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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11. 목적이 이끄는 삶(6)-조영진 목사

"영원을 가슴에 품고"

고린도전서 15:12-2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의 권세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영원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은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나는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원을 포함하는 삶의 목적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기쁜 날입니다. 오늘 감사한 날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마음껏 찬송드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30대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돌아가신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심을 분명히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다시 사심으로 우리는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승리가 온 땅에 선포되었습니다. 불의와 어둠의 승리는 3일, 잠깐뿐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마지막은 바로 부활의 아침, 빈무덤의 영광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심으로 우리에게 새날을,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찬송가 149장은 부활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뻐 찬송하세 주님 부활했네
그 무덤의 권세 다 깨뜨셨네
찬송하고 전파하세 대속하신 주를
할렐루야 찬송하세 다시 사셨도다

기뻐 찬송하세 주님 부활했네
그 어둠의 권세 다 이기셨네
찬송하고 전파하세 대속하신 주를
할렐루야 찬송하세 다시 사셨도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제목 밑에서 드리는 연속설교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생명들이라면,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전을 견뎌왔습니다. 이 책은 오늘도 믿을만한 책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예배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한가족으로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세워가는 삶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의 삶이고, 넷째는 받은 은사와 능력에 따라 섬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우리 인생의 목적들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 모든 삶의 목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이해입니다. 죽음에 대한 해답입니다. 아니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삶과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 같겠습니까?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영원의 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영원한 희망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까? 과연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의 세계가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가 있을 따름입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까? 누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습니까?

I.

일본의 한 철학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죽음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내가 가서 보고 돌아와 이야기 해주겠다고 말하고 폭포 속에 뛰어 들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죽음 너머의 세계를 갔다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셔서 장사 지낸바 되셨지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대하여 해답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의 세계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해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분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진리이십니다. 길이십니다. 생명이십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고린도전서 15:12 이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부활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장에서 부활의 사건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며, 자기 자신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사건 때문에 그의 인생은 혁명을 경험하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도 부활이 있음을 알려주는 첫 열매임을 밝힙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고 전하는 바울이야말로 거짓말장이이며, 이를 믿는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셨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대적인 죽음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주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II.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도전과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 첫째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죽음 너머에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성경은 증언해 줍니다. 우리도 부활하는 날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우리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막연한 믿음을 일깨워 영원을 보게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미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걱정하지도 말아라. 내가 너희들의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지막 말씀 가운데 하나로 주님은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영원을 바라보았습니다. D.L.Mondy 선생님은 죽음의 순간, “내 앞에 하늘 문이 열리는구나.” 라고 외치셨습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였던 Jacob Boehme는 이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낙원으로 간다.” John Kent는 많은 찬송시를 썼는데 40세 되었을 때 완전히 눈을 못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아름다운 찬송시를 많이 썼는데 77세되어 세상을 떠날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소망가운데 기뻐하노라. 나는 영접되었네, 영접되었네.”

(2) 둘째로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의세계가 있다면 오늘 이 땅 위에서의 삶은 순례자의 삶인 것을 기억하고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영원의 세계가 있다면 이 땅이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본향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는 나그네 인생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땅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땅에 소망을 두는 허무한 인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감은 결코 이 땅에서의 삶에 무관심하거나 불성실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Karl Marx의 주장처럼 아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기에 더 정신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운명이 오늘 이 땅에서의 삶에 따라서 좌우되기에 더욱 깨어서 하나님 뜻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날 주님 앞에서 결산하는 날, 부끄럽지 않도록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에 대한 믿음이 오늘 우리 인생 속에서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 믿음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영원을 믿는다고 하면서 땅에 매어서 살아간다면 과연 영원을 믿는 것입니까? 영원을 바라보며 산다고 하면서 그날 주님 앞에 서는 결산의 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과연 영원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서 하나님의 가치관 보다는 이 세상의 가치관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과연 영원을 품고 사는 것입니까? 영원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시각각, 아니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날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과연 영원을 믿는 사람입니까? 영원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목적에는 관심도 없이 자기 고집에 이끌려 살아간다면 과연 영원을 믿고 사는 것입니까?

(3) 셋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깨닫게 될 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에 대한 새로운 정의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성공이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무엇이 성공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성공입니까?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입니까? 세상은 많이 가졌으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출세했으면, 높이 올랐으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성공을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습니까?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영원을 가슴에 품게 되면 성공의 정의는 달라집니다.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그렇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영원히 멸망하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면, 그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원의 빛에서 보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영원히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 세상에서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겪었다해도,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영원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날 우리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했다. 내 잔치 자리에 참여하라.”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진정한 인생 성공자입니다. 영원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깨우쳐 주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성공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합니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공의 삶을 추구해 가야 합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은 사람답게 변화되어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넷째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마지막은 부활의 아침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에 이른다는 진리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은 오늘도 십자가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죽기까지의 복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에서 오는 고난과 어려움, 손해와 따돌림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박은 세상은 오늘 우리도 못박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못박지는 않겠지만, 오늘 우리도 따돌림 받을 수 있습니다. 승진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피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문제를 헤쳐 가시기 바랍니다. 어둠이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죄와 어둠의 세력은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의 승리는 잠시 뿐이었습니다. 사흘 뿐이었습니다. 마침내는 정의가 이겼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예수님께 대한 인간들의 No!라면, 부활은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의 Yes!라고.

영원의 빛에서 보면, 조금 당한다고 정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조금 믿진다고 진리의 길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조금 욕을 먹는다고 생명의 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조금 피해를 보고 따돌림을 받는다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우리의 길을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어둠의 승리는 사흘 뿐입니다. 마침내 무덤문은 열릴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주님께서는 승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하게 살 때 다가오는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 때 부딪치는 문제와 손해를 두려워 마십시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다. 이 영원을 가슴에 품는 삶이야말로 내가 사는 길입니다. 뿐만아니라 나라와 이 세상을 살리는 길입니다. 남들이 다 넓은 길을 간다고 나도 좁은 길을 포기하고 따라간다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둡다고 내가 쳐들은 촛불 한 자루마저도 꺼버린다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밑져도 촛불을 치켜드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역사는 내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무너졌습니다. 오늘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사랑과 진리의 승리를 믿고 나아가는 의인 열사람이 있으면 세상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은 새로운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원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의 목적을 영원의 빛에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영원의 빛에서 내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우리 인생의 목적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Rick Warren 목사님께서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을 함께 읽어왔습니다. 함께 나누며 삶의 변화를 추구해왔습니다. 주일에는 같은 주제 밑에서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여러분, 금번 기회에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을 바로 세우셨습니까? 그동안 간직해 오신 목적을 점검해 보셨습니까? 내 인생의 Mission Statement, 사명선언서를 작성하셨습니까? 이제는 옛사람의 껍질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실 것입니까? 부활의 이 계절이야말로 새생명을 살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제는 옛 삶에서 탈출할 때입니다. 새롭게 시작할 때입니다.

지난 3월8일 한국일보의 여기자의 세상읽기 칼럼에 권정희님께서 쓰신 “멜 깁슨의 탈출”이란 글의 부분 부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제 설교를 줄입니다.

소설 “개미”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미 전문가입니다. 여섯 살 때 우연히 개미에 흥미를 느끼게 된 후 그의 삶은 집요하게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개미박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따금 개미들은 하는가 봅니다. 예를들면 그가 목격한 어처구니 없는 떼죽음 사태입니다. 대단히 호전적인 한 열대지방의 종(種)이 있는데 한번은 그 개미 행군대열에서 병정개미 한무리가 비 때문에 낙오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길잃은 수천마리의 개미들은 전진하는 대신 소용돌이를 이루며 둥글게 돌기 시작했습니다. 개미 무리는 돌고 또 돌기를 하루 반동안이나 계속하더니 결국 탈진해서 검은 융단같이 모두 널브러져 죽었습니다. 앞으로 향군해 가면 될 것을 개미들은 왜 제자리 돌기를 계속했을까. 계속 돌다보면 결국 탈진해 죽는다는 걸 개미들은 몰랐을까 - 개미가 아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이나 판단없이 관성에 떠밀려 같은 길을 돌고 또 도는 반 몽유병 같은 상태, 머리로는 ’아니다‘ 싶으면서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 속수무책의 무력감이 그 원인이라면 우리에게도 그것은 낯설지 않습니다. 만약 외계인 같이 이해의 고리가 전혀 없는 제 3의 존재가 우리의 일과를 내려다본다면, 그도 그런 의문에 빠지지 않을까 - 저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면 결과가 뻔한데 왜 벗어나지를 못하는 걸까. 그것은 영화배우 멜깁슨이 12년전 뼈저리게 느낀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는 객관적으로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마땅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깁슨의 경우는 손에 넣고 싶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상태였습니다. 현재로 결혼 24년째인 조강지처와 7남매의 유복한 가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하다는 외모, 넘치는 부와 명성 ... 그런데도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느낌도 없는 물질의 풍요에 중독되고, 그 무료함을 타락으로 털어내면서, 그는 개미떼의 소용돌이 같은 반 수면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건지, 인생의 목적이 없었습니다. 12년전 자신의 상태를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마도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 있습니다. 나는(그때) 영적인 파산상태였습니다. 그건 마치 영적인 암에 걸린 것 같아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암에 내가 잡아 먹혀버릴 판이었습니다.” 한동안 잃었던 자신의 정신적 뼈대, 신앙을 붙잡고 그는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저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성서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노력의 한 열매가 최근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입니다......

깁슨이 이제 진정한 행복에 도달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떠밀리던 삶에서 과감하게 탈출을 시도한 점은 배울만 합니다. 새 봄입니다. 또 새롭게 결심한다 해서 어색할게 없습니다.

지금은 탈출할 때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아 새롭게 살아갈 때입니다. 영원을 가슴에 품고 그 목적에 이끌려 살아갈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