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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 믿음은 삶입니다(3)-조영진 목사

"믿음의 눈"

야고보서 1:9-11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감은 믿음의 눈을 갖고 사는 삶을 뜻합니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봅니다.
자신의 뜻을 넘어서서 주님의 뜻을 봅니다.
시간을 넘어서서 영원을 봅니다.
내 눈은 열려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남가주에서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를 섬기시는 Robert Schuller 목사님께서 실패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웠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었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다시 출발해야 할 좋은 이유를 갖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낼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선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심을 의미할 뿐이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실패는 비극이며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말씀은 실패의 적극적인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똑같은 실패라 할지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한없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패의 아픔과 좌절 속에서 주저 앉을 수도 있고, 실패를 넘어서서 새날, 새인생을 열어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될 때 무엇이 달라집니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 Perspective의 변화입니다. 조금 문자를 쓴다면, 세계관이, 인생관이,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종교적인 활동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취미나 문화생활의 차원도 넘어섭니다. 기독교의 교리나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차원도 넘어섭니다. 예수를 믿으면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인생과 역사,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같은 ‘관’의 변화야 말로 그리스도인 된 가장 중요한 표지입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야고보서 1:9-11의 말씀을 함께 읽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매주일 2절 혹은 3절 밖에 읽지 않으니, 어느 세월에 야고보서를 끝낼지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분명히 언젠가는 끝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상이 갖는 생각이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 새로운 눈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비천하면 비천한 것이지, 비천한 신도가 어떻게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또 부자는 부자이기에 높임을 받게되는 세상인데, 어떻게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까?

그런데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눈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비천함을 비천함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비천함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깨닫습니다. 비천함 속에 오셔서 우리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바라봅니다. 여기에서 비천함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비천한 사람들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내일이 없었습니다. 운명적인 굴레에 매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그 은혜는 인간의 비천함과 가난함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음을 깨우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비천함, 그 가난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정금같은 존재로 세워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비천함과 가난함 앞에서 인생이 무너지고 깨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슬을 끊지 못하고 매어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비천함 속에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비천함과 가난함을 딛고 일어서서 새 날을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성서학자 William Barclay 같은 사람은 이미 처음 교회에서 이 일은 체험되어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어제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종들도 형제와 자매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비천한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사람 대접을 받았습니다. 종으로 주인의 소유를 도적질 했던 오네시모 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유익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높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사도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부자는 높임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부자들을 깨우칩니다. 부자들을 낮춥니다. 부자가 된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우쳐 줍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재물이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부자가 된 것은 특권(Privilege)이 아니라 사명(Mission)임을 가르쳐 줍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로 놀고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져서 그 재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사람임을 깨우쳐 줍니다. 재물이란 풀의 꽃과 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자는 돈많은 것을 과시하는 그런 자랑을 하지 말고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사도 야고보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II.

여러분,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눈이, 관점이 달라야 된다는 말씀 아닙니까?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보아야 된다는 말씀 아닙니까? 이 눈을, 이 관점을 우리는 믿음의 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위에서 가난함도, 비천함도 또 부함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을, 역사를, 삶의 일상적인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부자는 많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믿음의 눈이란 어떤 눈을 말합니까? 믿음의 눈이란 어떤 믿음, 어떤 관점 위에서 보는 것을 뜻합니까?

(1) 첫째로 믿음의 눈은 삶과 역사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의 빛에서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 안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빛에서 인생과 문제들을 보게되면 우리는 새로운 눈을 갖게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모든 일이 합력 하여서 유익함을 이루게 됨을 깨닫습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그 고난도 뜻이 있음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의미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위에서 삶을 보면,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 힘들고 괴로워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바꿔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수술을 받고 3개월 가까이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았습니다. 비록 오늘은, 현실은, 괴롭고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희망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심한 괴로움과 아픔 때문에 내일이 불안하고 불투명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영원히 이곳에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 그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에 오늘의 고난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안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고난과 아픔의 가시가 뽑힙니다. 희망의 싹이 솟아 오릅니다. 또 한번 일어서서, 또 다시 한걸음 내딛을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만,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의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외칩니다. 부자들 가진 것은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진다고.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보이는 것은 사라져갑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희망을 둘 수 없습니다. 보이는 재물, 지위, 권력,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그것 너머를 깨우쳐 줍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돈을 가지고 멋있는 집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안락한 침대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고도 단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좋은 약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유흥장에서 잠시 즐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값비싼 화장품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살 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도 살 수 있는 영생은 살 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서 교회 건물을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구원은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합니까? 돈입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행복한 가정, 단잠, 진정한 기쁨과 행복, 지혜입니까? 믿음의 눈은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눈을 갖고 인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셋째로 믿음의 눈은 순간보다도 영원을 바라보며 살게 합니다. 땅보다도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성공을 위해서는, 부를 쌓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짓밟고서라도 오르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로 빨리, 서둘러서 정상에 오르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 땅에 매이지 않습니다. 영원에 매어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고난을 감수합니다. 비록 재물에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 나라에서의 칭찬을 추구하며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쌓아두기 위하여 Give as you can, 할 수 있는대로 돕고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 때문에 오늘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1897년부터 47년간 Dallas 제일침례교회를 섬기셨던 유명한 George Truett 목사님께서 한번은 부유한 석유업자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석유업자는 Truett 목사님을 자기 옥상으로 인도하여 거대한 석유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25년전 저는 맨손으로 이 나라에 왔는데 이제는 끝없이 보이는 석유탑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것이 모두 제것입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돌아서서 수많은 가축 떼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가축들도 모두 제것입니다.” 끝으로 서쪽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25년전 저는 돈 한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이렇게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광대한 숲도 모두 제것입니다.” 이 석유업자는 목사님의 감탄과 칭송을 기대했는데, Truett 목사님은 칭찬의 말대신 석유업자의 어깨에 인자하게 손을 얹고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여, 이 하늘 쪽으로는 얼마나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 하늘에는 얼마나 쌓아 두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시는 그날을 위해서는 얼마나 충성하고 계십니까? 영원을 위해서는 오늘 얼마나 준비하며 살고 계십니까?

III.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관점, 다른 눈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인생을, 역사를 바라봅니다. 비천하고 가난하지만, 높아짐을 자랑합니다. 부자이지만 낮아짐을 자랑합니다.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떨어지는 재물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위에서 인생과 역사를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고 살아갑니다. 땅 위의 것보다 영원을 추구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창세기 21장에 의하면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이 아브라함과의 사이에서 난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에서 내 보냄을 받아 브일세바 광야를 헤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광야를 헤매다가 보니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져서 이스마엘과 함께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알게된 하갈은 아들 과 함께 통곡합니다. 아이의 울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아, 어찌된 일이냐? 무서워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이스마엘에게 먹여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새로 샘을 파신 것이 아닙니다. 거기 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이 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여시니까 샘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임하여 있습니다. 놀라운 은총의 삶은 주어져 있습니다. 눈이 닫혀 있기에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인생을, 고난을,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믿음의 눈이 열려 있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믿음의 눈이 열려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