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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4. 목적이 이끄는 삶(5)-조영진 목사

"사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2-20

우리는 그냥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사명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내 인생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해서 찾아야 할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군중들은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곧 올 것처럼 흥분하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 흥분, 그 기대는 점차로 꺼져갔습니다. 예루살렘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고가 차츰차츰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탐욕과 폭리로 더럽히는 장사꾼 무리들을 채찍을 들어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시고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 겟세마내 동산에 가셔서 피땀을 쏟으시며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체포되셔서 대제사장에게 재판을 받으셨고, 이어서 빌라도 총독 앞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없음을 발견한 빌라도는 석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들의 위협적인 함성 앞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줍니다.

금요일 아침 9시경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6시간 가량 고통을 당하시다가 오후 3시경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사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이번 주간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한 주간을 보내신 고난 주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많이 고민하시며 많이 괴로워 하셨던, 주님을 기억하시면서 금식도 하시고 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에도 더욱 열심을 내시면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다.

“목적이 이끄는 삶” 이란 제목 밑에 드리는 연속설교의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첫째는 예배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고 다섯째는 사명을 깨달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넷째와 다섯째 목적을 합쳐서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일 부활절에는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림으로 금번 연속설교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I.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목적들과 함께 또 한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 주일에 말씀드린 것이 사람이 되는 것, being의 문제였다면 오늘의 문제는 doing의 문제, 행함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생에게 맡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찾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대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맡겨주시는 숙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이 어떤 사명을 안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 삶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는 주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입술만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 삶을 통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 일터인 사무실, 공사현장 혹은 가게 아니면 학교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부둥켜 안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삶을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이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이 삶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섬김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Rick Warren 목사님은 섬기는 삶을 Ministry, 사역이라고 부르고, 복음증거는 Mission, 사명이라고 표현합니다.

II.

먼저 사역, 섬김의 삶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아침 우리는 요한복음 13:12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앞에는 유명한 한 사건이 실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일입니다. 13:1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두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숨질 때까지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최고의 사랑으로, 가장 큰 사랑으로 라는 뜻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섬김의 삶을 살아갈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라.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요한복음 16:13-14).”

여러분, 오늘 우리도 발을 씻겨 주는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삶이야 말로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섬김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이룩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섬김의 삶은 또한 우리 인생이 걸어가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삶의 길입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왜 섬김의 삶이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영광을 누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을 포기하시고, 비우시고, 낮추시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스승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분은 낮추시고, 낮추시고 낮추셨습니다. 섬기고, 섬기고 섬기셨습니다.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리와 창녀들까지도 섬기셨습니다. 이렇게 낮추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수억의 인생들이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께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은 공허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비현실적인, 비실제적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도 진리입니다. 비지니스 세계에서도 진리입니다. 여러분, 요즈음 시대는 고객 만족의 시대를 넘어서서 고객 감동의 시대라고까지 말합니다. 고객을 섬기는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섬김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 뿐 아니라, 내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길입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길입니다.

III.

또 한가지 우리 인생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길은 사명, mission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우리가 구해야 하는 삶의 길은 바로 복음의 증언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증거의 사명은 이미 구약성서 속에서부터 발견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41:10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니 내가 택한 나의 종이라. 이렇게 한 것은 너희가 나를 알고 믿게하려는 것이고, 오직 나만이 하나님임을 깨달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신이 있을 수 없고 나 이후에도 있을 수 없다.“ 또 41:12에서 ”바로 내가 승리를 예고하였고 너희를 구원하였고, 구원을 선언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는 너희가 나의 증인이다. 내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음을 신약성서에서는 더욱 강조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명했습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또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9에서 우리는 택함을 받은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로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선포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이 일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한 생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15에서 시편 52:7의 말씀을 인용해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구원받은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온 인류가 함께 기뻐하면서 함께 즐거워 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이 땅끝까지 퍼져 가기를 원하십니다.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역사가 능력있게 펼쳐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목적을 이루는 길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땅히 해야하는 삶의 숙제입니다. 복음증거에 관심있는 사람들 만이 아닙니다. 단기선교팀원들 만이 아닙니다. 목회자나 속장님들 만이 아닙니다. 모두입니다. 우리 모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위대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명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IV.

누가복음서에 보면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 한그루를 심었습니다. 무화과 열매을 얻을까 하여 3년을 기다렸으나 도무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화가 나서 관리인에게 말합니다. 내가 세해를 기다리며 무화과 열매를 얻어볼까 했지만 도무지 열매를 맺지 않으니 이제는 잘라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겠느냐?

여러분, 포도원에 심어놓은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아도 괜찮은 것 아닙니다. 주인의 지적처럼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땅만 버리게 되어 다른 포도원 과목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계속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나무는 뽑힐 수 밖에 없습니다. 밖에 버리워 짓밟힐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섬김의 열매, 복음증거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주님께 실망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쓸모없는 나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섬김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복음증거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인생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있습니까? 사명의 사람으로 흔들림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사람 이야기를 소개하며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2년전 안식년 기간 중 영국 스코틀란드에딘버러에서 열렸던 International Preaching Conference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 Conference가 Edinburgh 대학에서 열렸는데, 이 대학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이 캠퍼스 이곳 저곳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사람, Eric Liddel의 이름을 보았을 때 저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는 영화 “Chariot of Fire(불의 전차)”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사람입니다.

에릭은 15세가 되는 때, 자기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 이후 에릭에게 있어서 주님은 항상 첫 번째 우선 순위였습니다. 에릭은 육상경기에 열중하면서 자기 나라를 대표하여 출전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졌는데, 1924년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100미터 경주의 출전 선수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경주가 열리는 날이 주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출전을 포기하였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신은 당신 나라를 욕되게 할 참이요. 당신은 매국노나 다름없소.” 영국 팀의 총감독은 “말도 안돼. 이렇게 할 수 없어”라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에릭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일에는 달릴 수 없습니다.”

그가 출전할 수 없다는 소식은 신문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영국 경기위원회는 이에 분개해 했습니다. 신문들은 그들의 비난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에릭의 친구들 가운데 몇 명은 그를 변호하고자 애썼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유명했던 에릭은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에릭은 게시판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400미터 경주는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 열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경주는 에릭의 주종목은 아니었지만,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에릭은 감독에게 찾아가 400미터 경주에서 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까지 관례상 없었던 일이었지만, 감독은 허락해주었습니다. 에릭은 예선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이겼습니다. 마침내 에릭이 준결승전을 치렀고, 결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 그의 팀 마사지 담당자가 에릭에게 종이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구약성경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거기에 인용된 성경구절은 사무엘상 2장 30절이었습니다. 에릭은 결승전에서 달릴 때, 그 말씀과 함께 달렸습니다. 마침내 에릭은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에릭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에릭은 그가 출전하면 이길 수 있었던 100미터 경주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일로 인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비난 속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원칙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릭이 뜻하지 않게 400미터 경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그 나라는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후에 에릭은 중국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 에릭은 자기 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니, 하나님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나를 만드셨어. 중국말이야. 또 하나님은 나를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만드셨지. 내가 달릴수록 나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더욱 분명히 느끼게 돼.” 일본이 중국을 점령했을 때, 에릭은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음식과 옷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화장실 시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수용소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포로들 간에 다툼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미국 사업가 출신들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일치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에릭은 그들과는 달랐다는 점입니다. 에릭은 자기가 믿는 믿음대로 살았습니다. 에릭은 샤오창에서 중국 사람들 가운데 살 때 뿐 아니라 여기 수용소에서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에릭은 매춘부와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던 사업가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석탄을 날라다 주었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기꺼이 자기의 금장 시계를 팔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하키용 스틱을 감싸기 위한 천으로 자기의 홑이불을 찢었습니다. 낡은 커튼으로 만든 다양한 색깔의 셔츠를 입고 행군을 하며, 참으로 평범해 보일 뿐,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그는 여전히 같은 에릭이었습니다.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러시아 매춘부는 참으로 모포를 필요로 했습니다. 에릭이 그것을 그녀에게 가져다주자, 그녀는 에릭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준 첫 번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포로는 에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에릭이 다른 사람에게 대해 불친절하게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에릭은 제가 아는 한 가장 그리스도를 많이 닮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일본군 수용소 간수가 어느 날 점호를 하는데 에릭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자, 어떤 사람이 에릭이 몇 시간 전에 죽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간수는 머뭇머뭇하며 말하기를, “리델은 그리스도인이었지요. 그렇죠?”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간수는 에릭과 한번도 대화해 본 일은 없지만, 아마도 에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에릭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수용소 내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뇌종양으로 생을 마친 것입니다. 수용소 병원은 그와 같은 질병을 수술할만한 장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에릭이 스코틀랜드 간호사인 애니 부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곧 “애니, 완전한 복종인거야”였습니다.

그 소식이 글래스고우에 전달되었고, 곧 석간 신문에는 다음과 같이 실렸습니다. “스코틀랜드는 평생을 걸쳐 그 나라의 자존심을 세워준 아들을 잃었다.” 장례식에서는 선배 선교사인 아놀드 브리슨(Arnold Bryson)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제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에릭 리델은 예수 그리스도 정신을 그의 성품과 삶 속에 가장 탁월하게 나타내었던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에릭을 친밀하게 아는 특권을 가진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의 헌신된 삶의 비밀은 무엇이며, 무엇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미치도록 했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릭의 삶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섬김과 복음증거의 삶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남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내 인생의 목적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섬기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섬김과 복음증거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땅만 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세월만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