을 줄 때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되실 겁니다.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면서 그 동안 끊어 졌던 대화가 하나님의 이야기로 회복되어 사랑과 믿음이 일상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은 삶, 행복한 삶, 하는 일 마다 잘되며 때마다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는 웰빙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우물가로 은혜의 강가로 나오셔야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보이는 육체적 삶, 그것은 잠시 뿐, 끝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겨와 같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어렵습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어지는 만큼 자라갑니다. 믿음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내가 치러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Well Doing이 Well Being으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나무는 물이 있어야 자랍니다. 나무는 하루에 하루만큼 자랍니다. 나무는 자라는 만큼 나무다워 집니다. 흐르는 물가에 푸른 잎을 자랑하며 열매를 맺으려 서있는 아름다운 나무...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복 있구나! 부러워하는 삶, 웰빙의 사람들, 그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웰빙의 삶은 바로 지금, 그리고 마지막,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신부로 서는 그 날까지 계속될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는 포로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포로로 만들고 있는, 만들려고 하는 유혹과 죄들을 끊어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웰빙의 삶을 살고 게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Well- Being을 찾아,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겨와 같은 일에 목숨을 거는 Waste Being이나, 세상이 주는 진리를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는 Wondering Being의 삶을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오늘 주시는 복음은 이것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오라.

찬송가 471장은 믿는 자의 웰빙을 그래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빛 심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 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나 위해 고생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 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 없도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