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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9. 믿음은 삶입니다(4)-조영진 목사

"시험 당할 때에"

야고보서 1:12-18

시험은 시련과 유혹의 의미를 갖습니다.
시험은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시험과 부딪치고 있습니까?

“믿음은 삶입니다” 라는 큰 제목 밑에서 드리는 야고보서 연속설교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시련은 인내를 낳고 이 인내는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근본이 됩니다. 또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참으로 구해야 할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의 인생을 뜻있고, 보람있게 살게 해주는 스승입니다. 지혜는 위대하신 하나님, 지혜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 갖는 다른 관점, 믿음의 눈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의 눈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비천한 신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 대접받는 높아짐을 자랑합니다. 반면에 부자는 낮아짐을 자랑합니다. 재물은 바로 관리하라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시들어 버리는 풀과 같은 재물은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I.

오늘은 시험에 대해서 한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 말씀드린 것 처럼 시험이란 말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시키는, 테스트 혹은 시련과 같은 의미가 있는가 하면 우리를 넘어지고 타락하도록 꼬이는 유혹(Temptation)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신다는 말씀이 나올 때는 대개 테스트의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 되어서 난 이삭을 사흘 길을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신 것은 Test로서의 시험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모습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Temptation, 유혹으로서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세우고 유익함을 주기 보다는 넘어뜨리고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 받으신 시험 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넘어 뜨리려고 시험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루를 살아가노라면 예수님이 받은 유혹들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유혹 받을 수 있습니다. 유혹으로부터 면제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에서 분명히 권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시험을 당할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시험은 Temtation, 유혹으로서의 시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유혹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은사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흔들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1:16 이하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아버지께는 이러저러한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혹 하실 리 없습니다.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II.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흩어져 사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니 21세기 워싱턴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면합니다. 선언합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왜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일깨워줍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의 참됨을 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시험과 싸워 이김을 통하여 흔들리지 않는 그의 의로움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마치 광석이 용광로에서 녹아지면서 정제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습니다. 시험은 인생의 참됨을 입증해 줍니다. 시험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줍니다. 시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로운 사람인지 아니면 쉽게 넘어지고 무너지는 사람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뿐 아니라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면류관은 승리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영광의 상징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는 온갖 시험 속에서 견디어 내는 사람, 승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에게는 영광의 날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는 그날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시험을 견디어 낼 수 있습니까?

(1) 먼저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험 받을 때, 특별히 유혹에 휩싸일 때 우리는 마음,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유혹하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험 받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안팎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수 있습니다. 나쁜 친구가 유혹할 수 있습니다. 향락을 부추기는 대중문화가 유혹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들로부터 유혹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유혹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빠지는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도 문제지만, 그 유혹에 반응하고 빠지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욕망에 있습니다. Martin Luther의 이야기처럼 새가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면 문제가 시작됩니다. 유혹은 사는 동안 다가옵니다. 유혹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 혹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유혹을 피하는 것도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유혹에 끌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만큼 빠져 나오는 것은 어려워 집니다. 아예 초동단계에서 단절하고 돌이키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유혹이 다가오면 집을 짓지 못하게 하고, 빨리 관계를 단절해야 합니다. 이 단절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어느 교회에 얼굴이 잘 생긴 꽃미남 부목사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부목사님의 인기가 좋다보니 늘 여자 교인들에게 둘러 쌓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염려가 된 담임 목사님은 부목사에게 부도덕성에 빠질 위험을 지적하고 조심하라고 당부 했습니다. 그러자 부목사님은 자신은 늘 여성교우들을 혼자서가 아니라, group setting에서 만나니까 염려하지 마시라고 대답하면서 “There is safety in numbers.”(여러명이 있으면 안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numbers란 구약성경의 민수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현명한 담임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Yes, that is so.(그렇습니다. 맞습니다.) But there is more safety in Exodus.(그러나 출애굽하면 더 안전합니다.)” 즉, group으로 함께 있는 것 보다는 아예 그 자리를 떠나는 것, Exodus하면 더 안전하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시험은 유혹에 우리의 마음, 욕망이 이끌리게 될 때 찾아옵니다. 성경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유혹이 다가올 때 조기에 물리치는 것, 초전에 박살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질질 끌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헤쳐 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시험을 이기려면 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초전 박살의 전술을 활용해야 합니다.

(2) 이어서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의 종말입니다. 욕심은 사로잡힐 때 찾아오는 결말입니다. 오늘 본문 1:15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의 종말은 죽음입니다. 패망입니다. 욕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욕심을 다스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만일 욕심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그 욕심은 죄를 낳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죽음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미리 내다 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내다보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벼룩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 벼룩 신세를 모면할지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신이 나타났습니다. 신은 벼룩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한 벼룩은 소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벼룩은 건강한 소가 되었습니다. 다른 벼룩은 새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벼룩도 하늘을 훨훨 나는 새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벼룩은 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벼룩도 소원대로 쥐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벼룩 차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신이 물었을 때, 그 벼룩은 소도 되고 싶고, 새도 되고 싶고, 쥐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껏 욕심을 부려 소와 새와 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은 네 소원대로 이루어 주마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벼룩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소, 새, 쥐, 즉 소시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죽고 만 것이지요.

시험을 견디어 내려면, 이기려면, 욕심의 결말을 보아야 합니다. 미리 내다 보아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3) 한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빈번하게 다가오는 시험이 있다면 여러분,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유혹이 오늘 우리를 심각하게 유혹하고 있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가장 심각한 유혹은 타협에의 유혹입니다. 꼿꼿한 척 하지 말고 둥글둥글 살라는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데 당신도 적당히 맞추어 살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유혹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살아야 할 인생의 길을 포기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고 넓은 길을 가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우리의 신앙 생활을 교회 안에서와 세상 속에서로 구분하는 이중 구조 속에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의 타협에로 부르는 유혹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렇게 고집부려서는 안된다. 적당히 타협해야 비즈니스 할 수 있다. 너만 깨끗한 척 하다가는 따돌림 받는다. 남들은 다 타협하는데 왜 너는 청렴하고 강직한 척 하니? 그런 생각, 그런 인생을 살면 고생문이 훤하다. 이같은 유혹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과감히 No! 해야 합니다. 소금은 소금 맛이 있을때에만 가치 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 수 없습니다. 소금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그냥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소금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밖에 버려져 밟힐 수 밖에 없습니다. 소금이 있어야 세상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금이 있어야 우리는 새로운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소금이 있어야 세상은 고쳐질 수 있습니다. 소금이 있어야 역사는 희망을 갖고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한 후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해외 현장의 다양한 실무를 경험한 뒤 성주 인터내쇼날 회사를 설립, 유통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김성주 여사장에게 한 선배가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세가지를 잘 하여야 한다. 첫째, 술을 잘 마셔야 하고, 둘째 거짓말을 잘 해야하며, 셋째, 흰 봉투를 잘 바쳐야 한다.

그날 김성주 사장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를 다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그는 이렇게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내가 회사 매출을 조금 더 올리겠다고 부패 관행과 타협해야 하는가? 비록 나는 여자지만, 비록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분명히 정직한 손으로도 사업을 일으키는 사례를 만들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뇌물을 바치지 않으니까 멀쩡하게 면세점에서 잘 팔리던 브랜드가 퇴출당하기도 하고, 어떤 바이어는 세 시간이나 서 있게 하고는 3분도 채 만나 주지 않고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백화점에 있던 물건이 몇 백만 원 어치씩 사라지기도하고, 세관원들조차 물건이 안 왔다고 거짓 보고를 하는 등 김성주 사장이 경험한 ‘부패의 역사’는 책 한권을 쓰도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김성주 사장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면세점 사업은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99.9%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지만 그 회사는 1997년, 전체 한국 면세점의 5분의 1을 대행하며 당당히 한국 최고의 면세점 에이전트가 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오늘 이 회사는 가장 활력이 있고 신실한 회사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타협에의 유혹을 거부할 때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의 진실됨이 드러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III.

오늘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우리에게 어머니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체험케 하는 채널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어머니의 사랑도,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감사도 점차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의 물결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뒤 흔들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주의에 의해 조금씩 퇴색되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물질주의의 영향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돈 몇푼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어머니와 자녀들의 관계에도 변질의 유혹, 무관심에의 유혹은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 유혹도 이겨야 합니다. 이 시험도 이겨내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어머니의 사랑을 잊어버리는 이 시대의 물결에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물리쳐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란 월간잡지 5월호에 박성희님의 좋은 글을 투고 했습니다. 이글의 제목은 “찬밥”입니다.

며칠전 연락도 없이 불쑥 친정에 갔다. 평소에는 가기 전에 꼭 전화를 드려 혹 집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여쭈어 보는데, 그날은 시장에 갔다가 엄마가 좋아하시는 만두를 사 들고 곧장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는 무척 놀란 듯 했다.

“웬일이니? 연락이나 하고 오지.” 주섬주섬 상을 치우는 엄마, 늦은 점심상에는 밥 한그릇과 김치 그리고 물 한 대접이 전부였다.
“왜 반찬도 없이 드세요?” 속이 상한 나는 버럭 화부터 냈다.
“혼자 먹는 밥인데 그냥 대충 먹지 뭐.”
엄마는 늘 그랬다. 당신의 밥상은 언제나 뒷전이고 자식과 남편의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시댁 식구들 건사하느라 잠잘 때 빼고는 방에 앉아 쉰 적이 없었다. 식구들 모두 밥을 먹고 난 뒤에야 엄마는 “난 찬밥이 맛있어”하며 수저를 들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정말 찬밥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난생처음 내 손으로 밥을 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그릇 퍼서 냉장고에 집어넣고 다 식어 꼬들꼬들해진 밥을 꺼내 상을 차렸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찬밥이에요.”
의기양양하게 내민 밥상 앞에서 엄마는 “우리 딸 다 컸네” 대견해 하시며, 아픈 와중에도 서늘한 찬밥을 한 그릇 다 비우셨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 딸 시집 보내도 되겠네” 하며 내 등을 토닥거리던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나 철이 없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때만 생각하면 흐믓해진다고 하실까?

오늘 안팎으로 밀려오는 시험을 이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물결에 오염되지 않고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타협에의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이렇습니까? 복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시험을 견디어 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